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으로2010/06/29 19:24

스님의 호통에 단우는 절을 떠나 집으로 향했지만, 단우에게는 오래전부터 간절히 바라던 소원이 있었다. 단우는 어쩌면 그 소원을 전설의 용이 이루어줄지도 모르는데 순순히 포기할 순 없었다. 단우는 벌써 밤에 고아원을 몰래 빠져나올 궁리를 하느라 머리가 아팠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단우는 고아원에 도착했다. 용식이랑 진수는 두꺼비를 손에 들고 오는 단우를 보며 말했다.


“두꺼비를 잡아오면 어떡해? 밤에 얼마나 시끄러울 텐데.”


“얘는 괜찮아. 내가 울지 말라고 하면 찍소리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있을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얼른 갖다 버리고 와. 두꺼비를 갖고 온 걸 보면 원장님한테 혼나”


“안 돼. 얘는 내 애완 두꺼비란 말야. 함부로 손대지 마.”


“고집을 부리긴. 혼나봐야 너만 손해지. 가자 진수야.”


용식이와 진수는 자리를 떴고, 단우는 두꺼비에게 말했다.


“시끄럽게 하면 안 돼. 알았지?”


두꺼비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밤 9시가 되자 모두들 이불을 펴고 잠자리에 누웠다. 단우도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쏟아지는 잠을 억지로 쫓아내며 뻐꾸기시계가 11시를 알리자 단우는 조심스레 일어나 아무도 몰래 두꺼비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밤 공기는 스산했고 밤하늘엔 보름달이 떠있었다. 그때였다. 마당으로 나오자마자 달빛을 받은 두꺼비가 환한 빛에 휩싸이며 아리따운 소녀로 변했다. 너무 놀란 단우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소녀는 얼른 단우의 입을 틀어막으며 비웃듯 말했다.


“겨우 이 정도에 놀라면서 어떻게 여의주를 찾으러 가겠다는 거야?”


단우는 두 눈을 비볐다.


“내가 결국엔 잠이 들었나? 지금 꿈을 꾸는 건가?”


“꿈 아니야. 난 섬백이라고 해. 난 원래 달에서 살고 있는 달두꺼비이지만 너무 심심하면 가끔 인간들이 사는 곳으로 놀러 오기도 해.”


“그럼 외계인이란 말야?”


“외계인이라고? 훗. 마음대로 생각해.”


“이렇게 사람으로 변할 수 있으면서 아까는 왜 두꺼비로 있었던 거야? 구렁이한테 잡아먹힐 뻔했잖아.”


“구렁이 앞에선 사람으로 변할 수가 없어. 구렁이는 내 천적이니까. 그리고 사람으로 변신하면 귀찮은 게 한두 가지가 아냐. 너도 지금 보다시피 내가 한 미모 하잖아? 남자애들이 좀 귀찮게 해야 말이지.”


“인제 보니 완전히 공주병에 걸린 두꺼비로구만……. 내가 보기엔 지금 모습보다 두꺼비로 있을 때가 훨씬 더 예쁘고 귀여운 것 같은데.”


“뭐?! 지금 제정신으로 그런 소릴 하는 거야?”


발끈하는 섬백의 모습이 귀여워 단우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근데 왜 날 따라온 거야?”


“그건…… 네가 내 생명의 은인이니까.”


섬백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섬백의 수줍어하는 모습에 단우도 괜스레 얼굴이 빨개졌다. 


“이봐 넌 왜 얼굴이 빨개진 거야.”


“그러는 넌.”


“잠깐! 지금 이렇게 잡담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서둘러 화암사로 가야지.”


“아! 맞다! 여의주!”


단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손목시계는 벌써 1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네가 갑자기 나타나 놀래키는 바람에 늦었잖아. 오늘 용을 깨우지 못하면 보름 동안 또 기다려야 한다고.”


“오늘 못하면 그까짓 거 보름 동안 기다리면 되잖아.”


“안 돼. 난 하루빨리 엄마를 보고 싶단 말이야!”


“네가 빌려고 하던 소원이 그거였어? 엄마를 다시 만나는 거?”


단우는 갑자기 멈춰 서서 말했다.


“응. 여섯 살 때 날 고아원에 맡긴 후로는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어. 꼭 날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해놓고선…… 하루도 빠짐없이 기다렸어. 꿈속에서도…… 하지만……."


단우의 눈에는 어느새 구슬 같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 단우는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빨리 가야 돼. 이럴 시간이 없어.” 


단우와 섬백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아슬아슬하게 11시 59분에 화암사 동종 앞에 도착했다. 가쁜 숨을 가라앉히며 12시가 되자 단우는 있는 힘껏 종을 치기 시작했다.


댕~ 댕~ 댕~ 댕~ 댕~


다섯 번의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화암사는 세찬 바람에 휩싸였고 연꽃잎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바람은 회오리를 치며 점점 더 강해졌고 단우와 섬백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 단우는 한 손으로는 절 기둥을 있는 힘껏 잡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바람에 떠밀려 날아갈 것 같은 섬백의 손을 꼭 잡았다. 잠시 후 바람은 언제 불었냐는 듯 잠잠해졌고 눈앞에는 화암사를 한입에 삼켜버릴 것만 같은 거대한 용이 눈을 번뜩이며 서 있었다. 용의 거대한 모습에 단우는 입을 쩍 벌린 채 다물 줄을 몰랐다.


“나를 깨운 자, 그대인가?”


용이 나지막하고도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용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단우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제가 여의주를 찾아오겠습니다.”


“그대가?”


용이 큰 소리로 껄껄거리며 웃었다.


“그대 같은 작은 소년이 무슨 수로 여의주를 찾아오겠다는 것인가? 나를 오랜 잠에서 깨운 사람이 고작 꼬마였다니…….”


용은 한숨을 내쉬었다.


“꼭 찾아오겠습니다. 방법만 알려 주십시오.”


단우는 결의에 차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용은 단우의 흔들림 없이 단호한 눈빛과 기개에 마음이 흔들렸다. 


“흠…… 아직 소년이긴 하지만 당찬 구석이 있군.”


용은 고개를 돌려 섬백을 바라보았다.


“달두꺼비와 함께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좋아, 방법을 가르쳐주지. 먼저 여의주에 대해 말해주겠네. 여의주는 일종의 보석함과도 같아. 여의주 안에는 다섯 가지의 구슬이 들어 있는데, 여의주는 그 구슬을 모아놓는 역할을 하지. 그 구슬은 따로 떨어져 있으면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한 데 모아놓으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단다. 그런데 내가 여의주를 땅에 떨어뜨리는 순간 여의주는 깨져버렸고, 그 속에 들어 있던 다섯 개의 구슬도 모두 각기 흩어져 버렸지. 그리고 그 흩어진 구슬들은 구미호, 녹두군사, 불가사리, 이무기, 황충, 이 다섯 요괴가 가져가 버렸단다. 여의주를 잃은 나는 그 요괴들과 싸울 힘마저도 없었고 여의주를 다시 찾을 방도가 없었어. 그대가 나에게 여의주를 가져다주기 위해선 다섯 요괴와 싸워야 하지. 그럴 수 있겠는가?”


“싸우겠습니다. 그런데 그 다섯 요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어떻게 알죠?”


용은 단우에게 세월에 색이 바랜 누런 지도와 복주머니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 지도에는 빨간 점 5개가 표시되어 있지. 바로 이 점들이 요괴가 살고 있는 곳을 나타낸다네. 요괴가 움직이면 빨간 점도 따라 움직이게 되지. 그리고 그대가 모은 구슬은 이 복주머니에 넣게.”


“다섯 구슬은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올 테니 그동안 마음 놓고 푹 주무시고 계세요.”


용은 또 한 번 껄껄 웃었다.


“그 녀석 당돌한 줄만 알았더니 허풍도 세구나. 내 속는 셈치고 너를 믿어보겠다.”


다시 세찬 회오리바람이 불었고 용은 연꽃잎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주위가 너무나 고요해졌다. 단우는 손에 들고 있는 누런 지도만 아니었다면 용을 만났던 일이 꿈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섬백이 단우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이제 그만 정신 좀 차리지. 그 지도만 벌써 5분째 쳐다보고 있는 거 알아?”


“어느 요괴부터 잡아야 하지?”


“지금 한밤중인 거 안 보여? 오늘은 이만 돌아가서 자고 요괴 잡으러 가는 건 내일부터 하자. 마음 단단히 먹는 게 좋을 거야. 요괴는 쉬운 상대가 아니야. 그리고 이 약을 먹어.”


섬백은 알사탕처럼 생긴 약을 단우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뭔데?”


“너 같은 보통 사람들의 눈엔 요괴가 보이지 않아. 이 약을 먹으면 요괴를 볼 수 있을 거야.”


단우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약을 한입에 꿀꺽 삼켰다. 섬백은 다시 두꺼비로 변해 단우의 어깨 위로 올라갔고, 단우는 산을 내려와 고아원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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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Posted by 완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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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2010/05/28 10:29

밤이 되었습니다.


대보름 축제도 이제 막바지입니다. 사람들은 달집을 태우려고 광장으로 모였습니다. 무영이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높이 쌓인 나무에 불이 붙고,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달을 향해 소원을 빌었습니다. 곧 꽹과리 소리가 울려 퍼지고 농악대가 달집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습니다. 흥이 난 마을 사람들도 농악대와 함께 달집 주위를 돌며 춤을 춥니다. 무영이도 나가서 춤추며 놀고 싶었지만, 온종일 뛰어다녀 논 탓에, 피곤해서 눈이 감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엄마 품에 안겨, 불타는 달집을 보며 눈을 떴다, 감았다 했습니다.

그때 무영이의 눈에 한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붉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마치 날개가 달린 듯 한삼을 나부끼며 춤을 추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변의 나이 든 어른들은 그 사람을 향해 양손을 모으고 ‘선녀님, 선녀님’ 하며 뭔가 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무영이는 졸린 눈을 억지로 떠서 그 사람을 좀 더 자세히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춤추는 사람은 선녀봉에 살고 있는 할머니가 아니겠어요? 단 한 번도 마을에 내려온 적이 없는 할머니가 마을 축제에, 그것도 모두의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무영이는 가만히 할머니가 춤을 추는 모습을 봤습니다. 평소의 구부정한 할머니와는 달랐습니다. 허리는 곧게 폈고, 얼굴에는 주름이 안 보였고, 젊은 사람처럼 민첩하게 움직였습니다. 붉은 한복과 하얀 한삼은 칼 위에서 춤을 출 때와는 달리, 마치 나비가 바람을 타고 춤을 추듯 나풀거리며 움직였습니다. 무영이는 이 춤이 끝나면 할머니에게 달려갈 생각을 했습니다. 할머니 품에 안겨서, 춤 잘 춘다고 말해주려고 했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잠들기 전까진 말이죠.


정월 대보름 축제가 끝나고 얼마가 지났습니다. 그동안 무영이는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선녀봉 할머니에게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연날리기도 끝났고, 무엇보다 방학이 끝나서 학교에 가야 했거든요. 학교가 끝나면 숙제를 하고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느라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꼭 가야지.’


그렇게 마음먹은 어느 날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산에서 마을 어른들의 행렬이 내려오는 모습을 봤습니다. 어른들은 커다란 나무상자를 들고 줄줄이 읍내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딸랑딸랑 종소리를 울리며, 느릿느릿 사라졌습니다. 무영이는 무슨 일인가 궁금하긴 했지만, 서둘러 집으로 갔습니다. 가방을 놓고 산으로 올라가기 위해 말이죠. 


무영이는 단숨에 산을 올랐습니다. 이제 무서운 할머니를 만날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어서 할머니를 만나서 달집 태울 때 너무 예뻤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무영이는 초가집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를 불렀습니다.


“할머니! 저 왔어요!”


“할머니! 무영이가 왔다구요!”


“할머니!”


무영이는 몇 번이나 할머니를 불렀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무영이는 기다리다 못해 초가집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향은 꺼져 있었지만 방 안에 향내가 가득했습니다, 초가집 안은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부처님의 옆에 걸려 있던 그 옷이 없어졌습니다. 칼 위에서 춤을 출 때 입고, 달집을 태울 때 입었던 그 옷이 없어진 것입니다.


무영이는 해가 질 때까지 초가집에서 할머니를 기다렸지만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왔지만, 할머니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사이 무영이는 문득 생각했습니다.


할머니가 하늘로 간 것이 아닐까 하고요.

붉은 옷을 입고 달집 앞에서 춤을 추던 할머니는 굉장히 아름다웠습니다. 아마 그 옷은 날개옷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대보름날 달집을 태운 연기를 타고 하늘로 돌아간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할머니는 선녀가 분명하니까요.


<끝>

Posted by 완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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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2010/05/25 14:38

다음날 무영이는 마을 아이들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혼자서 선녀봉에 가서 연을 찾아온 용감한 아이로 말이죠. 물론 엄마한테는 위험한데 갔다고 혼났지만, 무영이는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무영이의 머릿속에선 아름답게 날던 학연의 모습이 지워지질 않았습니다. 혼자서 몇 번이나 날려보았지만 선녀봉의 할머니처럼 날리지는 못했습니다. 그처럼 날 수만 있다면 기석이 쯤은 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결국 무영이는 다시 선녀봉을 올랐습니다. 한 손에는 연을 들고, 주머니에는 할머니의 손수건을 넣고요. 그리고 선녀탕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작은 초가집을 발견했습니다.


무영이는 조심조심 초가집의 문을 열었습니다. 안은 무영이가 봐왔던 어떤 집과도 달랐습니다. 벽에는 커다란 부처님 그림이 있고, 그 옆에는 붉은색의 한복이 걸려 있었습니다. 벽에는 붉은색으로 써진 한자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고, 방에는 제사 때 쓰는 향냄새가 가득했습니다. 


“누구냐?”


무영이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습니다. 그곳에는 어제의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무영이는 우물쭈물, 말은 못하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손수건을 보시고는 “오호라, 어제 그 아이구나. 손수건을 돌려주러 왔니? 착하기도 하지.” 하시며 상에서 곶감을 하나 집어 무영이에게 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영이는 곶감을 받아 한 입 깨물었습니다. 집에서 먹는 것보다 달콤한 것 같습니다.


무영이는 용기를 내어 말했습니다.


“연 날리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연? 아니, 연이야 그냥 바람을 타면 되지.”


“아니요. 할머니께서 했던 것처럼 날리고 싶어요.”


무영이의 말에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무영이는 무섭기만 했던 할머니의 주름이 조금 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 이름은 뭐지? 손수건을 돌려주러 온 착한 애니까, 특별히 가르쳐 줘야겠구나.”


그 후로 무영이에겐 남모를 비밀이 생겼습니다. 매일 선녀봉을 올라 연날리기를 연습하는 것이지요. 선녀봉은 산꼭대기라 바람이 많이 불어서 연을 날리기에도 좋았고, 할머니는 연을 잘 날리는 방법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연싸움에 좋다고 실에 풀을 발라 사기 가루를 발라주시기도 했습니다. 할머니에게 바람을 타는 법을 배운 무영이는, 누구보다 더 높이 연을 날릴 수 있게 되었고, 연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무영이가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어떻게 이렇게 연을 잘 날려요?”


무영이의 물음에 할머니의 주름이 인자하게 웃는 얼굴을 만듭니다.


“할머니는 선녀거든, 선녀는 날개옷을 입고 바람을 타야 하니까, 잘 알 수밖에 없지.”


선녀라는 말에 무영이는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영이가 알고 있던 선녀란 하늘에 사는 예쁘고 젊은 여자였거든요.


“피, 선녀봉에 산다고 선녀에요? 선녀는 하늘나라에 사는 거 아닌가?”


무영이의 말에 할머니의 주름이 한층 더 밝게 웃는 얼굴을 만듭니다. 무영이는 할머니가 진짜 선녀는 아니더라도 선녀처럼 고운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아이를 잡아먹지는 않는다고 말이죠.


할머니는 무영이가 올 때마다 꿀과 팥이 들어간 떡, 부추를 넣은 부침개, 곶감 등을 주셨습니다. 무영이는 할머니가 주시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 온종일 연을 날리다 해가 질 때야 산을 내려왔습니다. 가끔 할머니가 무영이를 마을 어귀까지 데려다 주긴 했지만, 결코 마을에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가끔 무영이가 마을에 놀러 오라고 하면, 할머니는 쓸쓸한 표정으로 웃을 뿐이었습니다. 그날도 할머니의 손을 잡고 마을 어귀까지 내려오는 중이었습니다.


“무영아!”


산 아래에선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성큼성큼 다가와 무영이의 엉덩이를 팡팡 때렸습니다.


“이 녀석아! 혼자 산에 올라가지 말라고 그랬지! 위험하다니까!”


무영이는 울면서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하며 빌었습니다. 엄마의 매가 평소보다 많이 아팠거든요. 엄마는 할머니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무영이의 손을 잡아끌고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눈물 가득한 무영이의 눈에 홀로 서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그날 밤, 무영이는 엄마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잔소리를 들었습니다. 엄마는 이제 선녀봉에 올라가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왜 올라가면 안 되는지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저 혼자 산에 가면 위험하다고만 합니다. 무영이는 산에 가면 할머니가 있어서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지금 말하면 왠지 더 혼날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혼났으면서도, 무영이는 다음날 선녀봉을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평소와 달랐습니다. 보통 산은 조용하고 가끔 새소리만 들릴 뿐이었는데, 오늘은 선녀탕에 다가가기도 전부터 사람 소리와 방울 소리, 북소리가 들립니다. 무영이는 할머니가 뭔가 하는가보다고 서둘러 초가집으로 향했습니다.


할머니는 평소와 달랐습니다. 인자했던 주름은 잔뜩 성난 얼굴이 되었고, 옷도 평소에 입던 옷과는 달리 온통 붉은색에, 모자도 붉었습니다. 부처님 옆에 걸려 있던 그 옷이었습니다. 그리고 방울을 어지럽게 흔들며 무영이가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주위에는 마을 어른 몇몇이 양손을 맞대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습니다. 


무영이는 차마 나가지 못하고 나무 그늘에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할머니의 춤이 잠깐 멈추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할머니는 맨발로 커다란 칼 위로 올라서는 것이었습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칼날은 무엇이든 벨 것처럼 날카로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 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춤추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이 잡아먹는 선녀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러자니 무서운 기분이 들어서 서둘러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선녀봉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평소의 할머니가 아니라 칼 위에서 춤을 추던 무서운 할머니를 만날까 봐 겁이 났거든요. 


그리고 드디어 정월 대보름이 다가왔습니다.


무영이는 오늘을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매번 지기만 했던 금당리 아이들에게 그간의 설움을 풀 기회니까요. 


이윽고 연날리기 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연이 날아올랐습니다. 독수리가 그려진 연, 태극기가 그려진 연, 사람의 얼굴이 들어간 연. 가지각색의 연들이 하늘을 수놓았습니다. 연들은 서로 부딪히고 실을 끊으며 하나씩 바람을 타고 저 멀리 날아갔습니다. 마지막엔 무영이의 학연과 기석이의 호랑이연만이 남았지요.


“무영아 힘내!”


“기석이 이겨라! 파이팅!”


딱 두 사람 남게 되자 응원도 열기를 더해갔습니다. 사람들은 무영이와 기석이의 이름을 연신 외쳤습니다. 무영이는 할머니에게 배운 것들을 생각하며 조심조심 바람을 탔지요. 


이윽고 두 연이 부딪히기 시작했습니다. 호랑이연은 마치 진짜 호랑이가 사냥하듯, 학연의 주위를 살피며 슬금슬금 돌아다녔습니다. 반면 학연은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나는 새처럼 호랑이 곁으로 갔다가도 금세 저 멀리 도망갔습니다.

기석이는 점점 초조해졌습니다. 학연이 평소와는 달리 쉽게 잡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무영이는 호랑이연을 요리조리 피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학연이 다가간다!”


누군가 소리쳤습니다. 말마따나, 학연이 놀라운 속도로 호랑이연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기석이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재빨리 연을 몰아 학연을 덮쳤습니다. 하지만 학연은 순식간에 저 멀리 떨어져 호랑이연을 피하고, 다음 순간엔 다시 호랑이연에게 다가와 주위를 돌면서 실을 칭칭 감고 있었습니다.


“우와아.”


“저, 학연 좀 보세.”


구경꾼들 사이에서 감탄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진짜 학이 호랑이 주위를 나는 것 같았습니다. 칭칭 감긴 호랑이연의 실은 결국 끊어졌고, 하늘에는 학연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학연이 이겼다!”


구경하던 사람들과 삼거리마을 아이들에게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친구들은 무영이를 얼싸안고 승리를 축하했습니다.


“어쩜 그렇게 연이 빠를 수가 있어?”


“정말, 마치 진짜 학이 나는 것 같았어.”


무영이도 친구들을 끌어안고 기쁨을 나눴습니다. 하지만 왠지 마음이 허전합니다. 기쁨을 나눌 사람은 따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Posted by 완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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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2010/04/08 11:24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연 두 개가 날고 있습니다. 하나는 호랑이가 그려진 방패연이고, 다른 하나는 학이 날개를 편 모습을 하고 있는 가오리연입니다. 두 연은 멀찌감치 떨어졌다가도 이내 부딪힐 듯 거리를 좁힙니다. 서로 실을 부비며 빙글빙글 하늘을 납니다. 연싸움을 하는 것이지요.

“이겨라! 이겨라!”

“야, 일단 떨어져!”

아이들은 두 패로 나뉘어 저마다 자기 패의 연을 응원합니다. 무리 가운데에는 실타래를 잡고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한 손으로 실타래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직접 실을 잡아 연을 조종하고 있습니다. 무영이도 그 아이들 중 하나입니다.

“학이 감긴다!”

한 아이가 소리칩니다. 호랑이연이 빙글빙글 돌면서 학연의 실을 감고 있었습니다. 가오리연의 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뚝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에이. 또 졌어?”

“몇 번째야.”

“대보름 연싸움은 금당리가 이기겠네.”

무영이를 둘러싼 친구들이 저마다 아쉬운 소리를 합니다. 반면 금당리의 친구들은 호랑이방패연의 주인인 기석이를 둘러싸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봤지? 너희들은 아무리 해도 안 돼.”

기석이와 금당리의 친구들이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삼거리마을 아이들은 분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뤄서 졌으니까요.

무영이는 멍하니 학연을 보고 있었습니다. 실이 끊어진 학연은 춤추듯 바람을 타고 하늘 여기저기를 날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산꼭대기 쪽에 내려앉아 모습을 감췄습니다.

“선녀탕 쪽에 떨어졌다.”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모두 사색이 되어, 아무런 말도 않고 서로 끔뻑끔뻑 쳐다봤습니다. 무영이가 삼거리마을 아이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연 가지러 가자.”

무영이의 말을 듣고, 삼거리마을 아이들은 깜짝 놀라 고개를 설레설레 흔듭니다.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안 돼, 봤잖아? 선녀탕 쪽에 떨어진 거.”

다른 아이들도 거듭니다.

“선녀탕에 사는 선녀는 말이 선녀지 알고 보면 귀신이래.”

“하늘로 올라가려다 애기를 많이 낳는 바람에 못 올라갔다더라.”

“우리 엄마도 선녀봉에는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하셨어. 애들은 거기 가면 안 된대.”

저마다 알고 있는 선녀탕의 전설을 말했습니다. 무영이도 선녀봉의 선녀탕 이야기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선녀봉 꼭대기에 있는 샘인데, 선녀와 나무꾼에 나오는 선녀들이 목욕을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다만 동화 속의 선녀는 하늘로 올라갔지만, 사실은 애들을 다 안고 올라갈 수 없어서 지상에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그럼 혼자라도 갈 테야.”

무영이는 그렇게 말하고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가는 길에 슬쩍 뒤돌아 봤지만, 친구들은 아무도 따라오지 않고, 무영이를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차츰 숲은 깊어지고, 길은 험해졌으며, 눈 위에 찍힌 사람의 발자국도 점점 없어졌습니다. 이제 뒤를 돌아봐도 친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손에서는 피도 났지요. 무영이는 지금이라도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연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산을 올랐습니다.

어느덧 무영이는 선녀탕까지 왔습니다. 선녀탕에서는 맑은 물이 솟아나와 산 아래를 향해 흐르고 있었습니다. 무영이는 손으로 물을 떠서 마셨습니다.

“아. 시원하다.”

차가운 물이 가슴을 지나가는 게 느껴졌습니다. 한숨 돌린 무영이는 연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땅에 떨어진 게 분명한 연은 하늘 높이서 날고 있었습니다. 무영이는 서둘러 연이 날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숲을 가로질러 나간 곳에는 하얀 머리카락에 하얀 한복을 입은 할머니가 무영이의 연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무영이는 겁이 났습니다. 친구들이 이야기하던 아이 잡아먹는 선녀인 줄 알았거든요. 할머니의 얼굴은 깊은 주름이 여럿 나있어서 무서운 얼굴이었습니다. 무영이는 나무그늘에 숨어서 할머니가 연을 놓고 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어쩜, 할머니와 연을 바라보던 무영이는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연이 마치 살아있는 학처럼 아름답게 날고 있거든요. 날갯짓을 하듯 너울너울 날다가도, 금세 먹이를 잡으려는 새처럼 총알처럼 날기도 합니다. 무영이는 넋을 잃고 연을 바라봤습니다.

“네 연이냐?”

무영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연에 정신이 팔린 사이, 할머니가 코앞까지 와있었거든요. 무영이는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무서워 대답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할머니는 말없이 무영이의 손에 연실을 쥐어주었습니다. 그러다 상처 난 무영이의 손을 보시고는 “에그, 다쳤구나?” 하시며 손수건을 꺼내 손에 묶어주셨습니다.

“해지기 전에 어서 내려가거라.”

무영이는 인사하는 것도 잊고, 그대로 줄행랑을 쳤습니다. 혹시 할머니가 쫓아오지나 않을까,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말이죠.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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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2010/04/02 09:04

일벌이 약속했던 이튿날이 되었다. 그러나 일벌은 나타나지 않았다."결국 나타나지 않는 걸까? 벌써 이틀째야. 내일이면 이 비늘마저 없어져 버려……. 이건 모두 나 때문이야…….”

“아니야, 승우야. 이건, 누구의 책임도 아니야. 너도 나도 정령들도 마을 사람들도 선녀들도 모두…… 모두가 다, 선녀와 나무꾼을 사랑했기 때문이야.”

“너무 어려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때 일벌이 나타났다. 그를 따라 무려 한 시간을 걸어 들어가서야 나무에 매달려 있는 벌집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갑자기 벌집에서 벌떼들이 달려나와 승우의 몸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선녀 설희가 손을 쓰기엔 속수무책이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승우에게 손대면 정말 너희도 너희의 여왕벌도 무사하지 못해.”

“너야말로 우리 여왕님에게 손대면 너도 이 아이도 무사하지 못할 거야.”

그때 벌집에서 푸른빛을 내며 무엇인가가 선녀 설희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승우를 에워싸고 있던 벌들 중 일부가 날아와 그 빛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분명 여왕벌 정령이었다.

“안 됩니다, 여왕님. 스스로 나오시다니요.”

“이게 무슨 짓들이냐? 나는 이제야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게 되어서 그 어느 때보다도 기쁘거늘……. 어리석은 짓 하지 말고 어서 빨리 그에게서 떨어져라.”

벌들의 움직임이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어찌할 줄 몰라 하는 것이었다.

“선녀님 죄송합니다. 원하시는 꿀은 바로 저입니다. 저를 물고기 정령의 비늘 위에 올려놓으시면 제 몸이 꿀처럼 녹아 빛을 만들어내고 그 빛이 비늘과 날개옷을 붙여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을 것입니다. 자, 저를 데려가십시오.”

승우는 울고 있었다. 벌들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물고기 정령도 여왕벌 정령도 서슴없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저 이 모든 게 다 자신 때문인 것만 같았다.

“나는 너희의 여왕을 데려갈 거야. 이제 선녀와 나무꾼을 생각하는 마음이 엇갈리지 않도록, 너희 여왕의 희생과 모두의 마음이 하나로 모일 수 있도록 내가 마지막으로 힘을 낼 테니까 부디 나를 믿어줘.”

선녀 설희가 두 손 안에 여왕벌을 넣고 날아가지 않게 살짝 가둔 다음 눈을 감고 다시금 주문을 외우듯 입술을 움직인다. 그리고 두 손을 살짝 열어 보이자 푸른빛과 하얀 꽃잎이 한 줄기로 섞이어 벌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모든 벌들이 그 빛을 따라서 벌집으로 들어갔다. 승우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벌들이 ‘고맙다’고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나도 널…… 잊지 않을게!”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승우는 선녀 설희를 처음 만났던 곳으로 함께 돌아와 있다. 선녀 설희는 곧 하늘로 돌아갈 것이고 잠들어 있는 우진이는 깨어날 것이고 마을에 재앙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승우의 몸에 남아 있는 나무꾼의 마지막 영혼의 빛도 사라질 것이다. 더는 선녀와 나무꾼은 엇갈리지 않을 것이다. 달은 구름에 가리어 빛이 흐려져 있었다. 승우는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마치 꿈만 같다.

“곧 의식이 시작될 거야. 의식이 끝나는 대로 나는 사라져버려. 그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줘.”

“그게…… 너에게 정말 미안했고…….”

“미안해할 필요 없어. 승우 네가 이곳에 온 이유는 나무꾼의 영혼의 빛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잖아. 그리고 너와 우진이의 일은 내가 돌아가서 잘 말해둘 테니 너무 염려 마. 그리고 또?”

“그게…… 그러니까…….”

승우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에 말을 잇기가 어려웠다.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지?”

“더 이상 이곳에 올 수는 없을 거야. 마지막 꽃잎들이 이 마을에 사는 마지막 사람까지 지켜줄 테니까. 내가 할 일이 없어.”

“왜 할 일이 없어! 나를 만나러 오면 되잖아!”

짧은 시간이었지만 승우는 선녀 설희가 너무나 좋았다. 더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더 많이 웃게 해주고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 선녀 설희가 사는 곳이 어떤 세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마을이 이렇게 아름다운 이유가 선녀의 마음씨 덕분이라니 더더욱 보여주고 알려주어야만 할 것들이 많았다.

“그러면 내가 물을게. 승우야, 나와 함께 내가 사는 세상으로 가지 않을래?”

그제야 승우는 눈물을 그쳤다. 그리고 선녀 설희의 눈가에 맺혀 있는 눈물을 보았다. 당장이라도 그런 설희의 손을 꼭 잡고 따라나서고 싶었지만, 나무꾼이 그랬던 것처럼 승우에게는 지키고 싶은 가족이 있었다. 그리고 친구가 있었다. 선녀가 실제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유일한 친구가 떠나버리면 우진이는 얼마나 슬퍼할까?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승우야, 난 말이야. 소중한 것이 ‘하나’일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 하나만 선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게 되었고. 그리고 그것이 단 하나일지라도 소중한 마음이 클수록 지키기 힘들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 그건 정말 슬픈 일이야. 지금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다는 걸 승우 네가 알려주었어. 너와 함께 할 순 없지만 너의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 주어서 정말 고마워! 널 잊지 않을게!”

선녀 설희가 날개옷 위에 정령들이 나눠준 마음을 올려놓자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너무나 따뜻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겨 있는 것 같은 따뜻함이었다. 그 마음의 빛을 입은 선녀 설희가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몸짓으로 무언가를 그리자 그 빛이 마을을 뒤덮으면서 이내 하얀 꽃잎이 함박눈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승우의 몸에서도 한 줄기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선녀 설희가 내리게 한 하얀 꽃잎의 눈에 섞여 마을에 함께 내렸다.

그 한여름의 새하얀 눈꽃 잎은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그것을 볼 수 있었던 사람은 오로지 승우뿐이었다. 승우는 사라져가는 설희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나도 널…… 잊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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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2010/03/24 09:12

벌써 며칠이 지났지만 물고기 정령이란 것은 나타나지 않았다. 선녀 설희도 승우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안 되겠다. 산짐승의 말이라도 들어보자.”

선녀 설희가 눈을 지그시 감더니 두 손을 모은다. 그리고 입술은 벌리지 않은 채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듯 한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멀리서 다람쥐 한 마리가 나타난다.

“세상에! 정말로 선녀님이신가요?”

“세상에! 다람쥐가 말을 하잖아!”

“다람쥐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네가 내 옆에 있어서 잠시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된 거야. 다람쥐야, 나는 이 물에 살고 있는 물고기 정령을 만나야만 해.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를 않아. 어떻게 된 거지?”

“그분이 헤엄치기엔 물이 얕아져서 살기 힘들어졌어요. 그래서 그분은 눈에 보이지 않게 물속에 잠들어 계세요. 선녀님이 부르신다면 분명 듣고 일어날 텐데 이상하네요.”

승우는 물고기 정령이 죽은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렇다면 다람쥐야, 네가 좀 불러줄 수 없어?”

“그건 무리예요. 나 같은 산짐승이 정령님께 말을 걸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내가 보기엔 선녀님이 작아서 부르는 힘도 작으니까 그런 거 같아요.”

“그래, 고마워. 불러서 미안해. 이제 돌아가도 좋아.”

“그런데 선녀님,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산의 기운이 흐트러져서 다들 불안해하고 있어요. 대부분의 정령님들이 잠들어 계셔서…… 우리를 돌봐줄 수 있는 건 아무도 없는데…….”

“걱정 마. 그걸 위해 내가 여기에 있으니.”

“선녀님만 믿을게요. 필요하시면 또 부르세요.”

다람쥐가 가버리고 선녀 설희는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해야 힘이 커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온 힘을 다해서 불러 보아도 정령은 대답이 없다.

“설희야,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선녀 설희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승우의 손을 잡고 승우와 함께 정령을 부르는 주문을 물 위에 그린다. 승우는 설희의 손을 잡고 있는 것이 쑥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물줄기가 불안정하게 일렁이더니 결국 승우와 설희 위로 쏟아지고 만다.

“미안해, 내가 집중을 안 해서 그런가 봐. 다시 해보자.”

“확실히 아까보다 힘은 세진 거 같아. 같이 힘내보자.”

승우와 선녀 설희는 더욱더 손을 꽉 맞잡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물이 소용돌이치면서 깊이를 알 수 없이 깊어지더니 커다란 물고기가 몸에서 빛을 내며 튀어나왔다.

“으악! 물고기 정령이란 게 저거야? 엄청 크다!”

“선녀님께서 저를 부르시는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내가 너를 부른 건….”

“알고 있습니다. 저를 부르시는 이유는 하나겠지요. 날개옷이 찢어졌다는 것. 언젠가 오늘 같은 날이 있을 것이라며 선녀님께서 제 비늘을 가져가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기 물고기야…… 아니, 물고기 정령님. 비늘을 안 아프게 벗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제가 죽지 않으면 비늘을 벗겨 낼 수 없습니다. 비늘을 벗겨 낸 뒤 여왕벌의 모습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이 마을의 정령을 찾아가 꿀을 얻으십시오. 그리하여 날개옷에 저의 비늘과 꿀을 올려놓으면 빛을 내면서 다시 원래의 모습을 찾게 될 것입니다.”

승우는 죽는다는 말이 무서웠다. 승우와 선녀 설희가 눈앞에 있는 물고기 정령을 죽여야 한다니! 생선반찬을 자주 먹으면서도 정령을 죽인다는 건 너무 끔찍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설희야 그건 안 돼. 정령님을 죽일 순 없어. 우리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괜찮습니다. 저의 이 모습은 빌린 것뿐입니다. 선녀님을 위해 받은 목숨, 선녀님을 위해 쓰게 되어 기쁠 뿐입니다. 선녀님과 나무꾼님의 빛을 지닌 그 소년의 손을 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승우와 선녀 설희는 동시에 말한다.

“나무꾼의 빛이라니?”

“선녀님에겐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저 빛은 분명…… 세상을 떠돌던 나무꾼님의 영혼에서 나온 빛입니다. 그걸 알고 같이 오신 줄 알았는데 아니셨군요. 그 빛이 있어 제가 긴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던 겁니다. 소년의 몸에는 그저 우연히 들어가게 된 것 같군요. 하지만 그저 우연으로만 볼 수 없겠지요, 마지막이라고 느껴지는 그 영혼의 빛을 지니게 된 소년을 만나 제 앞에 나타나시다니…… 이 모든 게 정해진 운명이겠죠.”

그래서 승우의 힘이 보태졌던 걸까, 하고 선녀 설희는 생각한다.

“그럼 미안하지만 비늘을 가져갈게. 그전에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어. 여왕벌 정령은 어떻게 찾지?”

“제가 사라질 때 생기는 빛에 반응하여 여왕벌을 따르는 누군가가 이곳을 찾아올 겁니다. 그리고 비늘은 3일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니 그전까지 꿀을 얻으셔야 합니다.”

승우와 선녀 설희가 물고기 정령의 몸에 손을 대자 눈부시지 않은 아주 따뜻한 빛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아버린 비늘은 비늘이라 부르기엔 아주 향기롭고 부드러우며 아름다웠다.

승우에게 함께한 '나무꾼의 빛'

물고기 정령이 말한 것처럼 빛에 반응한 무엇인가가 선녀 설희와 승우에게로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그것은 일벌이었다.

“네가 만나야 할 선녀가 여기 있어. 이리로 와.”

이상하게도 벌은 선녀 설희와 승우가 있는 곳에 가까이 오려 하지 않았다. 빛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왔으나 가까스로 저항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선녀 설희가 꽃의 향기를 벌에게 뿌렸다. 벌은 자의인지 타의인지 향기에 이끌려 그제야 설희 손등 위에 날아와 앉았다.

“죄송합니다.”

“이야기는 전부 들었어. 너희가 모시고 있는 여왕벌 정령은 어디에 있지?”

“죄송합니다. 말해 드릴 수 없어요.”

승우와 선녀 설희는 깜짝 놀란다. 말해줄 수가 없다니! 승우가 벌을 손바닥으로 때려서 죽일 기세로 강하게 몰아붙였다.

“말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돼? 그것을 위해 물고기 정령이 목숨을 내주었어. 너는 그 목숨을 헛되게 만들 셈이야?”

“이 아이의 말이 맞아. 말하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죽일 수도 있어.”

“죽어도 말을 할 수가 없어요. 말하면…… 말하면…….”

승우는 믿을 수가 없었다. 벌이 울먹거리고 있었다. 승우는 천천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선녀 설희도 같은 생각이었다.

“너를 죽일 생각은 없어. 이유라도 말해줘.”

“내가 말하면…… 우리 여왕님은…… 물고기 정령처럼 죽게 돼요. 여왕님이 살아 계신 건 그 꿀이 있기 때문이니까요. 우리들은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날이 오면 우리가 여왕님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죠. 우리는 여왕님을 잃고 싶지 않아요.”

승우는 우진이와 할머니, 마을 사람들 모두를, 특히 선녀 설희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의 마음은 알겠어. 하지만, 내가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이 마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불행해져. 그건 너의 여왕님과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지켜내기 위해서 필요한 거야. 부탁할게.”

“그렇다면…… 여왕님의 꿀을 내놓지 않아도 결국…… 우리 여왕님은 죽게 되는 건가요?”

선녀 설희와 승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에게 시간을 줘요. 그러기 싫다면 날 그냥 죽게 해줘요.”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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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2010/03/21 08:30

꼬마 선녀가 할머니와 승우를 앉혀놓고 왜 자신이 하늘나라에서 내려왔는지를 이야기한다. 꼬마 선녀의 이야기는 우진이가 들려준 것처럼 나무꾼과 그의 홀어머니를 위한 꽃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선녀가 보내는 하늘의 꽃에는 신비한 힘이 있어. 나무꾼과 그의 어머니 그리고 이 마을 모두를 사랑하는 ‘선녀의 마음’이 담겨 있거든. 쉽게 말하면, 이 마을에 유독 나이 많은 여자들이 많은 건 선녀가 그들을 나무꾼의 어머니처럼 여기고 보살피려 했기 때문이야. 꽃의 향기를 맡은 이 마을 정령들은 선녀의 마음을 헤아려 이 마을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이 마을에 사람이 많이 살지는 않지만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답고 깨끗하고 살기 좋은 곳인 건 이 때문인 거고.”

“선녀가 나무꾼의 친구 자손들에게 자신의 꽃을 부탁했었다고 하던데…….”

“그랬었지. 그랬는데 그 자손들 중에 욕심을 품은 자가 있었어. 그 꽃을 자기가 가지면 이 마을에 나뉘었던 커다란 복이 자신의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부른 욕심이었어. 결국, 마을에 재앙이 들이닥쳤지. 그해 여름, 산의 나무들이 쓸려갈 만큼 엄청난 폭우가 내렸어. 그것도 이 마을에만. 피해는 말할 수도 없이 컸고 사람들은 점점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어. 그는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뒤늦게 깨달았지만, 용서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어. 그러나 백 년 가까이 대를 이어 꾸준히 용서를 빌자 선녀는 어느 날 자신의 목소리를 그들에게 들리게 해주었지. 다시 너희들을 통해 꽃을 내리지는 않겠지만, 이 마을을 계속 지켜주겠노라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었다면 지금 이곳은 인간이 있는 그 어느 곳보다도 살기 좋은 마을이 됐을 거야. 하지만, 그들의 뉘우침 또한 없었으면 지금처럼도 살지 못했겠지. 그렇게 다시 오랜 세월이 지나고 지나서…… 선녀도 하늘 세상에서 목숨이 다한 날이 온 거야. 더는 마을을 돌봐줄 수 없게 된 거지. 그래서 그녀의 아이를 인간 세상에 보내기로 했어. 마지막으로 이 마을에 꽃을 내려주기 위해서 말이야.”

“그 선녀의 아이가…… 꼬마 선녀, 너냐?”

“아니. 그 아이는 우리 어머니야. 그러니까 그 선녀는 나의 할머니야.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비어 있는 자리를 지키려면 어머니가 내려오실 수가 없었어. 그래서 내가 대신 내려오게 된 거야.”

“그렇다면 왜 다른 선녀들이랑 목욕하고 있었어?”

“꽃을 내리려면 특별한 의식이 행해져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몸을 씻어 정갈히 해야 하지. 원래는 나 혼자 내려와야 하는데, 내가 선녀로서 너무 어리기 때문에 의식에 실패할 수도 있고 혹시 또 인간에게 발견되게 하지 않게 하려고 함께 내려왔던 거야. 그런데…….”

꼬마 선녀의 이야기가 계속 될수록 할머니의 표정이 매우 심각해졌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 큰일이구나. 선녀님은 우리 승우에게 발견되어 버렸고, 그 의식이라는 것도 행하지 못하였으니…… 이제까지보다 더 큰 재앙이 이 마을을 덮칠지도 모르겠구나. 이를 어쩐다…….”

할머니께서 안절부절못하시는 모습에 그제야 승우는 자신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우진이는? 나랑 같이 있었던 남자애 말이야. 그 애는 갑자기 자기 집으로 말없이 돌아가 버렸어. 그런데 내가 불러도 돌아보질 않았어. 정말 들리지 않는 것 같았어. 아! 그 애의 조상님이 나무꾼의 친구라고 했어.”

“그 애는 잠들어 있어. 내가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거야.”

“그럴 수가…….”

“그 애뿐만이 아니야. 그날 이 마을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엄청난 벌을 받게 되겠지.”

“…… 네가 인간이 되기로 해서…… 그래서 이 마을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이 마을 때문이 아니라도 난 너와…… 함께 지낼 수 있어. 내가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정말 너를 좋아하게 된 거 같으니까…… 아니, 좋아해. 하늘로 돌아갈 수 없다면 모든 걸 용서하게 해주고 그냥 나랑 같이…… 우리랑 같이 살면 안 돼?”

“인간이 되려면 우선 날개옷을 빼앗긴 그 해에 첫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들었던 것 같아. 그런데 나는 인간의 몸으로도 성숙하지 못해서 아이를 낳을 수가 없어. 그보다 또다시 인간의 욕심이 하늘의 노여움을 사서…… 내가 돌아가지 못하면…… 이 마을뿐만 아니라 나도 없어져 버릴 거야…….”

승우는 펑펑 눈물을 쏟았다. 우진이를, 할머니를, 마을 사람들을 믿어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이렇게 엄청난 일이 될 줄 몰랐다. 열 살의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승우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큰 짐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방법이 없진 않을 거야. 일단 이 마을에 사는 정령들을 찾아보자. 내가 꽃의 향기를 풍기면 그들은 나를 알아볼 거야.”

“우진이부터 만나게 해줘. 너라면 어디 있는지 알잖아.”

“나도 잘 몰라. 다만, 그 아이의 할머니라면 이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을 거란 거야.”

“그렇다면, 그건 내가 알지. 내 길을 알려줄 테니 찾아가 보아라. 오늘은 벌써 해가 졌으니 내일 찾아가보렴. 반드시 길이 있을 게야…….”

좀체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승우에게 꼬마 선녀는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욕심을 부렸거나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고 하기엔 승우는 너무나 어렸고, 무엇보다 너무나 순수하고 착해 보였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백설이 아니고 설희야. ‘눈 설’ 자에 ‘빛날 희’ 자를 써서 설희.”

승우가 훌쩍거리면서 말한다.

“그럼 너는 백설공주가 아니라 설희공주였구나.”

“난 공주가 아니라 선녀야.”

선녀 옷을 고칠수 있을까?

우진이의 할머니 댁은 생각보다 가까웠다. 우진이의 할머니는 둘이 찾아올 줄 알았다는 듯 이미 문밖에 나와 있었다. 그러고는 선녀 설희를 보자마자 바닥에 엎드려 울며 사죄를 한다.

“이 늙은이 눈이 침침해도 한 눈에 선녀님인 걸 알아보니 피는 못 속이나 봅니다. 선녀님이시여,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 늙은이가 말이 많아 어린 새끼를 저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우리 우진이가 제 말을 믿고 그곳을 찾아갈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이 어리석은 늙은이를 데려가시고 저 어린 것이 제발 눈을 뜨도록…….”

승우는 자꾸만 나오려는 눈물을 꾸역꾸역 참아낸다. 이게 다 나 때문이다. 내가 우진이를 말렸으면 될 일이다.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나고 후회가 되었다.

“이 아이는 잠들어 있을 뿐이에요. 내 선녀옷을 고칠 수만 있다면 죽을 일도 없어요. 그 방법을 당신이라면 알고 있을 거예요.”

“선녀의 옷이 찢어지면 선녀탕이라 불리는 계곡물에 사는 물고기 정령의 비늘을 얻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옛날만큼 계곡물이 깊지가 않아서 그 정령이 살아 있는지,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그것뿐인가요?”

“제가 알고 있는 건 그것뿐입니다. 그 비늘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분명 그 물고기 정령이 알려줄 겁니다. 나이만 먹고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하니…….”

“아니에요. 충분히 도움이 됐어요. 잘될 거예요.”

선녀 설희와 승우는 서둘러 선녀봉을 향해 올라갔다. 그러나 물에는 물고기가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정령으로 보이는 물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선녀 설희는 물 위에 그림 같은 것을 그려서 이따금 물줄기가 솟아오르도록 신비한 힘을 내는 것 같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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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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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2010/03/14 09:00

“승우야, 일어나서 밥 먹어야지.”

할머니께서 아침상을 내오신다. 승우는 졸린 눈을 비비다가 밥공기가 세 개인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그렇구나, 꿈이 아니었구나! 승우는 급하게 방 안을 휙 둘러본다. 작은 바위를 덮어 놓은 듯 이불이 봉긋 솟아 올라와 있다. 저 안에 선녀가 있구나.

"서, 선녀님도…… 밥…… 밥 먹어……요.”

승우가 이불을 조금 걷어 올리고 말한다. 꼬마 선녀는 대답이 없다.

“혹시 사람이 하는 말…… 아니면 우리나라 말을 모르는 걸까요, 할머니?”

“글쎄다. 그런 것 같지는 않더구나. 꼬마 선녀님, 많이는 못 내왔지만, 아침상 같이 받아요. 그래도 정성을 다해 내왔으니 속은 든든해질 수 있을게요.”

의식을 잃기 전 들었던 게 할머니 발자국이었던 게 인제야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진이가 다녀갔던 걸까? 아니면 할머니는 이미 예전부터 선녀를 믿었기 때문에 직감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 서, 선녀님…… 우리 할머니 밥이 얼마나 맛있는데…….”

“……ㄱㅗㅈ가ㅁ…….”

“응? 지금 말했어? 뭐라고 했어?”

다시 대답이 없다. 승우는 답답하다. 겨우 선녀가 입을 열었는데 두꺼운 이불에 덮여 있어서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곶감이면 돼……. 다른 건 필요 없어"

“할머니, 곶감이래요, 곶감! 그런데 곶감이 있어요?”

“이를 어쩐다…… 꼬마 선녀님 입을 옷도 없으니 내 서둘러 장에 나가서 옷이랑 곶감이랑 사올게. 자, 이거라도 조금 먹어요.”

“……필요 없어 다른 건…….”

“승우야, 너라도 밥 잘 먹고…… 꼬마 선녀님 기운 좀 내게 도와주고…… 우리 승우도 기운을 내고. 알았지? 내 얼른 장에 다녀올 테니.”

“할머니 없을 때 도망가면 어떻게 해요?”

“그럴 일은 없을 거 같으니 내 얼른 다녀오마.”

할머니는 밥공기를 미처 다 비워내지도 않고 서둘러 장에 나가신다. 승우는 할머니를 따라 장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여전히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는 꼬마 선녀가 이제는 조금 측은해진다. 우진이라도 와줬으면 좋겠는데…… 우진이는 어떻게 된 걸까?

“선녀…님, 나 금방 나갔다 올게. 정말 금방이야. 할머니보다 빨리 올 거야. 그러니까 나가지 말고…… 답답하니까 이불 속에서 나와서 쉬고 있어. 금방 올게.”

승우는 급하게 밥상을 치우고 밖으로 나간다. 우진이네 할머니 댁이 어디인지를 몰라 어제 만난 장소로 뛰어나가 보지만 우진이는 없다. 승우는 다시 급하게 우진이와 놀았던 계곡물이 있는 곳을 찾아간다. 그곳에도 우진이는 없었다. 우진이도 걱정이지만 꼬마 선녀가 걱정되는 승우는 작고 예쁜 돌멩이 다섯 알을 골라 주머니에 넣고 다시 뛴다. 숨을 헐떡이며 다시 집으로 돌아온 승우는 조심스럽게 선녀가 있는 방의 문을 연다. 이번에는 선녀가 이불 밖으로 얼굴을 빠끔히 내밀고 있다. 승우가 돌아오자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려고 한다.

“잠깐만, 잠깐만! 보여줄 게 있어. 봐봐, 예쁘지!”

승우는 선녀에게 금방 주워온 돌멩이를 꺼내서 보여준다. 돌멩이에 남아 있는 물기를 입고 있는 티셔츠로 쓱쓱 닦아서 다시 내민다. 선녀가 호기심에 쳐다보는데 그 모습에 승우는 심장이 이상하게 쿵쾅거려옴을 느낀다. 꼬마 선녀는 동화 속에서 본 그 어떤 공주들의 모습보다도 아름다웠다. 특히 흰 눈보다도 깨끗하고 하얗게 빛나는 피부 빛이 신비롭게까지 느껴졌다.

“넌 선녀가 아니라 백설공주니? 네 이름은 백설이야?”

꼬마 선녀는 승우의 말을 못 들은 척한다. 애초에 백설공주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꼬마 선녀는 승우가 가져온 것이 그저 돌멩이란 사실에 실망하고 다시 이불을 얼굴 위로 끌어당긴다.

“아, 아냐! 미안해! 내가 엉뚱한 말을 해버렸어! 그리고 돌멩이를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내가 이걸로 이제부터 재밌는 걸 해 보일게. 자, 봐봐.”

승우는 오른 손바닥에 돌멩이 다섯 개를 모두 모으더니 바닥에 살짝 깔아 놓는다. 그러고는 하나를 적당한 높이로 하늘에 던진 후 바닥에 있는 돌멩이 하나를 얼른 줍고 그것을 받아낸다.

“이렇게 하나씩 주울 때 다른 돌멩이에 손이 닿으면 안 돼. 하늘에 던진 것도 다시 받아내야 해. 다음은 한 개가 아니라 두 개를 주워야 하고 다음은 세 개…….”

꼬마 선녀가 흥미를 보이며 점점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낸다. 선녀가 입고 있는 옷은 분명 승우의 것이다.

‘할머니 옷이 너무 커서 내 옷을 입었구나. 내 옷을 다른 누구도 아닌 선녀가 입고 있다니! 내가 남자애라서 조금 미안해지는걸…….’

미안함보다 승우는 어쩐지 부끄럽게 느껴진다. 꼬마 선녀가 자기에게 집중하고 있는 것을 알고 더욱 부끄러워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해? 다섯 개를 주우려면 하늘에 던질 수 있는 돌이 없잖아.”

“아, 그건 꺾기라고 해서 이렇게 하는 거야.”

승우는 손바닥에 돌멩이를 잘 모은 다음 한꺼번에 살짝 위로 던진다.

“우와! 다섯 개야. 다섯 개가 올라갔어! 이걸 어떻게 하는 거야?”

승우는 우쭐해진다. 이걸 다 잡아내야 꼬마 선녀가 좋아할 텐데! 승우는 손등 위에 있는 돌멩이에 집중한다. 하나, 두울, 셋!

“우와, 우와, 우와! 다 잡아냈어! 신기하다! 이건 너만 할 수 있는 거야?”

마치 마술사의 마법을 처음 본 아이처럼 신기해하는 선녀를 보면서 승우는 더욱더 우쭐해진다. 내친김에 거짓말로 세상에서 이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고 하고 싶지만 승우는 이것이 공기놀이라고 불리는 아이들의 놀이임을 설명해준다.

“다른 것도 보여줄까?”

“또 뭐가 있어?”

“밖으로 나가자. 이건 밖에 나가서 해야 해.”

이번에 승우는 자치기를 보여줄 셈이다. 공기놀이는 여자아이들의 놀이라는 생각에 남자아이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진 것이다. 그다음에는 무엇을 보여줄지도 생각해본다. 꼬마 선녀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준 거 같아서 너무나 기분이 좋다. 문을 열자 어느덧 중천에 가까워진 여름해가 눈부시다. 승우는 혹시 선녀가 뜨거운 햇볕에 녹아버리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눈부시게 하얀 꼬마 선녀가 자꾸만 걱정된다.

“너… 설마 햇볕에 녹아서 없어지거나…… 그러는 거 아니지?”

“선녀옷이 없으면 나는 인간이나 마찬가지야. 그럴 일은 없어.”

선녀옷 이야기가 나오자 꼬마 선녀는 다시 어두운 표정이 되어서는 문턱 밖으로 내밀었던 한 발을 다시 안으로 집어넣는다.

“잠깐만 있어봐.”

승우는 길을 따라 드문드문 나 있던 민들레꽃 홀씨 몇 개를 꺾어온다.

“밖에 나오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이것만 봐봐. 아주 재미있다고.”

꼬마 선녀가 마당에 서 있는 승우를 쳐다보자 기다렸다는 듯이 힘껏 민들레꽃 홀씨를 향해 바람을 분다.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를 꼬마 선녀는 넋을 놓고 바라본다.

“……나도 해볼 수 있어?”

“응! 잠깐만 있어봐. 내가 얼른 꺾어 가지고 올게.”

장을 보고 온 할머니는 마당에서 민들레 홀씨를 불며 놀고 있는 승우와 꼬마 선녀에게 놀란다. 그러나 이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본다.

"곶감은 인간세상 최고의 맛이라고 들었어"

할머니는 마루에 곶감을 내어주고는 이내 방으로 들어가신다.

‘선녀들은 곶감밖에 먹을 줄 모르나? 그런데 왜 안 먹지?’

계속 곶감을 쳐다보고만 있는 꼬마 선녀가 승우는 신경이 쓰인다. 그것도 아니면 그런 자신의 시선이 신경 쓰여 오히려 못 먹는 걸까?
승우는 고개를 돌려보지만, 여전히 꼬마 선녀는 쳐다보고만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너 혹시 이거 처음 봐?”

“……응.”

“곶감이 뭔지도 모르고 먹고 싶다고 그런 거야?”

“그치만…… 꼭 먹어보고 싶었는걸. 곶감이라는 것이 인간 세상에 있는 열매들 중 최고의 맛이라고 들었는걸.”

“곶감을 먹어본 선녀가 있구나. 이건 감이라고 하는 과일을 말려서 만든 거야. 감은 원래 가을에 익지만 지금 먹는 곶감도 맛있을 거야.”

꼬마 선녀는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 문다. 그제야 맛있다는 미소를 지어 보이는 꼬마 선녀를 보고 승우는 넋을 잃는다. 곶감을 오물오물 씹고 있는 작은 입이 귀엽다고 생각하자 승우의 얼굴이 다시금 발갛게 달아오른다. 승우는 또다시 밖으로 뛰어나간다. 자꾸만 꼬마 선녀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 이번에는 아직 홀씨가 되지 않은 노란 민들레꽃으로 꽃반지를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좀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 더 아름다운 들꽃들을 한 아름 꺾어다가 꼬마 선녀에게 가져다준다.

“밖에 나가면 이보다 더 예쁜 꽃들이 많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예쁘고 재밌는 것들이 많아. 같이 가보지 않을래?”

“나는 하늘나라로 가야 해……. 이곳에 남아 있을 수 없어.”

“정말 미안해. 너의 옷을…… 망가뜨리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 미안해……. 하지만 그건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옷이 그렇게 될 줄 몰랐단 말야…… 날개옷이 그렇게 되었으니까 너…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거 아냐? 그러니까…… 나랑…… 같이 살자. 내가 날마다 예쁘고 재밌는 것들을 널 위해 보여주고 알려줄게.”

무 어려서 나무꾼처럼 결혼이란 걸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매일매일 꼬마 선녀를 기쁘게 해줄 자신이 있다고 승우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신은 이제 더 이상 아홉 살이 아닌 열 살이니까. 조금은, 어른이니까 말이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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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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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2010/03/10 08:00

승우는 우진이를 만나고 계속 마음이 언짢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우진이를 믿지 않으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할머니! 선녀는…… 진짜로 있을까요?”

“지금은 있는지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있었단다. 이 마을에.”

“하지만,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니다, 아니에요. 저 오늘은 우진이네 할머니 댁에 가서 놀 거예요. 많이 늦지는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은 달이 없는 날이니 일찍 들어오렴. 가서 할머니 말씀도 잘 듣고.”

“네. 다녀오겠습니다.”

승우는 우진이 말했던 것처럼 할머니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이 싫어져 하려던 말을 그만둔다. 우진이도, 할머니도, 아니 어쩌면 마을 사람들 모두를 의심하고 있는지 모르는 자신이 싫어진다. 그래서 우진이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가기로 결심한다. 소중한 친구인 우진이를 자기만큼은 믿어주고 싶다.

약속한 장소에 우진이는 이미 와 있었다.

“네가 오지 않을까 봐 사실 많이 걱정했어. 내가 선녀를 만나도 그것을 알아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야. 널 만나게 돼서 반가워!”

우진이가 승우를 꼭 껴안는다. 그러고는 가방에서 손전등을 꺼내 손에 쥔다.

“난 괜찮지만 너는 밤길이 처음일 테니까 이걸 사용해. 참! 먹을 것도 조금 싸왔으니 배고파지면 같이 먹자. 나는 긴장해서 아무것도 먹질 못했거든. 여기야, 나무꾼이 선녀를 훔쳐봤던 곳!”

정말 이곳이라면 선녀들을 훔쳐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깎아내린 언덕의 높이가 제법 되어 승우는 조금 무서웠다. 아홉 시가 채 되지도 않은 밤인데 시골이라 거리에 조명등이 많지 않고 그보다 달이 없어서 너무나 깜깜하다. 승우는 우진이 싸온 음식을 나눠 받아먹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흐름을 가늠할 수 없는 깜깜한 밤하늘에 승우는 점점 불안해진다.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승우야, 불 꺼! 저길 봐, 맙소사! 진짜야! 진짜였어! 우리가 꿈을 꾸는 건 아니겠지?”

그때였다. 우진이의 말에 깜짝 놀라 하늘을 올려다보니 갑자기 태양을 마주할 때보다도 더욱 눈이 부신 빛이 쏟아져 도저히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승우와 우진이는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몸을 움츠리고 숨을 죽였다. 

승우와 우진, 선녀를 만나다

승우와 우진이는 아주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선녀들을 바라보았다. 선녀의 몸에서는 은은한 빛이 계속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달빛과도 같았다. 선녀들이 날개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것은 옷을 벗는 것이 아니라 빛을 걷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벗어놓은 날개옷에서는 계속 은은한 빛이 새어나왔다. 그나저나 저렇게 먼 거리여서는 우진이의 말처럼 날개옷을 훔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날개옷을 벗은 선녀의 몸에서도 마찬가지로 ― 그러나 전보다는 조금 약해진 ― 아름다운 빛이 감싸져 있었다. 그 빛으로 인해 선녀의 몸은 굉장히 신비로워 보였다. 승우와 우진이는 아무 말도 못한 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선녀들 중에 눈에 띄게 몸집이 작은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를 보고 놀란 승우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나고 말았다. 그러자 그보다 더 놀란 우진이가 승우를 붙잡는다. 그러나 이미 늦어버렸다. 승우와 그 아이의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물줄기가 솟구치더니 우진이와 승우를 향해 날아왔다. 가까스로 물줄기를 피해 도망치려는데 굉장히 거센 바람이 그 주변을 휘감기 시작했다. 선녀들도 당황하여 급하게 날아가려는 날개옷을 붙잡고 빛을 내며 한 명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바람에 휘감긴 승우는 물 위로 떨어진다. 허우적거리다가 그 몸집이 작은 선녀를 붙잡는다. 그랬더니 승우의 몸이 공중에 뜬다. 땅 위로 곤두박질치는 승우의 몸이 선녀의 날개옷 위로 떨어진다. 날개옷 때문인지 던져질 때의 충격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선녀는 당황한다. 그때 우진이가 승우와 선녀를 향해 달려온다. 선녀가 우진이를 향해 꽃잎처럼 보이는 것을 던진다. 그것은 우진이의 어깨에 내려앉는 듯하더니 이내 사라진다.

“우진아, 나 좀 도와줘.”

우진은 마치 의식이 없는 사람처럼 뒤돌아선다.

“우진아, 우진아!”

승우가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우진은 점점 승우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와중에 몸집이 작은 선녀가 승우의 목을 조르려고 하나 손이 자꾸만 미끄러진다.

“미안해, 미안해. 혹시 내가 깔고 누운 게 네 날개옷이면 줄게, 줄게. 그러니까 비켜줘.”

승우가 얼른 몸을 일으켜서 선녀에게 내민다. 그런데 아까 봤던 빛이 날개옷에서 느껴지지가 않는다. 승우는 불안했다. 선녀도 급하게 날개옷을 입어 보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입고 있는 옷은 투명에 가까워서 작은 선녀의 몸이 비췄다. 승우는 그것이 부끄러워서 시선을 돌렸다. 작은 선녀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더니 목 놓아 엉엉 울기 시작한다. 승우는 더더욱 어찌할 줄을 몰라 한다.

‘몸집만이 아니라, 정말 어린 아이구나……. 꼬마 선녀님도 있구나. 그런데 우진이가 없으니 어떻게 할머니 댁으로 돌아가지? 그리고 나 때문에 망가진 이 날개옷을 어떻게 해야 하지?’

승우도 꼬마 선녀 옆에서 함께 목 놓아 울고 싶었다. 이런 건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그때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승우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그것은 할머니 발자국 소리다! 안심이 되자 승우는 의식을 잃었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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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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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2010/03/06 14:26

승우는 우진이의 걸음을 따라 마을 어귀를 걸으면서 못다 나눈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우진이가 걸음을 멈추고 쉬어 가자고 한다. 나무 그늘에 의지해 뜨겁고도 청량한 여름 햇살을 시원하게 받아낸다. 승우는 졸음이 쏟아지려 한다. 그런데 우진이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말투 ― 승우는 우진이의 그 말투가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 ― 로 이야기를 꺼내어 이내 졸음이 싹 가셨다.

“너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알지?”

“응! 줄거리 말해줄까?”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우리 둘 다 그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게 확실해졌으니까. 그렇다면, 이곳이 그 선녀와 나무꾼이 살았던 마을이라는 것도 알아?”

“할머니한테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승우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우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할머니 댁에 오는 걸 싫어한 만큼 할머니의 말씀도 잘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에 가고 싶어 훌쩍거리면서 울 때 할머니께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겠다며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꺼냈었다. 그때 승우는 아는 이야기라면서 짜증을 냈다. ‘그 선녀와 나무꾼이 이곳 삼거리마을에 살았단다.’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라고 무시해버렸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우진이가 하고 있다니!

“저 산봉우리는 ‘선녀봉’이라고 해. 선녀의 몸을 닮았다고 해서 선녀봉이라고 부른대. 그것보다 저 산봉우리에서 시작되는 계곡물이 바로 선녀가 목욕을 했던 계곡의 물이야.”

“그렇구나.”

시큰둥해하는 승우에게 우진이는 더욱 진지하게 이야기를 한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누가 지어낸 게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이야.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곳 삼거리마을이라는 것은 확실해.”

“에이, 거짓말. 그건 정말 지어낸 이야기잖아.”

“넌 저 선녀봉과 내 말을 믿지 않는 거니?”

우진이가 실망한 듯 보이자 승우는 당황한다.

“그치만…… 그걸 뭐라고 하지? 즈, 증거! 그래 바로 그거야. 증거가 없잖아! 내가 보기엔 그냥 산이고 물인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왔어. 하지만,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곧 알게 될 거야.”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는데?”

“바로 내일. 내일 선녀들이 마을 사람들이 선녀탕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내려올 거니까!”

“뭐라고?”

승우는 아직도 어리둥절하지만 우진이는 더욱 격앙된 목소리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내가 보여줄 굉장한 여름이 바로 그거야.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가 진짜인지 아닌지 내일 밤 우리의 눈이 증거가 되어 줄 테니까.”

동화 속 이야기를 믿다니! 승우는 우진이 처음으로 어린애 같다고 생각했다.

“선녀가 내려온다는 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우리 할아버지의 아주 먼 할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조상님의 친구 분이 바로 나무꾼이었기 때문이야.”

할아버지와 나무꾼

“우리가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걸 확인했지만, 마지막 부분을 덧붙여 이야기할게. 선녀와 아이들을 찾아 하늘로 올라간 나무꾼은 홀로 계신 어머니가 걱정되어서 다시 근심을 하게 돼. 그런 나무꾼이 안쓰러웠던 선녀의 도움으로 그는 천리마를 타고 땅으로 내려오게 되지. 어머니는 마지막이니 잠깐만 내려서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간절히 부탁하지만, 천리마에서 내리면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없기에 그럴 수 없다고 해. 그러면 죽이라도 한 사발 먹고 가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청을 못 이겨 말을 탄 채로 죽을 먹다가 그만 그 뜨거운 것을 말 등위에 쏟아버리고 말지. 놀란 말이 땅을 박차자 나무꾼은 말 등에서 떨어지고 순식간에 천리마는 하늘로 날아가 버리지. 나무꾼은 더는 선녀를 만날 수 없게 되어 홀어머니를 모시고 평생을 그리워만 하다가 죽게 돼.

내가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그 이후부터야. 선녀는 나무꾼이 자신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는 그를 도와줄 수가 없었어.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나무꾼에 대한 신의 노여움이 너무 커서 더 이상 선녀의 부탁이 받아들여지질 않았던 거야. 그래도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나무꾼을 만나게 해달라는 선녀의 간절한 청은 계속되다가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야 받아들여지게 되지. 그런데 하늘과는 달리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이미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 있었어. 선녀는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어. 그런데 이상했어. 왜 나무꾼은 죽어서도 하늘나라로 오지 못했던 걸까? 선녀는 나무꾼을 기억하는 사람을 가까스로 만나게 되었어. 그는 나무꾼의 둘도 없는 친구였던 사람의 손자뻘 된다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더욱 쓸쓸한 나날들을 보내다 죽은 나무꾼을 그 친구는 어머니 무덤 옆에 나란히 묻어주었지만, 어느 날 마을에 큰 홍수가 나면서 둘 다 떠내려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선녀는 땅에조차 편하게 묻히지 못하고 마을 곳곳을 헤매고 있을 나무꾼과 그의 어머니의 넋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어. 자신이 천리마를 보냈기 때문에, 아니 하늘에 다시 올라가려 했기 때문에 생긴 불행이라는 생각에 선녀는 너무나 슬펐어. 그래서 그들이 살던 마을에 10년에 한 번, 그러니까 인간에게는 100년에 한 번씩 하늘의 꽃을 띄워 보내기로 했어. 선녀는 그 꽃으로 그 둘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해 달라고 그 손자 되는 사람에게 부탁했어. 그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였지.”

"날개옷을 하나 훔칠거야"

승우는 여전히 우진이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진이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그런지 언제부터인가 사람이 꽃을 돌보게 되는 일은 없어졌다고 해. 그래도 마을에서는 100년에 한 번씩 알 수 없는 꽃향기가 퍼진대. 그 후로는 마을이 더욱 살기 좋게 느껴지고 말이야.”

“그렇다면,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진 줄 모르고 선녀가 계속 꽃을 보낸다는 거야?”

“돌봐주는 사람 대신 무엇인가가 그 일을 대신하고 있는 것 아닐까? 아무튼 말이야, 내일 밤이 바로 그날이야. 하늘의 꽃이 내려오는 날! 할머니께서 알려주신 날짜니까 틀림없어. 그러니까 내일 밤 만나야 해. 승우 네가 믿지 못하겠다면…… 굳이 그렇다면 내일 밤 나타나지 않아도 좋아. 나 혼자서만 확인할 테니까.”

그러나 우진이의 말투는 승우가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쓸쓸함이 묻어나왔다. 승우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진아, 정말로 나올 거야? 네 말대로 달이 뜨지 않으면 엄청 깜깜할 거고…… 무엇보다 할머니께서 걱정하실 거야.”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해. 너는 우리 할머니 댁에, 나는 너희 할머니 댁에 놀러 간다고 말을 하고 나오면 돼. 선녀가 목욕하는 시간은 길지 않으니까, 할머니께서 걱정하실 만큼 늦게 돌아가진 않을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만큼 이곳을 잘 알아.”

“괜찮을까? 할머니께 걱정을 끼치지 않고 나온다고 해도…… 정말 선녀를 만난다면…… 우리는…… 우리야말로 괜찮을까?”

“우리가 위험해지지 않기 위해 날개옷을 하나 훔칠 거야.”

“나무꾼처럼 선녀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려고?”

“아니! 발견되었을 때를 대비하는 거지. 만약에 우리를 해치려고 하면 날개옷으로 협박할 거고 발견되지 않았을 때는 선녀들이 목욕을 마치기 전에 몰래 다시 놔두고 돌아가면 되는 거야.”

“그런데 선녀가 꽃을 띄우러 내려오는 거라면서 목욕까지 할까? 그것보다 왜 그렇게까지 위험한 행동을 해야 해?”

사실 승우는 선녀가 그렇게 궁금하지 않다. 혹시 실제로 만난다고 하면 동화 속 그림처럼 아주 아름다울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의외로 선녀가 못생겼을 수도 있고 나무꾼 때문에 생긴 사람에 대한 적개심으로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아무도 선녀를 믿지 않기 때문이야. 선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 나도 더 이상 할머니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게 될 거니까. 더는 의심이라는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 거야. 그러니까 네가 내일 나타나지 않아도 나는 너를 원망하지 않아. 그렇다고 선녀를 기다리는 일을 그만두지도 않을 거야. 내일 밤, 아니면 다음날 이곳에서 만나자. 안녕!”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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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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