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10년부터 호랑이기운을 받아 완주스토리에 함께하게된 JUMA입니다.
버스를 타고 완주를 여행하면서 완주의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들려드릴텐데요.
글쓰기에 뛰어난 재능이 없기에 많이 부족하겠지만 완주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조금씩 발전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_^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 첫번째 이야기로 삼례 장터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삼례 장터에 대한 이야기는 낮과 밤 총 2회로 포스팅됩니다^^)


삼례, 전주간 시내버스들은 대부분 삼례장터을 거치게 됩니다.
종점인 우석대학교 바로 전 정거장이 "삼례시장"이지요.
예전에는 삼례터미널이 종점이었는데, 큰 도로가 있는 삼례시장이 정거장이 되었습니다.

저는 집앞으로 가는 버스를 이용하다가, 가끔 차를 놓치게 되면 삼례시장에서 내려서 집을 걸어가거나 택시를 타곤합니다.
필름카메라에 고감도 필름을 넣고 시장을 담아내고자 한  이날은 삼례장터에 5일장이 열린 날이었습니다.

삼례 장터의 정확한 위치는 삼례읍 삼례리 남서신입니다.

도로로 접근한다면 삼례시장의 입구는 바로 정거장이 있는 쪽입니다.
하지만 삼례시장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삼례시장의 입구를 천일약국쪽으로 많이 설명해주시곤 합니다.



삼례장터는 5일장이 서는 곳입니다.
장날은 매월 3일, 5일, 13일, 15일, 23일, 28일로 한달에 5번의 장이섭니다.
삼례의 특산품은 딸기인데요. 사실 딸기를 삼례장서에서 많이 판매하진 않습니다.
과일상가에서 팔긴하지만 하리, 원신금리, 삼례나들목 부근에서 직판매가 열리고 있기때문이지요.

삼례장터는 각종 농산물이 팔리는 곳입니다.
어르신들이 직접기르신 농산물이 있고, 수산물들이 차를 타고 새벽일찍 도착해옵니다.

제가 장터를 들른 시각은 장터가 마무리되는, 그래서 더 역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전통 시장의 매력은 바로 이 시간에 열리는 '떨이'소리가 아닌가 싶네요.


가판대의 떡도 다 팔렸고, 손수레에 담아온 물건들의 무게가 가벼워지길 바라며 다들 상인들은 집으로갈 채비를 합니다.



하루종일 굽던 김도, 튀기던 어묵도 이제는 그만 마쳐야할 시간입니다.








날이 추운데도 사람들은 꽤 있었습니다.
어쩌면 정거장이 삼례시장으로 정해지고 나서 삼례 장터를 지나가는 이들이 늘어나고, 그래서 큰 상점들 사이에서도 삼례시장이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삼례시장은 지도에 보이시는 삼례두부가 있는 그 앞길이 가장 큰 터이고, 토담골등이 있는 작은 골목 3개에 상가가 밀집해있습니다.

삼례시장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닭집입니다.
삼례는 저리가면 전주, 이리가면 익산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전주시와 익산시등 전북의 주요도시들을 잇는 곳입니다.
때문에 익산의 많은 양계농장들의 영향으로 삼례에는 닭집이 유달리 많습니다.
직접 잡아서 손질해주기때문에 신선도가 일품이지요!

조류독감때문에 힘든 날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삼례 장터의 닭집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네요.

다들 장터를 가면 맛있는 음식을 먹길 원하시죠?
삼례 장터는 큰 규모가 아니기 때문에 5일장에 서는 음식점은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정선5일장에 가시면 올챙이 국수와 메밀전병을 길 앉아서 드시지만 삼례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삼례 장터에 가면 꼭 구매하셔서 먹으면 좋은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만든 뜨끈한 두부, 어묵, 뻥튀기 그리고 요즘 장터에서 가장 핫한 돈까스 등이 속하는데요.

삼례장터의 '맛'에 대해서는 곧 이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낮에 들른 삼례 장터의 모습도 함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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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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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U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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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추위로 길게만 느껴지는 겨울, 린 손발만큼이나 따듯한 음식이 끌리는 계절인데요.
을 동시에 만족시켜줄 이 있다고 하여 찾아가 보았습니다.
늘 찾아간 곳은 그 이름도 재미난 "둥글네 분식"입니다
.

늦은 점심시간, 한산할 것을 예상하고 갔으나…
님이 많아서 20분을 기다려야 했답니다. T.T;


예상과는 달리 가격이 썩 착한 편은 아니더군요. ㅜㅜ…
일단 시켜보기로 합니다.


칼국수에 어울리는 김치와 깍두기, 단무지가 기본 반찬으로 나오네요.^.^
제가 주문한 것은 김치 칼국수였습니다.

이‥이건 뭔가요..?
이정도 크기면 성인 두명이 같이 먹어도 될 듯 보였습니다. -_-;
함께 한 학생이 주문한 것은 일반 칼국수였는데요.


젖가락 떠보도록 하죠. ^.^

시 칼국수는 김치와 함께 먹어야 제 맛이랍니다. ~

함께한 지인은 면만 다 먹는 것도 꽤나 벅차했으나..

저는 다 ~ 먹었답니다. ^.^!
허나.. 과식으로 인해 조금 힘들었죠.. ㅜㅜ

추운겨울, 따듯하다 못해 뜨거운 칼국수! 배불리 먹고 싶다면 ~
한번쯤 방문하심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맛도 꽤나 괜찮았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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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 둥글네분식,한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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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hink7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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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교주 최제우의 신원을 요구하며 서인주를 비롯한 남접계가 공주집회를 열었던 때가 1892년 10월이었다.

미온적이었던 북접의 최시형도 교도들이 요청하자 10월 27일에 교도들을 삼례에 모이도록 하였다. 11월 3일 삼례에 수천면의 교도들이 모여 집회를 열었는데 그 사건을 삼례집회라고 부른다. 전라감사는 해산을 종용하며 앞으로 신원과 관리들의 탐학을 근절시키도록 하겠다는 글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들의 탐학이 계속되자 고부에서 1차 봉기가 일어났다.

삼례 집회가 일어났던 삼례에는 지금 동학역사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삼례 집회가 일어났던 삼례에는 지금 동학역사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고부의 농민 봉기로부터 전주화약까지의 동학 1차 봉기는 반봉건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삼례에서 다시 기병한 2차 봉기는 한 단계 더 진전된 상황이었고 외세와의 완전한 전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대세를 지켜보던 전봉준(全琫準)이 전라도 각지에 격문을 띄워 동학농민군 4천여 명을 삼례에 재집결한 것은 1894년 9월 초순이었다. 동학농민혁명의 전 과정을 기록한 오지영(吳知泳)의 『동학사(東學史)』에 따르면 전라도 27개 고을에서 모인 농민군의 수를 11만 5천 명 정도로 기록하였으나 전봉준은 공초에서 4천여 명으로 밝히고 있다. 동학농민군들은 그들 스스로를 의병이라고 불렀고, 어느 때보다도 사기가 충천했다. 황토현, 황룡강 싸움의 승리도 승리려니와 전주화약 이후 농민통치까지 경험한 그들은 무서울 게 없었다.

삼례 집회가 일어났던 삼례에는 지금 동학역사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삼례 집회가 일어났던 삼례에는 지금 동학역사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농민군의 2차 기병 소식이 조정에 전해지자 집권세력은 허겁지겁 군사를 끌어 모았다. 그러나 가까스로 모인 관군은 1~2천 명에 지나지 않아 농민군과 싸움을 벌이기엔 중과부적이었고 믿을 수 있는 곳은 일본군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이 자꾸 서울을 빠져나갔기 때문에 서울은 불안하기만 했다. 그때 남북접(南北接)이 힘을 모아 서울로 진격하였더라면 농민군의 발길이 장안을 휘저었으련만 …. 서울로 진격하기에 앞서 군사적 행동을 부정하는 북접의 완강한 반대와 남북접의 해묵은 대립으로 인하여 농민군의 발목이 묶이고만 것이다. 서울 거리에 보국안민과 척양척왜의 깃발을 휘날릴 수 있는 기회를 잃은 셈이다. 

  남북접 회담이 결렬되자 최시형(崔時亨)을 비롯한 김연국, 손천민, 손병희, 황하일 등의 북접 교단은 오히려 삼례에 모인 농민군을 토벌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리고 남접의 농민군을 토벌하겠다는 의미의 깃발인 벌남기(伐南旗)까지 만들어 호남의 농민군을 공격하려 하였다. 북접의 이러한 태도로 말미암아 농민군의 진격은 20여 일 가량 늦어졌고 그 때문에 공주영이 관군에게 선점 당하게 되었다. 한양으로 진격하기는커녕 오히려 남북접은 내란 일보 직전에 다다른 것이다. 그때의 상황을 오지영은 『동학사』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삼례 집회가 일어났던 삼례에는 지금 동학역사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삼례 집회가 일어났던 삼례에는 지금 동학역사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갑오년의 난을 당하여 전라도를 남접이라 이름하고 충청도를 북접이라 이름 하여 서로 배척하게 되었고 또 우스운 일은 전라도에 있어도 북접파가 있고 충청도에 있어서도 남접파가 있어 그것이 거의하는데 큰 문제가 되었다. 처음은 언쟁으로 하다가 차차 육박전으로, 끝에는 살육하는 데까지 이르러 서로를 짓밟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 전봉준과 오시형은 남북접의 대립은 모든 농민군에게 절대 불리한 것을 확인하고 보은에 있는 최시형을 찾아갔다.

  드디어 해월 최시형은 북접의 각도에 “인심이 곧 천심이고 이는 천운이 이르는 바이다. 고로 너희들은 도중을 동원하여 전봉준과 협력하여서 나아가 우리 도(道)의 큰 뜻을 실현시켜라”는 통문을 발송하고 청산집회를 소집했다. 극적인 타협의 실마리를 찾은 것이었다. 벌남기(伐南旗)는 찢어 버렸고 남북접의 대립은 해소되었다. 북접은 여러 군현의 관아를 습격하였고 무기를 거두어 청산에 집결한 다음, 영동과 옥천을 거쳐 내려와 호남의 농민군과 합세하기로 하였다. 농민군은 위봉산성에 있는 무기와 화약을 실어다가 무장을 강화하였다. 무기가 지급되지 않은 농민군을 위해서는 대나무를 베어다 죽창을 만들어 지급하였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내일은 논산, 모레는 공주” 그리고 서울로의 진격만 남았던 것이다.
 
손화중은 광주로 갔고 김개남은 49일을 머물러 있어야한다는 참서의 내용을 내세워 남원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동학농민군들은 여산 공주를 거쳐 서울로 가는 대장정에 접어들었는데 그 때가 구월 하순이었다. 동학농민군은 가벼운 마음으로 여산으로 북상했는데 삼례에서 여산까지는 40리였다. 여산을 지나 은진을 거쳐 강경포에 도착한 것은 10월초였다.

Posted by 완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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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푸른 하늘과 황금빛 물결을 자랑하던 가을이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고 쓸쓸한 겨울이 시작되려 합니다.
겨울이 가져오는 쓸쓸함은 전국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삼례읍 또한 나무들이 모두 가지만 남긴채 헐벗었고 논도 이미 황금빛을 벗고 외로운 겨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점점 추운 나머지 밤에는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적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쓸쓸함도 삼례에 존재하는 역동적인 역사를 지울수는  없었습니다.
 삼례읍 신금리 있는 완주군 문화센터에 바로 이 역동적인 역사를 기록한 곳이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완주군 문화센터는 보건소, 도서관, 체육센터, 예술회관등 완주군민의 문화 생활을 위해 만들어진 곳입니다.
하지만 그런 문화생활 공간에 눈에 띄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지금 소개할 동학삼례봉기역사광장입니다.




위의 동영상에서 보이시는 모습이 바로 동학삼례봉기역사광장 입니다.
삼례는 과거 조선시대 당시만 해도 교통의 중심지로 목포나 여수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다 거쳐갔던 곳입니다.
그래서 정읍 고부에서 봉기한 녹두장군 전봉준 장군님도 농민들의 집합장소를 삼례로 정한 것입니다.
당시의 교통의 중심지 였기에 민중들이 많이 모였고
그렇게 모인 민중들과 함께 동학농민운동이라는 민중운동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렇게 삼례가 동학농민운동에 중심에 있었기에 동학농민운동의 뜻을 기리기 위해 삼례읍 신금리 완주문화센터에
동학삼례봉기역사광장을 세운겁니다.


동학삼례봉기역사광장은 입구로 부터 동학농민운동을 기록한 대리석들을 세워놓고
광장을 중심으로 조형물과 비석이 원을 그리고 있는 형식입니다.
각각에 대해 알아보자면




먼저 동학농민군 출진 상입니다.
삼례에 모인 동학농민군들의 출진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입니다.
농민들의 비장한 각오와 개혁을 위한 열정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위 비석은 동학농민혁명봉기비로 삼례에서 봉기했던 동학농민의 뜻을 기리기 위한 비석입니다.
비석의 하단에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왜(일본)과 서양의 세력을 배척하고 국난에 대처해 의병을 일으킨'뜻으로 당시 농민들이 무슨 이유로 봉기하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단어라 할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은 동학농민운동 1차 봉기후 농민들이 조정과 타협하여 얻어낸 폐정개혁 12개조를 나타낸 비석입니다.
폐정개혁 12개조를 살펴보면 본격적으로 세상을 바꾸고 유토피아를 만들고자 했던 농민들의 의미가 담겨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학농민역사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조형물인 바로 '힘-하나'되어 입니다.
이 조형물에 계속 눈을 빼앗겨 가장 많은 사진을 찍었던 조형물인데요. 농민을 상징하는 쇠스랑과 거대한 힘을 가진듯한 저 무쇠팔뚝, 다수의 염원을 담은 돌탑이 어울러져 제대로 동학농민운동을 상징하는 조형물인듯 합니다.
실제로 봤을때 느꼈던 그 힘은 뭐랄까 말로 표현할수 없을 정도로 매력있는 조형물입니다.






이 돔형의 구조물은 마치 어드벤쳐 영화에서 본듯 한데요.ㅎㅎ
추념의 장으로 이 구조물 가운데 있는 거울을 통해 비친 자신과 하늘 그리고 동학농민군상을 통해 자아-우주-역사가 하나되는 체험을 함으로써 동학의 인내천 사상을 인과적으로 인식하게 끔 하는 장소입니다.


이렇게 삼례는 동학농민운동의 중심지로 지금은 쇠퇴하였지만 과거에는 교통과 소통의 중심지였다는 걸 보여줍니다.
아무리 겨울이 삼례땅을 차갑게 얼려버릴지라도 삼례땅에 남아있는 농민들의 뜨거운 얼은 영원히 얼릴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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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 완주군문화체육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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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위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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