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으로2010/04/02 09:04

일벌이 약속했던 이튿날이 되었다. 그러나 일벌은 나타나지 않았다."결국 나타나지 않는 걸까? 벌써 이틀째야. 내일이면 이 비늘마저 없어져 버려……. 이건 모두 나 때문이야…….”

“아니야, 승우야. 이건, 누구의 책임도 아니야. 너도 나도 정령들도 마을 사람들도 선녀들도 모두…… 모두가 다, 선녀와 나무꾼을 사랑했기 때문이야.”

“너무 어려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때 일벌이 나타났다. 그를 따라 무려 한 시간을 걸어 들어가서야 나무에 매달려 있는 벌집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갑자기 벌집에서 벌떼들이 달려나와 승우의 몸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선녀 설희가 손을 쓰기엔 속수무책이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승우에게 손대면 정말 너희도 너희의 여왕벌도 무사하지 못해.”

“너야말로 우리 여왕님에게 손대면 너도 이 아이도 무사하지 못할 거야.”

그때 벌집에서 푸른빛을 내며 무엇인가가 선녀 설희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승우를 에워싸고 있던 벌들 중 일부가 날아와 그 빛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분명 여왕벌 정령이었다.

“안 됩니다, 여왕님. 스스로 나오시다니요.”

“이게 무슨 짓들이냐? 나는 이제야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게 되어서 그 어느 때보다도 기쁘거늘……. 어리석은 짓 하지 말고 어서 빨리 그에게서 떨어져라.”

벌들의 움직임이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어찌할 줄 몰라 하는 것이었다.

“선녀님 죄송합니다. 원하시는 꿀은 바로 저입니다. 저를 물고기 정령의 비늘 위에 올려놓으시면 제 몸이 꿀처럼 녹아 빛을 만들어내고 그 빛이 비늘과 날개옷을 붙여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을 것입니다. 자, 저를 데려가십시오.”

승우는 울고 있었다. 벌들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물고기 정령도 여왕벌 정령도 서슴없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저 이 모든 게 다 자신 때문인 것만 같았다.

“나는 너희의 여왕을 데려갈 거야. 이제 선녀와 나무꾼을 생각하는 마음이 엇갈리지 않도록, 너희 여왕의 희생과 모두의 마음이 하나로 모일 수 있도록 내가 마지막으로 힘을 낼 테니까 부디 나를 믿어줘.”

선녀 설희가 두 손 안에 여왕벌을 넣고 날아가지 않게 살짝 가둔 다음 눈을 감고 다시금 주문을 외우듯 입술을 움직인다. 그리고 두 손을 살짝 열어 보이자 푸른빛과 하얀 꽃잎이 한 줄기로 섞이어 벌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모든 벌들이 그 빛을 따라서 벌집으로 들어갔다. 승우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벌들이 ‘고맙다’고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나도 널…… 잊지 않을게!”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승우는 선녀 설희를 처음 만났던 곳으로 함께 돌아와 있다. 선녀 설희는 곧 하늘로 돌아갈 것이고 잠들어 있는 우진이는 깨어날 것이고 마을에 재앙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승우의 몸에 남아 있는 나무꾼의 마지막 영혼의 빛도 사라질 것이다. 더는 선녀와 나무꾼은 엇갈리지 않을 것이다. 달은 구름에 가리어 빛이 흐려져 있었다. 승우는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마치 꿈만 같다.

“곧 의식이 시작될 거야. 의식이 끝나는 대로 나는 사라져버려. 그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줘.”

“그게…… 너에게 정말 미안했고…….”

“미안해할 필요 없어. 승우 네가 이곳에 온 이유는 나무꾼의 영혼의 빛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잖아. 그리고 너와 우진이의 일은 내가 돌아가서 잘 말해둘 테니 너무 염려 마. 그리고 또?”

“그게…… 그러니까…….”

승우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에 말을 잇기가 어려웠다.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지?”

“더 이상 이곳에 올 수는 없을 거야. 마지막 꽃잎들이 이 마을에 사는 마지막 사람까지 지켜줄 테니까. 내가 할 일이 없어.”

“왜 할 일이 없어! 나를 만나러 오면 되잖아!”

짧은 시간이었지만 승우는 선녀 설희가 너무나 좋았다. 더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더 많이 웃게 해주고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 선녀 설희가 사는 곳이 어떤 세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마을이 이렇게 아름다운 이유가 선녀의 마음씨 덕분이라니 더더욱 보여주고 알려주어야만 할 것들이 많았다.

“그러면 내가 물을게. 승우야, 나와 함께 내가 사는 세상으로 가지 않을래?”

그제야 승우는 눈물을 그쳤다. 그리고 선녀 설희의 눈가에 맺혀 있는 눈물을 보았다. 당장이라도 그런 설희의 손을 꼭 잡고 따라나서고 싶었지만, 나무꾼이 그랬던 것처럼 승우에게는 지키고 싶은 가족이 있었다. 그리고 친구가 있었다. 선녀가 실제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유일한 친구가 떠나버리면 우진이는 얼마나 슬퍼할까?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승우야, 난 말이야. 소중한 것이 ‘하나’일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 하나만 선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게 되었고. 그리고 그것이 단 하나일지라도 소중한 마음이 클수록 지키기 힘들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 그건 정말 슬픈 일이야. 지금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다는 걸 승우 네가 알려주었어. 너와 함께 할 순 없지만 너의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 주어서 정말 고마워! 널 잊지 않을게!”

선녀 설희가 날개옷 위에 정령들이 나눠준 마음을 올려놓자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너무나 따뜻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겨 있는 것 같은 따뜻함이었다. 그 마음의 빛을 입은 선녀 설희가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몸짓으로 무언가를 그리자 그 빛이 마을을 뒤덮으면서 이내 하얀 꽃잎이 함박눈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승우의 몸에서도 한 줄기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선녀 설희가 내리게 한 하얀 꽃잎의 눈에 섞여 마을에 함께 내렸다.

그 한여름의 새하얀 눈꽃 잎은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그것을 볼 수 있었던 사람은 오로지 승우뿐이었다. 승우는 사라져가는 설희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나도 널…… 잊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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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2010/03/21 08:30

꼬마 선녀가 할머니와 승우를 앉혀놓고 왜 자신이 하늘나라에서 내려왔는지를 이야기한다. 꼬마 선녀의 이야기는 우진이가 들려준 것처럼 나무꾼과 그의 홀어머니를 위한 꽃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선녀가 보내는 하늘의 꽃에는 신비한 힘이 있어. 나무꾼과 그의 어머니 그리고 이 마을 모두를 사랑하는 ‘선녀의 마음’이 담겨 있거든. 쉽게 말하면, 이 마을에 유독 나이 많은 여자들이 많은 건 선녀가 그들을 나무꾼의 어머니처럼 여기고 보살피려 했기 때문이야. 꽃의 향기를 맡은 이 마을 정령들은 선녀의 마음을 헤아려 이 마을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이 마을에 사람이 많이 살지는 않지만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답고 깨끗하고 살기 좋은 곳인 건 이 때문인 거고.”

“선녀가 나무꾼의 친구 자손들에게 자신의 꽃을 부탁했었다고 하던데…….”

“그랬었지. 그랬는데 그 자손들 중에 욕심을 품은 자가 있었어. 그 꽃을 자기가 가지면 이 마을에 나뉘었던 커다란 복이 자신의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부른 욕심이었어. 결국, 마을에 재앙이 들이닥쳤지. 그해 여름, 산의 나무들이 쓸려갈 만큼 엄청난 폭우가 내렸어. 그것도 이 마을에만. 피해는 말할 수도 없이 컸고 사람들은 점점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어. 그는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뒤늦게 깨달았지만, 용서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어. 그러나 백 년 가까이 대를 이어 꾸준히 용서를 빌자 선녀는 어느 날 자신의 목소리를 그들에게 들리게 해주었지. 다시 너희들을 통해 꽃을 내리지는 않겠지만, 이 마을을 계속 지켜주겠노라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었다면 지금 이곳은 인간이 있는 그 어느 곳보다도 살기 좋은 마을이 됐을 거야. 하지만, 그들의 뉘우침 또한 없었으면 지금처럼도 살지 못했겠지. 그렇게 다시 오랜 세월이 지나고 지나서…… 선녀도 하늘 세상에서 목숨이 다한 날이 온 거야. 더는 마을을 돌봐줄 수 없게 된 거지. 그래서 그녀의 아이를 인간 세상에 보내기로 했어. 마지막으로 이 마을에 꽃을 내려주기 위해서 말이야.”

“그 선녀의 아이가…… 꼬마 선녀, 너냐?”

“아니. 그 아이는 우리 어머니야. 그러니까 그 선녀는 나의 할머니야.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비어 있는 자리를 지키려면 어머니가 내려오실 수가 없었어. 그래서 내가 대신 내려오게 된 거야.”

“그렇다면 왜 다른 선녀들이랑 목욕하고 있었어?”

“꽃을 내리려면 특별한 의식이 행해져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몸을 씻어 정갈히 해야 하지. 원래는 나 혼자 내려와야 하는데, 내가 선녀로서 너무 어리기 때문에 의식에 실패할 수도 있고 혹시 또 인간에게 발견되게 하지 않게 하려고 함께 내려왔던 거야. 그런데…….”

꼬마 선녀의 이야기가 계속 될수록 할머니의 표정이 매우 심각해졌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 큰일이구나. 선녀님은 우리 승우에게 발견되어 버렸고, 그 의식이라는 것도 행하지 못하였으니…… 이제까지보다 더 큰 재앙이 이 마을을 덮칠지도 모르겠구나. 이를 어쩐다…….”

할머니께서 안절부절못하시는 모습에 그제야 승우는 자신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우진이는? 나랑 같이 있었던 남자애 말이야. 그 애는 갑자기 자기 집으로 말없이 돌아가 버렸어. 그런데 내가 불러도 돌아보질 않았어. 정말 들리지 않는 것 같았어. 아! 그 애의 조상님이 나무꾼의 친구라고 했어.”

“그 애는 잠들어 있어. 내가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거야.”

“그럴 수가…….”

“그 애뿐만이 아니야. 그날 이 마을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엄청난 벌을 받게 되겠지.”

“…… 네가 인간이 되기로 해서…… 그래서 이 마을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이 마을 때문이 아니라도 난 너와…… 함께 지낼 수 있어. 내가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정말 너를 좋아하게 된 거 같으니까…… 아니, 좋아해. 하늘로 돌아갈 수 없다면 모든 걸 용서하게 해주고 그냥 나랑 같이…… 우리랑 같이 살면 안 돼?”

“인간이 되려면 우선 날개옷을 빼앗긴 그 해에 첫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들었던 것 같아. 그런데 나는 인간의 몸으로도 성숙하지 못해서 아이를 낳을 수가 없어. 그보다 또다시 인간의 욕심이 하늘의 노여움을 사서…… 내가 돌아가지 못하면…… 이 마을뿐만 아니라 나도 없어져 버릴 거야…….”

승우는 펑펑 눈물을 쏟았다. 우진이를, 할머니를, 마을 사람들을 믿어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이렇게 엄청난 일이 될 줄 몰랐다. 열 살의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승우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큰 짐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방법이 없진 않을 거야. 일단 이 마을에 사는 정령들을 찾아보자. 내가 꽃의 향기를 풍기면 그들은 나를 알아볼 거야.”

“우진이부터 만나게 해줘. 너라면 어디 있는지 알잖아.”

“나도 잘 몰라. 다만, 그 아이의 할머니라면 이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을 거란 거야.”

“그렇다면, 그건 내가 알지. 내 길을 알려줄 테니 찾아가 보아라. 오늘은 벌써 해가 졌으니 내일 찾아가보렴. 반드시 길이 있을 게야…….”

좀체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승우에게 꼬마 선녀는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욕심을 부렸거나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고 하기엔 승우는 너무나 어렸고, 무엇보다 너무나 순수하고 착해 보였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백설이 아니고 설희야. ‘눈 설’ 자에 ‘빛날 희’ 자를 써서 설희.”

승우가 훌쩍거리면서 말한다.

“그럼 너는 백설공주가 아니라 설희공주였구나.”

“난 공주가 아니라 선녀야.”

선녀 옷을 고칠수 있을까?

우진이의 할머니 댁은 생각보다 가까웠다. 우진이의 할머니는 둘이 찾아올 줄 알았다는 듯 이미 문밖에 나와 있었다. 그러고는 선녀 설희를 보자마자 바닥에 엎드려 울며 사죄를 한다.

“이 늙은이 눈이 침침해도 한 눈에 선녀님인 걸 알아보니 피는 못 속이나 봅니다. 선녀님이시여,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 늙은이가 말이 많아 어린 새끼를 저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우리 우진이가 제 말을 믿고 그곳을 찾아갈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이 어리석은 늙은이를 데려가시고 저 어린 것이 제발 눈을 뜨도록…….”

승우는 자꾸만 나오려는 눈물을 꾸역꾸역 참아낸다. 이게 다 나 때문이다. 내가 우진이를 말렸으면 될 일이다.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나고 후회가 되었다.

“이 아이는 잠들어 있을 뿐이에요. 내 선녀옷을 고칠 수만 있다면 죽을 일도 없어요. 그 방법을 당신이라면 알고 있을 거예요.”

“선녀의 옷이 찢어지면 선녀탕이라 불리는 계곡물에 사는 물고기 정령의 비늘을 얻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옛날만큼 계곡물이 깊지가 않아서 그 정령이 살아 있는지,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그것뿐인가요?”

“제가 알고 있는 건 그것뿐입니다. 그 비늘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분명 그 물고기 정령이 알려줄 겁니다. 나이만 먹고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하니…….”

“아니에요. 충분히 도움이 됐어요. 잘될 거예요.”

선녀 설희와 승우는 서둘러 선녀봉을 향해 올라갔다. 그러나 물에는 물고기가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정령으로 보이는 물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선녀 설희는 물 위에 그림 같은 것을 그려서 이따금 물줄기가 솟아오르도록 신비한 힘을 내는 것 같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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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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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2010/03/10 08:00

승우는 우진이를 만나고 계속 마음이 언짢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우진이를 믿지 않으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할머니! 선녀는…… 진짜로 있을까요?”

“지금은 있는지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있었단다. 이 마을에.”

“하지만,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니다, 아니에요. 저 오늘은 우진이네 할머니 댁에 가서 놀 거예요. 많이 늦지는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은 달이 없는 날이니 일찍 들어오렴. 가서 할머니 말씀도 잘 듣고.”

“네. 다녀오겠습니다.”

승우는 우진이 말했던 것처럼 할머니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이 싫어져 하려던 말을 그만둔다. 우진이도, 할머니도, 아니 어쩌면 마을 사람들 모두를 의심하고 있는지 모르는 자신이 싫어진다. 그래서 우진이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가기로 결심한다. 소중한 친구인 우진이를 자기만큼은 믿어주고 싶다.

약속한 장소에 우진이는 이미 와 있었다.

“네가 오지 않을까 봐 사실 많이 걱정했어. 내가 선녀를 만나도 그것을 알아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야. 널 만나게 돼서 반가워!”

우진이가 승우를 꼭 껴안는다. 그러고는 가방에서 손전등을 꺼내 손에 쥔다.

“난 괜찮지만 너는 밤길이 처음일 테니까 이걸 사용해. 참! 먹을 것도 조금 싸왔으니 배고파지면 같이 먹자. 나는 긴장해서 아무것도 먹질 못했거든. 여기야, 나무꾼이 선녀를 훔쳐봤던 곳!”

정말 이곳이라면 선녀들을 훔쳐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깎아내린 언덕의 높이가 제법 되어 승우는 조금 무서웠다. 아홉 시가 채 되지도 않은 밤인데 시골이라 거리에 조명등이 많지 않고 그보다 달이 없어서 너무나 깜깜하다. 승우는 우진이 싸온 음식을 나눠 받아먹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흐름을 가늠할 수 없는 깜깜한 밤하늘에 승우는 점점 불안해진다.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승우야, 불 꺼! 저길 봐, 맙소사! 진짜야! 진짜였어! 우리가 꿈을 꾸는 건 아니겠지?”

그때였다. 우진이의 말에 깜짝 놀라 하늘을 올려다보니 갑자기 태양을 마주할 때보다도 더욱 눈이 부신 빛이 쏟아져 도저히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승우와 우진이는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몸을 움츠리고 숨을 죽였다. 

승우와 우진, 선녀를 만나다

승우와 우진이는 아주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선녀들을 바라보았다. 선녀의 몸에서는 은은한 빛이 계속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달빛과도 같았다. 선녀들이 날개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것은 옷을 벗는 것이 아니라 빛을 걷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벗어놓은 날개옷에서는 계속 은은한 빛이 새어나왔다. 그나저나 저렇게 먼 거리여서는 우진이의 말처럼 날개옷을 훔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날개옷을 벗은 선녀의 몸에서도 마찬가지로 ― 그러나 전보다는 조금 약해진 ― 아름다운 빛이 감싸져 있었다. 그 빛으로 인해 선녀의 몸은 굉장히 신비로워 보였다. 승우와 우진이는 아무 말도 못한 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선녀들 중에 눈에 띄게 몸집이 작은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를 보고 놀란 승우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나고 말았다. 그러자 그보다 더 놀란 우진이가 승우를 붙잡는다. 그러나 이미 늦어버렸다. 승우와 그 아이의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물줄기가 솟구치더니 우진이와 승우를 향해 날아왔다. 가까스로 물줄기를 피해 도망치려는데 굉장히 거센 바람이 그 주변을 휘감기 시작했다. 선녀들도 당황하여 급하게 날아가려는 날개옷을 붙잡고 빛을 내며 한 명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바람에 휘감긴 승우는 물 위로 떨어진다. 허우적거리다가 그 몸집이 작은 선녀를 붙잡는다. 그랬더니 승우의 몸이 공중에 뜬다. 땅 위로 곤두박질치는 승우의 몸이 선녀의 날개옷 위로 떨어진다. 날개옷 때문인지 던져질 때의 충격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선녀는 당황한다. 그때 우진이가 승우와 선녀를 향해 달려온다. 선녀가 우진이를 향해 꽃잎처럼 보이는 것을 던진다. 그것은 우진이의 어깨에 내려앉는 듯하더니 이내 사라진다.

“우진아, 나 좀 도와줘.”

우진은 마치 의식이 없는 사람처럼 뒤돌아선다.

“우진아, 우진아!”

승우가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우진은 점점 승우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와중에 몸집이 작은 선녀가 승우의 목을 조르려고 하나 손이 자꾸만 미끄러진다.

“미안해, 미안해. 혹시 내가 깔고 누운 게 네 날개옷이면 줄게, 줄게. 그러니까 비켜줘.”

승우가 얼른 몸을 일으켜서 선녀에게 내민다. 그런데 아까 봤던 빛이 날개옷에서 느껴지지가 않는다. 승우는 불안했다. 선녀도 급하게 날개옷을 입어 보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입고 있는 옷은 투명에 가까워서 작은 선녀의 몸이 비췄다. 승우는 그것이 부끄러워서 시선을 돌렸다. 작은 선녀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더니 목 놓아 엉엉 울기 시작한다. 승우는 더더욱 어찌할 줄을 몰라 한다.

‘몸집만이 아니라, 정말 어린 아이구나……. 꼬마 선녀님도 있구나. 그런데 우진이가 없으니 어떻게 할머니 댁으로 돌아가지? 그리고 나 때문에 망가진 이 날개옷을 어떻게 해야 하지?’

승우도 꼬마 선녀 옆에서 함께 목 놓아 울고 싶었다. 이런 건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그때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승우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그것은 할머니 발자국 소리다! 안심이 되자 승우는 의식을 잃었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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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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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2010/03/06 14:26

승우는 우진이의 걸음을 따라 마을 어귀를 걸으면서 못다 나눈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우진이가 걸음을 멈추고 쉬어 가자고 한다. 나무 그늘에 의지해 뜨겁고도 청량한 여름 햇살을 시원하게 받아낸다. 승우는 졸음이 쏟아지려 한다. 그런데 우진이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말투 ― 승우는 우진이의 그 말투가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 ― 로 이야기를 꺼내어 이내 졸음이 싹 가셨다.

“너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알지?”

“응! 줄거리 말해줄까?”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우리 둘 다 그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게 확실해졌으니까. 그렇다면, 이곳이 그 선녀와 나무꾼이 살았던 마을이라는 것도 알아?”

“할머니한테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승우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우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할머니 댁에 오는 걸 싫어한 만큼 할머니의 말씀도 잘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에 가고 싶어 훌쩍거리면서 울 때 할머니께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겠다며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꺼냈었다. 그때 승우는 아는 이야기라면서 짜증을 냈다. ‘그 선녀와 나무꾼이 이곳 삼거리마을에 살았단다.’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라고 무시해버렸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우진이가 하고 있다니!

“저 산봉우리는 ‘선녀봉’이라고 해. 선녀의 몸을 닮았다고 해서 선녀봉이라고 부른대. 그것보다 저 산봉우리에서 시작되는 계곡물이 바로 선녀가 목욕을 했던 계곡의 물이야.”

“그렇구나.”

시큰둥해하는 승우에게 우진이는 더욱 진지하게 이야기를 한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누가 지어낸 게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이야.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곳 삼거리마을이라는 것은 확실해.”

“에이, 거짓말. 그건 정말 지어낸 이야기잖아.”

“넌 저 선녀봉과 내 말을 믿지 않는 거니?”

우진이가 실망한 듯 보이자 승우는 당황한다.

“그치만…… 그걸 뭐라고 하지? 즈, 증거! 그래 바로 그거야. 증거가 없잖아! 내가 보기엔 그냥 산이고 물인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왔어. 하지만,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곧 알게 될 거야.”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는데?”

“바로 내일. 내일 선녀들이 마을 사람들이 선녀탕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내려올 거니까!”

“뭐라고?”

승우는 아직도 어리둥절하지만 우진이는 더욱 격앙된 목소리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내가 보여줄 굉장한 여름이 바로 그거야.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가 진짜인지 아닌지 내일 밤 우리의 눈이 증거가 되어 줄 테니까.”

동화 속 이야기를 믿다니! 승우는 우진이 처음으로 어린애 같다고 생각했다.

“선녀가 내려온다는 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우리 할아버지의 아주 먼 할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조상님의 친구 분이 바로 나무꾼이었기 때문이야.”

할아버지와 나무꾼

“우리가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걸 확인했지만, 마지막 부분을 덧붙여 이야기할게. 선녀와 아이들을 찾아 하늘로 올라간 나무꾼은 홀로 계신 어머니가 걱정되어서 다시 근심을 하게 돼. 그런 나무꾼이 안쓰러웠던 선녀의 도움으로 그는 천리마를 타고 땅으로 내려오게 되지. 어머니는 마지막이니 잠깐만 내려서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간절히 부탁하지만, 천리마에서 내리면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없기에 그럴 수 없다고 해. 그러면 죽이라도 한 사발 먹고 가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청을 못 이겨 말을 탄 채로 죽을 먹다가 그만 그 뜨거운 것을 말 등위에 쏟아버리고 말지. 놀란 말이 땅을 박차자 나무꾼은 말 등에서 떨어지고 순식간에 천리마는 하늘로 날아가 버리지. 나무꾼은 더는 선녀를 만날 수 없게 되어 홀어머니를 모시고 평생을 그리워만 하다가 죽게 돼.

내가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그 이후부터야. 선녀는 나무꾼이 자신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는 그를 도와줄 수가 없었어.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나무꾼에 대한 신의 노여움이 너무 커서 더 이상 선녀의 부탁이 받아들여지질 않았던 거야. 그래도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나무꾼을 만나게 해달라는 선녀의 간절한 청은 계속되다가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야 받아들여지게 되지. 그런데 하늘과는 달리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이미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 있었어. 선녀는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어. 그런데 이상했어. 왜 나무꾼은 죽어서도 하늘나라로 오지 못했던 걸까? 선녀는 나무꾼을 기억하는 사람을 가까스로 만나게 되었어. 그는 나무꾼의 둘도 없는 친구였던 사람의 손자뻘 된다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더욱 쓸쓸한 나날들을 보내다 죽은 나무꾼을 그 친구는 어머니 무덤 옆에 나란히 묻어주었지만, 어느 날 마을에 큰 홍수가 나면서 둘 다 떠내려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선녀는 땅에조차 편하게 묻히지 못하고 마을 곳곳을 헤매고 있을 나무꾼과 그의 어머니의 넋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어. 자신이 천리마를 보냈기 때문에, 아니 하늘에 다시 올라가려 했기 때문에 생긴 불행이라는 생각에 선녀는 너무나 슬펐어. 그래서 그들이 살던 마을에 10년에 한 번, 그러니까 인간에게는 100년에 한 번씩 하늘의 꽃을 띄워 보내기로 했어. 선녀는 그 꽃으로 그 둘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해 달라고 그 손자 되는 사람에게 부탁했어. 그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였지.”

"날개옷을 하나 훔칠거야"

승우는 여전히 우진이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진이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그런지 언제부터인가 사람이 꽃을 돌보게 되는 일은 없어졌다고 해. 그래도 마을에서는 100년에 한 번씩 알 수 없는 꽃향기가 퍼진대. 그 후로는 마을이 더욱 살기 좋게 느껴지고 말이야.”

“그렇다면,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진 줄 모르고 선녀가 계속 꽃을 보낸다는 거야?”

“돌봐주는 사람 대신 무엇인가가 그 일을 대신하고 있는 것 아닐까? 아무튼 말이야, 내일 밤이 바로 그날이야. 하늘의 꽃이 내려오는 날! 할머니께서 알려주신 날짜니까 틀림없어. 그러니까 내일 밤 만나야 해. 승우 네가 믿지 못하겠다면…… 굳이 그렇다면 내일 밤 나타나지 않아도 좋아. 나 혼자서만 확인할 테니까.”

그러나 우진이의 말투는 승우가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쓸쓸함이 묻어나왔다. 승우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진아, 정말로 나올 거야? 네 말대로 달이 뜨지 않으면 엄청 깜깜할 거고…… 무엇보다 할머니께서 걱정하실 거야.”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해. 너는 우리 할머니 댁에, 나는 너희 할머니 댁에 놀러 간다고 말을 하고 나오면 돼. 선녀가 목욕하는 시간은 길지 않으니까, 할머니께서 걱정하실 만큼 늦게 돌아가진 않을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만큼 이곳을 잘 알아.”

“괜찮을까? 할머니께 걱정을 끼치지 않고 나온다고 해도…… 정말 선녀를 만난다면…… 우리는…… 우리야말로 괜찮을까?”

“우리가 위험해지지 않기 위해 날개옷을 하나 훔칠 거야.”

“나무꾼처럼 선녀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려고?”

“아니! 발견되었을 때를 대비하는 거지. 만약에 우리를 해치려고 하면 날개옷으로 협박할 거고 발견되지 않았을 때는 선녀들이 목욕을 마치기 전에 몰래 다시 놔두고 돌아가면 되는 거야.”

“그런데 선녀가 꽃을 띄우러 내려오는 거라면서 목욕까지 할까? 그것보다 왜 그렇게까지 위험한 행동을 해야 해?”

사실 승우는 선녀가 그렇게 궁금하지 않다. 혹시 실제로 만난다고 하면 동화 속 그림처럼 아주 아름다울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의외로 선녀가 못생겼을 수도 있고 나무꾼 때문에 생긴 사람에 대한 적개심으로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아무도 선녀를 믿지 않기 때문이야. 선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 나도 더 이상 할머니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게 될 거니까. 더는 의심이라는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 거야. 그러니까 네가 내일 나타나지 않아도 나는 너를 원망하지 않아. 그렇다고 선녀를 기다리는 일을 그만두지도 않을 거야. 내일 밤, 아니면 다음날 이곳에서 만나자. 안녕!”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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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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