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으로2010/08/09 10:02

단우는 다음 요괴를 잡기 위해 지도를 펼쳐 보았다. 그런데 불가사리라는 요괴가 단우가 다니는 가천초등학교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불가사리가 우리 학교를 향해 가고 있어!”


단우가 소리쳤다. 


“뭐라고? 빨리 가자.”


시호는 단우와 섬백의 손을 잡고 바람보다 빠른 속도로 가천초등학교 운동장에 도착했다. 운동장에는 불가사리가 남기고 간 거대한 발자국이 푹푹 파여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공룡 발자국처럼 말이다. 불가사리의 발자국은 운동장을 지나 교실로 향해 있었다. 단우는 교실을 향해 뛰어갔다. 교실에서는 불가사리가 책상과 의자를 우걱우걱 씹어먹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책상과 의자의 나무 널빤지는 떼어 던져버리고 철로 된 부분만 씹어먹고 있었다. 곰의 몸, 코끼리의 코, 물소의 눈, 소의 꼬리, 범의 다리를 가진 불가사리는 요괴라기보다는 해괴한 동물처럼 생겼다. 철을 뜯어 먹을수록 불가사리의 몸집은 점점 불어났다. 먹는 데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불가사리는 단우 일행을 보지 못한 듯했다.


“우리 학교를 저 녀석이 다 먹어 치워버리겠어! 게다가 먹을수록 점점 커지고 있잖아!”


단우가 다급하게 말했다.


“저대로 두었다간 아마 대둔산만큼 커질 거야”


시호가 말했다.


“맞아. 그리고 죽기 전까지 계속 저렇게 먹어 치울 거야. 그럼 이 동네는 쑥대밭이 되겠지. 불가사리의 피부는 무쇠 털로 덮여 있어 창이나 칼로 찔러도 간지럽지도 않을걸. 불가사리는 오직 불을 이용해서만 죽일 수 있어. 너희 선조들은 불가사리의 몸에 불화살을 쏴서 죽였다고도 해.”


“하지만, 우린 화살이 없잖아.”


“내가 누구냐! 이 섬백 님의 등짐에는 없는 게 없어.”


섬백은 자신이 메고 있는 등짐에서 활과 화살을 꺼내 단우에게 건네주었다. 


“시호야, 이번엔 너의 힘이 필요해. 같이 불의 주문을 외우자.”


“알았어.”


단우는 시위를 당겨 활을 쏠 준비를 하고, 섬백과 시호는 합창하듯 불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불을 관장하는 정령에게 비나이다. 불로써 만천하의 모든 것을 태울 수 있는 힘을 저희에게 주소서. 불을 관장하는 정령에게 비나이다. 불로써 만천하의 모든 것을 태울 수 있는 힘을 저희에게 주소서…….”


주문이 시작되자 화살의 끝에서 불꽃이 타닥타닥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곧이어 화살 전체가 너울거리는 불에 휩싸였다. 타들어갈 듯한 불의 기운을 느낀 불가사리는 먹는 것을 멈추고 단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때야! 화살을 쏴!”


단우는 온 힘을 다해 시위를 당겼고 화살을 쏘았다. 하지만, 화살은 빗나가고 말았다.


“이 멍충아! 화살 하나 제대로 명중시키지도 못하냐!”


곧바로 섬백의 타박이 이어졌다. 불가사리는 자신을 향해 불화살을 쏜 단우를 향해 쿵쿵거리며 달려들었다. 단우는 비명을 지르며 운동장을 향해 달렸다.


“섬백아, 빨리 다시 불의 주문을 외우자. 저러다 단우가 잡아먹혀 버리겠어.”


시호가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걱정 마. 저래 봬도 불가사리는 철만 먹지 고기는 안 먹으니까 사람을 죽이진 않아. 저런 한심한 녀석은 한번 혼나봐야 정신을 차려”


섬백이 태평하게 대꾸했다. 


“시호야 살려줘…….”


단우가 불가사리에게 쫓기며 외쳤다. 섬백처럼 태평하게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시호는 다시 불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시호가 불의 주문을 외우자 섬백도 못 이기는 척 같이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단우가 들고 있는 화살이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단우는 여전히 불가사리에게 쫓기면서 시위를 당겼고, 마지막 순간에 멈춰 서서 심호흡을 한 뒤, 불가사리의 가슴을 향해 화살을 쐈다. 화살은 불가사리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어갔고, 불가사리의 몸은 거대한 불꽃에 휩싸여 활활 타올랐다. 불가사리의 괴성이 학교에 울려 퍼졌고, 곧이어 불가사리는 한 줌의 재가 되었다. 단우는 손으로 재를 털어낸 뒤 아직도 뜨끈뜨끈한 빨간 구슬을 집어 복주머니 속에 넣었다. 


“넌 정말 잔인한 애야.”


단우가 섬백을 쳐다보며 볼멘소리로 말하자 섬백이 단우를 놀리며 말했다. 


“네가 불가사리한테 쫓기는 모습이 얼마나 웃겼는지 알아? 크크. 비디오로 찍어놨어야 하는 건데 진짜 아쉽다.”


둘이 또 싸울 것 같자 시호는 둘 사이를 막으며 말했다.


“그만들 좀 해. 오늘은 그만 자고 내일은 마지막 남은 요괴를 처치하러 가자.”


벌써 새벽이 되었고, 칠흑같이 어두웠던 밤하늘은 사라지고 하늘 끝머리에선 이글이글 붉은빛이 솟아나고 있었다. 


“그래. 방학이라 학교에 아무도 없을 테니 오늘은 학교에서 자야겠다.”


단우는 교실로 들어가 책상 여러 개를 서로 붙여 놓고 그 위에 올라가 누웠다. 단우는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꿈나라로 직행했을 텐데 말이다. 


‘이제 오늘 밤만 지나면…….’


오늘 밤 마지막 남은 요괴를 해치우고 나면 엄마를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단우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엄마를 못 본지 4년이 지났지만 단우는 엄마의 얼굴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단우를 부르며 환하게 웃던 모습, 포근한 엄마의 품, 거칠지만 따뜻했던 엄마의 손도 잊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사그라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커져 단우의 텅 빈 마음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버렸다. 한참을 뒤척이던 단우는 시호가 옆에서 불러주는 달콤하고도 나른한 자장가 소리에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봉동읍을 향하는 황충을 막아라


눈부신 여름 햇살에 잠이 깬 단우는 지도를 보고 있는 섬백과 시호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번에 해치워야 할 요괴는 뭐야?”


“황충. 꽤 골치 아픈 요괴 중에 하나지. 떼로 몰려다니는데 메뚜기와 비슷하게 생겼어. 황충은 농작물이나 과일 등을 먹어치우는데 황충이 지나간 자리는 풀 한 포기 남지 않아. 그리고 다른 요괴와는 달리 낮에 활동하지.”


섬백이 말했다.


“황충이 봉동읍을 향해 가고 있어. 혹시 포도밭을 향해 가고 있는 거 아닐까?”


시호가 단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황충은 단 걸 좋아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군. 황충을 없애려면 생강즙이 필요해. 생강즙을 뿌리면 황충은 녹아 없어지거든. 시간이 없어. 생강부터 구하러 가자.”


시호는 단우와 섬백의 손을 잡고 봉동읍의 생강밭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우리가 무슨 수로 생강을 사? 돈도 없잖아. 그렇다고 훔칠 수도 없고.”


단우가 걱정하며 말하자 시호가 빙긋 웃으며 답했다.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 너희는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으면 돼.”


시호는 생강밭에서 일하고 계신 박씨 아저씨를 찾아갔다. 단우와 섬백은 시호가 시킨 대로 커다란 고목나무 뒤에 숨어 시호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았다. 시호가 빙긋 웃으며 하얀 꼬리를 흔들자 아저씨는 시호에게 생강 한 상자를 건네주고는 잘 가라고 손까지 흔들며 인사하는 것 아니겠는가. 


“너도 봤지? 괜히 백여우가 아니라니까. 저게 바로 여우가 사람을 홀리는 거야. 마음만 먹으면 어떤 남자라도 홀릴 수 있어. 너도 조심하는 게 좋을걸.”


섬백이 단우에게 말했다. 시호는 해맑게 웃으며 생강상자를 들고 단우와 섬백에게 다가왔다.


“정말 대단하다! 나라도 네가 그렇게 미소 지으며 부탁하는 모습을 보면 다이아몬드를 달라고 해도 안 줄 수가 없을 거야.”


단우는 시호의 재주에 감탄하며 생강상자를 들어 옮겼다.


“벌써 홀린 것 같군.”


섬백이 구시렁거리며 말했다. 섬백은 시호가 가지고 온 생강들을 대야에 담고 발로 짓뭉갰다. 섬백이 발로 살포시 생강을 밟기만 해도 생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즙이 되었다. 단우와 시호는 또다시 시호가 아저씨한테서 빌려온 농약 뿌리는 분무기 통에 생강즙을 옮겨 담았다. 단우와 시호, 섬백은 생강즙이 들어 있는 분무기를 각자 한 통씩 어깨에 메고 포도밭으로 향했다. 벌써 황충들은 포도밭 하늘을 까맣게 뒤덮고 있었다. 단우 일행은 서둘러 분무기를 뿌리기 시작했고 생강즙을 뒤집어쓴 황충들은 녹아 형체가 없어져 버렸다. 워낙 황충의 수가 많은지라 분무기로 한참을 뿌린 후에야 황충들을 모두 없앨 수 있었다. 단우 일행은 포도밭을 샅샅이 뒤진 후에야 까만 구슬을 찾을 수 있었다. 단우는 떨리는 마음으로 까만 구슬을 복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곤 섬백과 함께 시호의 손을 잡고, 이 모든 여정의 시작점인 용이 잠들어 있는 화암사로 이동했다.



밤하늘엔 별이 총총히 떠 있었고, 화암사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혜명 스님이 법전을 외는 소리가 청아하게 들리고 있었다. 단우는 화암사 동종 위에 복주머니를 올려놓았다. 그러자 세찬 회오리바람과 함께 연꽃잎이 날리면서 거대한 용이 나타났다. 용은 찬란하게 빛나는 연분홍색의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었다. 


“소년이여, 여의주를 되찾아 왔구나. 내 이 은혜는 잊지 않을 테다. 오랜 세월 이날만을 기다리며 잠들어 있었는데 정말 고맙다. 내 하늘로 승천하기 전 너의 소원을 하나 들어줄 것이니 어서 말해 보거라.”


단우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를 보고 싶어요. 다시 예전처럼 엄마와 같이 살고 싶어요.”


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의 소원은 이루어질 것이다.”


화암사는 구름과 안개로 뒤덮였고 용은 비바람과 함께 하늘로 승천했다. 그리고 잠시 후 화암사는 다시 고요해졌다.





Posted by 완이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