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으로2010/03/21 08:30

꼬마 선녀가 할머니와 승우를 앉혀놓고 왜 자신이 하늘나라에서 내려왔는지를 이야기한다. 꼬마 선녀의 이야기는 우진이가 들려준 것처럼 나무꾼과 그의 홀어머니를 위한 꽃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선녀가 보내는 하늘의 꽃에는 신비한 힘이 있어. 나무꾼과 그의 어머니 그리고 이 마을 모두를 사랑하는 ‘선녀의 마음’이 담겨 있거든. 쉽게 말하면, 이 마을에 유독 나이 많은 여자들이 많은 건 선녀가 그들을 나무꾼의 어머니처럼 여기고 보살피려 했기 때문이야. 꽃의 향기를 맡은 이 마을 정령들은 선녀의 마음을 헤아려 이 마을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이 마을에 사람이 많이 살지는 않지만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답고 깨끗하고 살기 좋은 곳인 건 이 때문인 거고.”

“선녀가 나무꾼의 친구 자손들에게 자신의 꽃을 부탁했었다고 하던데…….”

“그랬었지. 그랬는데 그 자손들 중에 욕심을 품은 자가 있었어. 그 꽃을 자기가 가지면 이 마을에 나뉘었던 커다란 복이 자신의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부른 욕심이었어. 결국, 마을에 재앙이 들이닥쳤지. 그해 여름, 산의 나무들이 쓸려갈 만큼 엄청난 폭우가 내렸어. 그것도 이 마을에만. 피해는 말할 수도 없이 컸고 사람들은 점점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어. 그는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뒤늦게 깨달았지만, 용서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어. 그러나 백 년 가까이 대를 이어 꾸준히 용서를 빌자 선녀는 어느 날 자신의 목소리를 그들에게 들리게 해주었지. 다시 너희들을 통해 꽃을 내리지는 않겠지만, 이 마을을 계속 지켜주겠노라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었다면 지금 이곳은 인간이 있는 그 어느 곳보다도 살기 좋은 마을이 됐을 거야. 하지만, 그들의 뉘우침 또한 없었으면 지금처럼도 살지 못했겠지. 그렇게 다시 오랜 세월이 지나고 지나서…… 선녀도 하늘 세상에서 목숨이 다한 날이 온 거야. 더는 마을을 돌봐줄 수 없게 된 거지. 그래서 그녀의 아이를 인간 세상에 보내기로 했어. 마지막으로 이 마을에 꽃을 내려주기 위해서 말이야.”

“그 선녀의 아이가…… 꼬마 선녀, 너냐?”

“아니. 그 아이는 우리 어머니야. 그러니까 그 선녀는 나의 할머니야.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비어 있는 자리를 지키려면 어머니가 내려오실 수가 없었어. 그래서 내가 대신 내려오게 된 거야.”

“그렇다면 왜 다른 선녀들이랑 목욕하고 있었어?”

“꽃을 내리려면 특별한 의식이 행해져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몸을 씻어 정갈히 해야 하지. 원래는 나 혼자 내려와야 하는데, 내가 선녀로서 너무 어리기 때문에 의식에 실패할 수도 있고 혹시 또 인간에게 발견되게 하지 않게 하려고 함께 내려왔던 거야. 그런데…….”

꼬마 선녀의 이야기가 계속 될수록 할머니의 표정이 매우 심각해졌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 큰일이구나. 선녀님은 우리 승우에게 발견되어 버렸고, 그 의식이라는 것도 행하지 못하였으니…… 이제까지보다 더 큰 재앙이 이 마을을 덮칠지도 모르겠구나. 이를 어쩐다…….”

할머니께서 안절부절못하시는 모습에 그제야 승우는 자신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우진이는? 나랑 같이 있었던 남자애 말이야. 그 애는 갑자기 자기 집으로 말없이 돌아가 버렸어. 그런데 내가 불러도 돌아보질 않았어. 정말 들리지 않는 것 같았어. 아! 그 애의 조상님이 나무꾼의 친구라고 했어.”

“그 애는 잠들어 있어. 내가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거야.”

“그럴 수가…….”

“그 애뿐만이 아니야. 그날 이 마을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엄청난 벌을 받게 되겠지.”

“…… 네가 인간이 되기로 해서…… 그래서 이 마을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이 마을 때문이 아니라도 난 너와…… 함께 지낼 수 있어. 내가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정말 너를 좋아하게 된 거 같으니까…… 아니, 좋아해. 하늘로 돌아갈 수 없다면 모든 걸 용서하게 해주고 그냥 나랑 같이…… 우리랑 같이 살면 안 돼?”

“인간이 되려면 우선 날개옷을 빼앗긴 그 해에 첫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들었던 것 같아. 그런데 나는 인간의 몸으로도 성숙하지 못해서 아이를 낳을 수가 없어. 그보다 또다시 인간의 욕심이 하늘의 노여움을 사서…… 내가 돌아가지 못하면…… 이 마을뿐만 아니라 나도 없어져 버릴 거야…….”

승우는 펑펑 눈물을 쏟았다. 우진이를, 할머니를, 마을 사람들을 믿어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이렇게 엄청난 일이 될 줄 몰랐다. 열 살의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승우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큰 짐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방법이 없진 않을 거야. 일단 이 마을에 사는 정령들을 찾아보자. 내가 꽃의 향기를 풍기면 그들은 나를 알아볼 거야.”

“우진이부터 만나게 해줘. 너라면 어디 있는지 알잖아.”

“나도 잘 몰라. 다만, 그 아이의 할머니라면 이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을 거란 거야.”

“그렇다면, 그건 내가 알지. 내 길을 알려줄 테니 찾아가 보아라. 오늘은 벌써 해가 졌으니 내일 찾아가보렴. 반드시 길이 있을 게야…….”

좀체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승우에게 꼬마 선녀는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욕심을 부렸거나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고 하기엔 승우는 너무나 어렸고, 무엇보다 너무나 순수하고 착해 보였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백설이 아니고 설희야. ‘눈 설’ 자에 ‘빛날 희’ 자를 써서 설희.”

승우가 훌쩍거리면서 말한다.

“그럼 너는 백설공주가 아니라 설희공주였구나.”

“난 공주가 아니라 선녀야.”

선녀 옷을 고칠수 있을까?

우진이의 할머니 댁은 생각보다 가까웠다. 우진이의 할머니는 둘이 찾아올 줄 알았다는 듯 이미 문밖에 나와 있었다. 그러고는 선녀 설희를 보자마자 바닥에 엎드려 울며 사죄를 한다.

“이 늙은이 눈이 침침해도 한 눈에 선녀님인 걸 알아보니 피는 못 속이나 봅니다. 선녀님이시여,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 늙은이가 말이 많아 어린 새끼를 저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우리 우진이가 제 말을 믿고 그곳을 찾아갈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이 어리석은 늙은이를 데려가시고 저 어린 것이 제발 눈을 뜨도록…….”

승우는 자꾸만 나오려는 눈물을 꾸역꾸역 참아낸다. 이게 다 나 때문이다. 내가 우진이를 말렸으면 될 일이다.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나고 후회가 되었다.

“이 아이는 잠들어 있을 뿐이에요. 내 선녀옷을 고칠 수만 있다면 죽을 일도 없어요. 그 방법을 당신이라면 알고 있을 거예요.”

“선녀의 옷이 찢어지면 선녀탕이라 불리는 계곡물에 사는 물고기 정령의 비늘을 얻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옛날만큼 계곡물이 깊지가 않아서 그 정령이 살아 있는지,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그것뿐인가요?”

“제가 알고 있는 건 그것뿐입니다. 그 비늘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분명 그 물고기 정령이 알려줄 겁니다. 나이만 먹고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하니…….”

“아니에요. 충분히 도움이 됐어요. 잘될 거예요.”

선녀 설희와 승우는 서둘러 선녀봉을 향해 올라갔다. 그러나 물에는 물고기가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정령으로 보이는 물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선녀 설희는 물 위에 그림 같은 것을 그려서 이따금 물줄기가 솟아오르도록 신비한 힘을 내는 것 같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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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