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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를 대표하는 것들을 꼽자면 많은 사람들이 "딸기"를 선택할거에요^_^
삼례 딸기는 매년 봄이면 지역민들에게 수확의 기쁨을 주고 있고, 소비자들에게는 유독 신선한 딸기 맛을 전해주고 있는데요.
조금씩 다가오는 봄 바람타고 오늘은 삼례 딸기를 신선하게 구매하실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드리고자합니다.

삼례의 드 넓은 땅에는 봄이면 딸기가 여름이면 푸른 벼들이 자라는데요.
이 드넓은 땅을 가로지르는 길에는 삼삼오오모여 갓 따온 딸기를 파는 곳이 있습니다.
저는 딸기길이라고 부르는데요.
이 길은 삼례 나들목(IC)방면에 펼쳐져있습니다.




다음지도가 문제가 많은지 붉은 색으로 판매하고 있는 길거리를 표시했는데도 나타나질 않네요^_^ 양해부탁드려요!
지도 중앙에 노란색 말고 회색길이 보이신가요! 그 구간이 바로 삼례에서 딸기를 판매하고 있는 길입니다^_^




미흡하지만 사진으로도 담아보았습니다. 딸기판매가 활발한만큼 커다란 표지판으로도 삼례딸기를 홍보하고 있습니다
딸기는 도로 양쪽에서 모두 판매하고있구요. 차량이동방향에 맞춰서 이동구간쪽으로 맞춰져있습니다.


최근 몇년전 이 거리를 이용하시는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도로를 정비한것 같습니다.
붉은색도로로 표시된 길에 차를 잠시 세워두시고 딸기를 구매하시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삼례 딸기길을 방문하시면 바로 옆에 혹은 근처에 있는 하우스에서 갓 수확한 딸기를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말그대로 산지직송이지요!

딸기는 우리 국민들이 많이 접하시는 과일인 만큼 잘 아실꺼에요!
신선도가 아주 중요한 과일이라는 것을요!
조금만 상처나도 물러지기때문에 딸기를 포장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벌써 10년넘게 이 곳 거리에서는 딸기를 판매하고 있기에 판매하시는 농업인 모두가 배테랑이니
걱정마시고 오셔서 신선한 딸기를 구매하시길 추천해드립니다.


딸기판매점들은 모두 붉은색과 파란색 줄무늬로 통일을 하였구요.
간판크기도 대부분 비슷합니다.
경쟁업체라는 느낌보다는 모두가 공생하는 공동체라는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훈훈하지요.

간판에는 제 동창생들과 그 가족들의 이름과 별명들이 많이 보여서
그들과의 추억을 되짚어보면서 웃음지을 수 있었습니다.



딸기 가격은 1kg에 대략적으로 10,000원정도를 호가합니다.
도시에서 딸기를 구매하실때는 가격 변동이 어제오늘 다르기 쉽습니다.
신선도때문이지요.
하지만 이 곳에서는 대부분 일정한 가격으로 구매하실 수 있으시구요.
하루전에 따거나 시간이 조금 지난 딸기들의 경우에는 조금 더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집에 손님이 많이 오시는 날 저의 절친에게서 딸기를 구매했는데요.
덤으로 이렇게 또 한상자 주셨어요^_^
딸기 맛이 우수하다보니 대접하는 저희 가족 마음도 뿌듯했답니다.



딸기, 맛있게 먹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신선한 딸기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앗, 삼례 딸기는 무공해 딸기로도 유명하다는 점 잊지마세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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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 전북 완주군 삼례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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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U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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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에게 듣는 완주역사 이야기] 

과거 삼례도찰방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현 삼례 동부교회 자리

과거 삼례도찰방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현 삼례 동부교회 자리

삼례읍은 오늘날의 행정구역상으로 전라북도 완주군에 속한다. 옛날 백제시대에 거찰의 터로 고금을 통해 삼례 합장하는 곳이라 하여 삼례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말엽까지 역마의 주둔지로서 중시되었고 조선시대에 삼례도찰방(參禮道察方)이 있었다. 

  1793년(정조17)에 편찬된『호남읍지(湖南邑誌)』에도 삼례역은 호남을 왕래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실려 있는데 호남지방에서 최대의 규모라고 하였다. 문관으로 종 6품인 찰방 1명과 예하에 역리 596명, 남자 노비 191명, 여자 노비 51명, 일수(日守) 31명, 말 15필을 두었으며, 부속된 역원만도 12개가 되었다고 한다. 

  삼례는 조선시대 9대로 중 전북의 전주와 남원, 경남의 함양, 진주를 거쳐 통영으로 가는 ‘6대로’인 ‘통영대로’와 7로인 삼남대로가 나뉘는 곳이었다. 따라서 전남의 순천, 여수, 고흥, 광양 방면은 물론 경상도 남해, 함양, 진주, 고성, 산청, 통영 방면도 모두 이곳 삼례를 거쳐서 갔다. 이와 같이 삼례역은 호남 제일의 역으로서 전라도 역도인 삼례도(三禮道)의 중심역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종9품인 역승(驛丞)이 있었으나 성종 이후 앵곡도와 병합하였고 찰방으로 승격되었다. 삼례․반석․양재․앵곡역은 중로에 속하는 역이고 그 밖의 역들은 소로 또는 소역에 속했다. 갑오경장 시기까지 존속된 삼례역은 전주와 임실, 임피, 익산, 전주, 정읍, 부안, 김제에 걸쳐 모두 12개의 역을 관할하였다.

실학자인 유형원의 『반계수록』에 보면, 직산에서 천안을 거쳐 삼례를 지나 전주에 이르는 길은 대로(大路)와 중로(中路), 소로(小路) 중에 중로에 속한 5등 도로라고 한 내용이 있다. 대․중․소로의 구분은 노폭의 넓고 좁음으로 구분한 것이 아니라 말이나 역호의 많고 적음에 따라 구분되었는데 삼례역에는 역마가 20필, 역호가 75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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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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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2010년부터 호랑이기운을 받아 완주스토리에 함께하게된 JUMA입니다.
버스를 타고 완주를 여행하면서 완주의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들려드릴텐데요.
글쓰기에 뛰어난 재능이 없기에 많이 부족하겠지만 완주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조금씩 발전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_^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 첫번째 이야기로 삼례 장터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삼례 장터에 대한 이야기는 낮과 밤 총 2회로 포스팅됩니다^^)


삼례, 전주간 시내버스들은 대부분 삼례장터을 거치게 됩니다.
종점인 우석대학교 바로 전 정거장이 "삼례시장"이지요.
예전에는 삼례터미널이 종점이었는데, 큰 도로가 있는 삼례시장이 정거장이 되었습니다.

저는 집앞으로 가는 버스를 이용하다가, 가끔 차를 놓치게 되면 삼례시장에서 내려서 집을 걸어가거나 택시를 타곤합니다.
필름카메라에 고감도 필름을 넣고 시장을 담아내고자 한  이날은 삼례장터에 5일장이 열린 날이었습니다.

삼례 장터의 정확한 위치는 삼례읍 삼례리 남서신입니다.

도로로 접근한다면 삼례시장의 입구는 바로 정거장이 있는 쪽입니다.
하지만 삼례시장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삼례시장의 입구를 천일약국쪽으로 많이 설명해주시곤 합니다.



삼례장터는 5일장이 서는 곳입니다.
장날은 매월 3일, 5일, 13일, 15일, 23일, 28일로 한달에 5번의 장이섭니다.
삼례의 특산품은 딸기인데요. 사실 딸기를 삼례장서에서 많이 판매하진 않습니다.
과일상가에서 팔긴하지만 하리, 원신금리, 삼례나들목 부근에서 직판매가 열리고 있기때문이지요.

삼례장터는 각종 농산물이 팔리는 곳입니다.
어르신들이 직접기르신 농산물이 있고, 수산물들이 차를 타고 새벽일찍 도착해옵니다.

제가 장터를 들른 시각은 장터가 마무리되는, 그래서 더 역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전통 시장의 매력은 바로 이 시간에 열리는 '떨이'소리가 아닌가 싶네요.


가판대의 떡도 다 팔렸고, 손수레에 담아온 물건들의 무게가 가벼워지길 바라며 다들 상인들은 집으로갈 채비를 합니다.



하루종일 굽던 김도, 튀기던 어묵도 이제는 그만 마쳐야할 시간입니다.








날이 추운데도 사람들은 꽤 있었습니다.
어쩌면 정거장이 삼례시장으로 정해지고 나서 삼례 장터를 지나가는 이들이 늘어나고, 그래서 큰 상점들 사이에서도 삼례시장이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삼례시장은 지도에 보이시는 삼례두부가 있는 그 앞길이 가장 큰 터이고, 토담골등이 있는 작은 골목 3개에 상가가 밀집해있습니다.

삼례시장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닭집입니다.
삼례는 저리가면 전주, 이리가면 익산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전주시와 익산시등 전북의 주요도시들을 잇는 곳입니다.
때문에 익산의 많은 양계농장들의 영향으로 삼례에는 닭집이 유달리 많습니다.
직접 잡아서 손질해주기때문에 신선도가 일품이지요!

조류독감때문에 힘든 날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삼례 장터의 닭집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네요.

다들 장터를 가면 맛있는 음식을 먹길 원하시죠?
삼례 장터는 큰 규모가 아니기 때문에 5일장에 서는 음식점은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정선5일장에 가시면 올챙이 국수와 메밀전병을 길 앉아서 드시지만 삼례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삼례 장터에 가면 꼭 구매하셔서 먹으면 좋은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만든 뜨끈한 두부, 어묵, 뻥튀기 그리고 요즘 장터에서 가장 핫한 돈까스 등이 속하는데요.

삼례장터의 '맛'에 대해서는 곧 이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낮에 들른 삼례 장터의 모습도 함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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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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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U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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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추위로 길게만 느껴지는 겨울, 린 손발만큼이나 따듯한 음식이 끌리는 계절인데요.
을 동시에 만족시켜줄 이 있다고 하여 찾아가 보았습니다.
늘 찾아간 곳은 그 이름도 재미난 "둥글네 분식"입니다
.

늦은 점심시간, 한산할 것을 예상하고 갔으나…
님이 많아서 20분을 기다려야 했답니다. T.T;


예상과는 달리 가격이 썩 착한 편은 아니더군요. ㅜㅜ…
일단 시켜보기로 합니다.


칼국수에 어울리는 김치와 깍두기, 단무지가 기본 반찬으로 나오네요.^.^
제가 주문한 것은 김치 칼국수였습니다.

이‥이건 뭔가요..?
이정도 크기면 성인 두명이 같이 먹어도 될 듯 보였습니다. -_-;
함께 한 학생이 주문한 것은 일반 칼국수였는데요.


젖가락 떠보도록 하죠. ^.^

시 칼국수는 김치와 함께 먹어야 제 맛이랍니다. ~

함께한 지인은 면만 다 먹는 것도 꽤나 벅차했으나..

저는 다 ~ 먹었답니다. ^.^!
허나.. 과식으로 인해 조금 힘들었죠.. ㅜㅜ

추운겨울, 따듯하다 못해 뜨거운 칼국수! 배불리 먹고 싶다면 ~
한번쯤 방문하심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맛도 꽤나 괜찮았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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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 둥글네분식,한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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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hink7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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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교주 최제우의 신원을 요구하며 서인주를 비롯한 남접계가 공주집회를 열었던 때가 1892년 10월이었다.

미온적이었던 북접의 최시형도 교도들이 요청하자 10월 27일에 교도들을 삼례에 모이도록 하였다. 11월 3일 삼례에 수천면의 교도들이 모여 집회를 열었는데 그 사건을 삼례집회라고 부른다. 전라감사는 해산을 종용하며 앞으로 신원과 관리들의 탐학을 근절시키도록 하겠다는 글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들의 탐학이 계속되자 고부에서 1차 봉기가 일어났다.

삼례 집회가 일어났던 삼례에는 지금 동학역사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삼례 집회가 일어났던 삼례에는 지금 동학역사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고부의 농민 봉기로부터 전주화약까지의 동학 1차 봉기는 반봉건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삼례에서 다시 기병한 2차 봉기는 한 단계 더 진전된 상황이었고 외세와의 완전한 전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대세를 지켜보던 전봉준(全琫準)이 전라도 각지에 격문을 띄워 동학농민군 4천여 명을 삼례에 재집결한 것은 1894년 9월 초순이었다. 동학농민혁명의 전 과정을 기록한 오지영(吳知泳)의 『동학사(東學史)』에 따르면 전라도 27개 고을에서 모인 농민군의 수를 11만 5천 명 정도로 기록하였으나 전봉준은 공초에서 4천여 명으로 밝히고 있다. 동학농민군들은 그들 스스로를 의병이라고 불렀고, 어느 때보다도 사기가 충천했다. 황토현, 황룡강 싸움의 승리도 승리려니와 전주화약 이후 농민통치까지 경험한 그들은 무서울 게 없었다.

삼례 집회가 일어났던 삼례에는 지금 동학역사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삼례 집회가 일어났던 삼례에는 지금 동학역사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농민군의 2차 기병 소식이 조정에 전해지자 집권세력은 허겁지겁 군사를 끌어 모았다. 그러나 가까스로 모인 관군은 1~2천 명에 지나지 않아 농민군과 싸움을 벌이기엔 중과부적이었고 믿을 수 있는 곳은 일본군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이 자꾸 서울을 빠져나갔기 때문에 서울은 불안하기만 했다. 그때 남북접(南北接)이 힘을 모아 서울로 진격하였더라면 농민군의 발길이 장안을 휘저었으련만 …. 서울로 진격하기에 앞서 군사적 행동을 부정하는 북접의 완강한 반대와 남북접의 해묵은 대립으로 인하여 농민군의 발목이 묶이고만 것이다. 서울 거리에 보국안민과 척양척왜의 깃발을 휘날릴 수 있는 기회를 잃은 셈이다. 

  남북접 회담이 결렬되자 최시형(崔時亨)을 비롯한 김연국, 손천민, 손병희, 황하일 등의 북접 교단은 오히려 삼례에 모인 농민군을 토벌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리고 남접의 농민군을 토벌하겠다는 의미의 깃발인 벌남기(伐南旗)까지 만들어 호남의 농민군을 공격하려 하였다. 북접의 이러한 태도로 말미암아 농민군의 진격은 20여 일 가량 늦어졌고 그 때문에 공주영이 관군에게 선점 당하게 되었다. 한양으로 진격하기는커녕 오히려 남북접은 내란 일보 직전에 다다른 것이다. 그때의 상황을 오지영은 『동학사』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삼례 집회가 일어났던 삼례에는 지금 동학역사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삼례 집회가 일어났던 삼례에는 지금 동학역사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갑오년의 난을 당하여 전라도를 남접이라 이름하고 충청도를 북접이라 이름 하여 서로 배척하게 되었고 또 우스운 일은 전라도에 있어도 북접파가 있고 충청도에 있어서도 남접파가 있어 그것이 거의하는데 큰 문제가 되었다. 처음은 언쟁으로 하다가 차차 육박전으로, 끝에는 살육하는 데까지 이르러 서로를 짓밟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 전봉준과 오시형은 남북접의 대립은 모든 농민군에게 절대 불리한 것을 확인하고 보은에 있는 최시형을 찾아갔다.

  드디어 해월 최시형은 북접의 각도에 “인심이 곧 천심이고 이는 천운이 이르는 바이다. 고로 너희들은 도중을 동원하여 전봉준과 협력하여서 나아가 우리 도(道)의 큰 뜻을 실현시켜라”는 통문을 발송하고 청산집회를 소집했다. 극적인 타협의 실마리를 찾은 것이었다. 벌남기(伐南旗)는 찢어 버렸고 남북접의 대립은 해소되었다. 북접은 여러 군현의 관아를 습격하였고 무기를 거두어 청산에 집결한 다음, 영동과 옥천을 거쳐 내려와 호남의 농민군과 합세하기로 하였다. 농민군은 위봉산성에 있는 무기와 화약을 실어다가 무장을 강화하였다. 무기가 지급되지 않은 농민군을 위해서는 대나무를 베어다 죽창을 만들어 지급하였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내일은 논산, 모레는 공주” 그리고 서울로의 진격만 남았던 것이다.
 
손화중은 광주로 갔고 김개남은 49일을 머물러 있어야한다는 참서의 내용을 내세워 남원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동학농민군들은 여산 공주를 거쳐 서울로 가는 대장정에 접어들었는데 그 때가 구월 하순이었다. 동학농민군은 가벼운 마음으로 여산으로 북상했는데 삼례에서 여산까지는 40리였다. 여산을 지나 은진을 거쳐 강경포에 도착한 것은 10월초였다.

Posted by 완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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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전국적으로 길 만들기가 인기입니다. 가히 '길 열풍'이라할 수 있겠습니다. 길 열풍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제주의 올레길을 비롯해서 지리산 둘레길, 강화도 마실길 등등... 전국에 수많은 길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언제나 '빨리빨리'를 외치며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 일상에서 잠시 쉬며, 놀며, 걸으며 보낼 수 있는 '걸을만한 길'이 생긴다는 건 무척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길들이 다 성공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최근 지나치게 많은 길들이 빨리 만들어지는 탓인지 서투르게 만들어지는 길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길이건 만드는 이들의 마음이야 많은 사람들이 쉬어가며 걸을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겠지만, 그렇게 쉽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완주군도 마찬가지지요. 완주군은 길 만들기에 무척 좋은 고장입니다. 전체 면적의 약 73%가 산으로 둘러쌓여 인공적인 요소들이 적은 데다가 그 어느 지역보다 자연경관이 우수해 군 어느곳을 걷더라도 신선한 공기와 아름다운 풍경을 맞이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오랫동안 걸어지는 길이 되려면 신중하게 만들어야 하는 법. 그래서 완주군은 전국의 길 전문가들에게 '좋은 길'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물었습니다. 

"삼남대로는 좋은 자원... '천천히' 고민하며 만들면 좋은 길 될 것"

왼쪽부터 완주군수 및 토론자들입니다

왼쪽부터 완주군수 및 토론자들입니다


 지난 11일, 완주군이 각계 전문가들을 초청해 '길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조선시대 9대로 중 하나인 '삼남대로'를 중심으로 한 길 복원을 진행하기에 앞서, 길 전문가들에게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서입니다. 이번 세미나에는 말 그대로 Olleh~ 를 외쳤을 '제주올레'의 서명숙 이사장, 전국의 산과 강을 걸어 쓴 '다시 쓰는 택리지'의 저자 신정일, 영남대로에 이미 전국 최초의 '길 박물관'을 세웠던 안태현 학예연구사, 그리고 (사)도시환경연구센터 정휘 이사가 발제자로 초청되었고, '길위의 풍경'이란 여행집을 냈던 작가 김병용, 전북도민일보 하대성 사회부장, 완주문화원 이상민 사무국장 등이 토론자로 나섰습니다. 

 세미나는 4건의 발제와 토론으로 이어졌습니다. 첫 시작을 맡은 신정일씨는 "조선시대 제4로인 영남대로 상에는 옛길박물관이, 관동대로 상에는 대관령박물관이라는 작은 박물관이 각각 있지만 삼남대로와 통영대로가 지나는 길목에는 옛길박물관이 없다"며 "삼남대로의 교통 요충지인 삼례읍에 옛길박물관을 건립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과거 교통이 어려웠던 시절에 조선을 잇는 9개의 큰 길중 7번째 길인 삼남대로는 서울에서 제주를 잇는 길로, 과거 추사 김정희 선생 등이 이용했던 길이라고 합니다.

자리에 앉은 4명의 발제자들

자리에 앉은 4명의 발제자들


이 삼례 지역이 교통의 요지였던 증거는, 지금의 '삼례역'에 해당하는 '도찰방'이 당시에 삼례에 존재했고, 1892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삼례에서 집회가 열리기도 하는 등 과거 호남 최대의 교통 요지였다고 합니다. 

(사)우리땅걷기 신정일 대표

 신정일 선생의 첫 발제가 '삼남대로 길 만들자'는 주장이었다고 한다면, 두번째 발제부터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두번째 발제자는 이미 제주에 멋진 길을 만들어 수많은 이들의 발길을 제주로 향하게 한 (사)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입니다.

제주올레 서명숙 "'안티 공구리'와 '느림'은 필수... 삼남대로 길 통해 '느림의 혁명' 일으키길"
 

제주올레 및 산티아고 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제주올레 및 산티아고 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그녀의 발제 주제는 '길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는 것'이었습니다. '안티 공구리(콘크리트)'가 제주올레의 주요 모토라고 이야기 한 서 이사장은 "지친 현대인들이 걷고 싶어하는 길은 결코 돈으로 만든 산책길이 아니라 자연이 살아 숨쉬고 조상들의 땀과 숨결이 베인 소박한 흙길, 돌길, 마을길"이라고 말했습니다.
 
서 이사장은 "동학혁명 집결지 삼례가 현대사회의 '빨리빨리' 속도에 대응해 '느림'을 실현하는 새로운 '혁명'의 거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세번째 발제자로 나선 안태현 학예연구사는 이미 먼저 영남대로 박물관을 지었던 사례를 설명하며 완주에 '삼남대로 박물관'을 지을때에 유의할 점에 대해 조언했습니다. 전북의 대표 시인 안도현 시인의 동생이기도 한 안 연구사는 "삼남대로 박물관을 건설하려면, 삼남대로길 900여리를 박물관에 모아놓고, 그 위에서 펼쳐지는 몇 백년 동안의 역사와 문화와 사람, 그리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다면 충분히 가볼만한 박물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세미나를 관심있게 지켜본 200여명의 관객들.

세미나를 관심있게 지켜본 200여명의 관객들.


마지막 발제자인 정휘 이사는 "행정에서는 최근의 '길'에 대한 명칭을 '탐방로'로 붙였다"며 "탐방로 건설시 생태적, 물리적, 탐방활동 등 3가지를 충족시키는 '지속가능한 탐방로'란 개념이 정립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약 3시간 동안 이어진 이번 세미나는 '세미나'란 딱딱한 형식과 달리 무척 즐겁게 진행되었습니다. 완주군의 숨겨진 길 자원인 삼남대로를 알게 됐고, 짧은 시간이나마 제주올레와 지리산 둘레길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문경새재의 길 박물관에도 다녀왔네요.
 
요즈음의 길 만들기 열풍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완주군의 '삼남대로'길도 남들 다 만드는 그런 길 중 하나가 아니냐고 묻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앞서 많은 분들이 말씀하셨듯, 완주군의 삼남대로는 과거부터 내려온 '이야기가 있는 길' 입니다. 이 이야기를 담아 '걸을 수 있는 길'로 만들어보려 합니다. 서명숙 이사장의 말처럼, '놀명, 쉬멍, 걸으멍'(놀며, 쉬며, 걸으며란 뜻의 제주방언) 갈 수 있는 길이 될 것 입니다. 급하게 콘크리트 덧칠해가며 만들어지지 않을 이 길이, 어떻게 복원될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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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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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길을 내는 사람이 있어야 걷는 사람이 있겠지요.
    전국어디를 가도 걸어 볼수 있는 길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2009/12/14 19:30 [ ADDR : EDIT/ DEL : REPLY ]
    • 네. 전국 어디서든 멋진 길을 걸을 수 있는 그날이 오길 ^^

      2009/12/15 09:04 [ ADDR : EDIT/ DEL ]




 
높고 푸른 하늘과 황금빛 물결을 자랑하던 가을이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고 쓸쓸한 겨울이 시작되려 합니다.
겨울이 가져오는 쓸쓸함은 전국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삼례읍 또한 나무들이 모두 가지만 남긴채 헐벗었고 논도 이미 황금빛을 벗고 외로운 겨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점점 추운 나머지 밤에는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적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쓸쓸함도 삼례에 존재하는 역동적인 역사를 지울수는  없었습니다.
 삼례읍 신금리 있는 완주군 문화센터에 바로 이 역동적인 역사를 기록한 곳이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완주군 문화센터는 보건소, 도서관, 체육센터, 예술회관등 완주군민의 문화 생활을 위해 만들어진 곳입니다.
하지만 그런 문화생활 공간에 눈에 띄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지금 소개할 동학삼례봉기역사광장입니다.




위의 동영상에서 보이시는 모습이 바로 동학삼례봉기역사광장 입니다.
삼례는 과거 조선시대 당시만 해도 교통의 중심지로 목포나 여수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다 거쳐갔던 곳입니다.
그래서 정읍 고부에서 봉기한 녹두장군 전봉준 장군님도 농민들의 집합장소를 삼례로 정한 것입니다.
당시의 교통의 중심지 였기에 민중들이 많이 모였고
그렇게 모인 민중들과 함께 동학농민운동이라는 민중운동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렇게 삼례가 동학농민운동에 중심에 있었기에 동학농민운동의 뜻을 기리기 위해 삼례읍 신금리 완주문화센터에
동학삼례봉기역사광장을 세운겁니다.


동학삼례봉기역사광장은 입구로 부터 동학농민운동을 기록한 대리석들을 세워놓고
광장을 중심으로 조형물과 비석이 원을 그리고 있는 형식입니다.
각각에 대해 알아보자면




먼저 동학농민군 출진 상입니다.
삼례에 모인 동학농민군들의 출진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입니다.
농민들의 비장한 각오와 개혁을 위한 열정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위 비석은 동학농민혁명봉기비로 삼례에서 봉기했던 동학농민의 뜻을 기리기 위한 비석입니다.
비석의 하단에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왜(일본)과 서양의 세력을 배척하고 국난에 대처해 의병을 일으킨'뜻으로 당시 농민들이 무슨 이유로 봉기하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단어라 할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은 동학농민운동 1차 봉기후 농민들이 조정과 타협하여 얻어낸 폐정개혁 12개조를 나타낸 비석입니다.
폐정개혁 12개조를 살펴보면 본격적으로 세상을 바꾸고 유토피아를 만들고자 했던 농민들의 의미가 담겨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학농민역사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조형물인 바로 '힘-하나'되어 입니다.
이 조형물에 계속 눈을 빼앗겨 가장 많은 사진을 찍었던 조형물인데요. 농민을 상징하는 쇠스랑과 거대한 힘을 가진듯한 저 무쇠팔뚝, 다수의 염원을 담은 돌탑이 어울러져 제대로 동학농민운동을 상징하는 조형물인듯 합니다.
실제로 봤을때 느꼈던 그 힘은 뭐랄까 말로 표현할수 없을 정도로 매력있는 조형물입니다.






이 돔형의 구조물은 마치 어드벤쳐 영화에서 본듯 한데요.ㅎㅎ
추념의 장으로 이 구조물 가운데 있는 거울을 통해 비친 자신과 하늘 그리고 동학농민군상을 통해 자아-우주-역사가 하나되는 체험을 함으로써 동학의 인내천 사상을 인과적으로 인식하게 끔 하는 장소입니다.


이렇게 삼례는 동학농민운동의 중심지로 지금은 쇠퇴하였지만 과거에는 교통과 소통의 중심지였다는 걸 보여줍니다.
아무리 겨울이 삼례땅을 차갑게 얼려버릴지라도 삼례땅에 남아있는 농민들의 뜨거운 얼은 영원히 얼릴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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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 완주군문화체육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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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위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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