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연이는 식구들이 다 잘 때 남몰래 짐을 싸고 편지를 쓴 후 대둔산으로 길을 나섰다. 그러곤 생각하길 ‘아버님, 어머님 잘 계십시오. 그리고 내 사랑하는 언니들 역시 안녕히 계시옵소서. 이 몸 하나 희생하여 우리 식구 잘산다 하면 무슨 이유로 이런 제안을 거절하리오, 그저 모두 건강하시옵소서.’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며 무작정 길을 걷는데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 사내가 연이 앞에 우뚝 서서 “당신이 내게 시집올 여인입니까?”하고 묻는 것이었다. 연이가 고개를 들어 달빛에 드러난 사내 얼굴을 보자 과연 오늘 들은 그 기괴망측한 사람 같았다.
빨간 눈에 당나귀 귀 그리고 적은 머리숱에 주먹코, 큰 입술 자그마한 몸집까지 거기에 두르고 있는 찢어진 옷이 그가 얼마나 볼품없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집을 나서며 단단히 마음을 먹은 연이였던 만큼 웃어 보이며 “그러하옵니다.”라고 했더니 갑자기 사내가 나타났듯이 눈 깜짝할 새 연이는 옥계천에 발을 딛고 있었다.
너무 놀라 자초지종을 물으려 하자 사내는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제 말을 하였다.
“시집온 아녀자로 몸단장을 깔끔히 하고 오세요. 이 옥계천에서 목욕을 하고 다 끝나면 저를 ‘두메야’ 하고 부르십시오.” 하는데 그 목소리가 마치 비단결이라 연이는 저도 모르게 목욕을 하러 옥계천에 들어가 있었다.
밤이라 물은 좀 차가운 듯했으나 달빛이 은은히 비춰 외롭거나 무섭진 않았다. 이윽고 목욕을 끝낸 연이가 천천히 바위에 발을 대는데, 바위가 갑자기 초록색 우아한 빛을 번쩍하며 내뿜더니 고운 옥으로 변했다. 그때였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울리더니 마치 도깨비에게 홀리듯이 어느새 연이는 대둔산 꼭대기에 서 있었다. 그곳에는 듣도 보도 못한 큰 집이 있었는데, 고래 10마리는 족히 돼 보이는 크기에 100명 정도 되는 여자와 남자가 나타나 ‘마님’하고 자신을 모시는 게 아닌가. 이 해괴한 광경에 어찌할 줄 모르던 연이는 거지 청년이 자신을 부르라 했던 게 생각이 났다. “서방님, 이 연이가 부르옵니다.” 하자 산 아래에서 만났던 거지 청년은 나오지 않고 옥 같은 얼굴에 풍채 좋고 상냥하게 생긴 청년이 나타났다. 연이는 놀라 그 청년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연이의 물음에 청년은 “저는 당신이 오늘 본 거지 청년입니다. 저는 본디 이 대둔산의 신령과 옥계천에서 목욕하러 내려온 선녀 사이에 생긴 장수로 두메장수라 합니다. 그런데 그만 아버님이 잠시 옥황상제님께 빌려온 세 가지 귀중한 보물들을 모두 망가뜨려 옥황상제님의 노여움을 샀습니다. 그래서 이런 흉측한 거지꼴로 100년을 대둔산 깊숙한 곳에서 숨어 지내게 되었는데, 저를 불쌍히 여기신 어머님이 하늘에서 내려와 심성이 옥같이 고와 바위도 옥으로 만들 수 있는 여인을 제 아내로 맞으면 저주가 풀린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연이 씨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연이는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으나 아까 거지 청년의 목소리와 이 두메장수의 목소리가 똑같아 그의 말을 믿고 눈앞의 커다란 집에 들어가 혼례를 올렸다. 두메장수와 오순도순 결혼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연이는 대둔산을 떠돌아다니던 개 한 마리가 새끼를 낳아 지극히 보살피는 것을 보고 개를 집에 거둬들이며 부모님 생각을 하였다.
‘부모님은 날 거지 청년에게 시집보냈다 하여 매일 내 걱정일 텐데 내가 이리 잘사는 것을 보시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 연이는 삼사일을 밥도 먹지 않고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았다. 연이의 이런 모습을 본 두메장수가 “왜 그러십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연이가 눈물을 흘리며 “서방님. 이곳은 온갖 물건이 다 있고 풍요로움이 넘치는 곳이긴 하지만 제 부모님이 없습니다. 부모님이 너무 그립사옵니다.”라고 하는데 잠시 생각하던 두메장수는 곡식과 고기를 집에 보내고 잘 지낸다는 편지를 써 붙이라고 연이에게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연이는 눈물을 멈추고 연꽃처럼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고맙사옵니다. 정말 고맙사옵니다.” 하고서는 곧장 고운 종이에 안부편지를 쓰고 하인을 시켜 곡식과 고기를 싸게 했다. 자신의 방에 넘치고 넘치는 보석 몇 가지도 편지를 담은 통에 넣었다. 연이는 집에 보낼 편지와 선물들이 준비되자 두메장수에게 알렸다. 그러자 두메장수는 한번 웃어 보이더니 재주를 넘고서 뭐라 주문 같은 것을 외었다. 그랬더니 눈 깜짝할 새 편지와 곡식과 쌀이 없어졌다. 그러고는 큰 구슬을 주며 “이 구슬을 들여다보면 부모님의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연이가 구슬을 들여다보자 과연 편지를 읽고 좋아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보였다. 부모님의 기뻐하는 모습을 본 연이는 이후 두메장수와 아무 탈 없이 오순도순 잘사는 듯했으나 이 부부에게 또 다른 시련이 닥쳐왔다.
연이는 구슬에서 부모님이 편지를 읽고 기뻐하는 모습만 보고선 두고두고 간직하려 자신의 보석함에 넣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김 진사가 편지를 읽고 좋아하며 간만에 두 다리 뻗고 자보려 이부자리를 펴는데 첫째와 둘째가 나타나 물었다.
“아버지 생쥐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던 우리 집 창고에 곡식과 고기가 가득 찼던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요?” 하고 묻자, 김 진사는 너무 좋아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그대로 자초지종을 설명해준 것이다. 그러자 기뻐 날뛰어야 할 첫째와 둘째의 얼굴이 불꽃처럼 빨개지는 것이었다.
그러고선 김 진사에게 잘 자란 인사말도 없이 쌩하고 자기네들 방으로 가더니 연이에 대한 시기와 질투, 부러움에 이를 갈았다.
“아니 연이 고것이 무슨 운이 있길래 그런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산단 말이냐?”
“그러게 말이야. 얼굴도 우리 셋 중 제일 보잘 게 없는 애가 연이 아니냐고?”
“내 말이 그 말이다. 도저히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어. 같이 사는 두메장수란 사람도 연이 고것보단 나와 같이 사는 것이 더 좋을 텐데 말이지.”
“게다가 자랑하려 곡식과 고기를 보낸 것 좀 봐. 고것이 우리 약 올리려 작정한 거야. 모르지 또 매일 빨래한다 농사일한다 하면서 밖으로 나돌더니 거지의 정체를 알고 아버지가 이야기하실 때 바로 자기가 혼인한다고 한 것이 틀림없어!”
“그래 맞아. 분명히 그런 재물 있고 힘센 장수인 줄 알고 있었을 거야. 달랑 편지 하나 남겨놓고 정 없이 떠난 것 좀 봐.”
“아이구, 불쌍한 두메장수님! 그런 독한 것 정체도 모르고 착한 애인 줄로만 알고 그렇게 혼인을 했으니 두메장수님은 얼마나 불쌍한 분이야?”
“그 사실을 알려줘야겠어! 그 머저리 같은 옥바위가 처음부터 문제였으니 거기다 오물을 뿌리면 두메장수도 아마 연이를 버리고 우리를 택하실 거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날이 밝자마자 동네 개들의 똥부터 마을 입구 선비 집 오물까지 다 자루에 넣고서는 옥계천으로 가는데 오물을 가지고 다니다 보니 두 자매에게서 열 걸음 거리 안에서는 구린내가 폴폴 났다.
어쨌든 두 자매가 구린내 풍기며 옥계천을 싹 살펴본 지 1시간 만에 반짝반짝 은은한 빛을 내는 옥바위를 발견해냈다.
“언니, 이제 여기다 똥칠만 하면 되는 거지?”
“그래, 어서 빨리 칠하자.” 하는데 그 큰 자루에 나오는 오물을 한 번에 털어 내더니 그것도 모자라 맨손으로 오물을 손에 쥐고 척척 바위를 오물로 뒤덮어버리는 게 아닌가. 가뜩이나 냄새 나던 두 자매는 이제 삼십 걸음을 떨어져 걸어도 냄새가 날 정도였다. 그런데 이 오물이 바위를 다 덮고도 차고 넘을 정도로 남는 게 아닌가.
“언니, 남은 오물들은 어쩌지?”
“귀찮은데 그냥 대충 버려두고 가자.”
“그래 아무도 우리가 한 줄 모를 텐데 뭔 상관이야. 이제 두메장수님이 나를 저 궁궐 같은 집으로 데려가시면 다 끝나는 거지.” 하고 웃는데 가만히 듣던 첫째가 소리를 냅다 질렀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두메장수님은 나를 선택할 거야. 우리 자매 중 제일 예쁘고 똑똑한 나를 데려가시지 왜 널 데려간다는 거냐?”
“언니야말로 헛소리하지 마. 제일 예쁘고 똑똑한 건 나야.” 하면서 치고받고 싸우더니 서로 풀과 흙을 온몸에 묻혔는데 그 모습이 흡사 멧돼지 같았다.
그 모습으로 동네로 돌아오자 마을주민들이 기겁해 ‘멧돼지 잡아라.’ 소리치며 동네 꼬맹이들까지 돌을 들고 와서 두 자매를 잡으려 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기겁한 자매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다 동네에서도 저만치 떨어진 남의 조밭에서 지쳐 쓰러져 죽고 말았다.
어느 날 옥황상제는 선녀들에게 목욕도 할 겸 지상에 무슨 일이 있는지도 살펴보고자 옥계천에 내려가라 명했다. 그런데 내려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선녀들이 울상을 하고 올라오는 게 아닌가.
옥황상제가 자초지종을 물으니 선녀들은 자신들이 설명을 못 하겠으니 직접 보시라고 대답했다. 이에 옥황상제가 하도 답답해 구름을 거두고 옥계천을 보니 그 꼴이 아주 가관이었다. 온갖 오물을 덮어쓴 옥계천은 파리로 뒤덮여 있었고 냄새는 돼지 열 마리를 가두고 한 달 청소 안 한 것과 같은 구린내가 났다. 옥계천의 아름다움에 빠져 아끼던 옥황상제는 이 모습을 보자 평소 어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다짜고짜 그곳 관리인 두메장수를 불러 물었다.
“이놈, 두메장수야! 네가 전에 한 짓이 얼마나 큰 죄인 줄 알고 있으렷다! 허나 너를 위해 네가 옥같이 고운 처자를 만나 혼인하는 조건으로 최근에 용서했거늘, 너는 다시 아주 큰 죄를 지었도다. 보아라, 옥계천이 얼마나 망측스러운 모습인지.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이에 두메장수가 그것은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며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는데 대로한 옥황상제는 두메장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됐다. 이 일로 너는 다시 집을 잃고 예전 흉측했던 거지 모습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라면서 대둔산으로 돌려보냈다.
그러자 과연 옥황상제의 말대로 그 큰 집은 감쪽같이 없어지고 두메장수 역시 예전 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연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두메장수를 안으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는데 두메장수가 말했다.
“연이 씨, 당신은 다시 당신 집으로 돌아가세요, 제가 조금 챙겨뒀던 돈이 있습니다. 그걸 가지고 집에 돌아가 아버지와 사세요.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연이는 그 말을 듣자 가슴을 치며 말했다.
“두메장수님을 떠나서 저 혼자만 잘살라니요? 그게 말이 된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두메장수님을 향한 제 마음이 그리 약하다고 생각되시나요? 재물이 없어도 두메장수님이 이런 모습이라도 저는 괜찮습니다. 죽더라도 같이 죽고 살더라도 같이 사는 게 부부 아닙니까?”
이에 두메장수 역시 눈물을 흘리며 “미안합니다. 하지만 저는 연이 씨가 고생하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당분간 예전에 살던 동굴에 들어가 수행해서 옥황상제님에게 용서를 구할 테니 그동안만이라도 연이 씨는 집에 가 쉬세요.”라며 뜻을 굽히지 않고 떠나기 싫다는 연이를 떠밀다시피 해서 기어이 집으로 보냈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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