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꾼'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10/05/28 [연재소설 5-3] 할머니는 '선녀님'
이야기 속으로2010/05/28 10:29

밤이 되었습니다.


대보름 축제도 이제 막바지입니다. 사람들은 달집을 태우려고 광장으로 모였습니다. 무영이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높이 쌓인 나무에 불이 붙고,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달을 향해 소원을 빌었습니다. 곧 꽹과리 소리가 울려 퍼지고 농악대가 달집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습니다. 흥이 난 마을 사람들도 농악대와 함께 달집 주위를 돌며 춤을 춥니다. 무영이도 나가서 춤추며 놀고 싶었지만, 온종일 뛰어다녀 논 탓에, 피곤해서 눈이 감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엄마 품에 안겨, 불타는 달집을 보며 눈을 떴다, 감았다 했습니다.

그때 무영이의 눈에 한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붉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마치 날개가 달린 듯 한삼을 나부끼며 춤을 추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변의 나이 든 어른들은 그 사람을 향해 양손을 모으고 ‘선녀님, 선녀님’ 하며 뭔가 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무영이는 졸린 눈을 억지로 떠서 그 사람을 좀 더 자세히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춤추는 사람은 선녀봉에 살고 있는 할머니가 아니겠어요? 단 한 번도 마을에 내려온 적이 없는 할머니가 마을 축제에, 그것도 모두의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무영이는 가만히 할머니가 춤을 추는 모습을 봤습니다. 평소의 구부정한 할머니와는 달랐습니다. 허리는 곧게 폈고, 얼굴에는 주름이 안 보였고, 젊은 사람처럼 민첩하게 움직였습니다. 붉은 한복과 하얀 한삼은 칼 위에서 춤을 출 때와는 달리, 마치 나비가 바람을 타고 춤을 추듯 나풀거리며 움직였습니다. 무영이는 이 춤이 끝나면 할머니에게 달려갈 생각을 했습니다. 할머니 품에 안겨서, 춤 잘 춘다고 말해주려고 했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잠들기 전까진 말이죠.


정월 대보름 축제가 끝나고 얼마가 지났습니다. 그동안 무영이는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선녀봉 할머니에게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연날리기도 끝났고, 무엇보다 방학이 끝나서 학교에 가야 했거든요. 학교가 끝나면 숙제를 하고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느라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꼭 가야지.’


그렇게 마음먹은 어느 날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산에서 마을 어른들의 행렬이 내려오는 모습을 봤습니다. 어른들은 커다란 나무상자를 들고 줄줄이 읍내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딸랑딸랑 종소리를 울리며, 느릿느릿 사라졌습니다. 무영이는 무슨 일인가 궁금하긴 했지만, 서둘러 집으로 갔습니다. 가방을 놓고 산으로 올라가기 위해 말이죠. 


무영이는 단숨에 산을 올랐습니다. 이제 무서운 할머니를 만날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어서 할머니를 만나서 달집 태울 때 너무 예뻤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무영이는 초가집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를 불렀습니다.


“할머니! 저 왔어요!”


“할머니! 무영이가 왔다구요!”


“할머니!”


무영이는 몇 번이나 할머니를 불렀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무영이는 기다리다 못해 초가집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향은 꺼져 있었지만 방 안에 향내가 가득했습니다, 초가집 안은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부처님의 옆에 걸려 있던 그 옷이 없어졌습니다. 칼 위에서 춤을 출 때 입고, 달집을 태울 때 입었던 그 옷이 없어진 것입니다.


무영이는 해가 질 때까지 초가집에서 할머니를 기다렸지만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왔지만, 할머니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사이 무영이는 문득 생각했습니다.


할머니가 하늘로 간 것이 아닐까 하고요.

붉은 옷을 입고 달집 앞에서 춤을 추던 할머니는 굉장히 아름다웠습니다. 아마 그 옷은 날개옷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대보름날 달집을 태운 연기를 타고 하늘로 돌아간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할머니는 선녀가 분명하니까요.


<끝>

Posted by 완이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