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그 오빠 이름이 뭐야?”
“누구?”
“아까 그 얼굴 하얀 오빠 있잖아. 전학 왔다는….”
“니가 알아서 뭐하게?”
“치이. 헥헥헥. 언니! 나 이제 가기 싫어. 언니 혼자 가!”
“그러니까 왜 따라와! 다 왔으니 좀만 참아.”
“아이 너무 힘들단 말이야. 다리 아파”
“자꾸 애기처럼 굴 거야? 그러면 너 혼자 놓고 간다.”
갑자기 숲 속의 나무들이 바스락바스락 소리내기 시작하면서 나뭇잎이 내 머리 위로 후드득 떨어졌습니다.
“엄마야! 언니 같이 가. 무섭단 말이야.”
“강우야. 강우 오빠라고 불러. 됐지?”
“우와. 이름도 멋지다. 응!”
그리고선 난 신이 나서 따라가기 시작합니다.
언니는 산에 사는 다람쥐같이 이리저리 잘도 뛰어올라갑니다. 난 그런 언니를 쫓아가느라 쉬지도 못하고 숨도 제대로 뱉지 못합니다. 멀리서 볼 때, 가운데 우뚝 솟은 주봉이 나를 쳐다보면 그렇게 멋져 보였는데 막상 내가 그 주봉이 있는 산을 힘들게 오르니 여간 싫은 게 아닙니다. 산을 오른 지 한참 후에 언니가 멈춰 섰습니다. 그곳에서 보니 내가 사는 곳이 한눈에 잘도 들어오지만 떨어질까 무섭기도 합니다. 언니가 서 있는 곳에는 키도 작고 삐쩍 마르고 못생긴 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인사해. 엄마야.”
“이게 무슨 엄마야. 나 참. 언니 바보지?”
언니는 나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를 살살 쓰다듬으며 내 이름을 말하기도 하고 귓속말을 하듯 소곤소곤 얘기합니다. 언니는 공부도 잘하고 참 똑똑한데 오늘따라 바보 같습니다. 어떻게 나무가 엄마가 될 수 있나요? 나무가 엄마가 아니라는 건 초등학교 1학년인 나조차도 다 아는 쉬운 사실입니다. 언니가 휴양림에 올 때마다 혼자 사라지는 것이 수상해 졸라서 따라왔더니 이상한 나무를 엄마라고 부르고 있고 힘들기만 하고 괜히 따라온 것 같습니다.
“자. 이거 받아. 잘 간직해.”
언니가 내민 것은 작게 접힌 종이였습니다. 펼쳐보니 색연필로 무언가가 아기자기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휴양림 산책길을 따라 안수산이 그려져 있고 빨간 하트가 무수히 그려진 ‘엄마 나무’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치. 누가 다시 여기 온대? 안 와!”
“좋아, 아빠한테는 비밀이야. 만약 말하면 너랑 절대 안 놀아줄 거야!”
나는 언니가 나랑 안 놀아준다는 말이 가장 무섭습니다.
휴양림에 다다랐을 때는 쓰러질 듯 힘이 쫙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빠를 찾으려고 휴양림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빠가 일하시는 자연휴양림에 봄이 오면 크레파스 색깔보다 더 많은 아름다운 색깔들이 가득합니다. 철쭉, 산벚, 야생화처럼 예쁜 꽃들도 여기저기 가득하고 아빠 키보다 더 큰 나무들은 초록 잎을 나비처럼 팔랑팔랑 거립니다. 게다가 청설모나 다람쥐, “까르르 깔깔……” 웃는 개구리처럼 귀여운 동물도 있고 열매가 쥐똥처럼 생긴 쥐똥나무, 가끔 언니가 나를 놀리며 부르는 애기똥풀처럼 웃긴 이름을 가진 식물들도 있습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았으면 좋겠지만 이것만 기억하기에도 벅찹니다.
커다란 나무 위에 올라가서 무언가 하고 있는 아빠가 보였습니다. 나는 아빠를 발견하자마자 언니는 뒤로 한 채 아빠 곁으로 막 달려갔습니다. 아빠는 모르는 것이 없는 척척박사에다가 나무 의사입니다. 게다가 더욱 신기한 것은 꽃과 나무와 얘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궁금한 것이 많아 아빠가 꽃과 나무와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매일매일 물어보고 아빠처럼 되려고 연습해보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아빠!”
“은비 공주님 왔구나. 언니는?”
“응. 저기 오고 있어. 아빠. 나도 나도. 나무 위에 올라갈래.”
“안돼요. 위험해.”
“그럼 아빤 왜 올라갔어?”
“나무 수술하지.”
“수술?”
“응.”
“나무가 아파?”
“응. 많이 아프대.”
“그걸 어떻게 알았어?”
“나무가 많이 아프니 빨리 오세요…… 이러면서 나뭇잎이 막 울면서 손짓하잖아. 그래서 와보니 무서운 바람이 나뭇가지와 줄기에 커다란 상처를 냈더라. 자, 다 됐다.”
아빠는 나무에서 내려와 나무를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나도 아빠처럼 나무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 때문에 눈이 부십니다.
“아빠 뭐라고 한 거야?”
“나무가 빨리 낫게 해달라고 주문을 외웠지.”
“주문? 나도 나도. 나도 가르쳐줘.”
“은비한테는 너무 어려운데?”
“치. 아냐. 나도 잘할 수 있단 말이야!”
“그래? 음…… 그러면 잘 들어봐. 자하라 까무라 타무스 핑퐁핑퐁.”
“응 뭐라고? 자하라 까만 나무 퐁당퐁?”
“하하하. 자하라 까무라 타무스 핑퐁핑퐁.”
“자라 까만 나무 퐁퐁퐁?”
“어렵지? 이건 아빠만이 외울 수 있는 주문이거든. 잘못 외우면 나무가 더 아파요. 하하하.”
아빠가 가르쳐 준 주문을 외우는데 흠뻑 빠져 있어 언니가 다가온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은교 왔니? 학교에선 특별한 일 없었고?”
“응.”
그때서야 갑자기 할 얘기가 생각이 나서 아빠의 귀를 꽉 잡고 귓속말을 소곤거렸습니다. 언니는 강한 눈빛을 한번 주더니 모른 척 넘어갑니다. 엄마 나무에 대한 비밀은 말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는 것일까요?
“은교! 오늘 멋진 남자친구 왔다며?”
“응. 전학.”
“TV에 나오는 탤런트처럼 잘 생겼다는데?”
“몰라.”
“같이 오지 그랬어?”
“그냥 집이 이 근처래. 길이 익숙하지 않다고 선생님이 같이 가래.”
시큰둥하게 대답한 언니는 왜 그걸 니가 말하냐는 투로 나를 힐끔 쳐다보았지만, 이번엔 내가 모른 척 꽃들을 바라봤습니다.
사실, 그렇게 멋진 친구가 생겼는데 어떻게 언니처럼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지 참 의문입니다. 학교가 끝나고 언니를 기다리고 있는데 언니가 뽀얀 얼굴의 잘생긴 낯선 사람이랑 같이 나오는 걸 보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하얀 피부를 가진 남자는 TV 빼고는 처음 본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우리 반 코흘리개 남자애들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멋지게 생겼습니다. 나는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렇게 멋진 오빠와 친구가 될 수 있는 언니가 참 부러웠습니다.
나도 언니처럼 예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멋진 오빠랑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늘 그렇지만 나와는 너무 다른 예쁜 언니와 닮고 싶습니다. 그래서 언니와 똑같이 따라 하면, 예쁘고 똑똑한 언니처럼 될 것 같아서 언니와 관계된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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