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호통에 단우는 절을 떠나 집으로 향했지만, 단우에게는 오래전부터 간절히 바라던 소원이 있었다. 단우는 어쩌면 그 소원을 전설의 용이 이루어줄지도 모르는데 순순히 포기할 순 없었다. 단우는 벌써 밤에 고아원을 몰래 빠져나올 궁리를 하느라 머리가 아팠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단우는 고아원에 도착했다. 용식이랑 진수는 두꺼비를 손에 들고 오는 단우를 보며 말했다.
“두꺼비를 잡아오면 어떡해? 밤에 얼마나 시끄러울 텐데.”
“얘는 괜찮아. 내가 울지 말라고 하면 찍소리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있을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얼른 갖다 버리고 와. 두꺼비를 갖고 온 걸 보면 원장님한테 혼나”
“안 돼. 얘는 내 애완 두꺼비란 말야. 함부로 손대지 마.”
“고집을 부리긴. 혼나봐야 너만 손해지. 가자 진수야.”
용식이와 진수는 자리를 떴고, 단우는 두꺼비에게 말했다.
“시끄럽게 하면 안 돼. 알았지?”
두꺼비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밤 9시가 되자 모두들 이불을 펴고 잠자리에 누웠다. 단우도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쏟아지는 잠을 억지로 쫓아내며 뻐꾸기시계가 11시를 알리자 단우는 조심스레 일어나 아무도 몰래 두꺼비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밤 공기는 스산했고 밤하늘엔 보름달이 떠있었다. 그때였다. 마당으로 나오자마자 달빛을 받은 두꺼비가 환한 빛에 휩싸이며 아리따운 소녀로 변했다. 너무 놀란 단우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소녀는 얼른 단우의 입을 틀어막으며 비웃듯 말했다.
“겨우 이 정도에 놀라면서 어떻게 여의주를 찾으러 가겠다는 거야?”
단우는 두 눈을 비볐다.
“내가 결국엔 잠이 들었나? 지금 꿈을 꾸는 건가?”
“꿈 아니야. 난 섬백이라고 해. 난 원래 달에서 살고 있는 달두꺼비이지만 너무 심심하면 가끔 인간들이 사는 곳으로 놀러 오기도 해.”
“그럼 외계인이란 말야?”
“외계인이라고? 훗. 마음대로 생각해.”
“이렇게 사람으로 변할 수 있으면서 아까는 왜 두꺼비로 있었던 거야? 구렁이한테 잡아먹힐 뻔했잖아.”
“구렁이 앞에선 사람으로 변할 수가 없어. 구렁이는 내 천적이니까. 그리고 사람으로 변신하면 귀찮은 게 한두 가지가 아냐. 너도 지금 보다시피 내가 한 미모 하잖아? 남자애들이 좀 귀찮게 해야 말이지.”
“인제 보니 완전히 공주병에 걸린 두꺼비로구만……. 내가 보기엔 지금 모습보다 두꺼비로 있을 때가 훨씬 더 예쁘고 귀여운 것 같은데.”
“뭐?! 지금 제정신으로 그런 소릴 하는 거야?”
발끈하는 섬백의 모습이 귀여워 단우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근데 왜 날 따라온 거야?”
“그건…… 네가 내 생명의 은인이니까.”
섬백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섬백의 수줍어하는 모습에 단우도 괜스레 얼굴이 빨개졌다.
“이봐 넌 왜 얼굴이 빨개진 거야.”
“그러는 넌.”
“잠깐! 지금 이렇게 잡담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서둘러 화암사로 가야지.”
“아! 맞다! 여의주!”
단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손목시계는 벌써 1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네가 갑자기 나타나 놀래키는 바람에 늦었잖아. 오늘 용을 깨우지 못하면 보름 동안 또 기다려야 한다고.”
“오늘 못하면 그까짓 거 보름 동안 기다리면 되잖아.”
“안 돼. 난 하루빨리 엄마를 보고 싶단 말이야!”
“네가 빌려고 하던 소원이 그거였어? 엄마를 다시 만나는 거?”
단우는 갑자기 멈춰 서서 말했다.
“응. 여섯 살 때 날 고아원에 맡긴 후로는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어. 꼭 날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해놓고선…… 하루도 빠짐없이 기다렸어. 꿈속에서도…… 하지만……."
단우의 눈에는 어느새 구슬 같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 단우는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빨리 가야 돼. 이럴 시간이 없어.”
단우와 섬백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아슬아슬하게 11시 59분에 화암사 동종 앞에 도착했다. 가쁜 숨을 가라앉히며 12시가 되자 단우는 있는 힘껏 종을 치기 시작했다.
댕~ 댕~ 댕~ 댕~ 댕~
다섯 번의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화암사는 세찬 바람에 휩싸였고 연꽃잎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바람은 회오리를 치며 점점 더 강해졌고 단우와 섬백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 단우는 한 손으로는 절 기둥을 있는 힘껏 잡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바람에 떠밀려 날아갈 것 같은 섬백의 손을 꼭 잡았다. 잠시 후 바람은 언제 불었냐는 듯 잠잠해졌고 눈앞에는 화암사를 한입에 삼켜버릴 것만 같은 거대한 용이 눈을 번뜩이며 서 있었다. 용의 거대한 모습에 단우는 입을 쩍 벌린 채 다물 줄을 몰랐다.
“나를 깨운 자, 그대인가?”
용이 나지막하고도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용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단우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제가 여의주를 찾아오겠습니다.”
“그대가?”
용이 큰 소리로 껄껄거리며 웃었다.
“그대 같은 작은 소년이 무슨 수로 여의주를 찾아오겠다는 것인가? 나를 오랜 잠에서 깨운 사람이 고작 꼬마였다니…….”
용은 한숨을 내쉬었다.
“꼭 찾아오겠습니다. 방법만 알려 주십시오.”
단우는 결의에 차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용은 단우의 흔들림 없이 단호한 눈빛과 기개에 마음이 흔들렸다.
“흠…… 아직 소년이긴 하지만 당찬 구석이 있군.”
용은 고개를 돌려 섬백을 바라보았다.
“달두꺼비와 함께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좋아, 방법을 가르쳐주지. 먼저 여의주에 대해 말해주겠네. 여의주는 일종의 보석함과도 같아. 여의주 안에는 다섯 가지의 구슬이 들어 있는데, 여의주는 그 구슬을 모아놓는 역할을 하지. 그 구슬은 따로 떨어져 있으면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한 데 모아놓으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단다. 그런데 내가 여의주를 땅에 떨어뜨리는 순간 여의주는 깨져버렸고, 그 속에 들어 있던 다섯 개의 구슬도 모두 각기 흩어져 버렸지. 그리고 그 흩어진 구슬들은 구미호, 녹두군사, 불가사리, 이무기, 황충, 이 다섯 요괴가 가져가 버렸단다. 여의주를 잃은 나는 그 요괴들과 싸울 힘마저도 없었고 여의주를 다시 찾을 방도가 없었어. 그대가 나에게 여의주를 가져다주기 위해선 다섯 요괴와 싸워야 하지. 그럴 수 있겠는가?”
“싸우겠습니다. 그런데 그 다섯 요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어떻게 알죠?”
용은 단우에게 세월에 색이 바랜 누런 지도와 복주머니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 지도에는 빨간 점 5개가 표시되어 있지. 바로 이 점들이 요괴가 살고 있는 곳을 나타낸다네. 요괴가 움직이면 빨간 점도 따라 움직이게 되지. 그리고 그대가 모은 구슬은 이 복주머니에 넣게.”
“다섯 구슬은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올 테니 그동안 마음 놓고 푹 주무시고 계세요.”
용은 또 한 번 껄껄 웃었다.
“그 녀석 당돌한 줄만 알았더니 허풍도 세구나. 내 속는 셈치고 너를 믿어보겠다.”
다시 세찬 회오리바람이 불었고 용은 연꽃잎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주위가 너무나 고요해졌다. 단우는 손에 들고 있는 누런 지도만 아니었다면 용을 만났던 일이 꿈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섬백이 단우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이제 그만 정신 좀 차리지. 그 지도만 벌써 5분째 쳐다보고 있는 거 알아?”
“어느 요괴부터 잡아야 하지?”
“지금 한밤중인 거 안 보여? 오늘은 이만 돌아가서 자고 요괴 잡으러 가는 건 내일부터 하자. 마음 단단히 먹는 게 좋을 거야. 요괴는 쉬운 상대가 아니야. 그리고 이 약을 먹어.”
섬백은 알사탕처럼 생긴 약을 단우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뭔데?”
“너 같은 보통 사람들의 눈엔 요괴가 보이지 않아. 이 약을 먹으면 요괴를 볼 수 있을 거야.”
단우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약을 한입에 꿀꺽 삼켰다. 섬백은 다시 두꺼비로 변해 단우의 어깨 위로 올라갔고, 단우는 산을 내려와 고아원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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