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마을의 돌밭
절에서 살던 내가 마을로 내려오게 된 것은 아마도 내가 10살쯤 되었을 때인 것 같아. 그리고 내가 콩쥐를 처음 만난 때이기도 하지. 엄마가 나무를 심을 때마다 농사일하러 소를 끌고 지나가던 동네의 홀아비 한 사람이 엄마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거야. 그게 바로 내 새 아버지이기도 한 콩쥐네 아빠야. 엄마는 결국 스님의 소개로 콩쥐네 집에 시집을 오게 되었어.
콩쥐는 참 예뻤어. 말도 잘하고 머리카락도 나처럼 곱슬머리가 아니었지. 무엇보다 부러운 건 콩쥐의 뽀얀 얼굴이었어. 난 주근깨투성이에 입은 언청이였으니까. 동네 아이들은 모두 콩쥐를 좋아했어.
“콩쥐야, 놀자. 콩쥐야, 우리 어디 가자. 콩쥐야, 뭐하니?”
나는 콩쥐같이 예쁜 언니가 생긴 것이 너무나도 기뻤어. 하지만, 콩쥐는 내가 자기를 언니라고 부르는 걸 몹시도 싫어했어. 아무도 없을 때면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너 나한테 언니라고 부르지 마. 난 너 같은 동생 둔 적 없어. 진짜 챙피하단 말야. 누가 너와 내가 어떤 사이냐고 물으면 잘 모르는 사이라고 말해! 알았어? 그렇게 안 하기만 하면, 죽을 줄 알어!”라고 했지. 언니가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갈대밭의 갈대처럼 흔들렸어.
콩쥐 언니는 고집이 셌어. 엄마가 밭에 둘이 가서 밭을 매라고 하면 콩쥐는 나랑 같이 가기 싫다며 꼭 다른 곳으로 갔어. 나는 모래밭으로 가라고 하고 자신은 더 어려운 돌밭으로 가는 거야. 언니는 내게 더 어려운 일을 주진 않았어. 언니는 착했지. 단지 나와 함께 일하는 걸 꺼렸을 뿐이야. 돌밭을 매는 게 얼마나 어렵겠어? 호미도 부러지고 언니는 참 딱하게 되었지. 하지만, 콩쥐가 돌밭을 매고 있는 걸 동네 사람들이 그냥 놔둘 수 있겠니?
소양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착한 사람들이었어. 그래서 소를 끌고 지나가다가 콩쥐가 돌밭을 매고 있는 걸 보면 소를 시켜 그 밭을 대신 매주고 언니에게 먹을 것도 주며 항상 옆에서 도와주는 수호천사같이 행동했어. 엄마도 돌아가셔서 불쌍한 아이인데, 어려운 일을 혼자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 거지. 새엄마와 못생긴 동생은 언니를 구박하는 나쁜 역할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었어. 나는 더욱더 미움을 받았지. 일도 쉬운 것만 하고 못생긴 것이 꾀만 부리고.
나는 이런저런 일들로 사람들에게 쉬운 일만 하는 아이라 찍히게 되었고, 못생긴 것이 착한 콩쥐에게 벼룩처럼 달라붙어서 콩쥐의 피를 빨아먹는 벼룩같이 행동한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된 것 같아. 콩쥐는 여리고 약한 목소리, 하얀 얼굴, 가느다란 어깨를 지닌 청순가련형이었거든.
콩쥐에게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재주가 있었어. 콩쥐가 꽃을 들고 있으면 금방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이 느껴졌고, 콩쥐가 냇가에서 목욕하고 있으면 내가 나무꾼이라도 콩쥐의 옷을 숨기고 싶을 만큼 콩쥐는 선녀 같았어. 그래서 그렇게 예뻐서 콩쥐가 나는 참 좋았어. 그땐 언니라고 부르지 못했지만, 지금은 언니라고 마음대로 불러도 되니 좋다. 언니, 언니, 언니. 내가 얼마나 불러보고 싶었는지 몰라.
봉동장의 황아장수
그날은 내가 열다섯 되던 날, 필리핀이나 동남아에서 이주해 온 가족들이 만나는 날이었어. 봉동 오일장은 전국에서 모여든 장꾼들로 북적거렸지. 대부분 이곳의 특산품인 생강을 사러온 사람들이었어.
봉동이 생강으로 유명해진 데는 다 사연이 있어. 아, 그 이야기를 잠깐 하고 가야겠다. 너무 내 이야기만 하니까 재미없지?
원래 봉동에 봉이와 동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어. 봉이와 동이는 무척 효자였지. 그런데 봉이와 동이네 팔순 어머니가 심한 고뿔에 걸려서 몸이 차가운 냉증에 걸렸으며 끊임없이 구토를 하는 둥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된 거야. 어떤 약을 달여서 바쳐도 효험이 없었지. 봉이와 동이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간호를 했지만 병에는 차도가 없었어. 그래서 봉이와 동이는 산삼이라도 구하려고 산을 돌아다녔지.
그런 봉이와 동이가 고산천 둑 옆의 누가 살다 버린 집에서 잠을 자고 있을 때였어. 우릉우릉 쾅쾅쾅 아주 무서운 소리가, 세상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봉이와 동이는 깜짝 놀라서 벽장에 숨었어. 그때 나타난 것이 바로 도깨비들이었어. 도깨비들이 콧노래를 부르며 쿵쾅쿵쾅거리며 헌 집으로 들어왔지.
“아. 피곤하다.”
“오빠, 이제 산신령님이 주신 이 생강을 좀 먹을까?”
“그래”
도깨비들이 자루에서 풀러 놓은 걸 보니 파 같기도 하고 어린 대나무 잎사귀 같기도 한 어떤 것이었는데 뿌리에 이상한 것이 달려 있었어.
“오빠, 하나 먹어!”
“그래. 이것을 우리가 백일동안 먹으면 사람이 된단 말이지?”
“오늘이 며칠째냐?”
“오빠, 오늘이 99일째야.”
“하하, 이제 내일이면 우리도 사람이 되겠구나. 아 신난다.”
“그런데 이건, 참 그냥 먹기는 힘이 드는구나.”
“오빠, 우리 사람이 되면 여기에 꿀도 넣고 깨도 갈아서 넣고 무도 좀 썰어 넣고 해서 맛있게 먹을 수 있대. 그러면 사람이 되어서 불로장생할 수 있다잖아. 조금만 참고 생으로 이걸 먹자.”
벽장 속에 숨어 있던 봉이와 동이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 저것만 있으면 어머니를 살릴 수 있을 텐데 하며 서로 눈짓으로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
“오빠, 졸린다. 졸려”
“그래, 한숨 푹 자자.”
그러더니 도깨비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지. 그들은 눈을 뜨고 자고 있는 거였어. 한참을 기다리던 봉이와 동이는 도깨비들이 움직이지 않자 도깨비들 몰래 생강을 몇 뿌리 들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쳤어.
산신령님이 사람 되라고 주신 생강이니 얼마나 효험이 있었겠어? 그 결과 어머니는 병이 씻은 듯이 나았대. 그래서 오래오래 봉이와 동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대.
어디 살았냐고? 그거야, 봉동에 살았지. 그들은 남은 생강 뿌리 몇 개를 밭에 심었어. 뿌리를 여럿으로 쪼개어 심었지. 그러자 겨울이 지나고 그것들이 싹이 올라와서 잘 자란 거야. 그들은 생강을 키우고 팔아서 부자가 되었어. 이 마을 이름도 봉이와 동이가 처음으로 생강을 키운 것이 유래가 되어 봉동이라고 불리게 되었지. 그때부터 생강은 봉동의 특산물이 된 거야.
하여튼, 이렇게 생강으로 유명한 봉동장에서 우리는 첫 모임을 갖기로 은밀히 연락을 주고받았어. 동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만나는 것이 좋았지. 우리는 동네에서 어느 한 집을 정해서 서로 만나고 이야기하고 그럴 처지가 되지 못했어. 숨어서 우리가 만나는 걸 보면 무슨 일을 꾸민다는 인상을 주기가 쉬웠고 첩자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으며, 혹여 남자가 섞여 있을 경우 바람난 거 아니냐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날 가능성도 있었지.
이주민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모임 장소를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장으로 정한 거야. 물론 평상시의 옷차림 그대로는 서로 만나기 어려웠지.
어떤 사람은 엿장수로 분장하고 또 어떤 사람은 황아장수로 분장하고, 사람들은 각각 장에 모이는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만큼의 분장을 하고 봉동으로 모여들었어.
엄마와 나는 그 모임의 존재를 사실 모르고 있었지. 그러다가 우연히 소금장수 아저씨의 말을 듣게 된 거야. 그런 모임이 은밀히 진행되고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니? 나는 처음 그 모임에 간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 있었어. ‘그래 만나게 되는 거야. 나와 같은 사람들. 나와 같이 한국 사람도 외국 사람도 아닌 한국으로 이사 온 사람들. 나같이 얼굴이 까맣고 머리가 곱슬인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거야.’라고 생각하니 밤에 잠도 잘 오지 않더라고.
나는 내가 가진 옷 중에서 가장 장사꾼 같은 옷을 골라 입었어. 엄마도 마찬가지였지. 엄마는 딸기를 한 광주리 머리에 이고 나는 그동안 산에서 딴 고사리나물을 짊어지고 출발할 예정이었어.
물론 이 모임에 콩쥐 언니는 제외되는 게 나았지. 왜냐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사람들이야. 한국에서 살면서 필리핀이 그리운 사람들 말이야. 그러니까 콩쥐 언니처럼 한국 사람은 가면 안 되는 모임인 거지. 왜? 한국 사람이니까! 콩쥐 언니가 간다는 게 더 이상하잖아? 콩쥐 언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마 하나도 못 알아들을 걸? 어쩌면 나처럼 왕따 비슷한 걸 당하게 될지도 몰라. 그러니까 집에 있는 게 훨씬 나을 게 아냐?
그런데도 콩쥐 언니는 무작정 봉동장에 따라와야 한다고 우기는 거야. 봉동 큰집에 가겠다지만 속셈은 자기도 그 모임에 꼭 가고 싶었던 거야. 뭐 맛있는 거 먹으러 둘이만 가는 거 아니냐고? 나만 빼고 어디 좋은데 가는 거냐고 오해를 하는 거였어.
엄마는 콩쥐 언니를 말리다 못해 어쩔 수 없이 그럼 오려거든, 이런 일 저런 일을 다 해 놓고 오라고 한 거야. 물론 우리가 모임 끝날 때까지 언니가 인간이라면 다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들이었지. 깨진 항아리에 물을 가득 담는다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물론 불가능하지! 그래서 우리는 마음 놓고 봉동장에서 열리는 이주민 가족 모임에 참여하게 된 거야.
봉동장은 정말 구경거리가 많았어. 아이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디론가 뛰어다니고 만두 가게에선 맛있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어. 전을 부치는 아줌마 앞에서는 침이 꼴딱 넘어가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더라. 황아장수의 봇짐 속에는 달을 닮은 참빗, 예쁜 머리끈이며, 한 번 만져보지도 못한 노리개들이 내 눈을 잡아끌었어. 엄마는 내 손을 잡아끌었지. 우리는 장 한구석에 조그맣게 보따리를 풀어놓고 앉아서 연락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어.
아무리 엿장수 분장을 했어도 우린 한눈에 이주민을 알아볼 수 있었어. 그건 뭐랄까?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아무리 유창하게 손님을 끌어모으고 있어도 이주민의 몸에서는 빛이랄까? 향기랄까? 뭔지 말할 수는 없지만 난 알 수 있었지.
‘저 사람은 우리 과다.’ ‘저 사람은 우리 과가 아니다.’
이런 거 말이야. 우리는 서로 눈짓을 해 가며, 장사를 하는 척하며, 손님인 척 구경꾼인 척 다가가 그들과 손을 잡았어. 주위에 사람이 딴 데 시선을 돌리고 있을 때면 가끔씩 고향 말을 하기도 하면서. 엄마가 참 행복해 보이더라.
두 명 혹은 세 명씩 모여서 오랫동안 참아왔던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 나누고 헤어지고, 또 이야기 나누고 헤어지고 했지. 하루가 이렇게 짧은 줄 몰랐어.
엄마와 나는 그 모임을 열어준 원님이 너무나 고마웠어. 원님도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모험을 하고 있는 거였지. 나라에서 장날마다 이주민들이 모인다는 사실을 알면 원님에게도 이로울 게 없었거든.
난 원님이 너무나 감사했어. 더욱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은 원님이 나를 보고 웃어주었다는 것이야. 열다섯 살이 되도록 나를 향해 그런 웃음, 잇몸이 보이는 환한 웃음을 보여준 남자는 아직 한 명도 없었거든. 게다가 필리핀 말도 조금 할 줄 알더라고. 아, 원님의 젊고 늠름한 모습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가슴에 헬륨가스를 넣은 듯해. 물론 마음으로만.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놀라 까무러치게도 콩쥐 언니가 모임에 나타난 거야. 언니의 깨진 항아리를 두꺼비가 와서 막아 주었대. 또 언니가 울고 있으니까 새들이 와서 낟알을 다 가려 놓았대. 세상에나 만상에나! 언니 정말 대단하지 않아? 언니는 하늘이 돕는 사람인가 봐.
콩쥐 언니는 정말 예뻤어. 내가 봐도 너무 예뻐서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였지. 언니가 말을 하면 언니 입에서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듯이 향기로웠고 언니가 걸어가면 학이 날아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했어. 언니는 북적거리고 지저분하고 사람들이 많은 장에는 어울리지 않았지. 모두의 시선이 언니에게 고정되었어.
언니가 예쁘다고 느낀 건 나만이 아니었어. 원님도 언니의 얼굴에 화살이 꽂혔더라고. 그때 내가 느낀 좌절감이란…….
‘언니는 참 좋겠다. 나도 언니처럼 이뻤으면…….’
언니와 함께 집에 돌아오는 중에 언니는 꽃신을 잃어버렸다고 울었어. 엄마가 언니와 내게 똑같은 꽃신을 사다 주셨거든. 그래서 다시 사 주기로 하고 언니는 엄마 신발 하나를 질질 끌면서 집에 돌아왔지. 엄마는 그냥 한쪽만 신고 걸었어.
#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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