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으로2010/03/06 14:26

승우는 우진이의 걸음을 따라 마을 어귀를 걸으면서 못다 나눈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우진이가 걸음을 멈추고 쉬어 가자고 한다. 나무 그늘에 의지해 뜨겁고도 청량한 여름 햇살을 시원하게 받아낸다. 승우는 졸음이 쏟아지려 한다. 그런데 우진이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말투 ― 승우는 우진이의 그 말투가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 ― 로 이야기를 꺼내어 이내 졸음이 싹 가셨다.

“너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알지?”

“응! 줄거리 말해줄까?”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우리 둘 다 그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게 확실해졌으니까. 그렇다면, 이곳이 그 선녀와 나무꾼이 살았던 마을이라는 것도 알아?”

“할머니한테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승우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우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할머니 댁에 오는 걸 싫어한 만큼 할머니의 말씀도 잘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에 가고 싶어 훌쩍거리면서 울 때 할머니께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겠다며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꺼냈었다. 그때 승우는 아는 이야기라면서 짜증을 냈다. ‘그 선녀와 나무꾼이 이곳 삼거리마을에 살았단다.’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라고 무시해버렸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우진이가 하고 있다니!

“저 산봉우리는 ‘선녀봉’이라고 해. 선녀의 몸을 닮았다고 해서 선녀봉이라고 부른대. 그것보다 저 산봉우리에서 시작되는 계곡물이 바로 선녀가 목욕을 했던 계곡의 물이야.”

“그렇구나.”

시큰둥해하는 승우에게 우진이는 더욱 진지하게 이야기를 한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누가 지어낸 게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이야.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곳 삼거리마을이라는 것은 확실해.”

“에이, 거짓말. 그건 정말 지어낸 이야기잖아.”

“넌 저 선녀봉과 내 말을 믿지 않는 거니?”

우진이가 실망한 듯 보이자 승우는 당황한다.

“그치만…… 그걸 뭐라고 하지? 즈, 증거! 그래 바로 그거야. 증거가 없잖아! 내가 보기엔 그냥 산이고 물인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왔어. 하지만,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곧 알게 될 거야.”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는데?”

“바로 내일. 내일 선녀들이 마을 사람들이 선녀탕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내려올 거니까!”

“뭐라고?”

승우는 아직도 어리둥절하지만 우진이는 더욱 격앙된 목소리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내가 보여줄 굉장한 여름이 바로 그거야.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가 진짜인지 아닌지 내일 밤 우리의 눈이 증거가 되어 줄 테니까.”

동화 속 이야기를 믿다니! 승우는 우진이 처음으로 어린애 같다고 생각했다.

“선녀가 내려온다는 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우리 할아버지의 아주 먼 할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조상님의 친구 분이 바로 나무꾼이었기 때문이야.”

할아버지와 나무꾼

“우리가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걸 확인했지만, 마지막 부분을 덧붙여 이야기할게. 선녀와 아이들을 찾아 하늘로 올라간 나무꾼은 홀로 계신 어머니가 걱정되어서 다시 근심을 하게 돼. 그런 나무꾼이 안쓰러웠던 선녀의 도움으로 그는 천리마를 타고 땅으로 내려오게 되지. 어머니는 마지막이니 잠깐만 내려서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간절히 부탁하지만, 천리마에서 내리면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없기에 그럴 수 없다고 해. 그러면 죽이라도 한 사발 먹고 가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청을 못 이겨 말을 탄 채로 죽을 먹다가 그만 그 뜨거운 것을 말 등위에 쏟아버리고 말지. 놀란 말이 땅을 박차자 나무꾼은 말 등에서 떨어지고 순식간에 천리마는 하늘로 날아가 버리지. 나무꾼은 더는 선녀를 만날 수 없게 되어 홀어머니를 모시고 평생을 그리워만 하다가 죽게 돼.

내가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그 이후부터야. 선녀는 나무꾼이 자신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는 그를 도와줄 수가 없었어.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나무꾼에 대한 신의 노여움이 너무 커서 더 이상 선녀의 부탁이 받아들여지질 않았던 거야. 그래도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나무꾼을 만나게 해달라는 선녀의 간절한 청은 계속되다가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야 받아들여지게 되지. 그런데 하늘과는 달리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이미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 있었어. 선녀는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어. 그런데 이상했어. 왜 나무꾼은 죽어서도 하늘나라로 오지 못했던 걸까? 선녀는 나무꾼을 기억하는 사람을 가까스로 만나게 되었어. 그는 나무꾼의 둘도 없는 친구였던 사람의 손자뻘 된다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더욱 쓸쓸한 나날들을 보내다 죽은 나무꾼을 그 친구는 어머니 무덤 옆에 나란히 묻어주었지만, 어느 날 마을에 큰 홍수가 나면서 둘 다 떠내려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선녀는 땅에조차 편하게 묻히지 못하고 마을 곳곳을 헤매고 있을 나무꾼과 그의 어머니의 넋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어. 자신이 천리마를 보냈기 때문에, 아니 하늘에 다시 올라가려 했기 때문에 생긴 불행이라는 생각에 선녀는 너무나 슬펐어. 그래서 그들이 살던 마을에 10년에 한 번, 그러니까 인간에게는 100년에 한 번씩 하늘의 꽃을 띄워 보내기로 했어. 선녀는 그 꽃으로 그 둘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해 달라고 그 손자 되는 사람에게 부탁했어. 그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였지.”

"날개옷을 하나 훔칠거야"

승우는 여전히 우진이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진이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그런지 언제부터인가 사람이 꽃을 돌보게 되는 일은 없어졌다고 해. 그래도 마을에서는 100년에 한 번씩 알 수 없는 꽃향기가 퍼진대. 그 후로는 마을이 더욱 살기 좋게 느껴지고 말이야.”

“그렇다면,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진 줄 모르고 선녀가 계속 꽃을 보낸다는 거야?”

“돌봐주는 사람 대신 무엇인가가 그 일을 대신하고 있는 것 아닐까? 아무튼 말이야, 내일 밤이 바로 그날이야. 하늘의 꽃이 내려오는 날! 할머니께서 알려주신 날짜니까 틀림없어. 그러니까 내일 밤 만나야 해. 승우 네가 믿지 못하겠다면…… 굳이 그렇다면 내일 밤 나타나지 않아도 좋아. 나 혼자서만 확인할 테니까.”

그러나 우진이의 말투는 승우가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쓸쓸함이 묻어나왔다. 승우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진아, 정말로 나올 거야? 네 말대로 달이 뜨지 않으면 엄청 깜깜할 거고…… 무엇보다 할머니께서 걱정하실 거야.”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해. 너는 우리 할머니 댁에, 나는 너희 할머니 댁에 놀러 간다고 말을 하고 나오면 돼. 선녀가 목욕하는 시간은 길지 않으니까, 할머니께서 걱정하실 만큼 늦게 돌아가진 않을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만큼 이곳을 잘 알아.”

“괜찮을까? 할머니께 걱정을 끼치지 않고 나온다고 해도…… 정말 선녀를 만난다면…… 우리는…… 우리야말로 괜찮을까?”

“우리가 위험해지지 않기 위해 날개옷을 하나 훔칠 거야.”

“나무꾼처럼 선녀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려고?”

“아니! 발견되었을 때를 대비하는 거지. 만약에 우리를 해치려고 하면 날개옷으로 협박할 거고 발견되지 않았을 때는 선녀들이 목욕을 마치기 전에 몰래 다시 놔두고 돌아가면 되는 거야.”

“그런데 선녀가 꽃을 띄우러 내려오는 거라면서 목욕까지 할까? 그것보다 왜 그렇게까지 위험한 행동을 해야 해?”

사실 승우는 선녀가 그렇게 궁금하지 않다. 혹시 실제로 만난다고 하면 동화 속 그림처럼 아주 아름다울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의외로 선녀가 못생겼을 수도 있고 나무꾼 때문에 생긴 사람에 대한 적개심으로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아무도 선녀를 믿지 않기 때문이야. 선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 나도 더 이상 할머니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게 될 거니까. 더는 의심이라는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 거야. 그러니까 네가 내일 나타나지 않아도 나는 너를 원망하지 않아. 그렇다고 선녀를 기다리는 일을 그만두지도 않을 거야. 내일 밤, 아니면 다음날 이곳에서 만나자. 안녕!”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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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