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으로2010/03/14 09:00

“승우야, 일어나서 밥 먹어야지.”

할머니께서 아침상을 내오신다. 승우는 졸린 눈을 비비다가 밥공기가 세 개인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그렇구나, 꿈이 아니었구나! 승우는 급하게 방 안을 휙 둘러본다. 작은 바위를 덮어 놓은 듯 이불이 봉긋 솟아 올라와 있다. 저 안에 선녀가 있구나.

"서, 선녀님도…… 밥…… 밥 먹어……요.”

승우가 이불을 조금 걷어 올리고 말한다. 꼬마 선녀는 대답이 없다.

“혹시 사람이 하는 말…… 아니면 우리나라 말을 모르는 걸까요, 할머니?”

“글쎄다. 그런 것 같지는 않더구나. 꼬마 선녀님, 많이는 못 내왔지만, 아침상 같이 받아요. 그래도 정성을 다해 내왔으니 속은 든든해질 수 있을게요.”

의식을 잃기 전 들었던 게 할머니 발자국이었던 게 인제야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진이가 다녀갔던 걸까? 아니면 할머니는 이미 예전부터 선녀를 믿었기 때문에 직감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 서, 선녀님…… 우리 할머니 밥이 얼마나 맛있는데…….”

“……ㄱㅗㅈ가ㅁ…….”

“응? 지금 말했어? 뭐라고 했어?”

다시 대답이 없다. 승우는 답답하다. 겨우 선녀가 입을 열었는데 두꺼운 이불에 덮여 있어서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곶감이면 돼……. 다른 건 필요 없어"

“할머니, 곶감이래요, 곶감! 그런데 곶감이 있어요?”

“이를 어쩐다…… 꼬마 선녀님 입을 옷도 없으니 내 서둘러 장에 나가서 옷이랑 곶감이랑 사올게. 자, 이거라도 조금 먹어요.”

“……필요 없어 다른 건…….”

“승우야, 너라도 밥 잘 먹고…… 꼬마 선녀님 기운 좀 내게 도와주고…… 우리 승우도 기운을 내고. 알았지? 내 얼른 장에 다녀올 테니.”

“할머니 없을 때 도망가면 어떻게 해요?”

“그럴 일은 없을 거 같으니 내 얼른 다녀오마.”

할머니는 밥공기를 미처 다 비워내지도 않고 서둘러 장에 나가신다. 승우는 할머니를 따라 장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여전히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는 꼬마 선녀가 이제는 조금 측은해진다. 우진이라도 와줬으면 좋겠는데…… 우진이는 어떻게 된 걸까?

“선녀…님, 나 금방 나갔다 올게. 정말 금방이야. 할머니보다 빨리 올 거야. 그러니까 나가지 말고…… 답답하니까 이불 속에서 나와서 쉬고 있어. 금방 올게.”

승우는 급하게 밥상을 치우고 밖으로 나간다. 우진이네 할머니 댁이 어디인지를 몰라 어제 만난 장소로 뛰어나가 보지만 우진이는 없다. 승우는 다시 급하게 우진이와 놀았던 계곡물이 있는 곳을 찾아간다. 그곳에도 우진이는 없었다. 우진이도 걱정이지만 꼬마 선녀가 걱정되는 승우는 작고 예쁜 돌멩이 다섯 알을 골라 주머니에 넣고 다시 뛴다. 숨을 헐떡이며 다시 집으로 돌아온 승우는 조심스럽게 선녀가 있는 방의 문을 연다. 이번에는 선녀가 이불 밖으로 얼굴을 빠끔히 내밀고 있다. 승우가 돌아오자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려고 한다.

“잠깐만, 잠깐만! 보여줄 게 있어. 봐봐, 예쁘지!”

승우는 선녀에게 금방 주워온 돌멩이를 꺼내서 보여준다. 돌멩이에 남아 있는 물기를 입고 있는 티셔츠로 쓱쓱 닦아서 다시 내민다. 선녀가 호기심에 쳐다보는데 그 모습에 승우는 심장이 이상하게 쿵쾅거려옴을 느낀다. 꼬마 선녀는 동화 속에서 본 그 어떤 공주들의 모습보다도 아름다웠다. 특히 흰 눈보다도 깨끗하고 하얗게 빛나는 피부 빛이 신비롭게까지 느껴졌다.

“넌 선녀가 아니라 백설공주니? 네 이름은 백설이야?”

꼬마 선녀는 승우의 말을 못 들은 척한다. 애초에 백설공주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꼬마 선녀는 승우가 가져온 것이 그저 돌멩이란 사실에 실망하고 다시 이불을 얼굴 위로 끌어당긴다.

“아, 아냐! 미안해! 내가 엉뚱한 말을 해버렸어! 그리고 돌멩이를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내가 이걸로 이제부터 재밌는 걸 해 보일게. 자, 봐봐.”

승우는 오른 손바닥에 돌멩이 다섯 개를 모두 모으더니 바닥에 살짝 깔아 놓는다. 그러고는 하나를 적당한 높이로 하늘에 던진 후 바닥에 있는 돌멩이 하나를 얼른 줍고 그것을 받아낸다.

“이렇게 하나씩 주울 때 다른 돌멩이에 손이 닿으면 안 돼. 하늘에 던진 것도 다시 받아내야 해. 다음은 한 개가 아니라 두 개를 주워야 하고 다음은 세 개…….”

꼬마 선녀가 흥미를 보이며 점점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낸다. 선녀가 입고 있는 옷은 분명 승우의 것이다.

‘할머니 옷이 너무 커서 내 옷을 입었구나. 내 옷을 다른 누구도 아닌 선녀가 입고 있다니! 내가 남자애라서 조금 미안해지는걸…….’

미안함보다 승우는 어쩐지 부끄럽게 느껴진다. 꼬마 선녀가 자기에게 집중하고 있는 것을 알고 더욱 부끄러워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해? 다섯 개를 주우려면 하늘에 던질 수 있는 돌이 없잖아.”

“아, 그건 꺾기라고 해서 이렇게 하는 거야.”

승우는 손바닥에 돌멩이를 잘 모은 다음 한꺼번에 살짝 위로 던진다.

“우와! 다섯 개야. 다섯 개가 올라갔어! 이걸 어떻게 하는 거야?”

승우는 우쭐해진다. 이걸 다 잡아내야 꼬마 선녀가 좋아할 텐데! 승우는 손등 위에 있는 돌멩이에 집중한다. 하나, 두울, 셋!

“우와, 우와, 우와! 다 잡아냈어! 신기하다! 이건 너만 할 수 있는 거야?”

마치 마술사의 마법을 처음 본 아이처럼 신기해하는 선녀를 보면서 승우는 더욱더 우쭐해진다. 내친김에 거짓말로 세상에서 이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고 하고 싶지만 승우는 이것이 공기놀이라고 불리는 아이들의 놀이임을 설명해준다.

“다른 것도 보여줄까?”

“또 뭐가 있어?”

“밖으로 나가자. 이건 밖에 나가서 해야 해.”

이번에 승우는 자치기를 보여줄 셈이다. 공기놀이는 여자아이들의 놀이라는 생각에 남자아이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진 것이다. 그다음에는 무엇을 보여줄지도 생각해본다. 꼬마 선녀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준 거 같아서 너무나 기분이 좋다. 문을 열자 어느덧 중천에 가까워진 여름해가 눈부시다. 승우는 혹시 선녀가 뜨거운 햇볕에 녹아버리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눈부시게 하얀 꼬마 선녀가 자꾸만 걱정된다.

“너… 설마 햇볕에 녹아서 없어지거나…… 그러는 거 아니지?”

“선녀옷이 없으면 나는 인간이나 마찬가지야. 그럴 일은 없어.”

선녀옷 이야기가 나오자 꼬마 선녀는 다시 어두운 표정이 되어서는 문턱 밖으로 내밀었던 한 발을 다시 안으로 집어넣는다.

“잠깐만 있어봐.”

승우는 길을 따라 드문드문 나 있던 민들레꽃 홀씨 몇 개를 꺾어온다.

“밖에 나오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이것만 봐봐. 아주 재미있다고.”

꼬마 선녀가 마당에 서 있는 승우를 쳐다보자 기다렸다는 듯이 힘껏 민들레꽃 홀씨를 향해 바람을 분다.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를 꼬마 선녀는 넋을 놓고 바라본다.

“……나도 해볼 수 있어?”

“응! 잠깐만 있어봐. 내가 얼른 꺾어 가지고 올게.”

장을 보고 온 할머니는 마당에서 민들레 홀씨를 불며 놀고 있는 승우와 꼬마 선녀에게 놀란다. 그러나 이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본다.

"곶감은 인간세상 최고의 맛이라고 들었어"

할머니는 마루에 곶감을 내어주고는 이내 방으로 들어가신다.

‘선녀들은 곶감밖에 먹을 줄 모르나? 그런데 왜 안 먹지?’

계속 곶감을 쳐다보고만 있는 꼬마 선녀가 승우는 신경이 쓰인다. 그것도 아니면 그런 자신의 시선이 신경 쓰여 오히려 못 먹는 걸까?
승우는 고개를 돌려보지만, 여전히 꼬마 선녀는 쳐다보고만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너 혹시 이거 처음 봐?”

“……응.”

“곶감이 뭔지도 모르고 먹고 싶다고 그런 거야?”

“그치만…… 꼭 먹어보고 싶었는걸. 곶감이라는 것이 인간 세상에 있는 열매들 중 최고의 맛이라고 들었는걸.”

“곶감을 먹어본 선녀가 있구나. 이건 감이라고 하는 과일을 말려서 만든 거야. 감은 원래 가을에 익지만 지금 먹는 곶감도 맛있을 거야.”

꼬마 선녀는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 문다. 그제야 맛있다는 미소를 지어 보이는 꼬마 선녀를 보고 승우는 넋을 잃는다. 곶감을 오물오물 씹고 있는 작은 입이 귀엽다고 생각하자 승우의 얼굴이 다시금 발갛게 달아오른다. 승우는 또다시 밖으로 뛰어나간다. 자꾸만 꼬마 선녀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 이번에는 아직 홀씨가 되지 않은 노란 민들레꽃으로 꽃반지를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좀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 더 아름다운 들꽃들을 한 아름 꺾어다가 꼬마 선녀에게 가져다준다.

“밖에 나가면 이보다 더 예쁜 꽃들이 많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예쁘고 재밌는 것들이 많아. 같이 가보지 않을래?”

“나는 하늘나라로 가야 해……. 이곳에 남아 있을 수 없어.”

“정말 미안해. 너의 옷을…… 망가뜨리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 미안해……. 하지만 그건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옷이 그렇게 될 줄 몰랐단 말야…… 날개옷이 그렇게 되었으니까 너…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거 아냐? 그러니까…… 나랑…… 같이 살자. 내가 날마다 예쁘고 재밌는 것들을 널 위해 보여주고 알려줄게.”

무 어려서 나무꾼처럼 결혼이란 걸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매일매일 꼬마 선녀를 기쁘게 해줄 자신이 있다고 승우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신은 이제 더 이상 아홉 살이 아닌 열 살이니까. 조금은, 어른이니까 말이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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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