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산 끝자락의 한 시골마을에 김충적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벼슬은 진사요, 그의 명석함과 다정다감함은 동네 사람이라면 지나가던 꼬마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잘 맺은 과실이라도 100개 중 하나는 썩은 것이 있는 법, 그래서 김 진사에게도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가난함이었다. 본디 부모가 농사꾼이었으나 일찍이 학문에 뜻을 뒀던 김 진사는 농사일은 배우지 않고 학문에만 몰두했다.
그러나 부모가 있어 그나마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었던 터라, 부모가 돌아가시고 마음에 두었던 동네 처자와 혼인해 딸 셋을 두자 누군가 땅에 떨어뜨린 보리 한 알도 아쉬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집 감나무에 떨어진 감이라도 얻어 보려 집을 나선 김 진사는 동네 아낙네들의 시끄러운 수다 소리에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됐는데 그 말이 여간 재밌는 게 아니었다.
“아 그 말 들었나?”
한 아낙이 옆집 아낙으로 보이는 이에게 말을 걸었다.
“왜? 무슨 재밌는 말인데?”
“아 글쎄 저기 대둔산에 아주아주 못난 거지가 나타났더래.”
“얼마나 못생겼으면 그리 험담하는가?”
듣던 아낙이 궁금해 죽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친구 아낙을 바라보았다.
“말도 하지 말라고, 저기……. 눈은 토끼처럼 빨갛고, 귀는 당나귀 귀처럼 크며, 머리숱은 적고, 코는 알아주는 주먹코에 입술은 보통 사람 세 배에다 몸집은 얼마나 보잘 것 없다는지…….”
“에그, 그런 끔찍한 사람이 어찌 저리 위엄 있고 아름다운 대둔산에서 나왔다는 건가?”
설명하던 아낙은 고개를 크게 들썩들썩 거리며 우스워 죽겠다는 듯 한바탕 큰 소리로 웃고 말을 잇는다.
“아 그게 또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자신에게 시집올 여자를 찾으러 왔다는 것 아닌가? 혼수는 일절 안 챙겨 와도 되며 안방마님 모시듯 데려다 살겠으니 몸만 자신한테 오라며 말이지.”
“에그, 그런 사람한테 그 누가 시집을 가겠는가? 딸 굶겨 죽을 정도로 가난한 이 아니면 말이네.”
“아 누가 아니라겠는가?”
그러더니 호호호 웃고 쌩하며 지나가는 것이었다.
가만히 그 말을 듣던 김 진사는 ‘딸 굶겨 죽을 정도로 가난한 이가 바로 내가 아닌가. 너무 가난하여 내 어여쁜 딸들 시집 한번 못 보낼 처지가 바로 나 아닌가. 하물며 이러다간 우리 가족 모두 굶겨 죽일 지경인데.’
이래저래 생각하다 해는 저물고 감 하나 못 얻은 김 진사는 터덜터덜 걸어 집에 도착하여 딸 셋을 불러 모아 말했다.
“남부럽지 않게 어여삐 성장한 내 딸들아, 너희도 우리 가정이 많이 힘들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겠지?”
그러면서 헛기침을 한방 하는데 첫째가 “그럼요. 우리 동네 사람들은 모두 알지요. 창피해서 길을 걸어 다닐 수도 없어요.”
그 말을 듣던 둘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요. 제 친구 갑순이는 저보다 못난 것이 혼수를 잘 챙겨서 옆집 부잣집 도령에게 시집갔는데 배 아파 죽을 뻔했어요.”
가만히 고개를 숙이며 딸들의 불평을 듣는데 셋째 연이만 말이 없어 “넌 뭐 할 말이 없느냐?” 했더니 조용히 조곤조곤 연이가 말했다.
“이 모든 것이 학문에 뜻을 두신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팔자가 저한테 온 것이온데 그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하며 웃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용기가 난 김 진사가 말했다.
“나도 너희들이 혼자서 나이 먹어가는 것이 언제나 안타깝고 미안했다. 그래서 말인데 한 청년이 자신에게 시집올 여인을 구한다더라. 혼수에 상관없이 몸만 오라 하더구나.”
그 말을 들은 딸들은 눈에 빛을 내며 물었다.
“건넛마을에 부잣집 도령이라 하더이까?”
김 진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면 저기 윤 진사 댁 잘생긴 도령입니까?”
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김 진사를 본 딸들은 실망하여 퉁명스레 물었다.
“그럼 대체 누가 혼인할 여인을 구한다 하더이까?”
그 말에 잠시 당황한 김 진사는 땀을 닦고 눈치를 보며 개미 기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저기 대둔산에서 내려온 못난 거지가 말하더라는 구나.”
그러면서 오늘 들은 그 사내의 모습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자, 그 말을 들은 딸들은 기겁하며 눈이 소 눈만큼 커졌다. 딸들이 놀란 가슴 진정시키며 말했다.
“그 말의 뜻은 지금 그런 괴물 놈에게 저희를 시집보내려 한다는 말입니까?”
고개를 푹 숙인 김 진사가 그렇다고 말했더니 첫째 딸과 둘째 딸은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러면서 입을 모아 말하길 “저는 죽으면 죽었지. 그런 놈에게 시집 못 갑니다. 돈이 많아 저에게 배고픔 안 줄 위인도 아니거니와 얼굴이 고와 사랑할 수 있는 위인도 아닌 못난 괴물 같은 거지에게 시집가라 하시다니요? 이건 저에게 죽으라는 말과 같습니다. 차라리 칼을 들어 저를 치세요. 이런 가난한 집에 미련도 없거니와 그런 놈에게 시집갈 맘은 더더욱 없습니다.”
김 진사는 자신이 너무 섣불리 사랑하는 딸들을 희생시키려 한 것 같아 고개를 들어 딸들 얼굴조차 똑바로 볼 수 없었다. 그때 연이가 입을 열었다.
“아버님 제가 가겠습니다. 대둔산이라면 누구나 인정할만한 아름다움을 지닌 산 아닙니까?
그런 산에서 나온 청년이라면 분명히 심성이 고운 이일 터, 저 한 몸 없어져 우리 식구 먹여 살릴 수 있다면야 기꺼이 그리하겠습니다.”
연이의 말을 들은 김 진사는 한편으로는 무척 고마웠으나 또 한편으로는 첫째와 둘째보다 얼굴은 못났지만 어릴 적부터 심성이 고와 다른 딸 몰래 더 아껴왔던 연이가 그러니 너무 미안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김 진사는 눈물을 떨어뜨리면서 “아니다. 내가 너무 섣불리 판단한 것 같구나. 내 사랑하는 딸들을 그런 놈에게 시집보내려 하다니 아무래도 가난함이 사람을 미치게 한 것 같구나. 미안하다. 그러니 아까 말은 넣어두고 이 일은 없던 걸로 하자.”라고 말했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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