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어느 지역을 맣할 때, 그 지역의 대표적인 인물들을 통해 지역의 지역성을 대변하곤 합니다. 전주는 이성계, 남원은 춘향 하듯 말이죠. 완주군에는 어떤 인물들이 있을까요? 오늘은 옛 조상들을 따라 완주군으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볼까요? ^^

1.구영 (1584~1663)

 

구영선생은 1584년(선조12년) 고산현에서 능성구씨 대윤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 능성. 자 영연. 호 죽용. 김장생의 문인이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에 입격하여 진사가 되었으나 계속 학문만 닦았다. 1623년의 인조반정 후 거주지의 고산현감이 유일로 천거하려 하였으나 사양하다가 1626년 처음으로 활인서 별제(종6품)를 제수받았다. 이듬해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체찰사 이원익 예하의 호소부사가 되고, 직장 ·사과 등을 역임하였다. 1644년 별좌 ·감찰을 거쳐 회인현감을 지냈다.

 

2.국영환(1871년(고종 8)∼1939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영화, 호는 곤암이며, 본관은 담양이다.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운곡리 봉산에서 출생하였다.


13세 때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가 당시 어장 조영하에게서 병서를 배웠다. 을미사변을 계기로 강한 반일 감정을 키우웠으며, 나중에는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군에 가담하여 전주(全州)와 익산, 연산, 진산, 금산, 논산 등을 누비며 수 차례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체포령이 내려지자 7∼8년간을 숨어 다니다 중국 심양으로 망명하였다.


그 뒤 한일병합이 이루어지자 독립운동을 꾀하고자 비밀리에 귀국 하였다가 3·1독립만세운동 당시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8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3.임윤성(1547년(명종 2)∼1608년(선조 41))


조선 중기 문신. 자 상경이고, 호는 숙계이다. 본관은 진주이고,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관동(옛날 고산현)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참봉 임천수이다.


1579년(선조 21) 식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어려서 홍귀상의 집에서 율곡 이이를 만나 공부하다 의문 나는 것은 문답을 통해 해결하였다. 《중용》 책머리에는 율곡이 한 말을 적고, 그 아래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쓴 것을 보고 율곡이 책으로 만들 것을 권유하여 《용학문답》을 펴내게 되었다.


율곡은 박식하고 덕까지 갖춘 군자라며 그를 극찬하였다. 성균관 유생 시절 서애 유성룡이 성균관대사성이었는데 그의 박식함을 보고 율곡에게 빨리 등용하여 그의 재주를 확인해보고 싶다고 하였다.


얼마 후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좌의정이었던 유성룡과 승문원제조 이정구와 응교 신흠 등이 그를 천거하여 선무랑에 제수되자 유생들과 함께 어가를 호종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때마침 부친상을 당해 고향으로 돌아와 시묘를 하며 3년 상을 마쳤다. 그 후 1599년 전설사별좌·선교랑을 거쳐 봉훈랑·군자감주부·봉직랑 등을 역임하였다.


1603년(선조 36)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후 1608년(현종 9)에 경상도 거창현감으로 나가라는 부름이 있어 임지로 나갔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1668년(현종 9) 유림들에 의해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백현사에 배향하여 그의 학식과 인품을 기리다가, 1941년 완주군 화산면 종리에 천곡단을 세우고 그의 위패를 옮겨서 배향하였다.

 

4.권삼득(1771년(영조 47)∼1841년(헌종 7))


정조·순조 때 활약한 판소리 8명창 중의 한 사람. 본명 사인. 본관은 안동.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에서 내언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양반집안에 태어났으나 음악적인 재질이 뛰어나 어려서부터 글 배우기를 싫어하고 판소리만 배우다가 집안에서 쫓겨났다 한다.


그는 판소리에서 가장 오래된 명창으로 알려진 하은담과 최선달에게서 판소리를 배웠다는 설이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특히, 권마성 소리제를 응용하여 ‘판소리 설렁제’라는 특이한 소리제를 낸 것으로 유명하다.


이 소리제는 높은 소리로 길게 질러 내는 성음인데 〈흥보가〉에서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과 〈춘향가〉에서 ‘군노사령 나가는 대목’ 등 여러 대목에 쓰이고 있는바 권마성과 같이 매우 씩씩하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그의 호탕하고 씩씩한 가조를 두고 신재효는 그의 〈광대가〉에서 “권생원 사인씨는 천층절벽 불끈 소사 만장폭포 월렁궐렁 문기팔대 한퇴지”라 하여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에 비유하고 있다. 그를 ‘가중호걸’이라 부르는 속칭도 이 때문이다.


그는 8명창 가운데 가장 선배로서 그 이전에 있었던 원초 판소리와 비슷한 단순한 판소리를 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후인들의 평도 그의 소리가 단순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는 〈흥보가〉를 특히 잘 하였고 그의 더늠인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은 전도성·송만갑·김창룡에 의해서 방창되고 있다. 그리고 염계달은 그의 창법을 많이 모방하였다고 한다.

 

5.전태순(1885년(고종 22)∼1961년)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자는 창여이고, 호는 의당이며, 본명은 전태섭이다.


본관은 천안이고,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출신이다.


중추원의관과 주임관을 거쳐 창릉 정자각을 개수할 때, 감독을 맡은 공으로 특별히 통정대부에 올랐다.


1910년(융희 4) 한일합방이 체결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1919년 독립운동이 전개된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로 올라와 독립운동 중진 손병희·이인환·신석구·강덕기 등과 함께 〈독립선언문〉을 각지에 배포하고 민중을 선동하였다.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선두에서 활약하다가 일본군에게 체포되었으며 2년형이 선고되어 복역하였다.

전라북도 완주에 그의 묘가 있으며, 묘 앞에 구멍이 패어 있는데 ‘소리구멍’이라 하여 그곳에서 소리가 들린다는 전설이 있다.

역사만 알고 있는 완주의 위인들

 안타깝게도 우리 지역의 위인들은 아직 매스컴의 조명을 크게 받진 못한 것 같습니다, 때문에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덜 알려지게 된 것이죠. 그러나 위인은 후손들이 얼마나 열심히 그들을 찾고, 생각하고, 훌륭하게 대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아이들에게 완주의 위인들을 알려주면 그만큼 후세에 더 크게 이름을 남기고 기릴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 지역 아이들에게 완주역사교육을 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Posted by 완이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