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향기2009/09/16 11:56


예술은 어렵다? 흔히 갖는 편견이다. 작가의 세계가 담긴 독창적인 예술품을 이해한다는 것은 ‘예술적 사고’를 하지 않는 평범한 이들에겐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도 꼭 작가만큼 생각하고 작품을 ‘해독’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예술에는 ‘해설’이 필요하고, ‘대중’이란 말이 붙지 않으면 지레 겁부터 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사람이 있다. 예술은 쉽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것이어야 한단다. 그래서 문화공간 ‘싹’도 만들었다. 평생을 ‘예술의 대중화’를 외치며 살아온 이 사람은 바로 ‘싹’의 대표 채성태씨다.

예술은 나의 힘


성태씨의 꿈은 ‘당연히’ 화가였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아무 이유 없이” “당연히” 그렇게 되는게 맞다고 생각했단다. 전남에서 태어났지만 넉넉지 못했던 가정형편 탓에 고등학교때부터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학교를 다녔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힘든 상황속에서도 성태씨는 당연히 화가가 되고 싶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정말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주변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생각했구요”

막연한 꿈으로만 생각하던 예술의 길은 대학을 거치며 선명해졌다. 우연한 기회에 접한 어느 미대 교수의 작품이 성태씨의 대학을 결정지었다.

“우연히 본 그 작품에 이유없이 끌렸어요. 그래서 무작정 그 분이 계신 곳으로 진학하려 했죠. 그게 전북대였고 한국화를 전공했어요.”

'신발 두 켤레'만 들고 뛰어든 예술 교육의 길

운명처럼 받아들인 화가의 길은 대학 졸업 후 본격화됐다. 관련 업계에 대한 취업이나 상업화가로의 전환을 거부하고 미술을 통한 교육의 길에 뛰어든 것이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저같은 아이들이 또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저같이 형편이 어려운 상황이면 예술을 한다는게 너무 어렵고, 기반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이제 내가 그런걸 아이들에게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 때문일까. 성태씨는 자신의 말 처럼 “가방에 신발 두 켤레만 넣고” 뛰어다녔다. 전국 방방곡곡 예술교육을 위해서는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아이들에게 예술교육을 시켜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때는 돈도 없었지만 정말 열심히 했어요. 돈은 (당시에) 막노동, 화가노릇 별 걸 다 해서 만들었죠. 그렇게 돈을 벌면 또 아이들 교육하러 다니면서 다 쓰곤 했어요”

성태씨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교육에 뛰어들게 한 예술의 매력은 뭐였을까.

“예술이라는게 예술가의 생각이 담겨 있는 거고, 그 안에 철학도 담겨있는 거잖아요. 아이들에게 그런 것들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타인의 생각을 어떻게 접하는지, 어떻게 사물을 바라보고 생각해야 하는지 하는 것들을요.”

그렇다고 성태씨의 문화예술교육이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연령‧계층의 사람들이 그의 ‘제자’들이다.

“문화예술교육이라고 해서 꼭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에요 누구나 가능하죠. 저는 모든 사람이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제 주장인데, 그 외로움엔 돈이 많고 적음은 중요치 않다는 거죠. 사람들 누구나 각자 가진 잠재력은 무시하면서 왜 경제적인 조건만으로 다 평가하려 하냐는 거죠. 저는 사람들이 누구나 누리고 즐길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경제논리에 파묻혀서 다 잊고 있으니까 그것을 찾도록 해주고 싶었던 거죠.”

자신있게 말하던 그는 갑자기 “자신도 외롭다”고 말한다.

“물론 저도 외로워요. 저도 사람이잖아요. 그럴땐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죠. 사람들에게 제 어려움과 힘든점을 털어놓고 그들과 진심으로 대화해요. 제 마음을 먼저 열면 상대도 같이 마음을 열더라구요”

성태씨만의 외로움 달래기 비법은 바로 대화를 통한 ‘소통’이었다. 소통이 부재인 이 시대에 자신을 먼저 열고 남을 받아들인다는 것, 그가 준 명쾌한 해답이다.

문화공간 '싹', 나를 만났던 사람들과의 ‘약속’ 


전주시 서신동 재뜸마을, 그러니까 서신초등학교 근처에 성태씨가 운영하는 문화공간 ‘싹’이 있다. 지난 2005년 그가 마련한 알뜰살뜰하면서도 아늑한 공간이다.

“제가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한 게 1994년이에요. 이 문화공간 ‘싹’은 2005년에 만들어졌구요. 그 전까지는 혼자서 맨몸만 가지고 활동했었죠.”

맨몸으로 운동화 두 켤레만 들고 시작한 문화예술교육사업이 이제는 문화공간 ‘싹’까지 커졌다. 주위의 도움을 받아서가 아니다. 온전히 그 스스로의 노력 덕분이다. 공간까지 생겼으니 ‘사업’마인드를 가질 법도 한데 성태씨의 생각은 변함없다. 교육을 통해 느끼는 보람, 단지 그것 하나다.

“1994년에 가르친 아이들이 지금은 많이 컸어요. 가끔 제가 외롭고 힘들때, 지쳐서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우연찮게 이 아이들이 저를 찾아오거나 연락을 해요. 옛날 저와 함께 할 때를 이야기 하면서 큰 도움 받았다고 말하면 제가 일을 그만둘 수가 없어요. 이 문화공간 ‘싹’은 이제 저를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과의 약속이 되어버렸어요.”

문화공간 ‘싹’을 사람들과의 약속으로 여기는 성태씨, 앞으로 그의 계획은 뭘까.

“계획이라고 할 게 없어요. 살다보면 계획은 생기기 마련이죠. 제가 추구하는 건 모든 사람이 행복하진 못하더라도 조금씩 행복을 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거에요. 작게 나마 하나씩 추구해나가는 작은 행복, 그게 중요합니다.”

과연 성태씨다운 대답이다. 그는 일상속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기쁨을 강조한다. 사람들에게 행복을 찾아주기 위한 예술, 일상속에 녹아드는 예술, 그것이 성태씨가 추구하는 문화예술교육의 목표다. 성태씨를 만나기 위해 문화공간 ‘싹’을 찾은 15일은 마침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관계자들이 내려와 성태씨만의 교육법을 배우는 날이었다. 그 곳에서 성태씨가 추구하는 문화예술교육의 방향과 목적,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 2부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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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