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래 참았지. 송광사 부처님 전에 엎드려 생각했어. 참는 것이 불법(佛法)을 이루는 거라고. 그런데 나쁜 아이로 찍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 같았지. 그래서 오래…… 참았는데……,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아.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서 터질 것 같아. 죽어서 떠도는 영혼은 그만둘래. 나도 이젠 좋은 곳으로 가고 싶어. 그래서 꼭꼭 숨겨둔 이야길 하는 거야. 이제는 말할 수 있어.
난 팥쥐야. 그래, 너희들도 잘 알고 있는 ‘콩쥐 팥쥐’ 이야기에 나오는 그 팥쥐.
너희들은 나에 대해 참 많은 것을 알고 있어. 엄마와 함께 콩쥐네 집에 들어온 아이, 얼굴이 까맣고 못생긴 아이, 콩쥐를 시샘하여 콩쥐의 자리를 빼앗은 아이. 그리고 결국 콩쥐를 죽게 만든 나쁜 아이, 그런데 그거 다 거짓말이야. 데려온 애라고 근본 없는 애라고 괄시하구, 그러는 거 지금도 벌어지는 일이란 걸 너희들도 알고 있을 거야.
내 이야기를 듣고 너희들이 판단하면 좋겠어. 내가 그렇게 나쁜 아이는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야. 나도 그래야 저승에 편안히 가지 않겠니?
우리 엄마는 필리핀에서 태어났어. 우리 엄마네 집은 참 가난했대. 그래서 엄마는 집에 보탬이 되려고, 그리고 잘사는 나라 한국에 와서 살고 싶어서 시집을 오게 된 거였어. 엄마는 친구들이 한국에서도 완주군이란 데에 많이 살고 있어서 이곳에 오게 됐어. 물론 한국말을 하나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시집와서 적응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지.
엄마는 완주군에서도 시골마을(이름도 잘 모르더라고)에서 농사를 짓는 노총각 아저씨(이 아저씨가 우리 아빠야, 물론 나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와 결혼했어. 농촌 총각이지. 그 아저씨는 빼빼 마른 꼭 빗자루 같은 몸매였대. 그 몸에 옷을 입고 있으면 엉덩이가 너무 작아서 바지가 쭈그렁쭈그렁 거렸대. 허수아비가 옷 입고 있는 모습처럼 옷이 너무나 커서 빌려 입은 것 같았어. 원래 아저씨 집이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았는데, 아저씨의 아버지가 노름에 빠져서 집이고 논이고 할 것 없이 다 남에게 뺏기고, 어머니는 화병이 나서 몸져누우셨대. 아버지는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술만 끼고 살았다나 봐.
술을 마시고 온 날은 그날이 그 집 제삿날이라서 차려 놓은 밥상을 뒤집어엎고 죽일 놈 살릴 놈 하면서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고서야 잠이 드는 성미셨대. 그 바람에 아저씨는 장가를 갈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해 그 나이가 되도록 꼬질꼬질 늙은 거였대. 그래도 그 아저씨는 장가를 가니 좋아서 엄마한테 한글도 가르쳐 주고 심심할 때면 자전거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게도 해 주고 장에 가서는 엄마 신으라고 고무신도 사다주시던 다정한 아저씨였어.
하지만, 그 아저씨한테는 아주 못된 버릇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술이었어. 피는 못 속인다고 했는데, 할아버지의 술주정은 아저씨가 술주정하는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지. 술만 마시면 이 아저씨의 다정하던 태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눈을 무섭게 치뜨고 밥상을 엎기는 예삿일이고 엄마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아주 심했다고 해. 심지어는 빗자루로 엄마를 때리며 “아까 너 앞집 귀성이랑 무슨 말했어? 응? 고개 숙이고 비밀 이야기하드만? 귀성이가 나보다 나은 게 뭐야? 씨발 새끼. 왜 내 말을 못 알아들어? 응? 너 니네 나라로 도망갈 거지? 쩌어기 앞 동네 춘식이 여편네처럼. 통장만 들고 튈 거지? 네가 너 같은 것한테 돈을 맡길 것 같아? 너도 그럴 생각이지, 이 못된 년아? 도망갈 거야, 안 갈 거야?”
이러면서 엄마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어. 하지만, 엄마는 꿋꿋이 아저씨의 술주정을 다 받아내면서 잘 지냈지.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아저씨가 술에 잔뜩 취해서 곤드레만드레 이게 길이냐 전봇대냐 하며 걸어오다가 그만 발을 잘못 디뎌서 시골 논두렁에 빠진 거야. 움푹 들어가는 논물을 대는 배수로 같은 곳에. 아무도 돌봐줄 수 없는 곳에 쓰러져 있으니 누가 알겠어. 다들 문 꼭 걸어 잠그고 잘 시간인데 말이야.
엄마는 아저씨를 찾으려고 가슴 두근거리며 온 동네를 찾아 헤맸었대. 하지만, 그런 구렁창에 빠져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 다음날 이웃집 사람이 나왔다가 시궁창에 무슨 사람 다리 같은 것이 있길래 손을 넣어 힘껏 잡아당겨 보니 아저씨였다고 해. 아저씨는 그렇게 허무하게 죽고, 엄마는 서방 잡아먹은 년이라는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쓰고 시댁에서 쫓겨나게 된 거야.
그때 나는 이미 엄마 뱃속에서 한 4주 정도 되었어. 엄마와 아빠의 생명을 받아 이제 막 싹을 틔우고 있었지. 물론 엄마도 시댁 식구들도 모두 그 사실을 몰랐지. 엄마는 그렇게 가진 것 아무것도 없이 쫓겨난 신세가 되었대.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는 거지 신세가 된 거지. 엄마는 배가 점점 불러왔고, 더는 구걸하는 생활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어. 그러다 어느 절(지금의 송광사) 앞에서 기진맥진해 쓰러졌다는 거야. 그 절은 깊은 산의 중턱에 있는 다른 절과는 달리 인가와 가까이 있어서 엄마가 그 앞을 지나가기가 쉬웠지. 그 절 앞에서 엄마는 희미한 영상을 보았다고 해. 큰 나무 한 그루에서 벚꽃이 밥풀처럼 흩어져 떨어졌대. 밥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영상을 보며 엄마는 그만 탈진해서 쓰러지게 된 거지.
그 절에 불목하니가 엄마를 데려다가 따뜻한 방에 눕히고 이불도 덮어 주고 따뜻한 밥과 국도 주었대. 다행히 엄마는 기력을 회복했고, 엄마와 더불어 뱃속에 있는 나 또한 세상의 빛을 볼 힘을 얻게 되었지. 엄마는 몸이 좀 좋아지자, 절에서 마당 청소며, 스님들 아침 공양이며, 물을 길어다 항아리에 붓기 등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찾아가면서 했지.
주지 스님은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외국인을 그것도 임신한 아낙네를 내쫓는다는 것이 너무도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던지 엄마를 절에서 쫓아내지 못했어. 그곳에서 엄마는 나를 낳았어. 내가 처음에 태어났을 때 엄마는 깜짝 놀랐다고 해. 입이 언청이였고 얼굴색은 까만 데다 손가락은 육손이였다나 봐. 그 모양이니 누구 하나 예쁘다고 안아주는 사람도 없었지. 스님들조차도 말을 걸어 주거나 하지 않아서 나는 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불경 외는 소리를 따라서 옹알옹알 거리며 놀았어.
엄마는 시간이 날 때마다 절 앞마당에서부터 엄마가 배곯을 때 보았던 나무를 한 그루씩 심으며 마음을 달랬다고 해. 동네로 이어지는 길가에 심은 그 나무가 지금은 아름드리나무가 되었는데 너 혹시 아니? 봄이면 송광사 입구까지 팝콘처럼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리는 꽃나무 말이야. 지금은 큰길을 내느라 자취도 없어지고 몇 그루만 남아 있어. 사람들은 그 터널에서 배고픔도 잊고 쏟아지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데, 그건 아마도 엄마의 기도 덕분이 아닌가 해. 내 생각에 엄마의 인생에서 그 나무를 심던 시절이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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