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으로2009/07/14 10:37


「조선 이조 중엽시절에 전라도 전주 서문 밖 30리 쯤 되는 곳에 한 퇴리가 있으니, 성명은 최만춘이라 하였다…」

소설 첫머리가 시작이었다. 한국의 대표적 권선징악(勸善懲惡)형 고전소설인 콩쥐팥쥐전은 소설 속에 구체적인 지명이 명시돼 있어 그 공간적 배경을 연구하는 데 있어 주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때문에 그간의 연구는 전주의 행정구역 영역 가운데 서쪽으로 30리에 위치한 마을이 어디쯤인가를 밝히는데 초점이 맞춰져왔다.

고지도 자료 분석, 등장인물 분석, 소설 속 지명분석 등을 통해 현재 콩쥐팥쥐 배경으로서 가장 유력한 마을은 완주군 이서면에 위치한 앵곡마을로 꼽히고 있는데,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직접 앵곡마을을 찾았다.

   
'콩쥐팥쥐' 이야기 배경으로 알려진 완주군 이서면 앵곡마을 전경

이서면사무소에서 구부러진 논길을 따라 돌고 돌아 찾아 간 곳은 30여 세대, 약 100명이 거주하고 있는 작은 농촌마을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다 떠나고 이제 고령자만 남았어. 얘기울음소리 그친지 한참 됐지…. 누가 여기 와 살려고 하나? 직업이다 학교다 찾아 다 도시로 나가는데….

푸념 섞인 한 할아버지의 말대로 앵곡마을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만 눈에 띄었으며, 한집 걸러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 자리 잡고 있어 농촌의 어려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

“이 마을에 최씨 성을 가진 분이 살고 계시나요?”
“아니, 지금은 최씨가 없는데….

콩쥐팥쥐 이야기의 시작이 최만춘이라는 사람으로 시작되는 만큼, 혹시나 그 후손이 살고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주민들게 물어보았으나, 방창원(79) 할아버지의 대답은 ‘NO’였다.

지금까지 진행된 연구 속에서도 조선 중엽 전주 최씨 족보가운데, 최만춘 이라는 이름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소설 속 ‘최만춘’은 실존 인물이 아닌 가공인물일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조법종(우석대박물관장) 교수 역시 <콩쥐팥쥐전 배경마을에 대한 역사 지리적 고증, 2004>에서 “등장인물과 관련된 성씨는 최씨, 조씨, 배시인데, 콩쥐의 부친 최만춘은 가공의 인물로 당시 가장 유명한 전주 최씨를 활용하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밝히고 있다.

이승철 완주문화연구회 회장 또한 <‘콩쥐팥쥐’현장을 찾았다, 2004>에서 “퇴리 ‘최만춘’은 아전이 많은 전주의 퇴리라 추정할 수 있지만, 조선 중엽 전주 최씨 족보에 ‘최만춘’이란 이름이 없는 만큼 실명이 아닐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렇다면, 앵곡 마을이 콩쥐팥쥐의 배경이 되는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번에는 마을 이장인 강재원(62) 씨의 도움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마을 탐사에 나섰다.

강재원 이장이 밝힌 근거는 콩쥐팥쥐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삼탕, 즉 방죽인데, 현재 앵곡마을 일대에는 ‘팥죽이 방죽’이라 불리는 두죽제를 포함해 여러 개의 방죽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탕에 가서 발 씻고, 중탕에 가서 손 씻고, 상탕에 가서 낯 씻고 오너라.”

이는 새엄마로부터 나무호미를 받아들고 자갈밭을 매던 콩쥐를 돕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검은 소가 밭을 대신 매주며 콩쥐에게 한 말이다. 여기서 하탕, 중탕, 상탕은 물줄기를 의미하는데, 현재 앵곡마을은 지리적 정황상 모악산 산줄기가 평야와 연결되는 지점으로서 산계곡과 계류수가 있는 개울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팥죽이 방죽’으로 불리는 특히 두죽제(행정구역상 앵곡마을이 아닌 옆 마을 신월마을에 위치해 있다)는 조선후기 지리지인 <전주부읍지>, <완산지>, <대동지지>등에 모두 나타나고 있어 예로부터 이 일대에 콩쥐팥쥐 이야기가 만들어질 공간적 가능성이 충분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콩쥐팥쥐전에서 콩쥐가 팥쥐의 속임수에 넘어가 빠져 죽을 뻔 했던 연못이 바로 이 방죽이란 주장도 펼치고 있으나, 그에 대한 사실은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콩죽이 방죽'으로 불려지는 신월마을의 '두죽제'


한편, 앵곡마을 일대가 콩쥐팥쥐 배경이 되는 마을임을 확인시켜주는 방죽들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정비되지 않은 농로와 산길을 오가야 하는 불편함이 뒤따랐는데, 강재원 이장은 “방죽들을 둘러보기 위한 농로가 포장돼야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콩쥐팥쥐 배경이 되는 마을을 둘러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을 내비치기도 했다.

두죽제 이외에도 앵곡마을 일대는 콩쥐팥쥐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배경과 지리적 연관성을 갖는데, 그 중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나무호미로 자갈밭을 갈던 콩쥐에게 도움을 준 검은 소와 관련해서는 이 지역에 쇠아치골이란 표현이 존재한다. 이는 송아지 형국이란 표현으로, 앵곡마을 근처에 이처럼 소와 관련된 지명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 일대에서 콩쥐팥쥐이야기가 만들어졌을 거라는 가정에 힘을 더해주는 요소이다.

「새야 새야 인정없는 이것들아! 너희들이 모두 조아 먹더라도 제발 덕분에 헤쳐 놓지나 말려무나!…」

이 부분은 외가 잔치에 못간 콩쥐가 슬퍼서 탄식하는 부분이다. 새들이 날아와 벼 껍질을 까주는 장면인데, 이 역시 앵곡마을의 일대의 지명과 관련이 깊다. 앵곡마을의 앵은 ‘꾀꼬리 앵’이며, 주변에 ‘황새골’, ‘원앙제’ 등 길조의 이름을 딴 지명이 많다. 결국, 작품 속에서의 새들은 이웃의 ‘착한 사람들’을 뜻하지 않겠느냐는 해석이다.

이처럼, ‘전주 서문 밖 30리’에서 시작한 앵곡마을 일대는 여러 요소에서 ‘콩쥐팥쥐’ 이야기가 만들어질 충분한 공간적 배경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마을 일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하나의 소설로 정리 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앵곡마을이 예로부터 역참이었다는 사실이 작용한다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예전에 당나귀 타고 다닐 적에, 저기 밑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서울로 과거보러 갈 때 여기서 쉬었다 갔거든. 아직도 마을 입구에 말 매던 돌과 마방(마굿간이 딸려 있는 주막)이 있어. 그러니까 외지 사람이 많이 드나들던 동네란 거지.”

   
지금은 빈집으로 남아있는 앵곡마을의 마방 자리


한 주민의 설명처럼 실제로 앵곡마을에는 마방 자리와 말멘 돌자리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전주에 예속된 역참이 존재한 마을이었던 까닭에 앵곡마을은 왕래인에 의한 다양한 이야기가 수집, 정리 가능했다는 지리적 특징을 갖는다.

   
앵곡마을 입구에 있는 말멘 돌자리. 마을 입구 길을 내는 과정에서 옮겨 심어졌다고 한다

앞서 언급했던 앵곡마을 일대의 배경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이곳을 왕래하던 외지 사람들에 의해 전국으로 퍼져나간 덕분에 이후 소설화 되는 과정에서도 지역적 이야기를 넘은 전 국민적 공감을 얻는 이야기로 출판 가능했으리라는 짐작이다.

앵곡마을 주민들 역시 지난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의 배경이 된 운주면 삼거리 마을 주민들처럼 마을을 배경으로 한 ‘콩쥐팥쥐’ 이야기를 통해 마을이 조금 더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이는 최근의 농촌이 겪는 어려움에서 비롯된 탓이 큰데, 문화적 콘텐츠를 활용한 문화산업 이외에는 농촌의 살 길이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다음 편에서는 완주군에서 추진해온 ‘콩쥐팥쥐’ 관련 사업을 바탕으로 ‘콩쥐팥쥐’이야기가 지역에서 갖는 상징성과 그 발전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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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