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무영이는 마을 아이들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혼자서 선녀봉에 가서 연을 찾아온 용감한 아이로 말이죠. 물론 엄마한테는 위험한데 갔다고 혼났지만, 무영이는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무영이의 머릿속에선 아름답게 날던 학연의 모습이 지워지질 않았습니다. 혼자서 몇 번이나 날려보았지만 선녀봉의 할머니처럼 날리지는 못했습니다. 그처럼 날 수만 있다면 기석이 쯤은 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결국 무영이는 다시 선녀봉을 올랐습니다. 한 손에는 연을 들고, 주머니에는 할머니의 손수건을 넣고요. 그리고 선녀탕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작은 초가집을 발견했습니다.
무영이는 조심조심 초가집의 문을 열었습니다. 안은 무영이가 봐왔던 어떤 집과도 달랐습니다. 벽에는 커다란 부처님 그림이 있고, 그 옆에는 붉은색의 한복이 걸려 있었습니다. 벽에는 붉은색으로 써진 한자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고, 방에는 제사 때 쓰는 향냄새가 가득했습니다.
“누구냐?”
무영이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습니다. 그곳에는 어제의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무영이는 우물쭈물, 말은 못하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손수건을 보시고는 “오호라, 어제 그 아이구나. 손수건을 돌려주러 왔니? 착하기도 하지.” 하시며 상에서 곶감을 하나 집어 무영이에게 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영이는 곶감을 받아 한 입 깨물었습니다. 집에서 먹는 것보다 달콤한 것 같습니다.
무영이는 용기를 내어 말했습니다.
“연 날리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연? 아니, 연이야 그냥 바람을 타면 되지.”
“아니요. 할머니께서 했던 것처럼 날리고 싶어요.”
무영이의 말에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무영이는 무섭기만 했던 할머니의 주름이 조금 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 이름은 뭐지? 손수건을 돌려주러 온 착한 애니까, 특별히 가르쳐 줘야겠구나.”
그 후로 무영이에겐 남모를 비밀이 생겼습니다. 매일 선녀봉을 올라 연날리기를 연습하는 것이지요. 선녀봉은 산꼭대기라 바람이 많이 불어서 연을 날리기에도 좋았고, 할머니는 연을 잘 날리는 방법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연싸움에 좋다고 실에 풀을 발라 사기 가루를 발라주시기도 했습니다. 할머니에게 바람을 타는 법을 배운 무영이는, 누구보다 더 높이 연을 날릴 수 있게 되었고, 연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무영이가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어떻게 이렇게 연을 잘 날려요?”
무영이의 물음에 할머니의 주름이 인자하게 웃는 얼굴을 만듭니다.
“할머니는 선녀거든, 선녀는 날개옷을 입고 바람을 타야 하니까, 잘 알 수밖에 없지.”
선녀라는 말에 무영이는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영이가 알고 있던 선녀란 하늘에 사는 예쁘고 젊은 여자였거든요.
“피, 선녀봉에 산다고 선녀에요? 선녀는 하늘나라에 사는 거 아닌가?”
무영이의 말에 할머니의 주름이 한층 더 밝게 웃는 얼굴을 만듭니다. 무영이는 할머니가 진짜 선녀는 아니더라도 선녀처럼 고운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아이를 잡아먹지는 않는다고 말이죠.
할머니는 무영이가 올 때마다 꿀과 팥이 들어간 떡, 부추를 넣은 부침개, 곶감 등을 주셨습니다. 무영이는 할머니가 주시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 온종일 연을 날리다 해가 질 때야 산을 내려왔습니다. 가끔 할머니가 무영이를 마을 어귀까지 데려다 주긴 했지만, 결코 마을에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가끔 무영이가 마을에 놀러 오라고 하면, 할머니는 쓸쓸한 표정으로 웃을 뿐이었습니다. 그날도 할머니의 손을 잡고 마을 어귀까지 내려오는 중이었습니다.
“무영아!”
산 아래에선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성큼성큼 다가와 무영이의 엉덩이를 팡팡 때렸습니다.
“이 녀석아! 혼자 산에 올라가지 말라고 그랬지! 위험하다니까!”
무영이는 울면서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하며 빌었습니다. 엄마의 매가 평소보다 많이 아팠거든요. 엄마는 할머니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무영이의 손을 잡아끌고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눈물 가득한 무영이의 눈에 홀로 서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그날 밤, 무영이는 엄마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잔소리를 들었습니다. 엄마는 이제 선녀봉에 올라가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왜 올라가면 안 되는지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저 혼자 산에 가면 위험하다고만 합니다. 무영이는 산에 가면 할머니가 있어서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지금 말하면 왠지 더 혼날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혼났으면서도, 무영이는 다음날 선녀봉을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평소와 달랐습니다. 보통 산은 조용하고 가끔 새소리만 들릴 뿐이었는데, 오늘은 선녀탕에 다가가기도 전부터 사람 소리와 방울 소리, 북소리가 들립니다. 무영이는 할머니가 뭔가 하는가보다고 서둘러 초가집으로 향했습니다.
할머니는 평소와 달랐습니다. 인자했던 주름은 잔뜩 성난 얼굴이 되었고, 옷도 평소에 입던 옷과는 달리 온통 붉은색에, 모자도 붉었습니다. 부처님 옆에 걸려 있던 그 옷이었습니다. 그리고 방울을 어지럽게 흔들며 무영이가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주위에는 마을 어른 몇몇이 양손을 맞대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습니다.
무영이는 차마 나가지 못하고 나무 그늘에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할머니의 춤이 잠깐 멈추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할머니는 맨발로 커다란 칼 위로 올라서는 것이었습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칼날은 무엇이든 벨 것처럼 날카로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 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춤추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이 잡아먹는 선녀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러자니 무서운 기분이 들어서 서둘러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선녀봉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평소의 할머니가 아니라 칼 위에서 춤을 추던 무서운 할머니를 만날까 봐 겁이 났거든요.
그리고 드디어 정월 대보름이 다가왔습니다.
무영이는 오늘을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매번 지기만 했던 금당리 아이들에게 그간의 설움을 풀 기회니까요.
이윽고 연날리기 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연이 날아올랐습니다. 독수리가 그려진 연, 태극기가 그려진 연, 사람의 얼굴이 들어간 연. 가지각색의 연들이 하늘을 수놓았습니다. 연들은 서로 부딪히고 실을 끊으며 하나씩 바람을 타고 저 멀리 날아갔습니다. 마지막엔 무영이의 학연과 기석이의 호랑이연만이 남았지요.
“무영아 힘내!”
“기석이 이겨라! 파이팅!”
딱 두 사람 남게 되자 응원도 열기를 더해갔습니다. 사람들은 무영이와 기석이의 이름을 연신 외쳤습니다. 무영이는 할머니에게 배운 것들을 생각하며 조심조심 바람을 탔지요.
이윽고 두 연이 부딪히기 시작했습니다. 호랑이연은 마치 진짜 호랑이가 사냥하듯, 학연의 주위를 살피며 슬금슬금 돌아다녔습니다. 반면 학연은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나는 새처럼 호랑이 곁으로 갔다가도 금세 저 멀리 도망갔습니다.
기석이는 점점 초조해졌습니다. 학연이 평소와는 달리 쉽게 잡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무영이는 호랑이연을 요리조리 피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학연이 다가간다!”
누군가 소리쳤습니다. 말마따나, 학연이 놀라운 속도로 호랑이연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기석이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재빨리 연을 몰아 학연을 덮쳤습니다. 하지만 학연은 순식간에 저 멀리 떨어져 호랑이연을 피하고, 다음 순간엔 다시 호랑이연에게 다가와 주위를 돌면서 실을 칭칭 감고 있었습니다.
“우와아.”
“저, 학연 좀 보세.”
구경꾼들 사이에서 감탄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진짜 학이 호랑이 주위를 나는 것 같았습니다. 칭칭 감긴 호랑이연의 실은 결국 끊어졌고, 하늘에는 학연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학연이 이겼다!”
구경하던 사람들과 삼거리마을 아이들에게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친구들은 무영이를 얼싸안고 승리를 축하했습니다.
“어쩜 그렇게 연이 빠를 수가 있어?”
“정말, 마치 진짜 학이 나는 것 같았어.”
무영이도 친구들을 끌어안고 기쁨을 나눴습니다. 하지만 왠지 마음이 허전합니다. 기쁨을 나눌 사람은 따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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