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으로2009/07/25 20:28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옆 마을 잔칫집에 가셨다. 짝퉁 엄마는 머리를 감는다며 쌍둥이들을 아빠한테 맡기고 욕실로 들어갔다. 나와 여동생은 텔레비전을 보고 아빠는 쌍둥이들과 놀아주고 있는데 같은 동네에 사는 아빠 친구가 자동차가 고장 났다며 아빠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셨다.

아빠는 금방 들어올 테니 잠깐 쌍둥이들을 보고 있으라고 하셨다. 나와 여동생은 텔레비전을 보느라 정신이 팔려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아빠는 텔레비전을 끄고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다짐을 받았다. 그제야 우리는 아빠를 보며 알았다고 말했다. 아빠는 쌍둥이를 자세히 보시고서는 ― 우리 집 쌍둥이들은 정말 똑같이 생겼기에 가족들도 자세히 봐야 구분할 수 있다 ― 개구쟁이 큰 쌍둥이는 내게, 비교적 얌전한 작은 쌍둥이는 여동생 앞에 앉게 하시고 돌아올 때까지 쌍둥이들한테서 눈을 떼지 말라고 몇 번이나 주의를 주시며 나가셨다.

아빠가 나가시자마자 나는 텔레비전을 다시 켰다. 처음엔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쌍둥이들을 잘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쌍둥이들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 어느 순간이라는 것이 가만히 생각해보면 텔레비전 채널 때문에 여동생과 싸움이 벌어졌던 때부터인 것 같다. 나는 리모컨을 누르며, 여동생은 텔레비전 앞에서 버튼을 누르며 서로 보고 싶은 것을 보겠다고 한참 승강이를 벌이는데 ‘쨍!’하며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놀라서 소리 난 곳을 보았을 때는 이미 쌍둥이의 한쪽 발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큰 쌍둥이가 다쳤는지, 작은 쌍둥이가 다쳤는지 생각해 볼 새도 없이 쌍둥이가 바보처럼 발을 움직여 우리에게로 오려고 했다. 움직이지 말라고 소리치려고 했는데 먼저 움직이고 만 것이다. 양 발에서 흐르는 피를 보며 다치지 않은 쌍둥이와 여동생마저 다친 쌍둥이를 따라 울기 시작했다. 몸도 굳고, 머리도 굳어 버려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때 다행히 짝퉁 엄마가 욕실 문을 급하게 열며 나왔다. 깨지는 소리, 동생들의 울음소리를 들은 게 틀림없었다. 물을 뚝뚝 흘리며 놀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깐……. 짝퉁 엄마는 곧 다친 쌍둥이에게로 가서 쌍둥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큰 쌍둥이 이름을 부르며 “괜찮아! 괜찮아!”라고 안심시키면서 담요로 감싸 주었다. 그런 다음 내게 뭐라고 한 후 바로 쌍둥이를 안고 밖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마을 보건소로 가는 것이 분명했다.

짝퉁 엄마가 그렇게 사라지고 나서 내 귀에 좀 전에 짝퉁 엄마가 한 소리가 윙윙 울리기 시작했다. 난 짝퉁 엄마가 말한 대로 동생들을 꽉 잡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마루에는 큰 쌍둥이가 깨뜨린 유리컵과 큰 쌍둥이가 흘린 피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마루에서 현관 쪽으로 나있는 물방울과 핏자국도 보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큰 쌍둥이를 안고 뛰어가면서 짝퉁 엄마도 발에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쌍둥이보다 더 깊게…….

 

병이 난 짝퉁, 아니…… 필리핀 엄마

짝퉁 엄마는 병이 났다. 놀란 마음에 머리의 물기를 닦지도 못하고 물을 뚝뚝 흘리며, 대충 아무 옷이나 걸치고 나갔기에 감기에 걸린 것이다. 거기다 유리에 찔린 채로 큰 쌍둥이를 안고 뛰어서 양발의 상처도 꽤 심한 것 같았다.

할머니는 더운 곳에서 시집 온 아가가 쌀쌀한 날씨에 그리 나갔으니 이 일을 어쩌느냐며 마음 아파하셨다. 그러다 결국 붕대로 싸인 짝퉁 엄마의 발을 만지시며 눈물을 보이셨다. 짝퉁 엄마는 그런 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저는 괜찮아요.”라고 말하며 오히려 할머니를 위로했다. 사실 ‘저는 괜찮아요.’라는 말은 짝퉁 엄마가 많이 하는 말이다. 할머니는 “이 착한 것이 늙은이 걱정하지 말라고 이 상황에서도 괜찮다는 말을 하니…….”라며 또 눈물을 보이셨다. 불덩이가 되어서 누워있는 짝퉁 엄마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솔직히 미안했다. 내가 큰 쌍둥이만 제대로 봤어도……. 짝퉁 엄마가 덮은 이불 끝으로 붕대에 싸인 짝퉁 엄마의 발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똑같이 양발을 붕대로 감은 채 누워있는 큰 쌍둥이도 보였다. 감기에 걸린 짝퉁 엄마는 큰 쌍둥이를 떼어놓으려 했는데 고집을 부리며 짝퉁 엄마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여동생과 작은 쌍둥이가 물수건을 짝퉁 엄마 머리에 올려주자 짝퉁 엄마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짝퉁 엄마는 며칠을 그렇게 앓았다.

짝퉁 엄마가 누워있는 동안 고모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우리 집을 드나들며 집안일을 거들어 주시고 짝퉁 엄마를 간호했다. 아픈 짝퉁 엄마를 걱정하며 간호해주는 가족들을 보며 나만 짝퉁 엄마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지, 짝퉁 엄마는 이미 우리 가족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어른들이 보지 않아도 짝퉁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내 딴에는 이런 내가 기특하게 느껴졌는데 할아버지가 보기에는 부족했나 보다. 결국, 내 입에서 ‘필리핀’이라는 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대신 ‘엄마’라는 소리는 혼나지 않을 만큼만 작게 내었다. 호칭을 바꾼 나를 보고 필리핀 엄마가 또다시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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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