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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16 조선을 관통했다는 9개의 대로들, 어디였을까?

 조선시대 이전인 삼국시대에는 각국의 도읍지를 중심으로 간선도로가 설치되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개경을 중심으로 한 도로망이 개설되었었습니다. 산예도, 금교도, 절령도를 비롯한 22개의 도로가 역로로서 개설된 바 있기도 하구요.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기존의 개경중심의 도로망이 이제 한양중심으로 재편되고 전국 도로망의 기준점을 성문(城門)으로 정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전국도로의 기점은 돈화문이었고, 그곳에서 각 성문인 4대문으로 이어졌다.  4대문인 숭례문(崇禮門. 남대문). 흥인문(興仁門.동대문). 돈의문(敦義門. 서대문). 까지는 경복궁의 광화문 또는 창덕궁의 돈화문이 그 기점이고, 전국 각 지방으로 뻗는 의주로(義州路. 한양·의주) 우로(右路. 한양·해남). 중로(中路. 한양·통영). 그리고 강화로 이어지는 도로는 숭례문이 그 시작점이었습니다.

대개 공식적으로 출발하는 대문은 도성의 남대문인 숭례문과 동대문인 흥인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 방면의 출발이 전국의 도로망과 연결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1770년(영조 46)에 홍봉한(洪鳳漢) 등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문헌비고文獻備考)》에는 조선시대의 큰 길을 '9대 간선도로'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제1호로 서울에서 의주를 연결하는 도로. 연행로 또는 사행로라고 부릅니다. 전국의 간선도로 가운데, 가장 비중이 컸던 이 도로는 명나라와 청나라 사신들의 내왕로였기 때문에 정비가 가장 잘 된 도로였지요.

  제2호로 서울에서 원산을 거쳐 함경북도 서수라로 연결되는 도로입니다.

  제3호로 서울에서 동해안의 평해로 연결되는 도로. 관동대로라는 별칭이 있습니다.

  제4호로 서울에서 용인과 충주, 문경새재, 상주, 밀양을 거쳐 부산으로 연결되는 도로. 영남좌도 또는 영남중로 또는 영남대로라고 부릅니다.

  제5호로 서울에서 경상도 김천을 거쳐 통영으로 이어진 도로. 중로라고도 부릅니다.

  제6호로 서울에서 경상도 통영을 잇는 도로. 동작진을 지나 남태령을 넘으면 과천에 다다릅니다. 수원을 지나 천안에 이르고 공주와 은진(지금의 논산)을 지나 여산에 이르게 되지요. 삼례와 전주, 오수. 남원. 함양. 산청 진주를 거쳐 통영으로 가는 일명 통영대로입니다.

  제7호로 서울에서 삼례에 이르는 길은 같고, 전주, 태인, 정읍, 나주, 강진을 거쳐 해남의 이진항에서 제주의 조천관을 거쳐 관덕정에 이르는 도로. 삼남대로라고 부릅니다.

  제 8호로는 서울에서 평택의 소사까지는 같고, 소사. 평택. 요로원. 곡교천. 신창, 신례원을 거쳐 충청수영에 이르는 길입니다.

제 9호로는 서울에서 강화를 연결하는 간선도로로 서울 양화도 양천. 김포, 통진, 강화입니다. 

그러나 김정호는 <대동지지>.에서 10대 간선도로로 분류하고 있으며, 수원별로와 서울 봉화를 잇는 간선도로를 추가하고 있습니다. 수원별로는 정조임금이 그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기 위해 오갔던 길의 중요성과 함께 조선 초기부터 제사를 지냈던 태백산에 <조선왕조실록> 이 보관되어 있던 것이 작용했을 것으로 봅니다.

도로에는 여러 가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았던 도로들이 있어서 그곳에 지나는 사람들의 편의를 제공하기도 하고 제한을 가하던 도로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첫 번  째가 우리나라와 중국 사신들의 내왕이 빈번하였던 입경로인데 청나라의 수도가 연경에 있었으므로 연경로라고 하였었습니다. 이 도로는 넓은 의미에서 서울에서 연경(燕京.北京)까지의 도로를 말하며, 좁은 의미로는 서울에서 의주까지의 도로를 말합니다. 서울에서 북경까지의 거리가 대체로 3,130리였고, 서울에서 의주까지는 1천리였다고 하네요.

연평균 5회에 걸쳐 사신들이 오고갔으며, 중국의 내왕 사절까지 오가던 길이었습니다. 청나라와 외교관계가 정상화된 1644년부터 평균 매월 1회씩 대규모 국사(國使) 행렬의 통과가 있었으므로 국내 도로 가운데 가장 잘 닦인 도로였고 중시되었던 도로가 의주로였습니다. 

두 번째가 일본 사신들이 서울로 들어오던 길로서 왜사(倭使)입경로 라고 불렀습니다. 일본 사신이 3포(부산포.염포. 제포)에 도착하여 각기 정해진 노선으로만 서울까지 오고 가는 도로를 말합니다.

    세 번 째가 파발로(擺撥路)입니다.  파발은 통신만을 위주로 하는 기구로서 변방의 급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려는 목적에서 설치되었습니다. 파발에는 기발(騎撥)과 보발(步撥)이 잇으며, 기발은 사람이 말을 타고 달려서 급보를 전달하는 방식이며, 보발은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달려서 급보를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이 밖에도 임금이 능, 원, 묘에 거동할 때 지나던 능행로(陵行路), 임금이 온천에 다녔던 온천로(溫泉路)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글/ 신정일 문화사학자, 사단법인 우리땅걷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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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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