항상 언니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어느 날 언니를 따라 강우 오빠네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강우 오빠네 집 마당도 휴양림처럼 예쁜 꽃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집안에는 아름다운 아줌마가 계셨습니다. 강우 오빠 엄마랍니다.
난 엄마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다만, 언니를 보면 엄마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빠가 말하길 엄마는 선녀여서 원래 살던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난 알고 있습니다. 선녀의 고향은 하늘나라인데 엄마가 하늘나라로 돌아갔다면 그렇다면 세상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내겐 아빠가 엄마이고, 언니가 엄마입니다. 지금도 행복하긴 하지만 만약 엄마가 있다면, 수업이 끝나고 나면 언니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집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거실에는 영화극장에만 있을 것 같은 큰 소파에 큰 TV가 있었고 커다란 피아노까지 놓여 있었습니다. 의자에 앉아 건반을 눌러보는데 어느새 강우 오빠가 옆에 앉았습니다. 무슨 노래인지 모르지만 하얀 두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연주하는데 너무 멋있어 보였습니다. 나는 강우 오빠를 빤히 쳐다보다가 강우 오빠가 나를 보고 웃자 얼굴이 뜨거워졌습니다. 강우 오빠는 연주를 멈추고 내 손가락을 잡고 건반을 하나씩 누르면서 가르쳐 줬습니다. 도레미파솔라시도.
갑자기 내 심장이 피아노 건반이 된 것처럼 콩콩거리며 울렸습니다.
“애들아, 이리 와서 간식 먹으렴.”
강우 오빠 엄마가 가져다주신 접시에 놓인 과자는 가게에서 파는 과자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있었습니다.
“은비라고 했지? 잘 먹네. 많이 먹고 가. 은교 맞지? 근데 은교는 어쩌면 이렇게 이쁘니? 눈도 크고 얼굴도 하얗고. 오늘은 아주 핑크 공주님이네. 우리 강우랑 아주 잘 어울리네. 호호호.”
아빠도 우리 보고 가끔 공주님이라고 했지만 아줌마는 핑크 공주라고 했습니다.
“언니, 핑크가 뭐야?”
“분홍색. 은교가 분홍 원피스에 분홍 신발 신었잖아.”
강우 오빠가 언니를 보고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치이, 뭐야. 언니만 공주야?’
아직 자고 있는 언니를 흔들어 깨우며 일어나라고 재촉합니다. 잠이 덜 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언니는 흠칫 놀라 일어납니다. 그리고선 후다닥 아빠가 계신 방으로 달려갑니다. 나도 “꺄르르” 웃으며 언니 따라 신나게 막 달려갔습니다. 방문을 열자 이제 막 잠에서 깬 아빠가 보입니다.
“응? 공주님들 행차하셨네? 아니 이런, 이게 무슨 일이야? 은비가 이렇게 일찍 일어나고?”
아빠에게 가려는데 언니가 나를 확 붙잡았습니다.
“야, 애기똥풀! 너 사람 놀래킬래?”
내가 일찍 일어나서 언니를 깨운 게 애기똥풀이라 부를 만큼 기분이 안 좋고 놀랄 일인가요? 참 알다가도 모를 언니의 행동 때문에 기분이 나빴지만, 강우 오빠를 볼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며 참아야겠습니다. 내 손가락을 잡고 피아노를 가르쳐 주던 모습만 생각해도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그러고 보니 놀랄 일이긴 합니다. 평상시에는 아빠도 깨우다 힘들면 아빠의 뾰족한 고슴도치 가시 같은 수염을 내 볼에 비벼대야 ‘앗! 따가’ 소리 몇 번 지르고 이불을 돌돌 말았다 폈다를 반복하다 일어납니다. 일어나 보면 언니는 벌써 등교 준비를 다 해 놓고 아빠를 도와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실, 청소며 옷 정리며 힘든 일은 언니가 하고 아빠를 도와 숟가락 젓가락 놓는 쉬운 일은 내 일인데 아침은 늦잠을 핑계로 그것도 언니가 하는 셈입니다. 마치 TV속 엄마들처럼.
강우 오빠를 볼 수 있다는 기대에 설레서 일찍 일어나긴 했지만, 아직도 방안에 앉아있습니다. 이렇게도 예쁜 옷이 하나도 없을 수가 있나요? 치마는 언니가 입던 치마가 전부이고 온통 유치한 모양이 그려진 옷들 아니면 알록달록 피에로 같은 옷뿐입니다. 이게 아빠가 내 옷을 고르는 어쩔 수 없는 기준입니다. 이렇게 입고 가면 강우 오빠가 나를 애기로 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머리도 남자애들처럼 짧고 얼굴에 주근깨도 가득합니다. 그러면 진짜 못생긴 남자아이로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여잔데 왜 은교 언니랑 다르게 생겼을까요?
“은비야…… 은비!”
언니가 들어왔습니다.
“아니 아직도? 뭐 하니?”
“예쁜 옷이 없어. 언니 옷 입을래…….”
“니가 언니 옷이 맞겠니? 응? 얼른 준비해.”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준비도 하지 않고 다시 이불 속에 들어가 애벌레처럼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나를 보고 언니는 먼저 학교로 가 버렸습니다.
‘흥, 누가 같이 가자고 할까 봐!’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얼마 전 언니가 입고 있던 분홍색 원피스와 머리띠였습니다. 이불 속에서 슬금슬금 나와 머리에 머리띠를 해 봅니다. 머리카락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을 것 같긴 하지만 머리띠를 하니 남자애 같지는 않습니다. 분홍색 원피스도 입었습니다. 비록 언니 옷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옷도 내 옷이 될 거니까 결국은 내 옷입니다. 조금 크지만 아주 마음에 쏙 듭니다. 나도 이제부터 핑크 공주입니다.
오늘 휴양림까지 오는 길은 정말 우울했습니다. 내 모습을 본 언니와 강우 오빠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개구리보다 더 시끄럽게 “까르르 깔깔……”웃기 시작했습니다.
“은비! 누가 언니 옷 입으래?”
“나도 핑크 공주 할 거야!”
강우 오빠 앞에서 웃음거리가 된 것 같아 화가 났습니다. 빨리 아빠가 계신 곳에 도착하고 싶었지만, 언니의 예쁜 구두까지 신고 나와 걸을 때마다 구두가 홀짝홀짝 벗겨질 것만 같아 힘이 들었습니다. 아빠가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휴양림에 도착했지만 아빠의 모습은 그리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오늘도 아빠는 어디선가 꽃과 나무들과 지내고 있을 텐데 꼭꼭 숨어버린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아빠를 찾는 사이 언니와 강우 오빠는 또 나를 혼자 두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요즘, 강우 오빠와 함께 오는 날이면 언니와 오빠는 나를 두고 항상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다정하게 나타나곤 했습니다. 나도 따라간다고 쫓아가기라도 한다면 어린애는 힘들어서 안 된다고 하면서 둘이서 날쌔게 도망가 버렸습니다.
“흥, 자기들은 어린이 아닌가? 나만 어린애 취급이야? 오늘은 꼭 찾을 거야. 근데 어딜 가서 찾지? 음……. 내가 힘들어서 못 간다고 했으니까 ……. 아! 그럼 엄마 나무?”
나는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언니가 줬던 엄마 나무가 있는 그림을 찾아야 합니다. 가방을 땅에 다 털고 나서야 꼬깃꼬깃 구겨진 종이를 찾았습니다.
그림을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평상시 같으면 오솔길에 난 작고 예쁜 꽃들에 한눈을 팔았을 텐데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나뭇가지에 언니의 분홍색 원피스가 자꾸 걸리고 귀찮게 합니다. 구두도 자꾸 벗겨집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언니 구두는 신지 않는 건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차라리 구두를 벗고 오르는 게 쉬운 것 같습니다. 양손에 구두끈을 잡고 마구 빙빙 돌리며 오르는데 순간 한쪽 구두가 나뭇가지에 걸려 힘이 들어가면서 끈이 “뚝” 끊어집니다. 언니가 구두를 보고 놀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뜨끔해집니다. 그러면서도 쌤통이다 싶은 게 콧노래가 흥얼거려집니다. 하지만, 콧노래 소리는 잠시뿐이었습니다. 다리도 아파오고 발도 너무나 아파서 다시 구두를 신고 걷는데, 끈이 끊어진 구두가 자꾸 말썽입니다. 이젠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기 어렵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숲 속이 조금씩 어두워집니다. 나도 조금씩 무서워집니다.
‘계곡이 있고 커다란 둥근 바위가 있고 바위를 살짝 돌고 그 밑에 낭떠러지. 앗, 저 나무다!’
그림에 수많은 하트로 표시된 그 나무를 드디어 찾았습니다. 그런데 언니와 강우 오빠는 없습니다. 나 혼자만 남겨두고 다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요? 멋진 강우 오빠를 혼자 차지하려고 나만 남겨 두고 가버린 언니가 너무 밉습니다.
“엄마 나무!”
아니 나무가 무슨 엄마야. 난 바보가 아닙니다.
“못생긴 나무야. 언니 여기 왔었니?”
대답이 없습니다.
“야, 언니 왔었냐고! 왜 대답 안 해? 날 무시하는 거야?”
언니도 아빠처럼 나무와 대화를 하는데 나에겐 작은 소리조차 내지 않습니다.
“대답 안 할 거야? 언니하고만 얘기할 거야? 너도 언니만 좋은 거야? 언니만 좋은 거냐구!”
나무를 붙잡고 마구 흔들었더니 떨어지는 잎과 함께 작은 가지 하나가 ‘툭’ 하고 떨어집니다.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다른 가지 하나를 꺾었습니다. 구두끈이 떨어진 것보다 더 쌤통입니다. 가지 하나를 꺾고 다른 가지 하나를 꺾고 또 다른 가지 하나를 꺾고 여기저기 초록 살들이 생생하게 드러났습니다. 언니가 미운 만큼 가지를 꺾었습니다. 나무가 더 말라 보였습니다. 나는 부러진 가지 위에 앉아 씩씩거리며 산 아래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봅니다. 지금 이렇게 보니, 내 눈이 언니처럼 조금만 컸더라면 내가 사는 집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은비야, 애기똥풀!”
“은비야!”
언니와 강우 오빠가 나를 부르고 있습니다. 아, 엄마 나무가 이렇게 된 것이 다 내가 한 짓이라는 사실을 언니가 알게 된다면 정말 불같이 화를 낼 것입니다. 나는 순간 바위 옆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헉헉, 여기가 비밀 장소야? 나도 올라오긴 힘든데?”
아, 그렇다면 언니와 강우 오빠는 여기에 한 번도 오지 않았던 것일까요? 그럼 그동안 어딜 갔었던 것일까요?
“응. 같이 데리고 갈걸 그랬어. 관찰학습에 방해될까 봐 그랬는데……. 정말 어디 갔을까?”
“다음부터 같이 가자. 그런데 은비가 여길 찾기나 할 수 있겠어?”
“그래도 혹시 내가 준 그림 지도 보고 왔을까 봐…….”
“은비가 지도를 읽을 줄이나 알겠니?”
강우 오빠는 나를 그림 지도 하나도 제대로 못 읽는 어린아이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슬퍼집니다.
“앗, 이게 뭐야?”
“응? 뭐가? 왜 그래?”
“엄마가 엄마가……”
“엄마?”
“응. 이 나무 우리 엄마야. 진짜 우리 엄마”
언니가 정말 많이 울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엄마라니요?
“진짜 엄마?”
“응. 돌아가신 엄마. 엄마가 좋아하시는 느티나무를 심고 거기다 엄마의 하얀 가루를 뿌렸단 말이야…….”
“…….”
“몇 해 전에, 엄마 아빠는 가끔 새벽 산행을 가셨다가 아침에 돌아오곤 하셨어. 그날도 그렇게 새벽에 나갔는데 은비가 자고 있던 날 깨우면서 막 울더라. 돌아올 때가 훨씬 지난 때였는데 안 오셨던 거야. 어쩐지 무서워서 둘이서 막 울었을 거야. 그날 아빤 혼자 돌아오셨는데……. 엄마는 이 근처에서 돌아가셨어. 그래서 은비가 날 아침에 일찍 깨우면 지금도 무서워.”
그렇게 언니와 내가 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빠는 가까운 곳에 이 나무를 심고 싶으셨지만, 엄마는 이곳에 묻어 주길 바라셨대. 여기 서 있으면 우리가 사는 곳이 잘 보여서 영원히 지켜줄 수 있을 거라면서. 하지만, 아빠는 이곳에 오기가 무섭대. 자꾸 엄마 생각이 난다고. 위험한 곳이래. 그래서 여기에 못 오게 해. 나를 딱 한 번 데리고 오셨는데 그때 나는 거쳐 간 길을 지도로 그려서 수없이 외웠던 거야. 이젠 눈 감고도 올 수 있게.”
“…….”
“엄마. 많이 아프지. 조금만 참아. 내가 아빠 데리고 와서 고쳐줄게. 응”
그것은 진짜 엄마 나무였고 그리고 엄마를 아프게 한 사람은 나였습니다. 왜 언니는 그 사실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걸까요? 아니 그토록 궁금한 것이 많은 내가 왜 엄마 나무인지 꼬치꼬치 묻지 않았을까요? 아빠가 외우던 주문을 가르쳐 달라고 조르던 것처럼.
참, 주문이 있었습니다. 나는 아빠가 외우던 아픈 나무를 낫게 하는 주문을 기억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주문을 외우면 아픈 엄마 나무가 나을 테니까요.
‘엄마 나무야. 조금만 기다려. 내가 아빠처럼 주문을 외워서 낫게 해줄게.’
그런데 주문이 잘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자라 까라 퐁퐁퐁? 자라 까라 나무 퐁퐁?’
그러다 무릎을 꿇고 생각나는 대로 주문을 외우며 기도했습니다.
“엄마 나무 꼭 낫게 해주세요. 자라 까만 나무 퐁퐁퐁. 자라 까만 나무 퐁퐁퐁.”
울음 속에 잠시 멈췄던 언니의 목소리가 다시 들립니다.
“분명 은비 짓이야.”
“은비가?”
“응. 분명해. 뭔가에 심통이 나서는……. 못생긴 애기똥풀. 잡히면 가만 안 둘 거야!”
난 이미 눈물 콧물로 범벅되어버려서 더 못생긴 얼굴이 되었습니다. 엄마 나무를 아프게 한 것이 미안해서, 엄마 나무가 죽을까 봐 겁이 나서, 화가 날대로 화가 난 언니가 무서워서 슬금슬금 뒷걸음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끈이 끊어진 그 말썽꾸러기 구두가 무언가에 탁 걸리더니 비명소리와 함께 내 몸은 산 아래로 구르다 멈춥니다. 눈물로 엉킨 몽롱한 내 눈에 선녀처럼 예쁜 엄마가 나를 안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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