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며칠이 지났지만 물고기 정령이란 것은 나타나지 않았다. 선녀 설희도 승우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안 되겠다. 산짐승의 말이라도 들어보자.”
선녀 설희가 눈을 지그시 감더니 두 손을 모은다. 그리고 입술은 벌리지 않은 채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듯 한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멀리서 다람쥐 한 마리가 나타난다.
“세상에! 정말로 선녀님이신가요?”
“세상에! 다람쥐가 말을 하잖아!”
“다람쥐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네가 내 옆에 있어서 잠시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된 거야. 다람쥐야, 나는 이 물에 살고 있는 물고기 정령을 만나야만 해.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를 않아. 어떻게 된 거지?”
“그분이 헤엄치기엔 물이 얕아져서 살기 힘들어졌어요. 그래서 그분은 눈에 보이지 않게 물속에 잠들어 계세요. 선녀님이 부르신다면 분명 듣고 일어날 텐데 이상하네요.”
승우는 물고기 정령이 죽은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렇다면 다람쥐야, 네가 좀 불러줄 수 없어?”
“그건 무리예요. 나 같은 산짐승이 정령님께 말을 걸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내가 보기엔 선녀님이 작아서 부르는 힘도 작으니까 그런 거 같아요.”
“그래, 고마워. 불러서 미안해. 이제 돌아가도 좋아.”
“그런데 선녀님,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산의 기운이 흐트러져서 다들 불안해하고 있어요. 대부분의 정령님들이 잠들어 계셔서…… 우리를 돌봐줄 수 있는 건 아무도 없는데…….”
“걱정 마. 그걸 위해 내가 여기에 있으니.”
“선녀님만 믿을게요. 필요하시면 또 부르세요.”
다람쥐가 가버리고 선녀 설희는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해야 힘이 커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온 힘을 다해서 불러 보아도 정령은 대답이 없다.
“설희야,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선녀 설희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승우의 손을 잡고 승우와 함께 정령을 부르는 주문을 물 위에 그린다. 승우는 설희의 손을 잡고 있는 것이 쑥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물줄기가 불안정하게 일렁이더니 결국 승우와 설희 위로 쏟아지고 만다.
“미안해, 내가 집중을 안 해서 그런가 봐. 다시 해보자.”
“확실히 아까보다 힘은 세진 거 같아. 같이 힘내보자.”
승우와 선녀 설희는 더욱더 손을 꽉 맞잡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물이 소용돌이치면서 깊이를 알 수 없이 깊어지더니 커다란 물고기가 몸에서 빛을 내며 튀어나왔다.
“으악! 물고기 정령이란 게 저거야? 엄청 크다!”
“선녀님께서 저를 부르시는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내가 너를 부른 건….”
“알고 있습니다. 저를 부르시는 이유는 하나겠지요. 날개옷이 찢어졌다는 것. 언젠가 오늘 같은 날이 있을 것이라며 선녀님께서 제 비늘을 가져가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기 물고기야…… 아니, 물고기 정령님. 비늘을 안 아프게 벗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제가 죽지 않으면 비늘을 벗겨 낼 수 없습니다. 비늘을 벗겨 낸 뒤 여왕벌의 모습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이 마을의 정령을 찾아가 꿀을 얻으십시오. 그리하여 날개옷에 저의 비늘과 꿀을 올려놓으면 빛을 내면서 다시 원래의 모습을 찾게 될 것입니다.”
승우는 죽는다는 말이 무서웠다. 승우와 선녀 설희가 눈앞에 있는 물고기 정령을 죽여야 한다니! 생선반찬을 자주 먹으면서도 정령을 죽인다는 건 너무 끔찍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설희야 그건 안 돼. 정령님을 죽일 순 없어. 우리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괜찮습니다. 저의 이 모습은 빌린 것뿐입니다. 선녀님을 위해 받은 목숨, 선녀님을 위해 쓰게 되어 기쁠 뿐입니다. 선녀님과 나무꾼님의 빛을 지닌 그 소년의 손을 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승우와 선녀 설희는 동시에 말한다.
“나무꾼의 빛이라니?”
“선녀님에겐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저 빛은 분명…… 세상을 떠돌던 나무꾼님의 영혼에서 나온 빛입니다. 그걸 알고 같이 오신 줄 알았는데 아니셨군요. 그 빛이 있어 제가 긴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던 겁니다. 소년의 몸에는 그저 우연히 들어가게 된 것 같군요. 하지만 그저 우연으로만 볼 수 없겠지요, 마지막이라고 느껴지는 그 영혼의 빛을 지니게 된 소년을 만나 제 앞에 나타나시다니…… 이 모든 게 정해진 운명이겠죠.”
그래서 승우의 힘이 보태졌던 걸까, 하고 선녀 설희는 생각한다.
“그럼 미안하지만 비늘을 가져갈게. 그전에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어. 여왕벌 정령은 어떻게 찾지?”
“제가 사라질 때 생기는 빛에 반응하여 여왕벌을 따르는 누군가가 이곳을 찾아올 겁니다. 그리고 비늘은 3일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니 그전까지 꿀을 얻으셔야 합니다.”
승우와 선녀 설희가 물고기 정령의 몸에 손을 대자 눈부시지 않은 아주 따뜻한 빛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아버린 비늘은 비늘이라 부르기엔 아주 향기롭고 부드러우며 아름다웠다.
승우에게 함께한 '나무꾼의 빛'
물고기 정령이 말한 것처럼 빛에 반응한 무엇인가가 선녀 설희와 승우에게로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그것은 일벌이었다.
“네가 만나야 할 선녀가 여기 있어. 이리로 와.”
이상하게도 벌은 선녀 설희와 승우가 있는 곳에 가까이 오려 하지 않았다. 빛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왔으나 가까스로 저항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선녀 설희가 꽃의 향기를 벌에게 뿌렸다. 벌은 자의인지 타의인지 향기에 이끌려 그제야 설희 손등 위에 날아와 앉았다.
“죄송합니다.”
“이야기는 전부 들었어. 너희가 모시고 있는 여왕벌 정령은 어디에 있지?”
“죄송합니다. 말해 드릴 수 없어요.”
승우와 선녀 설희는 깜짝 놀란다. 말해줄 수가 없다니! 승우가 벌을 손바닥으로 때려서 죽일 기세로 강하게 몰아붙였다.
“말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돼? 그것을 위해 물고기 정령이 목숨을 내주었어. 너는 그 목숨을 헛되게 만들 셈이야?”
“이 아이의 말이 맞아. 말하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죽일 수도 있어.”
“죽어도 말을 할 수가 없어요. 말하면…… 말하면…….”
승우는 믿을 수가 없었다. 벌이 울먹거리고 있었다. 승우는 천천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선녀 설희도 같은 생각이었다.
“너를 죽일 생각은 없어. 이유라도 말해줘.”
“내가 말하면…… 우리 여왕님은…… 물고기 정령처럼 죽게 돼요. 여왕님이 살아 계신 건 그 꿀이 있기 때문이니까요. 우리들은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날이 오면 우리가 여왕님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죠. 우리는 여왕님을 잃고 싶지 않아요.”
승우는 우진이와 할머니, 마을 사람들 모두를, 특히 선녀 설희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의 마음은 알겠어. 하지만, 내가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이 마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불행해져. 그건 너의 여왕님과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지켜내기 위해서 필요한 거야. 부탁할게.”
“그렇다면…… 여왕님의 꿀을 내놓지 않아도 결국…… 우리 여왕님은 죽게 되는 건가요?”
선녀 설희와 승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에게 시간을 줘요. 그러기 싫다면 날 그냥 죽게 해줘요.”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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