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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부선이는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목남 씨는 아이의 이름을 지동(地童)이라고 지었다. ‘땅의 아이’라는 뜻이었다. 부선이가 ‘선녀의 아이’라는 뜻으로 선동(仙童)이라고 짓자고 하는 것을 목남 씨는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상반되는 뜻으로 지었다. 그것은 부선이의 하늘나라 타령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기 위해서였다.
그즈음 목남 씨는 변했다. 심술궂은 남편이 되어 있었다. 전처럼 웃지도 않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단 한 번도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부선이는 힘들었다. 시어머니와 팥쥐 같은 시누이의 등쌀보다 남편의 독선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그때마다 부선이는 ‘일 년만 참자, 일 년만 참자.’ 하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또다시 일 년이 지나 지동이의 돌이 되었어도 그녀는 떠나지 않았다. 지동이의 재롱을 보면서 행복해하는 목남 씨를 보면서 ‘그래, 일 년만 참자, 일 년만 참자.’ 하고 여전히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또 일 년이 가고, 일 년이 또 지났다.
그날은 지동이의 세 번째 생일이었다. 목남 씨는 직장에서 돌아와 여느 때처럼 지동이와 놀아주었다. 그는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부선이는 말없이 부자를 바라보았다. 아빠의 양반다리 위에 앉아 어쭙잖게 양반다리를 하고 있는 지동이가 귀여웠다. 지동이는 엄지발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엄지발가락을 만지는 것은 양반다리를 할 때마다 목남 씨가 하는 버릇이었다. 과연 부전자전이다.
부선이는 결심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마음을 다시 다잡았다. 그녀는 오늘만큼은 무슨 일이 생겨도 지동이와 함께 하늘나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그래서 이미 낮에 사슴 아주머니에게 맡긴 날개옷도 돌려받았다.
“목남 씨가 불쌍하네. 에구, 불쌍해서 어떻게 하누.”
사슴 아주머니는 그렇게 말했지만 부선이의 마음을 이해해 주었다.
“아주머니, 저희 목남 씨 잘 좀 부탁해요.”
부선이가 말했다.
그날 밤 부선이는 발목에 묶인 실을 끊었다. 실은 어금니로 물고 잡아당기자 쉽게 끊어졌다. 그녀는 허탈하고 씁쓸했다. 이토록 나약한 실의 묶음에 의존할 정도로 자신에 대한 남편의 믿음은 약했던 것일까. 부선이는 그런 상념에 빠져 남편의 잠든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나쁜 사람. 그리고 불쌍한 사람.’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신을 사랑하지만, 나는 당신의 사랑에 더는 견딜 수가 없어요. 미안해요.’ 부선이는 끝내 눈물을 지었다. 그리고 그 눈물이 마르기 전에 집을 나섰다. 고이 잠든 지동이를 가슴에 안고 산을 올랐다.
그런데 그녀 뒤를 쫓는 이가 있었다. 목남 씨였다. 그즈음 목남 씨는 부선이의 들뜬 마음을 눈치챘다. 그래서 밤이 되면 문단속을 핑계로 누군가 문을 열면 방울 소리가 울리게 해두었다. 방울 소리에 목남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태를 파악했다. 옆에서 자던 사람이 비운 자리는 횅했다. 우묵하게 패여 있는 이부자리처럼 마음의 한가운데가 깊이 패었다.
한밤중에 선녀탕으로 가는 길은 험했다. 부선이는 선녀탕으로 향하는 입구에 도달했을 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물푸레나무와 오리나무 사이의 거미줄 앞에 서서 한동안 주저했다. 이 길을 들어서면 오솔길이 나오고, 오솔길을 지나면 바로 선녀탕이었다. 마침 오늘은 선녀들이 목욕을 하는 날이었다. 자신을 반겨줄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날 생각에 그녀는 흥분이 되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마지막으로 점검해 보았다.
부선이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지상에서의 4년. 나쁘지 않았지만 왠지 앞으로 점차 나빠질 것 같았다. 이내 부선이는 결심을 굳혔다. 그녀는 중얼거리며 거미줄 아래를 통과했다. ‘잘 있어요, 내 사랑.’
목남 씨는 소나무 뒤에서 부선이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는 걸까. 목남 씨는 궁금했다. 혹시 부선이는 진짜 선녀가 아닐까. 목남 씨는 갑자기 헷갈리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입고 있는 옷에서 빛이 났기 때문이었다. 부선이가 시커먼 어둠을 뚫고 쉽게 산을 오를 수 있었던 건 환한 빛을 내뿜는 날개옷 덕분이었다. 또 그 덕에 목남 씨의 미행도 성공적이었다.
목남 씨는 부선이의 날개옷이 내뿜는 빛을 따라 결국 선녀탕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그가 선녀탕에 다다르자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즈넉한 새벽공기를 뒤흔드는 높다란 웃음소리였다. 목남 씨가 폭포 위 바위에 납작 엎드려서 보니 반쯤 발가벗은 여자들이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또 몇몇은 홑겹의 하얀 옷을 걸치고 물가에 앉아 무언가를 가운데에 두고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그녀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부선아, 애기가 정말 귀엽다.”
“어머나, 얘 자는 모습이 완전히 천사네.”
“나도 이런 아기 낳고 싶어.”
여자들은 동시에 까르르대며 웃었다.
잠시 후 여자들이 다시 물에 들어가자 가려져 있던 부선이가 보였다. 부선이는 물가에 앉아 잠든 지동이를 꼭 끌어안고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있었다. 목남 씨는 어떻게 할지를 몰랐다. 빛을 내뿜는 날개옷을 입은 부선이와 한밤중에 산속에서 목욕을 즐기는 여자들이라니. 마치 자신이 몇 시간 전에 지동이에게 읽어주었던 선녀와 나무꾼 동화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전설대로라면 부선이는 지동이를 데리고 하늘나라로 올라갈 것이 뻔했다. 이대로 있다간 꼼짝없이 그는 외톨이 신세가 되게 생겼다. 당장 무슨 수를 써야 했다. 목남 씨가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에 선녀들이 목욕을 마치고 물에서 나왔다. 선녀들은 오들오들 떨면서 한쪽에 마련된 모닥불로 가서 몸을 녹였다. 그런데 선녀들의 젖은 옷자락에서 물이 떨어져 불이 꺼지고 말았다. 선녀들은 당황하며 불을 살리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때 부선이가 나섰다. 그녀는 모닥불을 살리려고 잠시 지동이 곁을 떠났다.
목남 씨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살금살금 기어 지동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지동이는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목남 씨는 지동이를 안고 폭포 뒤 바위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선녀들 중 하나가 그를 보았다.
“저기, 사람이 있어. 남자잖아. 꺄악!”
선녀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그녀들은 혼란스럽게 움직이며 자신들의 날개옷을 서둘러 입었다. 그녀들이 빛을 내뿜는 날개옷을 입고 어수선하게 돌아다니자 주변은 흡사 대낮처럼 밝아졌다. 빛을 내뿜는 날개들이 여기저기서 펄럭이는 통에 목남 씨는 거의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런 복잡한 상황에서도 모닥불 옆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부선이가 또렷이 보였다. 목남 씨가 보기에 그녀는 넋을 놓고 있었다. 부선이는 자신의 날개옷이 뒤늦게 살아난 모닥불에 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멍해 있었다. 한 선녀가 부선이를 뒤로 끌어냈을 때 이미 날개옷의 절반이 탄 뒤였다.
“여보, 지동이를 돌려주세요.”
부선이가 손을 내밀며 기운 없이 말했다.
하지만 목남 씨는 될 대로 되라는 극단적인 심정이었다. 그는 부선이를 잡아당기며 함께 하늘로 올라가려고 시도하는 선녀들을 향해 돌덩이들을 던지고 있었다. 그 중 한 개가 한 선녀의 이마를 맞혔다. 선녀의 이마에선 한 줄기 피가 흘렀다. 선녀는 화가 났다. 그녀는 머리에 꽂혀 있던 비녀를 뽑아들고 목남 씨에게 다가와 대항했다.
목남 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닥불의 불타는 나무토막을 집어 들고 다가오는 선녀에게 달려들었다. 선녀는 행여 날개옷이 탈까 봐 저항도 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다른 선녀들도 목남 씨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들은 동시에 발뒤꿈치를 세우고 하늘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부선이도 공중으로 떠올랐다. 물론 부선이는 발버둥을 치며 지상에 남으려고 했다. 하지만 선녀들은 불붙은 몽둥이를 미친 듯이 휘두르는 남자 앞에 부선이를 남겨둘 수가 없었다. 선녀들은 부선이의 양팔을 거의 포박하고 날갯짓을 힘차게 했다. 그렇게 부선이는 멀어져 갔다.
“지동아! 지동아! 내 아들 지동아!”
부선이의 외침이 밤하늘에 메아리처럼 울렸다.
목남 씨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한동안 그는 늑대처럼 울부짖었다. 화를 삭이려고 물속으로 수차례 들어갔다 나왔다. 이미 모닥불은 꺼졌고 찬바람이 불었다. 밤은 어두웠다. 때마침 달도 구름에 가려 온통 암흑이었다. 목남 씨의 마음도 그러했다. 춥고 절망적이고 어두웠다. 그는 죽을 생각으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물속에서 한참 숨을 참고 있는데, 어디선가 먹먹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기의 울음소리였다. 목남 씨는 물속에서 바삐 빠져나와 지동이를 향해 뛰었다. 그가 지동이에게 다가가자 지동이는 울음을 뚝 그쳤다. 지동이는 숨이 막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개를 빳빳이 펴고, 두 눈은 커다래진 상태로 숨을 멈추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경기가 든 것이다. 목남 씨는 지동이를 흔들었다. 잠시 후 고집스럽게 숨을 참던 지동이가 가쁜 숨을 토해냈다. 그러고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목남 씨도 지동이를 끌어안고 울었다. 그렇게 이별의 밤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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