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으로2010/03/03 15:05

“앗싸! 여름방학이다!”

승우는 이번 여름방학이 무척이나 설렌다. 완주에 사시는 할머니 댁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엄마 아빠의 휴가 날짜에 맞춰서 하루 이틀 자고 오는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방학 내내 할머니네 집에 있기로 했다.

“승우야, 정말 괜찮겠니?”

“난 너무 설레는 걸요! 왜냐하면, 엄마 아빠는 일하느라 집에 없을 거고 친구들은 학원에 가느라 나랑 같이 놀 수 없잖아요.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한 달이나 보낸다는 건 너무 끔찍해요.
할머니는 나이가 많으셔서 나랑 놀아주시기 어렵지만, 그곳엔 내가 놀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그리고 이번 여름방학 숙제로 곤충채집을 할 거니까요!”

승우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컴퓨터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몸부림을 치면서 시골에 가기를 거부했고 도착하자마자 집에 보내달라고 울면서 떼를 썼다. 그런 승우가 변한 건 바로 작년, 그곳에서 ‘친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승우처럼 방학이면 할머니 댁에 지내러 온다는 ‘우진’이다. 우진이는 승우와 달리 마을 곳곳을 잘 알았다. 그래서 승우를 데리고 다니며 마을을 소개해주고 또 함께 놀아주었다. 승우와 우진이는 열 살 동갑내기 친구였지만 승우는 그런 우진이가 듬직한 형 같아서 좋았다. 특히 계곡에서 물장구를 치고 물고기를 잡던 기억이 승우에겐 너무나 소중했다.

“나는 여름방학 때만 이곳에 올 수 있어. 그러니까 내년 여름방학 때 우리 꼭 만나자. 그때는 더 굉장한 걸 너에게 보여줄게. 그리고 알려줄게. 왜냐하면 우리는 열 살이 되니까! 아홉 살과 열 살은 너무 달라. 두 자리 수의 나이가 된다는 건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는 이야기거든. 그러니까 너에게 굉장한 여름을 선물해줄게.”

할머니 댁이 있는 삼거리 마을을 찾아서

할머니 댁이 있는 삼거리마을까지 가는 길은 언제나 멀고도 험하다. 산에 가려져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마을이 승우는 답답하다.

“왜 산은 항상 똑같을까요? 나는 3센티미터나 자랐는데.”

“승우는 왜 산이 똑같다고 생각하니?”

“왜냐하면 늘 키가 똑같고 여름이면 항상 똑같은 초록색이잖아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승우가 지난 여름방학에 본 잎들은 가을과 겨우내 다 떨어져 버렸는걸. 새로 자란 잎들이니 그것만으로도 산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빠 말을 들으니까 산이 더 진한 초록색으로 보여요.”

“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을 거야.
산을 뒤덮은 나무들이 그새 자라서 산이 더 커졌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마을이 더 안 보이는 걸까요?”

“하하하! 그럴 수도 있겠구나!”

우진이는 어떻게 변했을까? 승우는 우진을 만나 자신이 무려 3센티미터나 자랐다는 것부터 자랑하고 싶었다. 한 뼘은 더 컸던 우진이보다는 여전히 작겠지만 그래도 성장한 자신을 좀 더 ‘어른’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고, 내 새끼 왔구나!”

“할머니이~!”

승우가 할머니 품에 폭 안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는 이제 어른이잖아!’ 하는 생각에 품에서 빠져나와 두 손을 공손히 모으더니 다시 인사를 드린다.

“할머니,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아이고, 내 새끼가 그새 이렇게 듬직하게 커서 왔어!”

기특해하는 할머니를 보면서 승우는 우쭐해진다.

“어머니 그간 안녕하셨죠? 더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에요. 그런데 오늘은 바로 가봐야 할 거 같아요. 일 때문에 지체할 시간이 없네요.”

“그래도 밥은 먹고 가야지. 사람이 밥 먹을 시간 아껴서 일하는 게 아니야. 먹고 살라고 일하는 건데 그런 법이 어디 있담. 한 숟갈이라도 들고 가.”

승우는 할머니를 도와 밥상을 차리고 아버지는 결국 점심이나마 함께 먹고 가기로 한다. 승우는 밥을 먹는 내내 초조하다. 그간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으시는 할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끼어들 틈이 없어서 도무지 우진이의 일을 물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승우를 눈치 채신 듯 할머니께서 말을 꺼내신다.

“승우야, 우진이는 이따 밥 먹고 오라고 했으니까 천천히 먹으렴.”

승우, 우진을 만나다

아버지가 차를 타고 돌아가시고 나서도 우진이는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승우는 식곤증에 자꾸만 감기는 눈을 부릅뜨고 하염없이 대문 밖을 바라본다.

“승우야!”

“우진아! 우진이 왔구나! 왜 이렇게 늦었어!”

승우는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마당으로 뛰쳐나간다. 그러고는 서로를 얼싸안고 폴짝폴짝 뛴다. 우진이도 그새 키가 더 큰 것 같다. 승우는 자신의 키 이야기를 할까 말까 고민한다.

“나는 그간 키가 좀 자랐어. 승우 너도 저번보다 키가 자란 거 같아. 내 말이 맞지?”

승우는 우진이 알아주어서 너무나 기쁘다. 할머니께서 썰어준 시원한 수박을 먹으면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을 몽땅 쏟아낸다. 휴대폰도 있고 컴퓨터도 있지만 우진이는 심지어 편지조차 쓰지 말자고 하였다. 그래야만 일 년 뒤에 만났을 때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나 극적으로 만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승우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실컷 맞장구를 쳐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우진이가 승우는 정말 좋았다.

“날씨가 좋으니까 바깥으로 나가자.”

“둘 다 너무 늦게까지 돌아다니지 말고 물 조심하렴.”

“네, 할머니. 다녀오겠습니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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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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