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재, 치마산, 작은 불재
구이면 산길은 호남정맥인 경각산(659.6m), 치마산(607m), 오봉산(513.2m)과 호남지맥인 모악산(793.5m), 국사봉(543m), 고덕산(603.2m), 금성산(330m) 등을 능선으로 잇는 장방형의 등산로이다. 거리만 60.2㎞에 이르고, 전주시·정읍시·김제시·임실군·완주군 등 5개 시군의 경계를 넘나드는 긴 등산로이다. 이 산길은 등산객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어서 수많은 코스가 개발되어 있다. 그중 긴 것은 초당골에서 시작하여 엄재, 국사봉, 밤티재, 배재, 모악산을 거쳐 두방마을에 이르는 구간으로, 총거리가 23.4km나 되고 종주시간만 해도 14시간이나 된다. 짧은 것은 불재에서 출발하여 치마산을 거쳐 작은불재에 이르는 구간인데, 총거리가 7.1km이고 완주하는 데 4시간 정도 걸린다.
이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구간은 효간삼거리에서 초당골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총거리가 23.3km 정도 되는 이 구간은 호남정맥이 이어지는 능선이어서 전국에서 등산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구간이다. 그래서 호남정맥 구간 중에서도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불재에서 초당골까지 이어지는 구간을 산행하기로 했다. 이 구간은 하루에 산행할 수 있는 최대치 거리이기도 하다.
이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구간은 효간삼거리에서 초당골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총거리가 23.3km 정도 되는 이 구간은 호남정맥이 이어지는 능선이어서 전국에서 등산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구간이다. 그래서 호남정맥 구간 중에서도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불재에서 초당골까지 이어지는 구간을 산행하기로 했다. 이 구간은 하루에 산행할 수 있는 최대치 거리이기도 하다.
나무들은 거의 굴참나무, 갈참나무 등 참나무 종류가 많다. 어느 길목에선가 산수유를 보았다. 곧 노란 꽃이 필 것이다. 산수유는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나무이기도 하다. 가끔 보이는 호남정맥의 산줄기가 멋있다. 하지만 불재에서 치마산까지 가는 길은 응달이 많아서 눈비가 오면 길이 매우 위험했다. 경사가 급한 봉우리는 내내 양발과 양손을 다 사용해서 올라가야만 했다.
지금이야 백두대간이란 개념이 일반화되었지만,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반인에게 백두대간이란 개념은 생소한 말이었다. 태백산맥, 소백산맥 등 지금까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산맥’이란 개념은 일본학자가 만든 것이다. 1903년 일본 지질학자 고토분지로가 발표한 ‘조선의 산악론’에 기초를 두고, 일본 지리학자 야스쇼에이가 재집필한 ‘한국지리’라는 교과서에서 나온 것이다.
그전까지는 우리에게 ‘산맥’이란 개념이 없었다. 우리 선조는 산줄기를 대간(大幹), 정간(正幹), 정맥(正脈)이란 개념으로 이해했다. 이렇게 나누는 근본 원리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인데, ‘산줄기는 물을 넘지 않고, 산이 물을 나눈다’ 라는 의미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근대화과정에서 잊혔던 이 개념이 부활한 때는 1980년대이다. 1980년 겨울, 고지도 연구가인 이우형씨는 인사동 고서점에서 우연히『산경표(山經表)』란 책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조선 시대 영조 때 실학자였던 여암 신경준(1712-1781)이 쓴 책인데,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의 큰 산줄기를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구분하여 정리했다.
이 중에서 근간이 되는 가장 커다란 산줄기가 바로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이다. 최근에 규장각에서 산경표 진본이 발견되었는데, 이 진본에는 1대간, 2정간(장백정간, 낙남정간), 12정맥으로 산줄기를 나누고 있다고 한다. 이후,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행은 80년대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사회운동 차원까지 들불처럼 번져갔다.
호남정맥은 금남호남정맥이 끝나는 주화산에서 갈라져 나온다. 남서쪽으로 내장산에 이르고, 내장산에서 남쪽으로 나아가 장흥 제암산까지 나간다. 제암산에서 다시 남해를 끼고 동북쪽으로 상행하여 광양 백운산에 종착하는 산줄기가 호남정맥이다. 모악산 길은 이 호남정맥에서도 슬재에서 시작하여 경각산을 거쳐 운암삼거리에서 끝나는 2구간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구간에도 주요 기점이 되는 산은 경각산, 치마산, 오봉산이다. 그 기점이 되는 산 중 하나인 치마산에 도착했다.
치마산(馳馬山)은 형세가 달리는 말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치마산 정상으로 오는 길에 동물 발자국을 하나 보았는데 생김새가 개과 종류 같았다. 하지만 개가 이 산까지 산책할 리는 만무하고, 너구리라고 하기엔 좀 컸다. 무엇이든 잘 살아남거라. 치마산에는 피부병과 당뇨병에 효험이 있는 얼음굴 약수가 있다던데, 마시러 갈 여력은 없었다. 치마산 정상에 올랐지만, 날씨가 흐려서 시야 확보가 잘 안 됐다.
치마산 정상에서 작은 불재 가는 길은 눈이 거의 녹아서 편했다. 양달이 많다는 증거다. 띄엄띄엄 나무에 산악인들이 노란 페인트로 등산로를 표시해놓았다. 치마산에서 임실 삼길리로 빠지는 길 초입은 화전이라도 일군 듯 주위에 나무가 없다. 삼길리로 가는 길은 다시 응달이다. 눈이 많았다. 누군가 벌을 치는지 벌통을 만나기도 했다. 어느새 삼길리다. 걸어서 군경 계를 넘었다. 임실 삼길리에서 본 치마산은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그에 비해 오봉산은 상당히 높아 보였다. 다시 작은 불재로 올라갔다. 도로가 나왔는데 구제역방역시설이 있었다.
오봉산, 초당골, 모악산
작은 불재로 가는 산길에 오르자 다시 눈길이다. 불편하긴 했지만 눈 쌓인 오밀조밀한 산길은 참 예뻤다. 조금 오르자 멀리 오봉산이 보였다. 여기서 길을 잃어 초당골 쪽으로 다시 내려갔다. 도로가 나왔는데 초당골은 옥정호를 끼고 있어서 도로변에 휴게소나 먹을거리를 파는 가게가 많았다. 그냥 오봉산으로 오르기로 했다. 초당골에서 올라가는 길은 가끔 경사가 급해지긴 했지만 대부분 무난한 길이다. 정상에 가까워지자 옥정호가 그 아름다운 자태를 보였다. 옥정호의 모습은 그대로 강이었다. 구불구불 뱀 모양으로 흐르는 강. 등산객 몇 분이 옥정호를 바라보며 쉬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은 다시 응달이어서 불편했다. 산행은 인생과 똑같다. 양달이 있으면 응달이 있고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다. 눈이 쌓여 있어도 그게 길이라면 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눈 녹은 길을 찾다가는 아예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
차를 타고 구이 쪽으로 돌아 나오자 모악산이 눈앞에 확 다가온다. ‘어머니 같은 땅’이란 말처럼 진부한 표현이 없다. 우리의 전통음양철학에서 당연히 어머니는 땅이고, 땅은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진부한 표현밖에 쓸 수 없는 산이 모악산이다.
산 정상에 어미가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형태의 바위가 있어‘모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지만, 호남평야의 젖줄 구실을 하는 구이, 금평, 안덕저수지와 불선제, 중인제, 갈마제 등의 물이 모두 이 곳 모악산으로부터 흘러든다고 하니 ‘어미뫼’란 말이 딱 맞다. <금산사지>에는‘엄뫼’와‘큰뫼’로 칭하였다.
모악산은 높이가 793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하지만 모악산에 오르면 아래로 금만평야가 펼쳐져 있고, 북동쪽으로는 전주 시내와 전주천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좋으면 멀리 남으로는 내장산, 서쪽으로는 변산반도까지 볼 수 있다.
예로부터 논산시 두마면의 신도안, 영주시 풍기읍의 금계동과 함께 난리를 피할 수 있는 3대 피난처로 알려져 있다. 또한, 증산교를 비롯한 수많은 민족종교가 모악산에서 발원했다. 모악산에는 금산사, 귀신사, 수왕사 등 여러 사찰이 있는데, 완주군에 속한 사찰로는 구이면에 위치한 대원사와 수왕사가 있다.
옛날부터 모악춘경(母岳春景)은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변산하경, 내장추경, 백양설경과 함께 호남 4경의 하나로 꼽혔고, 시내와 가깝기 때문에 등산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래서 등산로만 해도 20여 개가 넘는다. 특히 구이면 원기리 상학마을에서 출발하여 대원사, 수왕사를 거쳐 모악산 정상에 이르는 등산로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이다.
이러한 모악산 길 못지않게 아름답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이 구이면 산길이다. 봄에 오면 구이저수지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진달래, 개나리, 철쭉, 산벚꽃으로 수를 놓은 산들의 기막힌 풍광을 볼 수 있다. 인자요산(仁者樂山)이며 지자요수(知者樂水)라고 했다. 그래선지 산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못 봤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인자한 사람이 산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산이 인자한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어머니 산, 모악산을 중심으로 금성산, 고덕산, 경각산, 치마산, 오봉산, 국사봉 등이 착한 애들처럼 줄 서 있는 구이는 참 좋은 땅이다. 꼭 산에 오르지 않더라도 구이에 와서 그냥 먼 산 구경만 하다가 가도 좋을 일이다.
산 정상에 어미가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형태의 바위가 있어‘모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지만, 호남평야의 젖줄 구실을 하는 구이, 금평, 안덕저수지와 불선제, 중인제, 갈마제 등의 물이 모두 이 곳 모악산으로부터 흘러든다고 하니 ‘어미뫼’란 말이 딱 맞다. <금산사지>에는‘엄뫼’와‘큰뫼’로 칭하였다.
모악산은 높이가 793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하지만 모악산에 오르면 아래로 금만평야가 펼쳐져 있고, 북동쪽으로는 전주 시내와 전주천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좋으면 멀리 남으로는 내장산, 서쪽으로는 변산반도까지 볼 수 있다.
예로부터 논산시 두마면의 신도안, 영주시 풍기읍의 금계동과 함께 난리를 피할 수 있는 3대 피난처로 알려져 있다. 또한, 증산교를 비롯한 수많은 민족종교가 모악산에서 발원했다. 모악산에는 금산사, 귀신사, 수왕사 등 여러 사찰이 있는데, 완주군에 속한 사찰로는 구이면에 위치한 대원사와 수왕사가 있다.
옛날부터 모악춘경(母岳春景)은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변산하경, 내장추경, 백양설경과 함께 호남 4경의 하나로 꼽혔고, 시내와 가깝기 때문에 등산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래서 등산로만 해도 20여 개가 넘는다. 특히 구이면 원기리 상학마을에서 출발하여 대원사, 수왕사를 거쳐 모악산 정상에 이르는 등산로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이다.
이러한 모악산 길 못지않게 아름답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이 구이면 산길이다. 봄에 오면 구이저수지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진달래, 개나리, 철쭉, 산벚꽃으로 수를 놓은 산들의 기막힌 풍광을 볼 수 있다. 인자요산(仁者樂山)이며 지자요수(知者樂水)라고 했다. 그래선지 산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못 봤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인자한 사람이 산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산이 인자한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어머니 산, 모악산을 중심으로 금성산, 고덕산, 경각산, 치마산, 오봉산, 국사봉 등이 착한 애들처럼 줄 서 있는 구이는 참 좋은 땅이다. 꼭 산에 오르지 않더라도 구이에 와서 그냥 먼 산 구경만 하다가 가도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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