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으로2010/06/27 09:32

무더운 여름, 물장난치는 아이들로 바글거리는 신흥계곡에서 단우는 아이들과 떨어져 큰 바위 위에 누워 있었다. 단우는 자신의 전용 바위인 이곳에 누우면 한여름의 찜통 같은 더위도 잊을 정도로 시원했다. 나무그늘 아래 누워 홀로 신선놀음하는 단우에게 시호가 물을 뿌렸다.


“단우야! 이리 내려와서 같이 놀자!”


“물 뿌리지 말라니까! 난 옷 젖는 거 싫어. 너네끼리 놀아.”


시호는 자신이 짝사랑하는 단우와 물장구도 치며 같이 놀고 싶었지만, 물에 들어가길 싫어하는 단우는 물놀이하자는 시호의 청을 매번 거절했다. 


시호는 3학년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전학을 왔다. 시호는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못 하는 것이 없었지만, 항상 혼자였다. 반 친구들은 처음에는 전학 온 시호에게 다가가 친해지려 말을 걸었다. 하지만, 시호가 반 아이들을 냉담하게 대하고 거리를 두자, 아이들도 싸늘한 시호에게 더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단우는 예외였다. 단우는 시호에게 다가가 늘 먼저 말을 걸었고 언제부터인가 시호는 단우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동네 마당발인 단우와 친하게 지내게 되자 시호는 자연스레 또래 아이들과 같이 어울려 놀게 되었다. 곁에 다가만 가도 찬바람이 쌩 불었던 예전의 시호는 온데간데없고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노는 시호가 된 것이다. 그리고 시호는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해준 단우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단우를 늘 지켜봐 온 시호는 알고 있었다. 항상 밝은 모습의 단우도 자신처럼 마음속에 어두운 그늘이 있다는 것을. 


단우는 ‘은혜 고아원’에서 살고 있다. 옷이 젖은 채로 돌아가면 원장님한테 잔소리를 들을 테고 단우는 원장님의 짜증 섞인 잔소리 듣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다. 그래서 또래 아이들과 같이 어울려 물장난을 치지 않고 홀로 떨어져 있었다. 


‘오늘따라 잠도 안 오네.’


단우는 그늘 밑에 가만히 누워있는 게 지루한 나머지 버드나무 가지를 따서 버들피리를 삑삑 불며 산으로 올라갔다. 산길을 계속 따라 올라가다 보면 화암사가 나오고, 화암사에는 단우가 좋아하는 혜명 스님이 계신다. 혜명 스님은 단우가 오면 항상 따뜻한 웃음으로 맞아주시고 재밌는 옛날이야기도 많이 해주신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화암사가 나온다.

그런데 단우의 앞에 구렁이와 두꺼비가 있는 것이 아닌가. 구렁이는 두꺼비를 잡아먹으려 하고 두꺼비는 온 힘을 다해 두꺼비와 싸우고 있었다. 단우가 나타나자 두꺼비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마치 살려달라는 양 단우를 쳐다봤다. 마음 여린 단우는 길가에 있는 돌멩이를 주워 구렁이를 향해 던졌다.


“저리 가. 이 못된 구렁이야!” 


단우의 계속된 돌팔매질에 구렁이는 눈앞의 먹잇감을 포기한 채 숲 속으로 사라졌다.


“이 산엔 구렁이가 많으니까 다른 곳에 가서 살아. 알았지?”


두꺼비는 단우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꾸엑꾸엑 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우는 그런 두꺼비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단우는 두꺼비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화암사를 향해 올라갔다. 그런데 두꺼비는 단우가 화암사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졸졸 따라왔다. 마당을 쓸고 계신 혜명 스님을 보자 단우는 전속력으로 달려가 혜명 스님 품에 안겼다.


“혜명 스님!”


“허허. 그래 우리 단우 왔구나.”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시는 혜명 스님의 따뜻한 미소를 보면 단우는 가슴 속 한켠에 깊이 자리 잡은 외로움도 녹아 없어지는 것 같았다. 혜명 스님은 단우 옆에 서 있는 두꺼비를 보고서 “화암사에 손님이 또 한 분 오셨구나.” 하며 웃었다. 단우는 스님에게 자신이 두꺼비를 구해주었는데, 그 뒤로 두꺼비가 계속 자신의 꽁무니를 따라다닌다고 말했다. 


“허허. 예삿일은 아니구나. 아마도 두꺼비가 너에게 은혜를 갚고 싶어 네 뒤를 따라다니는 것 같구나.”


혜명 스님이 웃으며 말했다. 두꺼비는 이번에도 꾸엑꾸엑 울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놈 참 신통한 놈일세.”


단우는 말귀를 알아듣는 것만 같은 두꺼비가 마음에 들었다.


“흠…… 좋아. 이제부터 넌 내 애완 두꺼비다. 이리와.”


단우가 손바닥을 펴서 두꺼비에게 내밀자 두꺼비는 단우의 손바닥 위로 냉큼 올라갔다. 단우는 오늘도 어김없이 스님에게 옛날 얘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그럼 오늘은 화암사 동종에 얽힌 전설을 이야기해줄까?”


“화암사 동종이요?”


“그래. 이 화암사 동종에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하나 있단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먼 옛날, 옥계천에는 이무기가 살고 있었단다. 천 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기다린 이무기는 드디어 용이 될 수 있었지. 옥계천은 온통 구름과 안개로 뒤덮이고 용은 비바람과 함께 하늘로 승천했단다. 그런데 그만 용이 하늘로 승천하던 중에 입에 물고 있던 여의주를 실수로 떨어뜨렸단다. 여의주를 잃어버린 용은 자신의 힘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라 하늘로 갈 수도 없었고, 여의주를 되찾을 힘도 없어 옥계천에 머물며 울고만 있었지. 용의 울음소리는 그 소리가 우레와 같아 귀청이 찢어질 듯 요란하여 주민들은 도저히 살 수가 없었고, 법력이 뛰어난 포용 스님을 찾아가 도와달라고 했단다. 포용 스님은 옥계천으로 가서 짙은 안개를 뚫고 용을 찾았단다. 포용 스님은 천 년을 기다리다 드디어 용이 되었는데 여의주를 잃어버려 하늘로 승천하지 못한 용의 깊은 한을 풀어주기 위해 종을 만들었지. 그리고 그 종에 용의 혼을 담아 용을 잠재웠다고 한다. 바로 용의 혼이 담긴 그 종이 화암사의 동종이란다.”


“그럼 그 용은 지금도 잠들어 있는 건가요?”


“아마도 그럴 게다. 여의주를 찾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 용이 잠들기 전 여의주를 자신에게 찾아주는 사람에게는 승천하기 전에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는구나.”


“정말요? 여의주는 어떻게 찾죠?”


단우의 눈이 반짝였다.


“여의주를 찾는 법은 나도 잘 모른단다. 그건 오직 잠들어 있는 용만이 알고 있겠지.”


“하지만, 잠들어 있는 용에게 물어볼 순 없잖아요.”


“용을 깨울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긴 하지.”


“그게 뭔데요? 네? 스님.”


“녀석, 재촉하기는. 보름달이 떠 음기가 충만한 밤, 어제와 오늘이 갈라지는 시각, 화암사 동종을 다섯 번 치면 용이 깨어난다고 하더구나.” 


“어제와 오늘이 갈라지는 시각이라…… 밤 12시를 말하는 건가요?”


“글쎄다, 네 생각이 맞는 것 같구나. 하지만, 설마 진짜로 여의주를 찾아나설 생각은 아니겠지? 이건 어디까지나 전설에 불과하단다. 괜히 밤에 여기 와서 헛수고하지 말고 잠이나 푹 자거라.”


“하지만, 스님…….”


“어허! 괜히 내가 쓸데없는 이야기를 들려준 것 같구나. 좀 있으면 해가 저물 테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거라.”


“예, 스님. 그럼 안녕히 계세요. 가자. 두껍아.”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Posted by 완이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