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님은 결국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어. 꽃신을 들고 찾아온 거야. 그 꽃신을 본 순간 나는 ‘내가 저걸 잃어버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건 부질없는 생각이었지. 원님은 내게는 한글을 가르쳐 주셨어. 또박또박 읽는 법, 또 쓰는 법까지 말야. 나는 원님과 함께 한글 공부를 하는 것이 참 신나고 좋았어. 원님이 가르쳐 주면 어렵던 한국말이 그렇게 쉬울 수가 없었어. 생각이 나. 동헌 마루에서 읽던 “가갸거겨, 노뇨누뉴…….”
하지만, 그 시간은 다음에 마음이 아플 시간을 준비하는 고통이 따르기도 했어. 곧 맘 아픈 시간이기도 했지. 나와의 공부가 끝나면 원님은 항상 언니와 이야기하면서 나에게 웃어주었듯이 환하게 웃어주며 언니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곤 했지. 원님은 결국 언니를 택한 거야.
엄마가 심어놓은 송광사 벚나무의 아름다운 터널 아래에 차양을 치고 콩쥐 언니는 결혼했어. 나는 마음이 많이 아팠지. 하지만, 언니 앞에서는 그런 표정을 지을 수가 없었어. 언니의 앞날에 행복이 있기를 빌어 주는 것밖에…….
‘언니, 결혼을 축하해. 언니가 없는 집은 좀 쓸쓸할 거 같아. 언니가 있어서 좋았는데…….’
언니의 신혼집에 찾아갔어. 널찍한 마당에 널따란 호수, 착한 언니와 함께 호숫가를 걸었지. 그런데 언니가 발을 잘못 디뎠어.
“팥쥐야, 살려줘 팥쥐야!”
언니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가 다시 솟구쳐 올라왔어.
“팥쥐야, 살…….”
언니가 다시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어.
“언니!”
언니에게 손을 내밀자, 나도 놀랄 만큼의 거대한 힘으로 언니가 나를 끌어당겼어. 나도 끌려 들어가고 말았지. 우리는 꼭 껴안았어. 숨을 쉬는 게 힘이 들었어. 나는 헤엄을 칠 줄 몰라. 그건 언니도 마찬가지야.
‘이제 죽는구나.’ 하고 생각한 그 순간, 언니와 나는 가느다란 빛이 보이는 쪽으로 헤엄치고 있었어. 물이 숨을 쉬는 데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지. 언니와 나는 손을 꼭 붙들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고 있었어. 그건 바로 용궁이었지. 우리가 용궁으로 들어가게 된 거야. 용궁은 산호로 빚은 성이었어. 산호들이 살아서 움직이며 문을 열어 주었지. 용왕님 주위로는 거북이며 자라 등이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었고 인면어들도 있었어.
용왕님의 옆에는 아주 예쁜 왕비님이 앉아 계셨는데 놀랍게도 그 왕비님은 콩쥐 언니의 친엄마였어. 언니의 친엄마는 정말 눈이 부시게 예뻤어. 언니가 예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지.
언니의 엄마가 콩쥐 언니가 무척 보고 싶었던 모양이야. 잠시 동안 콩쥐 언니를 만나고 싶어서 호숫가에서 여기로 불러들인 거래. 나까지 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표정이었어. 그런데 우리가 너무나 손을 꼭 붙잡고 있어서 같이 들어오게 된 거야.
콩쥐 언니는 엄마와 함께 있고 싶어했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조금 날 것도 같았지. 나도 여기 용궁에 있는 동안 엄마 생각이 나는데 콩쥐 언니는 오랫동안 엄마를 보지 못했잖아.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용궁에서 생활하거나 용궁의 음식을 한 번 맛본 사람은 절대 이승으로 돌아갈 수가 없대. 돌아갈 방법이 있긴 하지만 그 기회는 천 년에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는 거야.
처음 용궁에 왔다간 사람은 수로부인이었어. 수로부인은 용궁의 음식을 먹고 연꽃을 타고 올라갔지. 용궁에서 콩쥐 언니가 살던 방은 천 년 전에 심청이란 애가 살던 방이라고 했어. 심청이도 연꽃을 타고 세상으로 돌아간 거 다 알지? 심청이가 올라간 지 천 년! 이제 딱 한 명이 이승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야. 우린 결단을 해야 했지.
콩쥐 언니가 내게 말했어.
“팥쥐야, 그동안 내가 너에게 못되게 굴어서 미안해. 니가 나를 살리려고 여기까지 온 것만 봐도 넌 착한 동생이야.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줘”
“언니, 아니야. 난 언니가 있어서 참 좋았어.”
“팥쥐야, 니가 세상으로 돌아가.”
“아니야, 언니가 돌아가.”
우린 서로 승강이를 벌였어.
용왕님이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고 아주 깊이 고민하는 것 같았지.
“좋다. 그럼 이렇게 하자.”
“먼저 팥쥐가 세상으로 돌아가거라.”
“그리고 콩쥐가 돌아갈 수 있도록 팥쥐가 도와야 한다.”
내가 말했어.
“어떻게요?”
“내가 용궁의 보물인 구슬을 주겠다. 이 구슬을 가지고 이승에 가서 잘 간직하고 있다가 나중에 콩쥐를 만나게 되면 이 구슬에 대고 소원을 빌어라. 이 구슬은 소원을 딱 한 번만 빌 수 있다.”
“만약, 구슬을 잃어버리면요?”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네 목숨과 네 어머니 목숨을 보전하고 콩쥐와 너희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이거 하나뿐이다.”
“…….”
콩쥐 언니가 말했어.
“네가 원님을 사랑했다는 거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미안하게도 내가 원님과 결혼하게 된 거야. 지금 내가 엄마와 만나는 시간 동안 네가 세상으로 돌아가서 내 역할을 대신해 줄 수 있겠니?”
“언니, 내가 어떻게 언니 역할을 대신해? 난 언니가 아닌데…….”
“내가 용왕님께 부탁해서 내 얼굴 가면을 하나 만들었어. 그걸 쓰면 돼.”
“언니, 그건 사람을 속이는 일인데…….”
“무리한 부탁인 줄은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엄마를 만나고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려면 너의 도움이 꼭 필요해. 도와줘 팥쥐야. 이걸 쓰면 사람들이 너를 나라고 생각할 거야.”
“…….”
“그러니 내가 돌아갈 동안만 내 역할을 해주고 내가 돌아갈 시간이 되면 내가 있는 이 호수의 물을 다 퍼내 주지 않겠니? 그래야 내가 살아 돌아갈 수 있단다.”
나는 고민했어.
‘언니를 위해서 이 일을 꼭 해야만 할까? 아니면 언니를 연꽃에 태워 보내고 나는 그냥 용궁에 남아야 할까? 형부를 속이는 나쁜 짓을 해야만 할까? 이건 분명히 도리에 어긋나는 짓인데…….’
하지만, 결국 난 언니의 말에 따르기로 했지. 그렇지 않으면 우린 모두 살아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 테니 말이야. 이승에서 걱정하고 있을 엄마 생각도 났고.
나는 용왕님과 왕비님, 언니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연꽃을 타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어. 물론 언니가 준 가면과 용궁의 구슬을 가지고 돌아왔어.
가면을 썼어. 그러자 정말 감쪽같게도 언니 얼굴 모습이 된 거야. 난 언니 역할을 대신했지. 하지만, 언니처럼 될 수는 없었어. 얼굴이 언니라고 해서 모든 것이 언니가 되는 것은 아니었어. 나의 어설픈 말투며 행동이며 걸음걸이, 이 모든 것들이 사람들이 콩쥐가 어딘가 갔다가 며칠 만에 돌아오더니 무슨 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었지.
하루하루가 고역의 나날이었어. 용궁의 구슬을 잘 간직하고 있었어. ‘곧 해결될 거야. 어서 호수의 물을 퍼내야 할 텐데…….’
기회만을 엿보았지만, 호수의 물을 내 힘으로 퍼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그날도 호수의 물을 퍼내어 언니를 구해낼 궁리를 하다가 잠이 들었어.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저고리 앞섶에 달려 있어야 할 구슬이 보이지 않았어. 이상한 일이었지. 그게 어디로 간 걸까?
나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어. 이승에 돌아오고 7일 만에 호수의 물을 퍼내지 않으면 언니가 호수에서 정말 죽어버린다고 했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나는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어. 그렇게 원했던 원님과 같은 방을 쓰고 있어도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어. 언니를 구해야 해. 언니를 살려야 해. 어쩌지? 물도 퍼내야 하고 용궁의 구슬도 찾아야 하고.
마지막 7일째 되는 날이 되었어. 원님은 누군가를 만나러 어디를 갔다 오더니 도끼눈을 하고 날 노려보는 거야.
“당신, 도대체 누구요?”
“당신, 콩쥐가 아닌 모양인데……. 지금 나를 농락하는 거요?”
나는 결심을 했어. 그래,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했지. 드디어 길고 긴 언니 역할을 끝낼 날이 온 거야. 나는 원님에게 말했어.
“나는 팥쥐이고, 콩쥐 언니는 용궁에 있어요.”
이래저래 해서 지금 호수의 물을 퍼내야 하고, 용궁의 구슬은 없어진 상태 이러쿵저러쿵 휴,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원님은 믿지 않았어. 정신이 나간 게 분명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지. 그래서 난 이렇게 말했어.
“나는 팥쥐이고 콩쥐 언니는 내가 호수에 빠뜨려 죽였어요. 지금 저 호수의 물을 다 퍼내면 언니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러자 그 말은 즉시 효과를 드러냈어. 원님은 사람들을 시켜 호수의 물을 퍼내게 했지. 물은 많았어. 물을 퍼내자 물 반 고기 반이었어. 고기들이 파닥파닥 은빛으로 빛이 났지. 나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어. 한나절 이상을 파내자 호수의 물은 곧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어. 바닥에 콩쥐 언니가 있었어. 다행히 콩쥐 언니는 살아 있었지. 죽은 듯이 누워 있었지만 숨을 쉬고 있었어. 나는 뛸 듯이 기뻤어. 언니가 깨어나면 사실대로 이야기해 주겠지. 나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어.
하지만, 이건 무슨 청천벽력! 깨어난 언니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어.
‘아, 지금 사용해야 하는데, 언니가 모든 걸 기억하도록 해 주세요. 용궁 구슬, 용궁 구슬은 도대체 어딜 간 거야?’
원님은 언니가 살아있는 걸 확인하자 불같이 화를 냈고, 콩쥐를 죽게 만든 나를 절대 용서하지 않았어. 내가 울며불며 하소연했지만, 언니도 전혀 기억을 하지 못했고. 원님은 나에게 아주 혹독한 벌을 내렸어.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런 짓을 한 나를 절대 용서할 수 없었겠지.
나는 무엇보다 엄마에게 참 미안했어. 엄마는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데.
사실대로 말해 드릴 시간조차 없이……. 엄마는 내 말을 믿어 주셨을 텐데…….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이야기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연재소설 4-1] 선녀 설희, 소년 승우 그리고 새하얀 여름 (0) | 2010/03/03 |
|---|---|
| [연재소설 3- 마지막회] (0) | 2009/12/14 |
| [연재소설 3-3] 용궁에 간 콩쥐 자매, 그곳에서 만난 것은... (0) | 2009/12/06 |
| [연재소설 3-2] 모두가 콩쥐언니를 바라봐, 나도 언니처럼 예뻤으면.. (0) | 2009/11/30 |
| [연재소설 3-1] 팥쥐는 왜 얼굴색이 까만걸까? (0) | 2009/11/23 |
| [연재소설 2-마지막회] 하늘로 돌아간 선녀, 그리고 남은 것은... (0) | 2009/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