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내린눈때문에위봉폭포주위가온통하얗다.얇아진물줄기 가 그나마 흐르지도 못하고 꽁꽁 얼어붙어 있다. 안내석이 없다면 그곳이폭포인지알수없을정도로초라하다.그러나얼음이녹고 천지에 연두빛이 도는 봄이 오면 위봉폭포는 기지개를 켜며 자신 의모습을서서히드러낼것이다.
그리고여름이되면폭포주위는 높이 60미터에서 이단으로 뿜어내는 물줄기가 시원하고 그것이 만드는 굉음과 행락객의 탄성으로 시끌벅적할 것이다. 수량이 풍 부한 여름도 절경이지만 위봉폭포가 지닌 진정한 아름다움은 위봉폭포를 알리는 안내석 가을에와야볼수있다.
그리고여름이되면폭포주위는 높이 60미터에서 이단으로 뿜어내는 물줄기가 시원하고 그것이 만드는 굉음과 행락객의 탄성으로 시끌벅적할 것이다. 수량이 풍 부한 여름도 절경이지만 위봉폭포가 지닌 진정한 아름다움은 위봉폭포를 알리는 안내석 가을에와야볼수있다.
버즘나무가 소스라치듯 몸을 움츠리며
갈색으로 그을린 이파리를 떨구는 것은
갑자기 싸늘해진 바람 탓이 아니다
가부재기처럼 들러붙는 저, 징그러운 햇살 때문이다
이 무렵 햇살은 너무 관능적이어서
오래묵은붉나무도어쩔수없는지
갈색으로 그을린 이파리를 떨구는 것은
갑자기 싸늘해진 바람 탓이 아니다
가부재기처럼 들러붙는 저, 징그러운 햇살 때문이다
이 무렵 햇살은 너무 관능적이어서
오래묵은붉나무도어쩔수없는지
홍조를 띄우며 고개 숙인다
수십수백년을한자리에서참선해도
감당치 못하는 욕망이 있음을
나무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해동안붙잡았던그것들을다시
흙으로 되돌리고 동안거에 드는 것인데
수십수백년을한자리에서참선해도
감당치 못하는 욕망이 있음을
나무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해동안붙잡았던그것들을다시
흙으로 되돌리고 동안거에 드는 것인데
사람들이 자꾸 몸을 움찔거리며 탄성 지르는 것은
위봉폭포 나무들이 온 몸으로 그리는 저, 만다라 때문이다
위봉폭포 나무들이 온 몸으로 그리는 저, 만다라 때문이다
그래서 수백 년을 살아도, 나무들은 아름 다움을 잃지 않는다. 가을 위봉폭포는 폭포도 폭포지만 물기를 머금 은채홍조를띄고있는단풍또한절경이다.꼭와서볼일이다.위봉 폭포를 멀리서 바라보고 싶은 사람을 위해 전망대도 만들어져 있다. 전망대 근처에 요즘 전라북도와 완주군에서 조성하고 있는‘고종시 마실길 안내판’이 부끄러운 듯 현수막으로 얼굴을 가린 채 맞이하고 있다.
고종시(高宗枾)는 감의 한 품종인데, 보통 감보다 알이 잘고 씨 가 없으며 맛이 달다고 한다. 위봉산성 일대와 동상면 학성마을 일대 에는 고종시를 많이 재배하는데 그 길을 잇는 생태문화탐방로를 만 들고 있다. 완성되면 방문객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주리라 기대한다.
도로를 따라 위봉사 쪽으로 올라가면 위봉터널이 나온 다. 위봉터널 바로 옆에 위봉폭포가 있다. 위봉터널은 보행자를 위해 보도를 따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걷 는게위험하지않다.
김만수의 전설이 서려있는 위봉사
십여 분을 걸어가니 위봉사가 나온다. 위봉사는 대한 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 이다. 위봉사는 백제 무왕 5년인 604년에 서암이 창건 했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진 않다. 또 다른 창건설화 에 의하면 신라 사람인 최용건이 이곳에서 세 마리 봉 황이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절을 지었고, 그래서 위봉사
(圍鳳寺)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50개가 넘는 말 사를 거느릴 만큼 큰 절이었으나, 해방 이후 급속히 쇠락하여 지금은 한적한 비구니 사찰로 남아있다.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는 위봉사의 보광명전(普光明殿)은 보물 제608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면 3칸, 측 면 3칸인 다포계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서 배흘림기둥이 아름다운 건물이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50개가 넘는 말 사를 거느릴 만큼 큰 절이었으나, 해방 이후 급속히 쇠락하여 지금은 한적한 비구니 사찰로 남아있다.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는 위봉사의 보광명전(普光明殿)은 보물 제608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면 3칸, 측 면 3칸인 다포계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서 배흘림기둥이 아름다운 건물이다.
또한 위봉사와 관련된 설화가 있다.‘위봉사와 효자범’이야기이다. 옛날에 운장산 기슭에 김만수란 사람이 있었다. 김만수는 홀어머니 를 모시고 있었는데 홀어머니가 유독 고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산간 벽지에서 고기를 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고민을 하던 김만수 는 위봉사에 있는 스님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도움을 청했다. 얘기 를 들은 도인은 김만수의 효심에 감동했다며 책을 한 권 주었다. 그 책에는 범으로 변할 수 있는 둔갑술이 적혀있었다. 김만수는 저녁마다 범으로 둔갑하여 노루며 멧돼지 등을 사냥하여 집앞에 가져다 놓 았다. 그 산짐승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잔치도 하고 어머니에게 고기 를 대접했다.
자신이 한 일에 비로소 후회하게 된 아내도 목 놓아 울었지만 소용없었다. 범이 된 후에도 김만수는 계속 집 앞에 사냥한 짐승을 가져다 놓았다. 한편 자신의 못된 식성 때문에 아들이 범이 되었다고 자책하던 어머니는 위봉사에 가서 김만수가 다시 사 람으로 변신하도록 천일 동안 치성을 드렸다. 그것을 본 위봉사 스님 이어머니에게두루마리한개와김만수가사람으로돌아올수있는 주문을 알려주었다. 천일기도를 끝낸 어머니는 새벽에 범이 나타나 길 기다렸다. 범이 사냥한 짐승을 물고 나타나자, 어머니는 주문을 외고 두루마리를 불살랐다. 그러자 범은 사라지고 김만수가 서있었 다. 이에 기뻐한 김만수 가족은 동네사람을 모아놓고 잔치를 벌였다 는 설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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