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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1/30 땀과 생명이 흐르는, 만경강 황토길
맨발로 만나는 황토길의 포근함
 
황토, 하면 생각나는 시가 있다.‘ 소록도가는길’이란 부제가 붙은, 한하운 시인의「전라도 길」이다.
‘ 가도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라고 시작하는 첫 연은 정말 막막한 절망감을 준다. 그래서 내가 뜨거운 햇볕 아래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절망감까지는 아니더라도 필자가 막 초등학교에 들어갔던 7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황토는 가난과 낙후의 상징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새마을운동을 통해 농촌의 주거환경을 모두 바꿨다. 제일 먼저 한 일이 지붕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리고 황토 흙집을 허물고 콘크리트 벽돌집을 지었다. 콘크리트벽돌로 지은 이층집은 당시 좀 사는 사람이 사는 집이었다. 그렇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황토의 이미지는 21세기에 들어서 환골탈태했다.

 
황토는 원적외선을 발산하여 신진대사를 왕성하게 하거나, 체내의 독소를 제거해서 통증을 완화시키는 등 여러 가지 탁월한 약리효과가 있는 건축소재로서 각광을 받게 된다. 특히 갖은 약을 써도 치료가 안 되는 아토피피부염을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게 밝혀지자 요즘은 아파트의 내장소재로 활용하기도 한다.

사실 전통건축에서 황토는 가장 중요한 재료 중 하나다. 일단 황토는 옹기가 숨을 쉬듯이 공기가 잘 통한다. 그리고 습도 조절능력이 뛰어나다. 그러니 당연히 곰팡이가 피지 않고 나쁜 냄새가 나지 않는다. 또한, 열을 오랫동안 보관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우리의 조상은 경험을 통해서 이런 효능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과학이 밝힐 때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뿐이다.

바야흐로 황토는 21세기 웰빙 트랜드에서 주된 상징이 되었다. 만경강 변을 따라 조성된 황토길은 하리대교에서 시작한다. 길을 시작하는 입구에 신풍마을을 알리는 비석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길은 신풍마을 걸쳐 둘러져있다. 하리대교 위에는 무엇이 바쁜지 쉴 새 없이 자동차가 지나가고 있다. 하리대교에 올라가 만경강 하천부지를 바라본다. 하천부지에는 볏단이 논 위에 덮여 있다. 땅이 얼지 못하게 한 것이리라. 황토길 표지판이 길을 안내한다. 길을 찾기는 매우 쉽다. 길은 마을 쪽 강둑 아래에 위치해있다. 마을 전경은 여느 시골마을과 다른 것이 없다. 아쉽게도 어제 내린 눈 때문에 황토가 잘 보이지 않는다. 길은 마을도로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농기계가 오고갔고, 농기계가 지나간 자리마다 눈이 녹아 많이 질퍽거린다. 겨울만 아니라면 맨발로 걷고 싶다.

사실 황토길의 효능을 직접 느끼려면 맨발로 걷는 게 좋다. 마을로 들어가는 사거리가 나온다. 좌측으로 가면 마을이고, 우측으로 가면 도로, 정면으로 가면 길이다. 황토길 곳곳에 도로로 올라가는 샛길이 있다. 사람이 걷게 하기 위해서는 농기계나 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차가 오고 가게 되면 황토도 많이 훼손되고 쓸려나갈 것이다. 아마도 길 조성이 완성되지 않은 듯하다.

잠시 숨을 고르며 마을을 본다. 일부 논은 이미 갈아엎어져 있다. 봄이 곧 오는가보다. 농민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절기를 알 수 있다. 아직도 우리가 생활 속에서 음력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수천 년 동안 문화로 유전된 농경사회의 유전자 때문이다. 길 눈 위에 벌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아직 꽃도 피지 않았는데 넌 무엇을 찾으러 온 거냐. 길 중간쯤에서 높이 쌓은 볏단이 길을 막고 있다. 동네 아저씨가 볏단을 옮기다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었나 보다.

도로로 올라가는 세 번째 샛길이 나온다. 이 길은 비포장이다. 세 번째 샛길을 따라 올라가 만경강을 바라본다. 만경강은 여름에도 수량이 많지 않은 편인데, 겨울이라 몸이 더 홀쭉해졌다. 문득 늙은 어머니 젖가슴 같아 서글퍼진다. 강을 따라 입 벌린 배고픈 땅에 물을 주느라 만경강은 탱탱해질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이 강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일까. 모든 문명은 강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4대 문명이 황하,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인더스 강, 나일 강을 끼고 태동했다. 도시도 강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세계의 거의 모든 고도(古都)에는 강이 흐르고 있다. 한강이 없었다면 서울이 한국의 중심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아마 힘들었을 것이다. 인간은 강에서 고기를 잡고 물을 얻었으며 교통수단으로 이용했다.

그렇지만 강이 항상 천사의 얼굴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포악한 얼굴을 드러낸다. 홍수와 범람은 농경사회에서 가장 두려운 천재지변이었다. 수십 년 동안 가꿔놓은 옥토가 한순간에 모래더미가 되기도 하고 수백 년 동안 번성했던 도시가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기도 한다. 고대인이 얼마나 비와 강을 두려워했는지는 많은 문화권에서 홍수신화가 발견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이 정착생활을 한 이래로 치수(治水)는 해결해야 될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였다. 

주역과 비슷한 ‘하도낙서(河圖洛書)’란 책이 있다. 보통 예언서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수리서(數理書)이자 치수서(治水書)라는 게 더 정확하다. 중국 태평성대의 상징인 요순시대에서 순은 평생을 황화의 홍수를 다스리기 위해 힘쓴 임금이었다. 해마다 홍수로 토지의 경계가 바뀌었기 때문에 이집트는 기하학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강은 인간의 삶과 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만경강은 완주군 원등산 밤티마을에서 발원하여 전주천과 같은 여러 지류와 합류하여 호남평야의 북부를 굽이쳐 흘러간다. 총 길이는 약 90여 km에 이르고 유역면적은 대략 1,600㎢이다. 옛날부터 수운과 관개에 많이 이용되었고 신환포(김제), 목천포(익산), 사천리(익산), 춘포리(익산) 등이 주요 선착장이었다. 주로 출곡기에 쌀을 운반하기 위해 사용하였는데 만조 때면 선착장이 있는 곳까지 바닷물이 올라왔다고 한다. 목천포 바로 근처에 있는‘백구(白鷗)’란 지명이 이 사실을 방증한다.

백구는 흰 갈매기란 뜻이다. 바다와 만나는 곳은 현재 새만금 간척사업이 진행되어 마무리단계에 있다. 만경강 거치는 지역은 전주시와 완주군, 익산시와 김제시 등 4개 시군이다. 주요 지류로는 국가하천인 소양천과 전주천을 비롯하여, 지방하천인 고산천, 익산천, 삼례천, 목천포천,오산천 등이 있다. 완주군 관내에는 만경강의 상·중류가 흐른다. 강은 완주군 동상면 일대에서 발원하여 고산과 봉동을 거쳐 삼례에 이르러 전주천과 합류하고 바다로 향한다. 
 


만경강은 징게맹게(김제 만경) 외에 밋들(넓은 들)을 비롯하여 강을 따라 펼쳐있는 땅에 젖줄이 되었고, 그 너른 들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기쁨과 애환을 함께 해왔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근대기를 거치며 만경강 유역 사람들이 겪은 수탈과 이산의 아픔은 많은 문학 작가의 작품 속에서 회자되었다.

소설가 조정래는 대하소설『아리랑』에서 대장촌, 백산, 옥구 등 만경강 근처에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일제도로에서 본 황토길 77 강점기 수탈의 시대를 견뎌온 민중의 삶을 그려냈다. 또한, 소설가 윤흥길은 소설『기억 속의 들꽃』에서 전쟁의 비극을 만경강 다리 근처에 있는 시골 마을 배경으로 형상화했다. 그리고 시인 안도현은 시「만경강 노을」에서 가난 때문에 몸을 팔았던 여성을 만경강 노을에 비유하여 ‘피 멍진 사랑’이라고 탄식했다.

자전거와 함께하는 만경강의 생태문화

강둑 위로는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봄이면 지천에 떨어지는 벚꽃을 머리에 이고 사람들은 황토길을 맨발로 걷고 있으리라. 그리고 저기 있는 평상에 앉아 만경강을 바라볼 것이다. 그런데 평상을 올라가려면 도로까지 돌아가야 하는 게 불편하다. 사람만 다닐 수 있는 만경강 다리가 나온다. 이런 다리가 좋다. 길을 걷다가 올라와 일없이 이 다리를 건너도 좋으리라.

길을 트럭이 지나간다. 역시 좋지 않다. 황토길 중간 중간에 있는 전봇대도 경관에 좋지 않다. 전봇대를 옮기
지 못한다면, 황토길과 어울리게 잘 꾸몄으면 좋겠다. 샛길도 좁은 길로 만들거나 잘 정비했으면 한다. 마을로 통하는 샛길은 차가 넘어오지 않게 만들면 좋겠다. 강 쪽으로 들어서니 회포대교가 보인다. 회포대교는 전주시내에서 완주과학산업단지로 가는 길의 교량이다. 벌써 길의 막바지다. 그리고 만경강의 하천부지에 난 좁고 붉은 길도 보인다. 자전거전용도로이다.


완주군은 회포대교를 중심으로 동서를 연결하는 만경강 자전거도로와 남북을 연결하는 회포대교 삼봉지구 간 자전거전용도로를 개설했다. 이 길이 가진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만경강이 직접 보이지 않는다는 점인데, 자전거를 가지고 오면 이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것 같다. 길을 나오니 강변에 만경강생태문화지도가 있다.

가시연꽃, 갈대, 검
정말, 개쇠뜨기, 고마리, 기생초, 나사말, 노랑어리연꽃…. 그리고 개개비, 논병아리, 왜가리, 청둥오리, 황조롱이, 흰뺨검둥오리. 만경강생태계에 사는 생명체들이다. 참 고운 이름들이다. 이름만 보아도 행복하고 즐겁지만 직접 볼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만경강과 만경강의 생명들을 보면서 길을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황토길을 걸으며 내내 든 생각이다. 정말 ‘땀과 생명이 흐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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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