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으로2010/05/28 10:29

밤이 되었습니다.


대보름 축제도 이제 막바지입니다. 사람들은 달집을 태우려고 광장으로 모였습니다. 무영이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높이 쌓인 나무에 불이 붙고,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달을 향해 소원을 빌었습니다. 곧 꽹과리 소리가 울려 퍼지고 농악대가 달집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습니다. 흥이 난 마을 사람들도 농악대와 함께 달집 주위를 돌며 춤을 춥니다. 무영이도 나가서 춤추며 놀고 싶었지만, 온종일 뛰어다녀 논 탓에, 피곤해서 눈이 감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엄마 품에 안겨, 불타는 달집을 보며 눈을 떴다, 감았다 했습니다.

그때 무영이의 눈에 한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붉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마치 날개가 달린 듯 한삼을 나부끼며 춤을 추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변의 나이 든 어른들은 그 사람을 향해 양손을 모으고 ‘선녀님, 선녀님’ 하며 뭔가 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무영이는 졸린 눈을 억지로 떠서 그 사람을 좀 더 자세히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춤추는 사람은 선녀봉에 살고 있는 할머니가 아니겠어요? 단 한 번도 마을에 내려온 적이 없는 할머니가 마을 축제에, 그것도 모두의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무영이는 가만히 할머니가 춤을 추는 모습을 봤습니다. 평소의 구부정한 할머니와는 달랐습니다. 허리는 곧게 폈고, 얼굴에는 주름이 안 보였고, 젊은 사람처럼 민첩하게 움직였습니다. 붉은 한복과 하얀 한삼은 칼 위에서 춤을 출 때와는 달리, 마치 나비가 바람을 타고 춤을 추듯 나풀거리며 움직였습니다. 무영이는 이 춤이 끝나면 할머니에게 달려갈 생각을 했습니다. 할머니 품에 안겨서, 춤 잘 춘다고 말해주려고 했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잠들기 전까진 말이죠.


정월 대보름 축제가 끝나고 얼마가 지났습니다. 그동안 무영이는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선녀봉 할머니에게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연날리기도 끝났고, 무엇보다 방학이 끝나서 학교에 가야 했거든요. 학교가 끝나면 숙제를 하고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느라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꼭 가야지.’


그렇게 마음먹은 어느 날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산에서 마을 어른들의 행렬이 내려오는 모습을 봤습니다. 어른들은 커다란 나무상자를 들고 줄줄이 읍내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딸랑딸랑 종소리를 울리며, 느릿느릿 사라졌습니다. 무영이는 무슨 일인가 궁금하긴 했지만, 서둘러 집으로 갔습니다. 가방을 놓고 산으로 올라가기 위해 말이죠. 


무영이는 단숨에 산을 올랐습니다. 이제 무서운 할머니를 만날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어서 할머니를 만나서 달집 태울 때 너무 예뻤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무영이는 초가집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를 불렀습니다.


“할머니! 저 왔어요!”


“할머니! 무영이가 왔다구요!”


“할머니!”


무영이는 몇 번이나 할머니를 불렀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무영이는 기다리다 못해 초가집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향은 꺼져 있었지만 방 안에 향내가 가득했습니다, 초가집 안은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부처님의 옆에 걸려 있던 그 옷이 없어졌습니다. 칼 위에서 춤을 출 때 입고, 달집을 태울 때 입었던 그 옷이 없어진 것입니다.


무영이는 해가 질 때까지 초가집에서 할머니를 기다렸지만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왔지만, 할머니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사이 무영이는 문득 생각했습니다.


할머니가 하늘로 간 것이 아닐까 하고요.

붉은 옷을 입고 달집 앞에서 춤을 추던 할머니는 굉장히 아름다웠습니다. 아마 그 옷은 날개옷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대보름날 달집을 태운 연기를 타고 하늘로 돌아간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할머니는 선녀가 분명하니까요.


<끝>

Posted by 완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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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2010/03/24 09:12

벌써 며칠이 지났지만 물고기 정령이란 것은 나타나지 않았다. 선녀 설희도 승우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안 되겠다. 산짐승의 말이라도 들어보자.”

선녀 설희가 눈을 지그시 감더니 두 손을 모은다. 그리고 입술은 벌리지 않은 채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듯 한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멀리서 다람쥐 한 마리가 나타난다.

“세상에! 정말로 선녀님이신가요?”

“세상에! 다람쥐가 말을 하잖아!”

“다람쥐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네가 내 옆에 있어서 잠시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된 거야. 다람쥐야, 나는 이 물에 살고 있는 물고기 정령을 만나야만 해.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를 않아. 어떻게 된 거지?”

“그분이 헤엄치기엔 물이 얕아져서 살기 힘들어졌어요. 그래서 그분은 눈에 보이지 않게 물속에 잠들어 계세요. 선녀님이 부르신다면 분명 듣고 일어날 텐데 이상하네요.”

승우는 물고기 정령이 죽은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렇다면 다람쥐야, 네가 좀 불러줄 수 없어?”

“그건 무리예요. 나 같은 산짐승이 정령님께 말을 걸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내가 보기엔 선녀님이 작아서 부르는 힘도 작으니까 그런 거 같아요.”

“그래, 고마워. 불러서 미안해. 이제 돌아가도 좋아.”

“그런데 선녀님,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산의 기운이 흐트러져서 다들 불안해하고 있어요. 대부분의 정령님들이 잠들어 계셔서…… 우리를 돌봐줄 수 있는 건 아무도 없는데…….”

“걱정 마. 그걸 위해 내가 여기에 있으니.”

“선녀님만 믿을게요. 필요하시면 또 부르세요.”

다람쥐가 가버리고 선녀 설희는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해야 힘이 커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온 힘을 다해서 불러 보아도 정령은 대답이 없다.

“설희야,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선녀 설희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승우의 손을 잡고 승우와 함께 정령을 부르는 주문을 물 위에 그린다. 승우는 설희의 손을 잡고 있는 것이 쑥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물줄기가 불안정하게 일렁이더니 결국 승우와 설희 위로 쏟아지고 만다.

“미안해, 내가 집중을 안 해서 그런가 봐. 다시 해보자.”

“확실히 아까보다 힘은 세진 거 같아. 같이 힘내보자.”

승우와 선녀 설희는 더욱더 손을 꽉 맞잡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물이 소용돌이치면서 깊이를 알 수 없이 깊어지더니 커다란 물고기가 몸에서 빛을 내며 튀어나왔다.

“으악! 물고기 정령이란 게 저거야? 엄청 크다!”

“선녀님께서 저를 부르시는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내가 너를 부른 건….”

“알고 있습니다. 저를 부르시는 이유는 하나겠지요. 날개옷이 찢어졌다는 것. 언젠가 오늘 같은 날이 있을 것이라며 선녀님께서 제 비늘을 가져가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기 물고기야…… 아니, 물고기 정령님. 비늘을 안 아프게 벗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제가 죽지 않으면 비늘을 벗겨 낼 수 없습니다. 비늘을 벗겨 낸 뒤 여왕벌의 모습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이 마을의 정령을 찾아가 꿀을 얻으십시오. 그리하여 날개옷에 저의 비늘과 꿀을 올려놓으면 빛을 내면서 다시 원래의 모습을 찾게 될 것입니다.”

승우는 죽는다는 말이 무서웠다. 승우와 선녀 설희가 눈앞에 있는 물고기 정령을 죽여야 한다니! 생선반찬을 자주 먹으면서도 정령을 죽인다는 건 너무 끔찍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설희야 그건 안 돼. 정령님을 죽일 순 없어. 우리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괜찮습니다. 저의 이 모습은 빌린 것뿐입니다. 선녀님을 위해 받은 목숨, 선녀님을 위해 쓰게 되어 기쁠 뿐입니다. 선녀님과 나무꾼님의 빛을 지닌 그 소년의 손을 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승우와 선녀 설희는 동시에 말한다.

“나무꾼의 빛이라니?”

“선녀님에겐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저 빛은 분명…… 세상을 떠돌던 나무꾼님의 영혼에서 나온 빛입니다. 그걸 알고 같이 오신 줄 알았는데 아니셨군요. 그 빛이 있어 제가 긴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던 겁니다. 소년의 몸에는 그저 우연히 들어가게 된 것 같군요. 하지만 그저 우연으로만 볼 수 없겠지요, 마지막이라고 느껴지는 그 영혼의 빛을 지니게 된 소년을 만나 제 앞에 나타나시다니…… 이 모든 게 정해진 운명이겠죠.”

그래서 승우의 힘이 보태졌던 걸까, 하고 선녀 설희는 생각한다.

“그럼 미안하지만 비늘을 가져갈게. 그전에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어. 여왕벌 정령은 어떻게 찾지?”

“제가 사라질 때 생기는 빛에 반응하여 여왕벌을 따르는 누군가가 이곳을 찾아올 겁니다. 그리고 비늘은 3일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니 그전까지 꿀을 얻으셔야 합니다.”

승우와 선녀 설희가 물고기 정령의 몸에 손을 대자 눈부시지 않은 아주 따뜻한 빛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아버린 비늘은 비늘이라 부르기엔 아주 향기롭고 부드러우며 아름다웠다.

승우에게 함께한 '나무꾼의 빛'

물고기 정령이 말한 것처럼 빛에 반응한 무엇인가가 선녀 설희와 승우에게로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그것은 일벌이었다.

“네가 만나야 할 선녀가 여기 있어. 이리로 와.”

이상하게도 벌은 선녀 설희와 승우가 있는 곳에 가까이 오려 하지 않았다. 빛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왔으나 가까스로 저항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선녀 설희가 꽃의 향기를 벌에게 뿌렸다. 벌은 자의인지 타의인지 향기에 이끌려 그제야 설희 손등 위에 날아와 앉았다.

“죄송합니다.”

“이야기는 전부 들었어. 너희가 모시고 있는 여왕벌 정령은 어디에 있지?”

“죄송합니다. 말해 드릴 수 없어요.”

승우와 선녀 설희는 깜짝 놀란다. 말해줄 수가 없다니! 승우가 벌을 손바닥으로 때려서 죽일 기세로 강하게 몰아붙였다.

“말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돼? 그것을 위해 물고기 정령이 목숨을 내주었어. 너는 그 목숨을 헛되게 만들 셈이야?”

“이 아이의 말이 맞아. 말하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죽일 수도 있어.”

“죽어도 말을 할 수가 없어요. 말하면…… 말하면…….”

승우는 믿을 수가 없었다. 벌이 울먹거리고 있었다. 승우는 천천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선녀 설희도 같은 생각이었다.

“너를 죽일 생각은 없어. 이유라도 말해줘.”

“내가 말하면…… 우리 여왕님은…… 물고기 정령처럼 죽게 돼요. 여왕님이 살아 계신 건 그 꿀이 있기 때문이니까요. 우리들은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날이 오면 우리가 여왕님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죠. 우리는 여왕님을 잃고 싶지 않아요.”

승우는 우진이와 할머니, 마을 사람들 모두를, 특히 선녀 설희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의 마음은 알겠어. 하지만, 내가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이 마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불행해져. 그건 너의 여왕님과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지켜내기 위해서 필요한 거야. 부탁할게.”

“그렇다면…… 여왕님의 꿀을 내놓지 않아도 결국…… 우리 여왕님은 죽게 되는 건가요?”

선녀 설희와 승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에게 시간을 줘요. 그러기 싫다면 날 그냥 죽게 해줘요.”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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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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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2010/03/14 09:00

“승우야, 일어나서 밥 먹어야지.”

할머니께서 아침상을 내오신다. 승우는 졸린 눈을 비비다가 밥공기가 세 개인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그렇구나, 꿈이 아니었구나! 승우는 급하게 방 안을 휙 둘러본다. 작은 바위를 덮어 놓은 듯 이불이 봉긋 솟아 올라와 있다. 저 안에 선녀가 있구나.

"서, 선녀님도…… 밥…… 밥 먹어……요.”

승우가 이불을 조금 걷어 올리고 말한다. 꼬마 선녀는 대답이 없다.

“혹시 사람이 하는 말…… 아니면 우리나라 말을 모르는 걸까요, 할머니?”

“글쎄다. 그런 것 같지는 않더구나. 꼬마 선녀님, 많이는 못 내왔지만, 아침상 같이 받아요. 그래도 정성을 다해 내왔으니 속은 든든해질 수 있을게요.”

의식을 잃기 전 들었던 게 할머니 발자국이었던 게 인제야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진이가 다녀갔던 걸까? 아니면 할머니는 이미 예전부터 선녀를 믿었기 때문에 직감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 서, 선녀님…… 우리 할머니 밥이 얼마나 맛있는데…….”

“……ㄱㅗㅈ가ㅁ…….”

“응? 지금 말했어? 뭐라고 했어?”

다시 대답이 없다. 승우는 답답하다. 겨우 선녀가 입을 열었는데 두꺼운 이불에 덮여 있어서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곶감이면 돼……. 다른 건 필요 없어"

“할머니, 곶감이래요, 곶감! 그런데 곶감이 있어요?”

“이를 어쩐다…… 꼬마 선녀님 입을 옷도 없으니 내 서둘러 장에 나가서 옷이랑 곶감이랑 사올게. 자, 이거라도 조금 먹어요.”

“……필요 없어 다른 건…….”

“승우야, 너라도 밥 잘 먹고…… 꼬마 선녀님 기운 좀 내게 도와주고…… 우리 승우도 기운을 내고. 알았지? 내 얼른 장에 다녀올 테니.”

“할머니 없을 때 도망가면 어떻게 해요?”

“그럴 일은 없을 거 같으니 내 얼른 다녀오마.”

할머니는 밥공기를 미처 다 비워내지도 않고 서둘러 장에 나가신다. 승우는 할머니를 따라 장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여전히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는 꼬마 선녀가 이제는 조금 측은해진다. 우진이라도 와줬으면 좋겠는데…… 우진이는 어떻게 된 걸까?

“선녀…님, 나 금방 나갔다 올게. 정말 금방이야. 할머니보다 빨리 올 거야. 그러니까 나가지 말고…… 답답하니까 이불 속에서 나와서 쉬고 있어. 금방 올게.”

승우는 급하게 밥상을 치우고 밖으로 나간다. 우진이네 할머니 댁이 어디인지를 몰라 어제 만난 장소로 뛰어나가 보지만 우진이는 없다. 승우는 다시 급하게 우진이와 놀았던 계곡물이 있는 곳을 찾아간다. 그곳에도 우진이는 없었다. 우진이도 걱정이지만 꼬마 선녀가 걱정되는 승우는 작고 예쁜 돌멩이 다섯 알을 골라 주머니에 넣고 다시 뛴다. 숨을 헐떡이며 다시 집으로 돌아온 승우는 조심스럽게 선녀가 있는 방의 문을 연다. 이번에는 선녀가 이불 밖으로 얼굴을 빠끔히 내밀고 있다. 승우가 돌아오자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려고 한다.

“잠깐만, 잠깐만! 보여줄 게 있어. 봐봐, 예쁘지!”

승우는 선녀에게 금방 주워온 돌멩이를 꺼내서 보여준다. 돌멩이에 남아 있는 물기를 입고 있는 티셔츠로 쓱쓱 닦아서 다시 내민다. 선녀가 호기심에 쳐다보는데 그 모습에 승우는 심장이 이상하게 쿵쾅거려옴을 느낀다. 꼬마 선녀는 동화 속에서 본 그 어떤 공주들의 모습보다도 아름다웠다. 특히 흰 눈보다도 깨끗하고 하얗게 빛나는 피부 빛이 신비롭게까지 느껴졌다.

“넌 선녀가 아니라 백설공주니? 네 이름은 백설이야?”

꼬마 선녀는 승우의 말을 못 들은 척한다. 애초에 백설공주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꼬마 선녀는 승우가 가져온 것이 그저 돌멩이란 사실에 실망하고 다시 이불을 얼굴 위로 끌어당긴다.

“아, 아냐! 미안해! 내가 엉뚱한 말을 해버렸어! 그리고 돌멩이를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내가 이걸로 이제부터 재밌는 걸 해 보일게. 자, 봐봐.”

승우는 오른 손바닥에 돌멩이 다섯 개를 모두 모으더니 바닥에 살짝 깔아 놓는다. 그러고는 하나를 적당한 높이로 하늘에 던진 후 바닥에 있는 돌멩이 하나를 얼른 줍고 그것을 받아낸다.

“이렇게 하나씩 주울 때 다른 돌멩이에 손이 닿으면 안 돼. 하늘에 던진 것도 다시 받아내야 해. 다음은 한 개가 아니라 두 개를 주워야 하고 다음은 세 개…….”

꼬마 선녀가 흥미를 보이며 점점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낸다. 선녀가 입고 있는 옷은 분명 승우의 것이다.

‘할머니 옷이 너무 커서 내 옷을 입었구나. 내 옷을 다른 누구도 아닌 선녀가 입고 있다니! 내가 남자애라서 조금 미안해지는걸…….’

미안함보다 승우는 어쩐지 부끄럽게 느껴진다. 꼬마 선녀가 자기에게 집중하고 있는 것을 알고 더욱 부끄러워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해? 다섯 개를 주우려면 하늘에 던질 수 있는 돌이 없잖아.”

“아, 그건 꺾기라고 해서 이렇게 하는 거야.”

승우는 손바닥에 돌멩이를 잘 모은 다음 한꺼번에 살짝 위로 던진다.

“우와! 다섯 개야. 다섯 개가 올라갔어! 이걸 어떻게 하는 거야?”

승우는 우쭐해진다. 이걸 다 잡아내야 꼬마 선녀가 좋아할 텐데! 승우는 손등 위에 있는 돌멩이에 집중한다. 하나, 두울, 셋!

“우와, 우와, 우와! 다 잡아냈어! 신기하다! 이건 너만 할 수 있는 거야?”

마치 마술사의 마법을 처음 본 아이처럼 신기해하는 선녀를 보면서 승우는 더욱더 우쭐해진다. 내친김에 거짓말로 세상에서 이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고 하고 싶지만 승우는 이것이 공기놀이라고 불리는 아이들의 놀이임을 설명해준다.

“다른 것도 보여줄까?”

“또 뭐가 있어?”

“밖으로 나가자. 이건 밖에 나가서 해야 해.”

이번에 승우는 자치기를 보여줄 셈이다. 공기놀이는 여자아이들의 놀이라는 생각에 남자아이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진 것이다. 그다음에는 무엇을 보여줄지도 생각해본다. 꼬마 선녀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준 거 같아서 너무나 기분이 좋다. 문을 열자 어느덧 중천에 가까워진 여름해가 눈부시다. 승우는 혹시 선녀가 뜨거운 햇볕에 녹아버리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눈부시게 하얀 꼬마 선녀가 자꾸만 걱정된다.

“너… 설마 햇볕에 녹아서 없어지거나…… 그러는 거 아니지?”

“선녀옷이 없으면 나는 인간이나 마찬가지야. 그럴 일은 없어.”

선녀옷 이야기가 나오자 꼬마 선녀는 다시 어두운 표정이 되어서는 문턱 밖으로 내밀었던 한 발을 다시 안으로 집어넣는다.

“잠깐만 있어봐.”

승우는 길을 따라 드문드문 나 있던 민들레꽃 홀씨 몇 개를 꺾어온다.

“밖에 나오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이것만 봐봐. 아주 재미있다고.”

꼬마 선녀가 마당에 서 있는 승우를 쳐다보자 기다렸다는 듯이 힘껏 민들레꽃 홀씨를 향해 바람을 분다.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를 꼬마 선녀는 넋을 놓고 바라본다.

“……나도 해볼 수 있어?”

“응! 잠깐만 있어봐. 내가 얼른 꺾어 가지고 올게.”

장을 보고 온 할머니는 마당에서 민들레 홀씨를 불며 놀고 있는 승우와 꼬마 선녀에게 놀란다. 그러나 이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본다.

"곶감은 인간세상 최고의 맛이라고 들었어"

할머니는 마루에 곶감을 내어주고는 이내 방으로 들어가신다.

‘선녀들은 곶감밖에 먹을 줄 모르나? 그런데 왜 안 먹지?’

계속 곶감을 쳐다보고만 있는 꼬마 선녀가 승우는 신경이 쓰인다. 그것도 아니면 그런 자신의 시선이 신경 쓰여 오히려 못 먹는 걸까?
승우는 고개를 돌려보지만, 여전히 꼬마 선녀는 쳐다보고만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너 혹시 이거 처음 봐?”

“……응.”

“곶감이 뭔지도 모르고 먹고 싶다고 그런 거야?”

“그치만…… 꼭 먹어보고 싶었는걸. 곶감이라는 것이 인간 세상에 있는 열매들 중 최고의 맛이라고 들었는걸.”

“곶감을 먹어본 선녀가 있구나. 이건 감이라고 하는 과일을 말려서 만든 거야. 감은 원래 가을에 익지만 지금 먹는 곶감도 맛있을 거야.”

꼬마 선녀는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 문다. 그제야 맛있다는 미소를 지어 보이는 꼬마 선녀를 보고 승우는 넋을 잃는다. 곶감을 오물오물 씹고 있는 작은 입이 귀엽다고 생각하자 승우의 얼굴이 다시금 발갛게 달아오른다. 승우는 또다시 밖으로 뛰어나간다. 자꾸만 꼬마 선녀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 이번에는 아직 홀씨가 되지 않은 노란 민들레꽃으로 꽃반지를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좀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 더 아름다운 들꽃들을 한 아름 꺾어다가 꼬마 선녀에게 가져다준다.

“밖에 나가면 이보다 더 예쁜 꽃들이 많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예쁘고 재밌는 것들이 많아. 같이 가보지 않을래?”

“나는 하늘나라로 가야 해……. 이곳에 남아 있을 수 없어.”

“정말 미안해. 너의 옷을…… 망가뜨리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 미안해……. 하지만 그건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옷이 그렇게 될 줄 몰랐단 말야…… 날개옷이 그렇게 되었으니까 너…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거 아냐? 그러니까…… 나랑…… 같이 살자. 내가 날마다 예쁘고 재밌는 것들을 널 위해 보여주고 알려줄게.”

무 어려서 나무꾼처럼 결혼이란 걸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매일매일 꼬마 선녀를 기쁘게 해줄 자신이 있다고 승우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신은 이제 더 이상 아홉 살이 아닌 열 살이니까. 조금은, 어른이니까 말이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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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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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2010/03/10 08:00

승우는 우진이를 만나고 계속 마음이 언짢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우진이를 믿지 않으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할머니! 선녀는…… 진짜로 있을까요?”

“지금은 있는지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있었단다. 이 마을에.”

“하지만,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니다, 아니에요. 저 오늘은 우진이네 할머니 댁에 가서 놀 거예요. 많이 늦지는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은 달이 없는 날이니 일찍 들어오렴. 가서 할머니 말씀도 잘 듣고.”

“네. 다녀오겠습니다.”

승우는 우진이 말했던 것처럼 할머니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이 싫어져 하려던 말을 그만둔다. 우진이도, 할머니도, 아니 어쩌면 마을 사람들 모두를 의심하고 있는지 모르는 자신이 싫어진다. 그래서 우진이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가기로 결심한다. 소중한 친구인 우진이를 자기만큼은 믿어주고 싶다.

약속한 장소에 우진이는 이미 와 있었다.

“네가 오지 않을까 봐 사실 많이 걱정했어. 내가 선녀를 만나도 그것을 알아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야. 널 만나게 돼서 반가워!”

우진이가 승우를 꼭 껴안는다. 그러고는 가방에서 손전등을 꺼내 손에 쥔다.

“난 괜찮지만 너는 밤길이 처음일 테니까 이걸 사용해. 참! 먹을 것도 조금 싸왔으니 배고파지면 같이 먹자. 나는 긴장해서 아무것도 먹질 못했거든. 여기야, 나무꾼이 선녀를 훔쳐봤던 곳!”

정말 이곳이라면 선녀들을 훔쳐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깎아내린 언덕의 높이가 제법 되어 승우는 조금 무서웠다. 아홉 시가 채 되지도 않은 밤인데 시골이라 거리에 조명등이 많지 않고 그보다 달이 없어서 너무나 깜깜하다. 승우는 우진이 싸온 음식을 나눠 받아먹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흐름을 가늠할 수 없는 깜깜한 밤하늘에 승우는 점점 불안해진다.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승우야, 불 꺼! 저길 봐, 맙소사! 진짜야! 진짜였어! 우리가 꿈을 꾸는 건 아니겠지?”

그때였다. 우진이의 말에 깜짝 놀라 하늘을 올려다보니 갑자기 태양을 마주할 때보다도 더욱 눈이 부신 빛이 쏟아져 도저히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승우와 우진이는 들키지 않도록 최대한 몸을 움츠리고 숨을 죽였다. 

승우와 우진, 선녀를 만나다

승우와 우진이는 아주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선녀들을 바라보았다. 선녀의 몸에서는 은은한 빛이 계속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달빛과도 같았다. 선녀들이 날개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것은 옷을 벗는 것이 아니라 빛을 걷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벗어놓은 날개옷에서는 계속 은은한 빛이 새어나왔다. 그나저나 저렇게 먼 거리여서는 우진이의 말처럼 날개옷을 훔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날개옷을 벗은 선녀의 몸에서도 마찬가지로 ― 그러나 전보다는 조금 약해진 ― 아름다운 빛이 감싸져 있었다. 그 빛으로 인해 선녀의 몸은 굉장히 신비로워 보였다. 승우와 우진이는 아무 말도 못한 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선녀들 중에 눈에 띄게 몸집이 작은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를 보고 놀란 승우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나고 말았다. 그러자 그보다 더 놀란 우진이가 승우를 붙잡는다. 그러나 이미 늦어버렸다. 승우와 그 아이의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물줄기가 솟구치더니 우진이와 승우를 향해 날아왔다. 가까스로 물줄기를 피해 도망치려는데 굉장히 거센 바람이 그 주변을 휘감기 시작했다. 선녀들도 당황하여 급하게 날아가려는 날개옷을 붙잡고 빛을 내며 한 명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바람에 휘감긴 승우는 물 위로 떨어진다. 허우적거리다가 그 몸집이 작은 선녀를 붙잡는다. 그랬더니 승우의 몸이 공중에 뜬다. 땅 위로 곤두박질치는 승우의 몸이 선녀의 날개옷 위로 떨어진다. 날개옷 때문인지 던져질 때의 충격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선녀는 당황한다. 그때 우진이가 승우와 선녀를 향해 달려온다. 선녀가 우진이를 향해 꽃잎처럼 보이는 것을 던진다. 그것은 우진이의 어깨에 내려앉는 듯하더니 이내 사라진다.

“우진아, 나 좀 도와줘.”

우진은 마치 의식이 없는 사람처럼 뒤돌아선다.

“우진아, 우진아!”

승우가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우진은 점점 승우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와중에 몸집이 작은 선녀가 승우의 목을 조르려고 하나 손이 자꾸만 미끄러진다.

“미안해, 미안해. 혹시 내가 깔고 누운 게 네 날개옷이면 줄게, 줄게. 그러니까 비켜줘.”

승우가 얼른 몸을 일으켜서 선녀에게 내민다. 그런데 아까 봤던 빛이 날개옷에서 느껴지지가 않는다. 승우는 불안했다. 선녀도 급하게 날개옷을 입어 보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입고 있는 옷은 투명에 가까워서 작은 선녀의 몸이 비췄다. 승우는 그것이 부끄러워서 시선을 돌렸다. 작은 선녀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더니 목 놓아 엉엉 울기 시작한다. 승우는 더더욱 어찌할 줄을 몰라 한다.

‘몸집만이 아니라, 정말 어린 아이구나……. 꼬마 선녀님도 있구나. 그런데 우진이가 없으니 어떻게 할머니 댁으로 돌아가지? 그리고 나 때문에 망가진 이 날개옷을 어떻게 해야 하지?’

승우도 꼬마 선녀 옆에서 함께 목 놓아 울고 싶었다. 이런 건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그때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승우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그것은 할머니 발자국 소리다! 안심이 되자 승우는 의식을 잃었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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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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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2010/03/06 14:26

승우는 우진이의 걸음을 따라 마을 어귀를 걸으면서 못다 나눈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우진이가 걸음을 멈추고 쉬어 가자고 한다. 나무 그늘에 의지해 뜨겁고도 청량한 여름 햇살을 시원하게 받아낸다. 승우는 졸음이 쏟아지려 한다. 그런데 우진이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말투 ― 승우는 우진이의 그 말투가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 ― 로 이야기를 꺼내어 이내 졸음이 싹 가셨다.

“너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알지?”

“응! 줄거리 말해줄까?”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우리 둘 다 그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게 확실해졌으니까. 그렇다면, 이곳이 그 선녀와 나무꾼이 살았던 마을이라는 것도 알아?”

“할머니한테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승우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우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할머니 댁에 오는 걸 싫어한 만큼 할머니의 말씀도 잘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에 가고 싶어 훌쩍거리면서 울 때 할머니께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겠다며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꺼냈었다. 그때 승우는 아는 이야기라면서 짜증을 냈다. ‘그 선녀와 나무꾼이 이곳 삼거리마을에 살았단다.’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라고 무시해버렸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우진이가 하고 있다니!

“저 산봉우리는 ‘선녀봉’이라고 해. 선녀의 몸을 닮았다고 해서 선녀봉이라고 부른대. 그것보다 저 산봉우리에서 시작되는 계곡물이 바로 선녀가 목욕을 했던 계곡의 물이야.”

“그렇구나.”

시큰둥해하는 승우에게 우진이는 더욱 진지하게 이야기를 한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누가 지어낸 게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이야.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곳 삼거리마을이라는 것은 확실해.”

“에이, 거짓말. 그건 정말 지어낸 이야기잖아.”

“넌 저 선녀봉과 내 말을 믿지 않는 거니?”

우진이가 실망한 듯 보이자 승우는 당황한다.

“그치만…… 그걸 뭐라고 하지? 즈, 증거! 그래 바로 그거야. 증거가 없잖아! 내가 보기엔 그냥 산이고 물인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왔어. 하지만,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곧 알게 될 거야.”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는데?”

“바로 내일. 내일 선녀들이 마을 사람들이 선녀탕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내려올 거니까!”

“뭐라고?”

승우는 아직도 어리둥절하지만 우진이는 더욱 격앙된 목소리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내가 보여줄 굉장한 여름이 바로 그거야.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가 진짜인지 아닌지 내일 밤 우리의 눈이 증거가 되어 줄 테니까.”

동화 속 이야기를 믿다니! 승우는 우진이 처음으로 어린애 같다고 생각했다.

“선녀가 내려온다는 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우리 할아버지의 아주 먼 할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조상님의 친구 분이 바로 나무꾼이었기 때문이야.”

할아버지와 나무꾼

“우리가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걸 확인했지만, 마지막 부분을 덧붙여 이야기할게. 선녀와 아이들을 찾아 하늘로 올라간 나무꾼은 홀로 계신 어머니가 걱정되어서 다시 근심을 하게 돼. 그런 나무꾼이 안쓰러웠던 선녀의 도움으로 그는 천리마를 타고 땅으로 내려오게 되지. 어머니는 마지막이니 잠깐만 내려서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간절히 부탁하지만, 천리마에서 내리면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없기에 그럴 수 없다고 해. 그러면 죽이라도 한 사발 먹고 가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청을 못 이겨 말을 탄 채로 죽을 먹다가 그만 그 뜨거운 것을 말 등위에 쏟아버리고 말지. 놀란 말이 땅을 박차자 나무꾼은 말 등에서 떨어지고 순식간에 천리마는 하늘로 날아가 버리지. 나무꾼은 더는 선녀를 만날 수 없게 되어 홀어머니를 모시고 평생을 그리워만 하다가 죽게 돼.

내가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그 이후부터야. 선녀는 나무꾼이 자신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는 그를 도와줄 수가 없었어.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나무꾼에 대한 신의 노여움이 너무 커서 더 이상 선녀의 부탁이 받아들여지질 않았던 거야. 그래도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나무꾼을 만나게 해달라는 선녀의 간절한 청은 계속되다가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야 받아들여지게 되지. 그런데 하늘과는 달리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이미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 있었어. 선녀는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어. 그런데 이상했어. 왜 나무꾼은 죽어서도 하늘나라로 오지 못했던 걸까? 선녀는 나무꾼을 기억하는 사람을 가까스로 만나게 되었어. 그는 나무꾼의 둘도 없는 친구였던 사람의 손자뻘 된다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더욱 쓸쓸한 나날들을 보내다 죽은 나무꾼을 그 친구는 어머니 무덤 옆에 나란히 묻어주었지만, 어느 날 마을에 큰 홍수가 나면서 둘 다 떠내려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선녀는 땅에조차 편하게 묻히지 못하고 마을 곳곳을 헤매고 있을 나무꾼과 그의 어머니의 넋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어. 자신이 천리마를 보냈기 때문에, 아니 하늘에 다시 올라가려 했기 때문에 생긴 불행이라는 생각에 선녀는 너무나 슬펐어. 그래서 그들이 살던 마을에 10년에 한 번, 그러니까 인간에게는 100년에 한 번씩 하늘의 꽃을 띄워 보내기로 했어. 선녀는 그 꽃으로 그 둘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해 달라고 그 손자 되는 사람에게 부탁했어. 그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였지.”

"날개옷을 하나 훔칠거야"

승우는 여전히 우진이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진이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그런지 언제부터인가 사람이 꽃을 돌보게 되는 일은 없어졌다고 해. 그래도 마을에서는 100년에 한 번씩 알 수 없는 꽃향기가 퍼진대. 그 후로는 마을이 더욱 살기 좋게 느껴지고 말이야.”

“그렇다면,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진 줄 모르고 선녀가 계속 꽃을 보낸다는 거야?”

“돌봐주는 사람 대신 무엇인가가 그 일을 대신하고 있는 것 아닐까? 아무튼 말이야, 내일 밤이 바로 그날이야. 하늘의 꽃이 내려오는 날! 할머니께서 알려주신 날짜니까 틀림없어. 그러니까 내일 밤 만나야 해. 승우 네가 믿지 못하겠다면…… 굳이 그렇다면 내일 밤 나타나지 않아도 좋아. 나 혼자서만 확인할 테니까.”

그러나 우진이의 말투는 승우가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쓸쓸함이 묻어나왔다. 승우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진아, 정말로 나올 거야? 네 말대로 달이 뜨지 않으면 엄청 깜깜할 거고…… 무엇보다 할머니께서 걱정하실 거야.”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해. 너는 우리 할머니 댁에, 나는 너희 할머니 댁에 놀러 간다고 말을 하고 나오면 돼. 선녀가 목욕하는 시간은 길지 않으니까, 할머니께서 걱정하실 만큼 늦게 돌아가진 않을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만큼 이곳을 잘 알아.”

“괜찮을까? 할머니께 걱정을 끼치지 않고 나온다고 해도…… 정말 선녀를 만난다면…… 우리는…… 우리야말로 괜찮을까?”

“우리가 위험해지지 않기 위해 날개옷을 하나 훔칠 거야.”

“나무꾼처럼 선녀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려고?”

“아니! 발견되었을 때를 대비하는 거지. 만약에 우리를 해치려고 하면 날개옷으로 협박할 거고 발견되지 않았을 때는 선녀들이 목욕을 마치기 전에 몰래 다시 놔두고 돌아가면 되는 거야.”

“그런데 선녀가 꽃을 띄우러 내려오는 거라면서 목욕까지 할까? 그것보다 왜 그렇게까지 위험한 행동을 해야 해?”

사실 승우는 선녀가 그렇게 궁금하지 않다. 혹시 실제로 만난다고 하면 동화 속 그림처럼 아주 아름다울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의외로 선녀가 못생겼을 수도 있고 나무꾼 때문에 생긴 사람에 대한 적개심으로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아무도 선녀를 믿지 않기 때문이야. 선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 나도 더 이상 할머니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게 될 거니까. 더는 의심이라는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 거야. 그러니까 네가 내일 나타나지 않아도 나는 너를 원망하지 않아. 그렇다고 선녀를 기다리는 일을 그만두지도 않을 거야. 내일 밤, 아니면 다음날 이곳에서 만나자. 안녕!”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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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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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2009/11/12 09:48

*
한 시간 뒤 하늘에서 두레박이 내려왔다. 두레박에 목남 씨와 부선이가 올라탔다. 두레박 주위로 둥근 번개 두 개가 돌아다녔다. 두레박이 하늘나라로 무사히 올라갈 때까지 주변을 밝혀줄 번개였다.

“잘 있거라, 아들아. 염치없지만 난 네가 천지교류과 일을 잘할 거라고 믿는다. 주유소도 맡아주길 바란다.”

목남 씨가 말했다.

지동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슴 아주머니의 매개로 부자는 손을 맞잡았다. 시간은 많지 않았다. 둥근 번개들이 자꾸 재촉했다. 빛이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 동시에 동아줄이 팽팽해졌다. 부선이가 눈물을 훔치며 급하게 말했다.

“지동아, 우린 내년 봄에 여기서 볼 수 있을 거야. 그때 보자.”

지동이는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선미가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선녀님. 그동안 신참 교육 잘 시켜 놓을 테니까, 우리 내년 봄에 꼭 봬요.”

선미가 지동이의 옆구리를 찌르자 지동이가 고개만 끄덕였다.
두레박이 서서히 공중으로 뜨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올라가자 목남 씨의 눈에 뜯지 않은 케이크 상자가 보였다. 그는 외쳤다.

“저기, 케이크를 사왔단다. 초를 밝히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아들아, 서른 번째 생일 축하한다.”

그 순간이었다. 귀를 찢는 총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두레박이 뒤뚱거렸다. 이어서 다시 한 번 총소리가 들렸고, 이번에는 두레박이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동아줄이 총알에 끊어진 모양이었다. 그렇게 두레박이 땅으로 추락하자 둥근 번개들은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 다시 시커먼 어둠에 휩싸였다.

“아버지, 어머니…….”

어둠 속에서 지동이가 외쳤다. 지동이가 어둠 속을 더듬으며 찾아낸 목남 씨와 부선이는 괜찮다며 오히려 아들을 위로했다. 그때 등 뒤에서 밝은 손전등 빛이 번쩍거리면서 사냥꾼 형제가 내려왔다.

“넌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그러냐?”

형 사냥꾼이 말했다.

“내가 아니면 형이 쏠 거였잖아?”

동생 사냥꾼이 말했다.

“난 사업가야. 총으로 일을 하지 않아. 어쨌든 여기에 우리 원수들이 다 모였구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동생아 다 쏴도 좋다. 그리고 오늘 날짜로 선녀탕은 내 거다. 하하하.”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총알이 빗발쳤다. 동생 사냥꾼은 마구잡이로 쏘아댔다. 지동이 가족과 선미와 사슴 아주머니는 뒤집힌 두레박 안으로 서둘러 몸을 숨겼다. 그것은 훌륭한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 그러자 형 사냥꾼이 가담했다. 그는 동생과 달리 침착하게 두레박 한가운데를 집중적으로 사격했다. 두레박은 점차 뚫리기 시작했다. 한두 방만 맞으면 구멍이 날 것 같았다. 형 사냥꾼은 정확하게 조준을 했다. 그리고 최후의 일격을 위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바로 그때 공중으로부터 커다란 돌덩어리 하나가 떨어지면서 형 사냥꾼의 총신을 때렸다. 그 덕에 총부리가 아래로 향했고, 총알은 두레박이 아니라 형 사냥꾼의 발등을 뚫었다.

“아이코!”

형 사냥꾼은 고함을 지르면서 데굴데굴 굴렀다. 동생 사냥꾼이 하늘을 보니 선녀 하나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마에 십자모양 흉터가 있는 선녀였다. 그녀는 공중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면서 이렇게 조롱을 했다.

“이 못된 인간 놈아, 나 잡아봐라!”

동생 사냥꾼이 그녀를 쫓았다. 선녀는 사냥꾼을 낭떠러지로 유인했다. 동생 사냥꾼은 낭떠러지 앞 공중에 떠서 희롱하는 선녀를 쏘아댔다. 선녀는 요리조리 피했지만 마지막 한 방을 맞았는지 아래로 낙엽처럼 떨어졌다.

“좋았어.”

동생 사냥꾼은 외쳤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려고 낭떠러지에 섰다. 그때 그의 등 뒤에서 수사슴 한 마리가 콧김을 씩씩거리며 앞발을 땅에 긁어대고 있었다. 동생 사냥꾼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사슴이 전력을 다해 달려오고 있었다. 동생 사냥꾼은 수사슴 뿔에 받혀 비명을 지르며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낭떠러지 아래에서 선녀가 날갯짓을 하며 떠올랐다. 모든 게 그녀의 술수였던 것이다.

잠시 후 선녀는 부선이에게 날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네 행동이 수상쩍어서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기다려봤지. 하지만 내 오지랖이 너에게 이렇게 도움이 되어버렸구나. 아이참, 속상해. 그나저나 두레박이 깨져서 어떡하니? 이제 부선이 너는 영원히 하늘나라에 오지 못하겠구나.”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조롱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에 화를 내지는 않았다. 아무튼 이마에 십자 흉터가 있는 그 선녀는 부선이를 실컷 조롱하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녀가 어둠 속으로 밝은 별이 되어 사라져가자 주변은 다시 어둠에 잠겼다.

“누구 불 없나?”

사슴 아주머니가 말했다. 그때 누군가가 라이터를 켰다. 형 사냥꾼이었다. 그는 살려달라고 울먹였다. 목남 씨가 그에게 다가가 상처를 보고 조금만 참으라고 말하고는 그의 손에서 라이터를 빼앗았다. 목남 씨는 라이터로 케이크의 초를 밝혔다. 정확히 서른 개의 초를 밝히자 서로 얼굴을 볼 수 있을 만큼은 밝아졌다. 어찌 된 일인지 고생을 했음에도 모두가 웃고 있었다.

“생일 축하한다. 아들아.”

목남 씨가 케이크를 들고 지동이에게 다가갔다. 지동이가 초를 불었다. 초가 꺼지자 다시 주변은 시커먼 어둠에 휩싸였다. 때마침 사냥꾼이 발등이 아프다고 늑대처럼 크게 울부짖었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순간 지동이의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그렇지만 그는 더 이상 어둠과 울부짖음과 밤의 소리가 무섭지 않았다.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
그날 이후 석 달이 지났다. 지난 석 달은 지동이가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지동이는 아버지와 화해를 했다. 목남 씨와 대중목욕탕도 함께 가는 사이가 되었다. 부자는 사우나를 마치고 나무꾼 주유소로 돌아와 거울 앞에 나란히 앉았다. 부선이가 오랜만에 가위를 들고 그들의 머리를 손질해 주었다. 하지만 지동이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머리모양이 구식인데다가 목남 씨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저녁에는 머리모양이 똑같은 부자가 마주앉아 바둑을 두었다. 실력이 비슷해서 내리 일곱 판을 거듭했다. 그들은 바둑판에 집중하면서 엄지발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똑같은 머리모양에 똑같은 버릇이었다. 부선이는 부자가 정을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저녁식사가 다 준비되었다고 일렀다. 가족은 정겹게 저녁식사를 했다.

목남 씨는 의사가 예고한 것보다 더 살았다. 간신히 해를 넘겼다. 목남 씨의 마지막 숨소리가 병실 안에 울려 퍼졌을 때 지동이는 울었다. 그날 밤 지동이는 어릴 적에 아버지하고 함께 만들었던 모형 비행기를 병원 옥상에서 날렸다. 아버지를 그렇게 떠나보냈다.

그리고 사흘 후인 오늘 아침, 선녀봉을 오르는 산길 중간 소나무 아래에서 수목장을 치렀다. 이목남(李木男). 이름풀이대로 ‘나무 남자’의 장례식다웠다. 간소하게 장례식을 마친 뒤 유족은 선녀탕에 들어갔다. 천지교류과 김 과장과 부부군수 그리고 사슴 아주머니와 선미도 함께했다. 이제 부선이가 하늘로 오를 것이었다. 부선이는 불에 타지 않은 완벽한 날개옷을 입고 있었다.

“선미 씨, 날개옷 고마워.”

부선이가 조그맣게 말했다.

“뭘요. 전 평생 지상에서 살아갈 거니까 없어도 돼요.”

선미가 역시 조그맣게 대답했다.

“선미 씨가 선녀인 건, 지동인 모르지?”

“아뇨, 알아요.”

선미의 대답이 의외라는 듯이 부선이는 눈을 크게 뜨고, 그녀의 대답을 마저 들었다.

“옛날에 지동이가 저한테 주지 못한 편지가 있는데, 거기에 제가 선녀라고 쓰여 있던 걸요.”

“지동이가 주지 않았다면서, 용케 편지를 본 모양이네?”

“그때 지동이가 칠칠치 못하게 뒷주머니에 넣는다는 게 땅에 떨어트렸거든요. 그걸 제가 주웠죠.”

둘은 웃었다.

지동이가 다가왔다.

“잘 있거라, 아들아.”

“잘 가요, 엄마.”

지동이의 표정은 밝았다.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게 아쉬웠지만 떠나보내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기다려요, 얼른 가세요.”

“그래,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그런 말 마세요.”

“행복해야 해.”

부선이는 지동이와 포옹을 했다. 그때 서쪽 하늘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그러자 부선의 날개옷 날개가 저절로 펴졌다. 부선이의 몸이 그대로 떠오를 것처럼 잠시 위로 들썩거렸다.

“아버지가 채근하네요.”

지동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부선이는 대꾸 없이 웃었다. 그러고는 발뒤꿈치를 살짝 들었다. 몸이 공중으로 가볍게 들렸다. 웬만한 나무키만큼 올라가자 그녀는 날개를 활짝 폈다. 그리고 우아하게 날갯짓을 한 차례 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하늘로 치솟았다. 그 바람에 멀리 하늘을 날던 솔개가 깜짝 놀랐는지 소리를 냈다. 잠시 후에는 부선이도 솔개만큼 높이 날고 있었다. 그녀는 솔개처럼 주변을 맴돌며 비행을 했다. 지동이와 선미가 그녀를 바라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멀찍이서 지동이와 선미를 바라보던 부부군수는 선녀탕을 관광지로 개발하는 안건을 전면 취소했다고 밝히고 있었다.

“어째서 마음이 바뀐 거죠?”

김 과장이 물었다.

“사실 난 아내가 선녀인 줄 감쪽같이 몰랐거든. 그런데 어느 날 밤에 아내가 날 깨우더니 무섭게 노려보면서, 선녀탕을 개발하면 애들 데리고 떠나겠다고 협박하는 거야. 별수 있나?”

부부군수는 몸서리를 치면서 가족이 곁에 없으면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덧붙여 말했다.

“하긴 부부군수님처럼 자기 애인이나 부인이 하늘나라 선녀인 줄 모르는, 아둔한 완주군 남자들이 꽤 있지요.”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사슴 아주머니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녀는 지팡이로 지동이를 가리켰다. 지동이는 선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렇게 둘은 손을 꼭 잡고는, 이젠 반짝이는 낮별처럼 보이는 부선이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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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2009/10/12 19:40
지동이와 선미가 선녀탕에 닿았을 땐 이미 선녀들이 목욕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돌아간 뒤였다. 부선이는 아직도 진정이 되지 않는 가슴으로 천막 안에 앉아 있었고, 목남 씨는 사슴 아주머니와 함께 서서 밤하늘에서 두레박이 내려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 과장님. 안녕하세요.”

선미가 목남 씨에게 아는 척을 했다. 목남 씨가 소리 들리는 쪽을 보았다. 둥근 모양의 손전등 빛이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그 빛 뒤로 두 사람의 형체가 거뭇하게 보였다. 목남 씨는 두 사람 중에 키가 작은 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선미, 와 주었군.”

“네, 과장님. 은퇴하시면서 인사 없이 가셔서 섭섭했어요.”

선미가 대답했다.

“우리 일이 다 그렇지. 소리 없이 일하니, 소리 없이 떠나야지.”

“아버지.”

둘의 대화에 키가 큰 쪽이 끼어들었습니다. 지동이었다. 그는 천천히 목남 씨 쪽으로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소리 없이 떠나셔도 저한테까지 말하지 않으려고 했나요?”

“지동아, 사실 그게 말이다…….”

“변명은 마세요. 오면서 선미한테 얘기 다 들었으니까요.”

지동이가 목남 씨의 말을 끊었다.

“정말 놀라운 얘기더군요. 제 전임이신 이 과장님이 아버지셨다니.”

지동이가 손전등으로 목남 씨의 얼굴을 쏘아대듯이 비췄다. 목남 씨는 눈이 부셔서 눈을 찡그렸다. 그는 불빛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약한 행위였기에 사슴 아주머니가 나섰다.

“버릇없구나. 관두지 못하겠니.”

사슴 아주머니의 지팡이가 지동의 손목을 내리쳤다. 그 바람에 손전등은 바닥에 떨어졌다. 전구가 깨졌다. 주변은 다시 빛 한 점 없이 어두워졌다.

손전등의 전구는 깨졌지만 위치추적기는 여전히 작동했다. 같은 시각 사냥꾼 형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산을 오르고 있었다. 형은 동생에게 침착하게 행동하라고 말했다.

“넌 항상 성질부터 부리니까 그 모양인 거야. 네가 나처럼 어릴 적에 작두에 턱을 다치는 경험을 했다면 이렇게까지는 경솔하진 않았을 텐데.” 그러자 동생은 이렇게 대꾸했다. “형은 언제나 나만 탓하지.” 그들은 그렇게 티격태격했다. 그러는 사이에 선녀탕에 닿았다.

“가만. 폭포 소리야, 조용해 봐.”

형 사냥꾼이 말했다.

과연 낙수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말소리도 들렸다. 어림잡아 세 명의 소리였다. 그들은 제각각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늙은 여자의 것으로 짐작되는 성난 목소리가 말했다.

“이 고얀 놈아, 아버지한테 이게 무슨 말버릇이더냐?”

순간 형 사냥꾼의 입가가 옆으로 찢어졌다. 그는 동생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사슴이군. 역시 아직까지 완주군에는 야생사슴이 있다니까. 오랜만에 즐거움 좀 맛보겠군.”

그는 엽총의 총신을 손바닥으로 매만졌다. 이윽고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동아, 내가 다 설명했잖니. 그러니 아버지를 이해해 줘.”

“일평생 가족을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난 천지교류과 일 관두겠어. 내 얘기는 이 과장님 후임은 물론 이목남 씨의 아들 노릇도 정중하게 사양하겠다는 뜻이야. 이렇게 흉계를 꾸미고 용서를 빌면 내가 좋아할 줄 알아?”

사냥꾼 형제 중 동생이 “이 목소리는 새로 온 신참이군. 한눈에 알아봤지. 이 과장 아들이더군.”하고 중얼거리며 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하여 총구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총기에 붙은 적외선 조준경을 통해 아래를 살폈다. 여태 세 명의 목소리만 교대로 들렸지만 한 사람이 더 보였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서서 고개만 주억거리는 목남 씨였다. 동생 사냥꾼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목남 씨의 넓적다리를 정확하게 조준하고 방아쇠에 힘을 줬다. 그러자 형 사냥꾼이 말했다.

“기다려 봐.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거야.”

지동이는 더 이상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급기야 그는 크게 울부짖었다. 그는 어떤 설명에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아버지와 산에서 혼자 사는 미친 노파와 더는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짝사랑했던 선미조차도 불편해졌다. 지동이는 홧김에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동아!”

그제야 목남 씨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 소리에 지동이의 발목에 좀 더 힘이 들어갔다. 그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듣기 싫었다. 그래서 뛰었다. 한참을 그렇게 뛰어 내려가다가 땅 위로 튀어나온 나무뿌리에 발목이 걸려 넘어졌다. 그리고 잠시 정신을 잃었다.

지동이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어둠 속에 홀로 있었다. 그를 부르는 목남 씨의 염려스러운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순간 지동이는 악몽이 떠올랐다. 세 살 무렵 산속에 혼자 남겨졌던 그 기억이었다.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숨이 턱턱 막혔다. 고개가 빳빳이 세워진 채로 경직되고, 두 눈이 커다래졌다. 그는 경기가 든 것처럼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는 소리치려고 했다. 그러나 27년 전 그날처럼 입 밖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숨이 차서, 입엣소리로 웅얼거릴 뿐이었다.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지동아. 지동아.”

그때 티 없이 맑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동이는 고개가 자유스럽게 돌아가지 않아 온몸을 비틀면서 힘겹게 소리 나는 쪽을 보았다. 은은하게 타오르는 빛이 보였다. 그 빛이 시커먼 어둠을 몰아내며 지동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빛은 옷이었다. 그리고 그 빛의 옷을 한 여자가 입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지동아! 그래, 엄마다. 엄마가 여기 있어.”

여자가 지동이의 어깨를 부여잡고 흔들었다. 그리고 말없이 흐느꼈다. 지동이는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자신의 몸으로부터 여자를 떨어뜨리려 애를 썼다. 그러면서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했다. 그는 지금의 상황을 선뜻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여자가 싫지는 않았다. 여자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자신의 엄마였다. 어릴 적에 헤어져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엄마, 할머니 말로는 착하고 어여뻤다는 엄마, 아빠 말로는 선녀처럼 아름다웠다는 엄마였다. 지동이의 눈앞에, 그가 평생 그리던 엄마가 눈앞에 있었다.

지동이는 악몽에서 깨어날 때처럼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숨이 막혀 가슴속에 갇혀 있던 공기와 함께 그 무언가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는 엄마를 끌어안고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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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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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2009/09/20 00:01

*
이듬해 부선이는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목남 씨는 아이의 이름을 지동(地童)이라고 지었다. ‘땅의 아이’라는 뜻이었다. 부선이가 ‘선녀의 아이’라는 뜻으로 선동(仙童)이라고 짓자고 하는 것을 목남 씨는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상반되는 뜻으로 지었다. 그것은 부선이의 하늘나라 타령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기 위해서였다.

그즈음 목남 씨는 변했다. 심술궂은 남편이 되어 있었다. 전처럼 웃지도 않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단 한 번도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부선이는 힘들었다. 시어머니와 팥쥐 같은 시누이의 등쌀보다 남편의 독선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그때마다 부선이는 ‘일 년만 참자, 일 년만 참자.’ 하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또다시 일 년이 지나 지동이의 돌이 되었어도 그녀는 떠나지 않았다. 지동이의 재롱을 보면서 행복해하는 목남 씨를 보면서 ‘그래, 일 년만 참자, 일 년만 참자.’ 하고 여전히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또 일 년이 가고, 일 년이 또 지났다.

그날은 지동이의 세 번째 생일이었다. 목남 씨는 직장에서 돌아와 여느 때처럼 지동이와 놀아주었다. 그는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부선이는 말없이 부자를 바라보았다. 아빠의 양반다리 위에 앉아 어쭙잖게 양반다리를 하고 있는 지동이가 귀여웠다. 지동이는 엄지발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엄지발가락을 만지는 것은 양반다리를 할 때마다 목남 씨가 하는 버릇이었다. 과연 부전자전이다.

부선이는 결심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마음을 다시 다잡았다. 그녀는 오늘만큼은 무슨 일이 생겨도 지동이와 함께 하늘나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그래서 이미 낮에 사슴 아주머니에게 맡긴 날개옷도 돌려받았다.

“목남 씨가 불쌍하네. 에구, 불쌍해서 어떻게 하누.”

사슴 아주머니는 그렇게 말했지만 부선이의 마음을 이해해 주었다.

“아주머니, 저희 목남 씨 잘 좀 부탁해요.”

부선이가 말했다.

그날 밤 부선이는 발목에 묶인 실을 끊었다. 실은 어금니로 물고 잡아당기자 쉽게 끊어졌다. 그녀는 허탈하고 씁쓸했다. 이토록 나약한 실의 묶음에 의존할 정도로 자신에 대한 남편의 믿음은 약했던 것일까. 부선이는 그런 상념에 빠져 남편의 잠든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나쁜 사람. 그리고 불쌍한 사람.’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신을 사랑하지만, 나는 당신의 사랑에 더는 견딜 수가 없어요. 미안해요.’ 부선이는 끝내 눈물을 지었다. 그리고 그 눈물이 마르기 전에 집을 나섰다. 고이 잠든 지동이를 가슴에 안고 산을 올랐다.

그런데 그녀 뒤를 쫓는 이가 있었다. 목남 씨였다. 그즈음 목남 씨는 부선이의 들뜬 마음을 눈치챘다. 그래서 밤이 되면 문단속을 핑계로 누군가 문을 열면 방울 소리가 울리게 해두었다. 방울 소리에 목남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태를 파악했다. 옆에서 자던 사람이 비운 자리는 횅했다. 우묵하게 패여 있는 이부자리처럼 마음의 한가운데가 깊이 패었다.

한밤중에 선녀탕으로 가는 길은 험했다. 부선이는 선녀탕으로 향하는 입구에 도달했을 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물푸레나무와 오리나무 사이의 거미줄 앞에 서서 한동안 주저했다. 이 길을 들어서면 오솔길이 나오고, 오솔길을 지나면 바로 선녀탕이었다. 마침 오늘은 선녀들이 목욕을 하는 날이었다. 자신을 반겨줄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날 생각에 그녀는 흥분이 되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마지막으로 점검해 보았다.

부선이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지상에서의 4년. 나쁘지 않았지만 왠지 앞으로 점차 나빠질 것 같았다. 이내 부선이는 결심을 굳혔다. 그녀는 중얼거리며 거미줄 아래를 통과했다. ‘잘 있어요, 내 사랑.’

목남 씨는 소나무 뒤에서 부선이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는 걸까. 목남 씨는 궁금했다. 혹시 부선이는 진짜 선녀가 아닐까. 목남 씨는 갑자기 헷갈리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입고 있는 옷에서 빛이 났기 때문이었다. 부선이가 시커먼 어둠을 뚫고 쉽게 산을 오를 수 있었던 건 환한 빛을 내뿜는 날개옷 덕분이었다. 또 그 덕에 목남 씨의 미행도 성공적이었다.

목남 씨는 부선이의 날개옷이 내뿜는 빛을 따라 결국 선녀탕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그가 선녀탕에 다다르자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즈넉한 새벽공기를 뒤흔드는 높다란 웃음소리였다. 목남 씨가 폭포 위 바위에 납작 엎드려서 보니 반쯤 발가벗은 여자들이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또 몇몇은 홑겹의 하얀 옷을 걸치고 물가에 앉아 무언가를 가운데에 두고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그녀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부선아, 애기가 정말 귀엽다.”

“어머나, 얘 자는 모습이 완전히 천사네.”

“나도 이런 아기 낳고 싶어.”

여자들은 동시에 까르르대며 웃었다.

잠시 후 여자들이 다시 물에 들어가자 가려져 있던 부선이가 보였다. 부선이는 물가에 앉아 잠든 지동이를 꼭 끌어안고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있었다. 목남 씨는 어떻게 할지를 몰랐다. 빛을 내뿜는 날개옷을 입은 부선이와 한밤중에 산속에서 목욕을 즐기는 여자들이라니. 마치 자신이 몇 시간 전에 지동이에게 읽어주었던 선녀와 나무꾼 동화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전설대로라면 부선이는 지동이를 데리고 하늘나라로 올라갈 것이 뻔했다. 이대로 있다간 꼼짝없이 그는 외톨이 신세가 되게 생겼다. 당장 무슨 수를 써야 했다. 목남 씨가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에 선녀들이 목욕을 마치고 물에서 나왔다. 선녀들은 오들오들 떨면서 한쪽에 마련된 모닥불로 가서 몸을 녹였다. 그런데 선녀들의 젖은 옷자락에서 물이 떨어져 불이 꺼지고 말았다. 선녀들은 당황하며 불을 살리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때 부선이가 나섰다. 그녀는 모닥불을 살리려고 잠시 지동이 곁을 떠났다.

목남 씨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살금살금 기어 지동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지동이는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목남 씨는 지동이를 안고 폭포 뒤 바위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선녀들 중 하나가 그를 보았다.

“저기, 사람이 있어. 남자잖아. 꺄악!”

선녀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그녀들은 혼란스럽게 움직이며 자신들의 날개옷을 서둘러 입었다. 그녀들이 빛을 내뿜는 날개옷을 입고 어수선하게 돌아다니자 주변은 흡사 대낮처럼 밝아졌다. 빛을 내뿜는 날개들이 여기저기서 펄럭이는 통에 목남 씨는 거의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런 복잡한 상황에서도 모닥불 옆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부선이가 또렷이 보였다. 목남 씨가 보기에 그녀는 넋을 놓고 있었다. 부선이는 자신의 날개옷이 뒤늦게 살아난 모닥불에 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멍해 있었다. 한 선녀가 부선이를 뒤로 끌어냈을 때 이미 날개옷의 절반이 탄 뒤였다.

“여보, 지동이를 돌려주세요.”

부선이가 손을 내밀며 기운 없이 말했다.

하지만 목남 씨는 될 대로 되라는 극단적인 심정이었다. 그는 부선이를 잡아당기며 함께 하늘로 올라가려고 시도하는 선녀들을 향해 돌덩이들을 던지고 있었다. 그 중 한 개가 한 선녀의 이마를 맞혔다. 선녀의 이마에선 한 줄기 피가 흘렀다. 선녀는 화가 났다. 그녀는 머리에 꽂혀 있던 비녀를 뽑아들고 목남 씨에게 다가와 대항했다.

목남 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닥불의 불타는 나무토막을 집어 들고 다가오는 선녀에게 달려들었다. 선녀는 행여 날개옷이 탈까 봐 저항도 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다른 선녀들도 목남 씨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들은 동시에 발뒤꿈치를 세우고 하늘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부선이도 공중으로 떠올랐다. 물론 부선이는 발버둥을 치며 지상에 남으려고 했다. 하지만 선녀들은 불붙은 몽둥이를 미친 듯이 휘두르는 남자 앞에 부선이를 남겨둘 수가 없었다. 선녀들은 부선이의 양팔을 거의 포박하고 날갯짓을 힘차게 했다. 그렇게 부선이는 멀어져 갔다.

“지동아! 지동아! 내 아들 지동아!”

부선이의 외침이 밤하늘에 메아리처럼 울렸다.

목남 씨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한동안 그는 늑대처럼 울부짖었다. 화를 삭이려고 물속으로 수차례 들어갔다 나왔다. 이미 모닥불은 꺼졌고 찬바람이 불었다. 밤은 어두웠다. 때마침 달도 구름에 가려 온통 암흑이었다. 목남 씨의 마음도 그러했다. 춥고 절망적이고 어두웠다. 그는 죽을 생각으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물속에서 한참 숨을 참고 있는데, 어디선가 먹먹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기의 울음소리였다. 목남 씨는 물속에서 바삐 빠져나와 지동이를 향해 뛰었다. 그가 지동이에게 다가가자 지동이는 울음을 뚝 그쳤다. 지동이는 숨이 막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개를 빳빳이 펴고, 두 눈은 커다래진 상태로 숨을 멈추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경기가 든 것이다. 목남 씨는 지동이를 흔들었다. 잠시 후 고집스럽게 숨을 참던 지동이가 가쁜 숨을 토해냈다. 그러고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목남 씨도 지동이를 끌어안고 울었다. 그렇게 이별의 밤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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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2009/09/06 22:59

“금당계곡에서 신고가 하나 들어왔는데, 누군가 기름통을 들고 입산했다는 거야. 우리가 가야 할 것 같아.”

선미가 말했다.

“그건 경찰이나 소방서에서 출동해야 하지 않나?”

지동이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안 그래도 경찰관이 가봤는데 수상한 사람은 없다는 거야. 신고한 등산객 말로는 그 사람이 물푸레나무와 오리나무 사이를 헤치고 좁은 산길로 들어가더니 순간적으로 자취를 감추었대. 그렇다면 우리 사건이야.”

“산길에서 익숙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매우 위험한 놈이군.”

“맞아. 경찰이 그러는데 다리를 절면서도 산은 잘 오르더라고 하더라고.”

“기름통을 들고 다리까지 절면서 산을 올랐다고? 굉장하군.”

“아니. 기름통을 든 이는 다리를 절지 않아. 신고한 등산객이 다리를 절지. 그리고 우리가 주의할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이야.”

“가만, 뭐라고? 지금 산불을 낼지 모르는 놈을 신고한 시민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거야?”

“그래. 그 사람이 위험인물이야.”

“나 원 참. 이상한 말이잖아.”

“가면 곧 알게 돼.”

선미가 지동이를 보고 눈을 찡긋했다.

“하루 종일 이상한 말만 듣는구나. 이러다 정신이 돌겠어. 천지교류과, 정말 미스터리한 부서야.”

지동이가 투덜댔다.

“지동아, 산에 도착하기 전에 네가 알아둬야 할 게 있어.”

마침 교차로였다. 선미는 차를 세우고 말을 이었다.

“우리 완주군은 옛날부터 하늘과 땅이 통하는 상서로운 고장이야. 선계의 신선들이 지상을 여행할 때 들르는 곳이지. 말하자면 완주군은 그들이 이용하는 공항이야. 그리고 선녀들은 스튜어디스라고 보면 되는데, 그녀들은 지상에 올 때마다 잠깐 짬을 내서 선녀탕에서 목욕을 하지. 그런데 몇몇 호기심 강한 선녀들은 이 지상의 매력에 빠져서 아예 정착하기도 하거든. 선녀와 나무꾼 전설은 사실 선녀들의 완주군 정착 사례 중 하나의 예인 거야. 그것도 실패한 예지. 넌 믿기 어렵겠지만 지금도 완주 군민들 중 상당수는 본인이 선녀이거나 선녀의 남편이거나 선녀와 인간 사이에서 난 혼혈이 많아. 그러니 이곳에선 선녀와 나무꾼과 비슷한 사랑이야기가 얼마나 많겠니?”

지동이는 선미가 말하는 도중 내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심지어 지동이의 반응을 무시했다. 그녀는 좀 더 말하고 싶었으나 옆 차로에 서 있는 차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자 중단했다. 창이 열리고 한 아주머니가 선미를 알은체했다.

“선미 씨, 안녕하세요!”

“하이엔 씨, 안녕하세요!”

선미가 반갑게 대꾸를 하자 아주머니가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대화를 들어보니 선미가 어떤 행정적인 도움을 주었던 것 같았다. 선미는 손사래까지 치면서 자신이 한 일은 별것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어딘지 한국어 실력이 서툴다. 아닌 게 아니라 선미가 부르는 그녀의 이름도 뭔가 낯설다. 하이엔. 그것은 왠지 베트남 여성 이름 같았다.

“하이엔 씨는 베트남에서 오셨어.”

신호가 바뀌자 차를 움직이면서 선미가 말했다.

“그런 것 같네.”

지동이가 대답했다.

“지금 아이 셋을 뒀는데, 내년 봄에 넷째를 낳을 예정이야. 그러면 지상에서 아예 눌러 살게 되는 거지. 둘째 낳을 때까지는 여기서 살 생각이 없었는데, 완주군에서 다자녀 혜택을 주니까 마음이 싹 달라졌지. 차차 알게 되겠지만 선녀들도 꽤 현실적이라니까.”

“지금 저 베트남 아주머니가 마치 선녀라도 되는 듯이 말하는데…….”

“맞아. 하이엔 씨는 선녀야. 우리가 보호해주고 귀하게 대접해야 할 하늘에서 오신 손님이지.”

선미의 말을 듣자 지동이는 점입가경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지동이는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집 나간 엄마를 선녀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엄마를 무척 사랑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엄마가 선녀라고 믿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쳤다.

아버지는 평생 집 나간 엄마를 찾아다녔다. 덕분에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생업을 팽개치고 늦가을부터 겨울 동안 집을 나가기 일쑤였다. 행선지도 밝히지 않았다. 제비가 떠날 즈음 사라졌고, 제비가 돌아오면 같이 돌아왔다.

지동이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수년 전 겨울을 기억한다. 그날 그는 아버지의 부재를 비참한 심정으로 실감했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빈소를 홀로 지켰다. 그날 지동이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에 평생 아버지를 증오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후로 지동이는 아버지와 인연을 끊다시피 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그리고 완주군에 내려와서도 연락을 끊고 줄곧 고시원에서 혼자 살았다.

지동이는 선미에게 자신이 증오하는 아버지 얘기를 하고 싶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선미 앞에서는 솔직해지고 싶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미야, 난…… 선녀와 나무꾼 전설을 믿지 않아. 그건 너도 알지? 난 그것 솔직히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게다가 완주군만의 독특한 전설도 아니잖아. 저 멀리 몽골에도 같은 전설이 있어.”

“알아. 사람 사는 모습이 거기서 거기니까, 전설도 비슷하기 마련이지. 하지만, 우리 군에서만큼은 선녀와 나무꾼은 전설이 아니야.”

“하지만, 난 우리 아버지 때문에라도 선녀 이야기를 믿고 싶지 않아.”

갑자기 지동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우리 아버지는 엄마를 선녀라고 믿는 분이셔. 그게 말이 되니?”

“엄마가 선녀시구나.”

“아냐, 절대로 아니야. 할머니 말로는 타향에서 온 고아처녀였대. 결혼할 때 가족 중에서 아무도 오지 않았다지. 하지만 착하고 어여쁘셨대. 그리고 불쌍하다고 말씀하셨지. 그런데 아버지는 할머니가 엄마 얘기를 하면 불같이 화를 냈어. 아버지는 괴팍한 사람이야. 게다가 무능력자지. 가정을 돌보지 않았고, 엄마를 찾는답시고 자기 인생 없이 일평생 떠돌아다니셨어.”

지동이가 흥분을 하자 선미가 손을 잡아주었다.

“하지만 그분, 좋은 아버지이고 싶었을 거야.”

선미의 말에 지동이는 아버지와 좋았던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지동이는 아버지와 함께 만든 모형 비행기를 하늘에 날렸던 기억이 났다. 아버지는 공중을 가르는 비행기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지동아, 저걸 타고 나중에 같이 엄마한테 가자.”

하긴 어쩌면 집 나간 엄마를 찾아 헤매는 바보짓만 하지 않았으면 좋은 아버지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틀림없이 늦가을부터 봄까지 사라지는 기행만 아니면 좋은 아버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버지는 그렇지가 않았다. 순간 지동이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는 북받치는 감정을 억눌렀다. 지동이는 아버지가 밉기도 했지만 불쌍했다. 현재 아버지는 암 투병 중이었다.

며칠 전 몰래 들른 나무꾼 주유소에서 먹는 항암제를 발견했다. 병원에 문의했더니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은 해를 넘기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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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으로2009/08/16 09:37

목남 씨는 ‘나무꾼 주유소’를 지난 17년간 경영했다. 목남 씨는 태만한 주인이었다. 봄부터 가을까지만 영업했다. 나머지 기간은 여행을 떠났다. 누구에게도 어디로 떠나는지 말하지 않고, 제비처럼 찬바람이 불면 떠났다가 봄바람이 불면 다시 돌아왔다.

그러니 손님이 있을 턱이 없었다. 한적한 도로 옆 작고 허름한 주유소였기에 이따금 길을 잃은 차들이 지나다가 기름을 넣어가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목남 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에겐 단골손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골손님은 목련이 필 무렵부터 밤송이가 떨어지는 시기까지 보름에 한 번꼴로 산골짝으로 기름을 주문했다.

산골짜기 단골손님의 연락방식은 조금 희한하다. 낮잠을 자거나 일을 하고 있는 목남 씨가 발등이 따가워서 내려다보면 하얀 고슴도치가 제 가시로 발등을 콕콕 찌르는 것이다. 하얀 고슴도치는 예로부터 신선들끼리의 기별을 전하는 전령이다. 이 전령이 신체 어느 부위를 가시로 찌르는지에 따라 메시지가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목남 씨가 아는 것은 발등을 찌르면 ‘그들이 곧 온다.’라는 뜻, 그게 전부였다.

오늘도 하얀 고슴도치가 목남 씨의 발등을 찔렀다. 목남 씨는 고슴도치에게 비스킷 몇 개를 집어주었다. 그리고 옷장에서 양복을 꺼내 입었다. 오래된 양복이었다. 족히 30년은 됐을 것이다. 하긴 86아시안게임 때 중국과의 국가대표 탁구경기를 보다가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완주라사의 주인 테일러 윤이 만든 수제 양복이었다.

목남 씨는 좀이 슬어 흰 얼룩이 생긴 양복의 어깨를 툭툭 털어냈다. 먼지가 풀풀 났다. 30년 전 어느 날을 기억하게 하는 냄새도 났다. 목남 씨의 콧구멍으로 그가 젊은 시절에 발랐던 머릿기름 냄새와 여자의 분 냄새 입자가 들어왔다. 거울을 바라보던 목남 씨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졌다.

목남 씨는 석유를 채운 기름통을 트럭에 실었다. 그러고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때마침 제비가 줄지어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어느새 가을의 끝자락이었다. 떠날 때가 된 것이다.

목남 씨는 트럭을 몰아 선녀봉으로 향했다. 중간에 제과점에서 케이크 하나를 샀다. 하얀 천사가 그려진 초콜릿 케이크였다. 그는 트럭이 들어갈 수 없는 길부터는 걷기로 했다. 등산객들은 양복차림에 한 손에는 기름통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케이크를 든 사내를 수상쩍게 바라보았다. 목남 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등산객들의 관심을 무시하고 부지런히 금당계곡을 향했다.

곧 목남 씨는 등산로를 벗어났다. 그는 야생동물이 다니는 가파른 비탈을 올랐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비탈을 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머릿속의 지도를 펼치고 곳곳에 마련된 표식을 읽으며 정해진 길을 따르고 있었다. 표식은 지나치게 사소했기에 사람들은 봐도 뭔지 몰랐다.

이를테면 나뭇가지가 ㄱ자로 부러진 물푸레나무에 주목해야 했다. 또 그 부러진 가지와 오리나무 가지 사이에 쳐진 커다란 거미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거미줄을 보면 께름칙해서 돌아선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표식이다. 그 표식 아래를 통과해 사선으로 스무 걸음을 가다 보면 이름 모를 양치류 식물군이 나오는데, 그 양치식물들 안에 둘러싸인 뾰족한 바위와 둥근 바위 사이에 난 작은 계단들을 밟고 올라서야 한다. 그러면 여태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던 오솔길이 보인다. 바로 그 오솔길을 오르면 숲의 빈터가 나온다.

숲의 빈터는 산속의 비밀공간이다. 빽빽한 나무로 둘러싸여 마치 벽장 속처럼 아늑했다. 까치발을 들고 조심스럽게 걸어도 발소리가 크게 울릴 정도로 조용한 곳이다. 목남 씨는 머지않아 그 숲의 빈터에 도착했다. 목남 씨가 촘촘하게 얽힌 나뭇가지와 이파리들의 저항을 뚫자 울창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숨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간 안에는 작은 폭포가 떨어지는 맑은 물웅덩이가 있었다. 그 물웅덩이 위에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가을 하늘이 비치고 있었는데, 방금 수면 위로 팔색조 한 마리가 발가락을 담갔다가 하늘로 비쭉 치솟았다. 그러자 섬세한 파문이 일었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섬세했다. 또한 차분했으며 고요했다. 세상과 단절된 것 같았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서 선녀가 목욕을 한다고 했다. 물론 목남 씨에게는 전설이 아니었다. 그리고 석유배달을 부탁한 사슴 아주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안녕한가?”

사슴 아주머니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목남 씨는 대꾸 없이 물가에 쳐진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 안에는 오래된 석유난로가 있었다. 선녀들이 목욕하고 나서, 물에 젖은 몸을 말리는 용도로 사용하는 난로다. 옛날에는 마른 땅 위에 나뭇가지만 태웠지만, 지금은 불연재질로 만들어진 천막 안에서 석유난로를 켰다.

“죽을 때가 돼서 그런가? 얼굴이 좋네.”

사슴 아주머니가 석유난로 심지에 불을 붙이는 목남 씨에게 농담을 건넸다. 목남 씨는 웃어 보였다. 그리고 천막을 나와 숲의 빈터가 한눈에 보이는 바위로 올랐다. 사슴 아주머니가 그 뒤를 따랐다. 그녀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잘 올랐다. 그녀가 다리를 대신해서 의존하는 지팡이를 바위에 치며 말했다.

“오늘은 27년 전처럼 일을 그르치지 말게나. 그러니까 제발 숨소리도 내지 말고 여기 바위에서…….”

목남 씨는 알아들었다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27년 전 그날처럼 바위 위에 납작 엎드렸다.

“두 시간 정도 뒤면 올 거야. 그때까지 힘들겠지만 움직이지 말고…….”

사슴 아주머니의 계속되는 잔소리에 목남 씨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사슴 아주머니는 투덜대며 물가로 내려갔다. 그녀의 투덜대는 소리와 절뚝거리느라 엇박자로 들리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목남 씨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두 시간 뒤였다. 이미 사위는 칠흑같이 어두워져 있었다. 목남 씨는 번쩍하는 굉음에 잠에서 깼다. 목남 씨는 눈을 뜨자마자 시커먼 밤하늘 상공에 예리하고 길쭉한 빛줄기가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플뢰헨블리츠(Flächenblitz)라는 현상이다. 쉽게 말하면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그 벼락의 갈래와 갈래를 잡고 선녀들이 나타났다. 전광석화처럼 빠른 순간이었다. 지상과 제법 가까운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선녀들이 일제히 빛줄기를 뿌리쳤다. 그러자 온화한 빛을 내뿜는 날개옷을 펄럭거리며 선녀들이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목남 씨는 침을 꼴깍 삼켰다. 27년 전 그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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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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