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암사 길 코스 : 약 2.5km. 1시간 30분 소요.
○ 요동마을 - 화암사주차장 - 화암사길 - 화암사우화루
○ 출발지 :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요동마을
요동마을
정말 오랜만에 화암사(花巖寺)에 간다. 아마 십여 년도 훌쩍 넘은 것 같다. 화암사에는 유명한 게 많다. 국가 보물인 우화루와 극락전은 물론이고, 봄이면 화암사 입구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얼레지꽃도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 사실 전국적으로 화암사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한 이는 안도현 시인이다. 아마 안도현 시인처럼 화암사를 사랑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시 제목까지「화암사, 내 사랑」이라고 했을까.
인간세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한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깨를 치고가는 불명산 능선 한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화암사, 내 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
(안도현의 시「화암사, 내 사랑」전문)
이길은 화암사 아래에 있는 요동마을부터 시작한다. 요동마을과 화암사는 물과 물고기의 관계다. 요동마을은 절을 지킨 사람들이 사는 곳이자, 신도들이 사는 곳이며, 경제생활에서도 공생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이 화암사를 불로 태우려 했을 때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막았다고 한다. 지금도 화암사에 인력이 필요하면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요동마을이 있기에 화암사가 있는 것이다.
요동마을을 다른 말로‘싱그랭이’마을이라고도 부른다. 싱그랭이에 대한 표기는‘신구렝이’,‘ 신거랭이’,‘ 신그렝이’등으로 책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지만, 현재 주민들은‘싱그랭이’를 사용하고 있다. 다음은『요동마을의 역사문화와 연계한 사업개발을 위한 마을조사보고서』(완주문화의집, 2009)에서 요동마을의 주민인 전명수 씨
가 설명하는 싱그랭이의 유래이다.
“여기가 주막뜸이랴, 예전에 정자나무 있던 곳에서 여까지 전부 주막이여. 지금은 바깥뜸이라 그러지. 왜 주막뜸이냐면, 옛날에 원님이다니던 길이거든요. 요 정자나무 위에 쪼끔 올라가면 원터거든요. 원(님)이 전주를 갈라믄 항상 원터에서 쉬어서 가셨다 이거요. 원님이가면 인제 밑에 따라다니는 사람들 많이 있을 것 아녀. 원님이 원터에서 주무시면 나머지 분들은 주막거리에서 약주를 잡수고 그랬다 하더라고요. 그래서‘주막뜸 주막뜸’한 거여. 싱그랭이라는 것은 정부에서 시켜서 그런 건가 모르겠는데, 옛날에 짚신 신고 다니면(이곳을 지나가면) 항상 짚신을 삼아서 여기다 걸어놔요. 그러면 원님이 됐던 누가 됐던 그걸 바꿔 신고 갔다는 데서 싱그랭이라고 유래가 됐어요.”
신을 걸어놓았다고 해서 싱그랭이인 것이다. 요동마을에는 산제와 당산제가 아직도 해마다 열리고 있다.
화암사주차장
안도현 시인이「화암사, 내 사랑」에서“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이 시를 본 수많은 사람들은 화암사를‘알아서’잘 찾아갔다. 참고로 말하자면 실상 안도현 시인은 필자와 같은 문학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화암사를 꼭 가보라고 반 강요조로 권하곤 했다. 이런 안도현 시인의 답사 선동에도 꿈쩍 않던 필자가 화암사를 찾아간 것은 순전히‘깨끗한 개 두 마리’때문이었다.
화암사 안마당에는
스님 모시고 노는 개 두 마리가 있습니다.
그 귀가 하도 맑고 깨끗해서
뒷산 다람쥐 도토리 굴리는 소리까지
훤히 다 듣습니다.
간혹 귀 쫑긋 세우고 쌩하니 달려갔다가는
소득 없이 터덜터덜 돌아올 때가 있는데
귓전에 닿는 소리에
덕지덕지 욕심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저 그냥 한번 그래 본 것입니다.
바람이, 일 없이 풍경소리를 내는 물고기 꼬리를
그저 그냥 한번 툭 치고 가듯이
(안도현의 시「화암사 깨끗한 개 두 마리」전문)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불명산 기슭에 있는 사찰 화암사는 신라 효소왕 3년인 694년에 일교국사가 창건하였다. 원효와 의상대사가 수도하였고 설총이 공부하였다는 천년고찰이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금산사의 말사다. 완주에 있는 국가지정문화재는 총 8점인데, 그중 4개가 송광사에 있고 2개가 화암사에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은 하앙식 건축인 극락전과 한국 고대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우화루가 그것이다. 각각 국가보물 663호와 662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밖에 동종과 중창비가 전라북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어느덧 화암사 입구주차장에 도착했다. 이곳에 차를 주차하고 천천히 걸어 올라간다. 화암사는 절 자체도 꽃이지만 앞마당도 꽃밭이다. 절 이름에도 꽃이 들어가고 건물 이름에도 꽃이 들어간다. 우화루(雨花樓)는 꽃이 비처럼 내려앉는 누각이란 뜻이다. 화암사까지 차로 올라가는 방법은 있지만, 이곳까지 와서 차를 타고가려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화암사에 오지 말기를 권한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곧 날이 풀리면 이 길가에서 언 땅을 뚫고 노란 꽃을 피우는 복수초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이곳의 전봇대를 복수초로 꾸몄다. 이어 제비꽃 노루귀 등이 흰색과 분홍색 그리고 보라색 얼굴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댈 것이다. 안 예쁜 꽃이 어디 있으랴만 봄 화암사 길에 피는 꽃 중 백미는 역시 얼레지다. 화암사 길 주변에는 얼레지 군락이 있다. 얼레지의 꽃말은‘질투’다. 왜 질투인지 핀 꽃을 보면 안다. 얼레지는 봉오리가 올라오면 땅을 향해 자주색에 가까운 붉은 보라색 꽃을 피운다. 그리고 여섯장의 꽃잎이 하늘을 향해 말려 올라간다. 그 모습을 보면, 딴 여성에게 한눈파는 남자친구에게 질투를 느껴 치맛자락을 올리며 유혹하는 아가씨가 떠오른다.
3월 화암사에 오면 지천에서 붉은 보랏빛으로 세상을 유혹하는 얼레지를 볼 수 있다. 얼레지는 주로 고산지대의 볕이 잘 드는 숲속에 무리지어 자라는데, 씨에서 싹이 터 꽃이 피기까지 7년 이상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얼레지 군락은 청정한 생태환경을 보증하는 표시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제발 얼레지를 뽑아가는 무식한 행동을 하지 마시라. 7년 만에 피운 꽃이다.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
3월 화암사에 오면 지천에서 붉은 보랏빛으로 세상을 유혹하는 얼레지를 볼 수 있다. 얼레지는 주로 고산지대의 볕이 잘 드는 숲속에 무리지어 자라는데, 씨에서 싹이 터 꽃이 피기까지 7년 이상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얼레지 군락은 청정한 생태환경을 보증하는 표시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제발 얼레지를 뽑아가는 무식한 행동을 하지 마시라. 7년 만에 피운 꽃이다.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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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 화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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