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양반집 마님들은 안방에 잘 오지 않는 남편 때문에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것’ 을 가루를 만들어 방 안에 뿌렸다. 천하에 잘나간다는 기생들은 ‘이것’ 한지박이면 사랑하지 못할 남자가 없다고 했다. 과거를 보러 떠나는 선비들은 ‘이것’ 의 열매를 베개 속으로 만들어 매일 밤 베고 잤다. 과연 ‘이것’ 은 무엇일까. 힌트는 혜원 신윤복의 그림 ‘단오풍정’ 안에 있다. 


정답은 창포다. 혜원의 그림 속에는 창포로 머리를 감는 여인네들이 등장한다. 현대의 인공적인 향수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특유의 진한 향기가 나는 창포는, 총명탕의 재료로 쓰일 정도로 머리를 맑게 하는데도 효능이 있다고 전해진다. 창포물로 머리를 감으면 비듬이 없어지고 머릿결도 부드러워진다는 건 두 말하면 잔소리. 오는 16일은 단오다. 지금은 아스라해진 명절 단오. 올 단오만큼은 한해의 액운을 막고, 건강한 여름나기를 준비했던 ‘조상들의 지혜’ 를 배워보는 건 어떨까.


꽃보다 아름다운 창포들의 은은한 춤사위 
 

청정 자연과 생명을 상징하는 식물인 창포는 햇볕만 있어도 잘자란다

청정 자연과 생명을 상징하는 식물인 창포는 햇볕만 있어도 잘자란다


 전북 완주의 창포마을에서다. 예로부터 음력 5월 5일 단오는 설날, 추석과 함께 3대 명절로 여겨졌다. 일년 중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이라 하여 부녀자들의 야외나들이도 혀용됐다. 유일하게 자유로운(?) 단옷날, 여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그네도 뛰어보고 창포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았다. 어떤 이는 창포뿌리를 잘라 비녀삼아 머리에 꽂기도 했다. 마을의 남자들은 씨름, 택견 등으로 힘을 겨루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단오의 소중한 풍습이 창포마을에서만큼은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다. 특히나 국내 최대 규모의 토종창포 군락지는 그야말로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이색 절경이다. 햇살을 받아 더욱 푸르른 창포들이 바람결에 흩날릴 때면 마치 '자연의 음악'에 맞춰 은은하게 춤을 추는 듯 하다.
 신명나는 다듬이질 소리, 그리고 중간 중간 흥을 돋우는 추임새 등은 지켜보는 이들의 박수를 자연스레 이끌어낸다. 소리가 빨라질수록 점점 더 큰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처음 보는 다듬이에, 처음 듣는 다듬이질 소리에 아이들은 신기함에 너나할 것 없이 무대 아래로 몰려든다. 공연이 끝나자 아이들은 할머니 곁으로 우르르 몰려와서는 다듬이를 손에 잡고 두드려본다. 무엇이 그리도 신나는지 박자에 맞춰 노래까지 불러댄다.


“만경강 최상류에 위치해 청정 자연환경을 가진 우리 마을은 창포를 재배하는 전국 유일한 곳이죠. 어지간해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천남성과의 고유종 창포 뿐만 아니라 수달까지 서식해 아이들 자연생태체험장으로도 아주 좋구요. 자~ 창포 향기 한번 맡아보세요. 창포의 향기는 단오 무렵이 절정입니다”


창포마을의 노재석 위원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창포에 코를 갖다댄다. 굳이 가까이 가지 않더라도 창포는 근처에만 가도 특유의 향기가 진하게 풍긴다. 샴푸는커녕 변변한 비누조차 없던 시절 옛날 아녀자들은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떤 첨가물을 넣지 않더라도 깊은 향기를 내는 창포샴푸(?)를 사용해 머리를 감았던 조상들의 슬기에 새삼 놀란다. 가만 보니 창포에도 꽃이 폈다. 여느 꽃처럼 화려한 색과 모양을 지내고 있지는 않지만 수줍은 여인네의 모습처럼 오롯한 멋이 있다.


창포마을의 스타킹, ‘다듬이할머니연주단’ 을 아시나요? 

“또닥또닥, 또닥또닥또닥 ….” 

“와아~짝짝짝짝 ….”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지면 솟구치는 다듬이질 소리에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가 쏟아진다. 
 시골마을에 아이돌스타가 찾아올 리도 만무하다. 평균 연령 70세, 창포마을을 한순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어버린 사람들은 다른 아닌 ‘다듬이 할머니연주단’ 이다. 창포마을의 마스코트이자 홍보도우미인 다듬이 할머니공연단은 TV오락프로그램인 ‘스타킹’ 등에 출연하는 등 평균 20번 이상씩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준 연예인급 인기를 구가한다. 얼마 전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국제적 무용가 홍신자씨의 공연에도 초대받았다고.

다듬이연주단은 2006년 6월 창단한 이후 현재까지 각종 방송에 참여해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오고 있다

다듬이연주단은 2006년 6월 창단한 이후 현재까지 각종 방송에 참여해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오고 있다

 

“연세가 얼마나 된 것처럼 보이세요? 여기서 제일 막내 할머니가 68세에요. 연주단 단장을 맡고 계시는 할머니는 80세시구요.”


갓 시집 온 새색시처럼 고운 얼굴에 다홍빛의 한복을 차려입은 할머니 연주단의 이력을 듣고는 한 번 놀라고, 나이를 듣고는 한 번 더 놀란다. 나이와는 아랑곳 없이 열정적인 연주를 선보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과연 창포마을의 스타킹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 아름다운 소리가 3개가 있었지요. 아이 울음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그리고 다듬이 소리였습니다.”
 

다듬이는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고단한 시집살이를 다듬질을 하면서 한을 풀었던, 오늘로 말하면 다리미와 같은 기능을 하는 도구다. 악기를 사용하는 다른 공연들처럼 곡을 연주할 수는 없지만 잊혀져 가는 우리의 소리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 
창포마을 다듬이 공연단이 창단하게 된 것. 노인정에서 밤낮으로 손목이 끊어져라 두드리면서 연습했더니 이제 안봐도 척척이시란다. 

 창포마을에서는 다듬이질 공연, 창포비누만들기, 물고기잡기 등 옛 전통을 체험해볼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다

창포마을에서는 다듬이질 공연, 창포비누만들기, 물고기잡기 등 옛 전통을 체험해볼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다

 

 


“우와, 다듬이 소리가 이렇게 재미나는지 몰랐어요. 그리고 할머니들 너무너무 멋지신 거 같아요. 다듬이할머니연주단 최고!.”


서울 영가초등학교에서 왔다는 채민서(8)양은 창포비누 만들기 체험순서도 잊은 채 다듬이질삼매경에 빠졌다. 친손주를 대하듯 따뜻한 미소로 가르쳐 주는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시골마을의 정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공연단의 연주가 끝나면 창포 비누 만들기 체험이 시작된다. 비누조각을 녹인 후 창포 가루를 넣는다. 풀릴 때까지 저은 후 모양판에 부어 응고되기만 하면 비누만들기 완성. 저만의 비누를 만들어낸 아이들은 뿌듯함에 입가에 웃음이 가득하다


때 빼고 광내고 … 전통샴푸 ‘창포물’ 로 머리감아요!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으면 재앙을 물리치고 머릿결에 윤기가 흐르고 고와진다고 알려져 있다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으면 재앙을 물리치고 머릿결에 윤기가 흐르고 고와진다고 알려져 있다


창포마을의 하이라이트 창포로 역시 창포물로 머리감기 체험. 창포 줄기를 끓인 가마솥에서는 푸른 창포물이 가득 우러난다. 책과 텔레비전에서만 보았던 풍습 그대로 창포물에 머리를 감을 수도 있다는 말에 아이들은 신기한 듯  쳐다보고, 손을 담가도 본다.


“자, 여러분 이것은 창포를 삶은 물입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단오가 되면 이 물로 머리를 감았습니다. 그러면 머리카락에 윤기가 돌고 머리에 부스럼도 생기지 않았어요.” 

샴푸나 린스없이 오직 창포물만 이용해 머리를 감아도 머리결이 놀랄정도로 부드러워진다

샴푸나 린스없이 오직 창포물만 이용해 머리를 감아도 머리결이 놀랄정도로 부드러워진다

 
또 옛날에는 창포를 사용하면 살결이 고와지고 두통이 없어진다 하여 여자들이 단옷날 아침 창포에 맺힌 이슬을 받아 화장을 하거나 창포 삶은 물로 머리를 감기도 했다고. 머릿결이 고와진다는 말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세숫대야에 담긴 창포물로 머리를 감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엄마가 직접 감겨주니 기분 좋아 깔깔 웃어대고, 어머니 역시 옛 추억이 떠오르는 듯 얼굴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창포물에 머리 감으니 날아갈 것 같아요. 향기도 너무 좋고, 머릿결이 한결 부드러워진듯 해요."

 서울 영가초등학교 3학년인 홍혜원 양의 말이다. 창포로 머리를 감은 아이들은 머릿결을 만져대며 창포의 효능에 대해 연신 감탄에 감탄을 잇는다.

장미꽃 만발한 대아수목원에서의 향기나는 오후 


체험을 마친 후에는 가까이에 있는 대아수목원을 걸어보자. 노령산맥이 그림 같은 운암산과 맑고 잔잔한 대아호반이 어우러져 한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연출하는데  왕재에서 장애와 중수골을 연결하는 6.3㎞ 등산로는 수림경관과 함께 삼림욕을 즐기기에 더욱 좋다. 중수골의 정상에 이르면 남쪽 아래에 대아저수지를 내려다보는 경치 또한 일품. 특히나  초여름에 들어선 수목원은 지천으로 핀 장미꽃으로 화려하기 그지없다. 종류도 다양한 장미꽃 사잇길로 걷다보면 저절로 사랑이 샘솟는다. 대아수목원에 왔다면 금낭화 자생군락지를 감상하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한 시간 정도만 등산하면 약 2만1,000평에 자연 조성된 군락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인들이 가지고 다니던 주머니를 닮았다 해서 ‘며느리주머니’ , 모란처럼 아름다우면서 등처럼 휘어졌다고 해서 ‘등모란’ 등 이름조차 재미나는 금낭화를 만나면 저도 모르게 말문이 막힌다. 그 만큼 오묘하고 아름답다운 매력을 지녔다.

 # 이 원고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사이트에 게재된 글입니다
Posted by 완이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