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비수도권, 즉 지방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방에 대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혹 지역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모든게 다 서울때문”이라고 불평하고 있진 않을까?
우리는 의외로 우리 지역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우리 마을에 어떤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지, 어떤 유적이 있는지, 어떤 대표 상품이 있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서울과 비교해 불리하다고만 말할 뿐이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서울에는 이 나라의 거의 모든 자원과 인프라가 몰려 있다. 당연히 지방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경쟁이 적은 틈새시장, 전문용어로 '블루오션(Blue Ocean)'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면 승산이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걷고 있고, 걷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기위해선 우리 스스로를 잘 알아야 한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지 않던가.
지역 스스로를 바라보게 만드는 ‘신택리지’
전북 완주군은 이런 시도를 가장 먼저 한 곳이다. 지역에 숨겨진 이야기와 자원, 문화적 유적들을 발굴해 향후 경쟁력 있는 새로운 시장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 지난해 여름부터 민간씽크탱크인 희망제작소와 함께 지역자원조사를 실시했다. 이름하여 ‘신(新)택리지’사업이다. 완주군은 이 사업을 통해 지역의 숨겨진 자원들을 발굴해냈다.
“아쉬움도 많이 남지만 전국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지역자원조사인만큼 보람도 큽니다”
신택리지 사업에 참여했던 연구원 김준호씨의 말이다. 준호씨는 희망제작소의 연구원으로서 이번 신택리지 사업의 진행에 적극 관여했다.
“과거 인문지리서 중에 이중환 선생이 쓴 택리지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희는 이번 조사작업을 통해 지역의 자원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고자 ‘신택리지’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새로운 ‘지역조사서’를 만들겠다고 시작한 신택리지, 어떻게 시작하게 됐을까.
“기존의 지역 자원 발굴 방식이 통계자료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됐죠. 그러다보니 지역의 현실과 동떨어지게 되는 경우도 생기고 해서 우리가 진짜 자원들을 직접 조사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사업은 3개월간의 지역체류조사로 이어졌고 올 봄, 방대한 양의 지역자원조사 데이터와 함께 이를 기반으로 한 66개의 사업제안을 담은 최종보고서가 완성됐다.
“보고서는 완성됐지만 아쉬움이 많습니다. 사업발굴과정에서도 정말 좋은 것들이 많았는데 현실적인 여건상 사업화되지 못한 것들이 있었기도 했구요. 물론 그것들이 중요하지 않아서는 아니죠. 저희 스스로도 처음 시도한 연구였던만큼 많은 시행착오도 겪었구요. 한편으로는 일을 끝마쳤다는 뿌듯함도 있지만 아쉬움도 큰 것이 사실이니까요”
신택리지 사업이 종료된 이후, 완주군과 희망제작소는 다시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용진면 비비정 마을을 새롭게 바꾸는 사업이다.
“비비정 마을 사업은 저희가 신택리지 사업 과정에서 발굴한 자원을 현실화 시키는 과정입니다. 앞으로 열심히 해서 마을이 멋지게 변하는 모습 보여드려야죠.”
“새마을운동은 배울 모델 아니죠”
희망제작소는 박원순 현 상임이사를 주축으로 구성된 비영리단체이자 민간씽크탱크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 지역을 바꾸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만들고 이를 실천에 옮겨가는 조직이다. 도시계획을 전공한 준호씨는 2년전, 이 곳에 들어왔다.
“전에 경실련에 잠깐 있었어요. 우리 사회가 지금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은 생각이 좀 있었거든요. 요즘 동남아시아나 이런 쪽에서 우리 새마을운동을 배우겠다고 많이들 와요. 그런데 이게 과연 성공모델인가 하는 의문이 있어요. 주민참여 없이 이뤄진 성공모델이 무슨 성공모델이냐는거죠. 우리도 지금 그 때의 부작용들을 치유해 나가고 있는 과정인데 이걸 지금 다른 나라에서 도입해가면 그 부작용이 고스란히 드러날 거란 말예요. 이 나라들은 답습이 없어야죠. 그래서 이 사회를, 지역을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한거죠.”
“공간이 버려지는 것은 ‘사회적 낭비’”
“문제의식 같은 게 있었어요. 쇠퇴지역에 의미를 찾아주고 싶다고 할까요? 그런 의미에서는 도시와 농촌이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이번에 농촌지역에 들어가서 실제 조사를 해보니까 노령화가 굉장히 심해요. 수치에서 드러나는건 통계를 가지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입신고만 되어있고 실제로는 살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막상 들어가보니 훨씬 심각하더라구요. 마을 전체가 65세 이상 노인분들만 계신 마을도 있어요. 이 분들 나중에 안계시면 어떻게 할겁니까. 여기 다 없애고 도시로 가서 살아야 하나요. 그건 아니잖아요.”
실제로는 훨씬 심한 고령화, 농촌 인구의 지역 이탈과 수도권과 대도시 중심의 발전전략으로 점차 떠나는 젊은이들. 지역의 ‘공간’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버려지는 공간들 너무 아깝잖아요. 다 사람이 살던 곳인데 말이죠. 이 공간이 없어지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낭비에요. 도시로 몰리는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삶이 각박해져서 다시 귀촌하게 됩니다. 이미 일본에서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요. 우리도 아직 오진 않았지만 곧 올겁니다. 그런데 그 때 돌아올 공간조차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리고 그런 공간들도 부수고 다시 짓고 버리고 하기 보다는 있는 공간을 다시 사용하는, 새로운 의미의 공간으로 이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게 비용적으로도 절약되는거 아니겠어요?”
큰 의미에서 중앙과 지방은 준호씨의 말과 같은 상황이다. 서울로 몰리는 탓에 지방은 지방대로 피폐해지고 있다. 그나마 대도시는 덜하지만, 군(郡)이하 단위의 지역들은 상황이 심각하다. 중앙은 중앙대로, 지방은 지방대로 비대해지고 궁핍해져서 어려움을 겪는다. 준호씨의 말에 답도 숨어있다. 지역의 희망은 ‘없애기’나 ‘새로짓기’가 아니라 ‘남아있는 것들에 얼마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다.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를 잘 아는 것이 필요하다. 준호씨와 희망제작소, 완주군의 활동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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