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동과 선미는 산속으로 기름통을 들고 간 사내가 있다고 신고한 제보자를 만났다. 제보자는 노인이었지만 험상궂은데다가 눈빛이 형형했다. 마치 화가 난 사람처럼 보였다. 실제로 화가 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놈을 내가 봤지. 그놈은 저기 사슴길로 올라갔지.”
“사슴길이요?”
지동이가 물었다.
“그래. 사슴들이 다니는 길이지. 난 그 길을 누구보다 잘 알지.”
“다리가 불편하신데, 등산을 다니시나 봐요?”
“그럼, 난 아직 멀쩡해. 넓적다리에 총알이 박혔어도 난 뛰어다닐 수가 있거든.”
노인은 두 다리를 차례로 번쩍번쩍 들며 제자리걸음을 했다. 한쪽으로 기운 모습이 위태로워 보여 지동이가 부축을 해주었다. 그러자 노인이 버럭 성을 냈다.
“난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아. 이 산속에선 내가 왕이니까.”
지동이의 손길을 뿌리치고는 노인은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평생 산을 헤집고 다녀도 못 찾는 길이 하나 있거든.”
노인은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지동이는 어디선가 본 듯한 그 불쾌한 미소에 시선을 피하고 고개를 돌렸다. 먼발치에서 선미가 자기 쪽을 바라보면서 경찰관과 소곤거리고 있었다. 지동이는 선미가 있는 곳과 반대쪽으로 몇 걸음 움직였다. 키가 큰 물푸레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나무의 오른편 가지는 ㄱ자로 부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가지와 옆의 오리나무 사이에 거미줄이 쳐 있었다. 노인은 기름통을 든 사내가 옛날에 자기를 총으로 쏜 미친놈이라고 말을 하면서 지동 옆으로 다가왔다.
“여길 지나면, 선녀탕이 나오지. 그놈은 거길 간 거야.”
“영감님도 선녀탕을 믿는군요?”
“그럼, 믿고말고. 자넨 믿지 않나?”
“네.”
노인은 알쏭달쏭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손전등을 하나 꺼냈다.
“이거 받아. 이따가 해지고 산에 오를 때 요긴할 거야.”
“제가 산에 올라요?”
“그래. 그 미친놈을 잡아야 할 것 아냐?”
“그렇긴 하죠.”
지동이는 손전등을 받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선미가 다가왔다.
“저기 계신 경찰이 집까지 모셔다 드릴 겁니다.”
선미가 노인에게 말했다.
“안 가!”
노인은 핏발선 눈으로 선미를 노려봤다. 잠시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별 수 없이 지동이가 끼어들었다.
“영감님, 안전을 생각해야지요. 이제 어두워지니까요.”
노인은 지동이의 말에는 수긍했다. 잠시 후 그는 경찰에게 부축은 받지 않겠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산에서 내려갔다.
“자, 신참. 지금부터 우린 탐험을 할 거야. 준비됐지?”
선미가 말했다.
“탐험이라고?”
“응, 우린 지금 선녀탕을 갈 거야.”
“좋아, 만일 그게 있다면 말이지.”
“있고말고.”
“그렇다면야, 선녀들의 벗은 알몸 볼 기회를 잃진 말아야겠지.”
지동이가 자못 호기롭게 말했다.
“근데 미안해서 어쩌나? 선녀들은 잠시 후 떠나거든.”
선미가 야광손목시계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부탁인데, 거기 가서 너무 놀라진 마. 거긴 너의 과거가 있으니까.”
“또 알 수 없는 말을 하는구나. 어쨌든 오늘 하루는 고참 님께서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앞장서시죠.”
지동이가 손전등을 켰다.
“제법인데. 그런 건 언제 준비했어?”
선미가 그렇게 말하면서 물푸레나무와 오리나무 사이에 쳐진 거미줄 아래를 통과했다. 선미를 따라 지동이도 거미줄을 지났다.
그들은 서서히 어두워지는 산길을 오르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선미는 캐스케이드 산을 등반한 얘기를 했고, 지동이도 질세라 지리산 종주를 한 얘기를 했다. 이따금 그들은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도 했다.
“난 네 엄마가 선녀라고 믿어. 완주군에는 흔한 일이거든.”
선미가 그렇게 말하자 지동이가 이렇게 대꾸했다.
“우리 엄마가 선녀라면, 너도 선녀일 거야.”
그들은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나무 위에 앉아있던 올빼미가 날아올랐다.
“우리 아버지는 현실을 왜곡한 거야. 오래전 엄마는 우리 가족을 버리고, 정확하게 말하면 아빠의 무능이 지겨워서 떠났는데, 그게 내심 괴로우니까 전설을 통해 현실을 회피한 거지. 겁쟁이.”
지동이가 이런 말을 할 땐, 이미 이슥한 밤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손전등 빛에 온전하게 의존해 선녀탕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걸었다. 그런데 그 손전등에 위치추적기가 달린 것을 그들은 까마득히 몰랐다. 그 시각 산 아래에서 제보자 노인은 자신의 형과 만나 엽총을 들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노인의 형은 위치추적 상태를 알려주는 단말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의 수염은 오후보다 훨씬 자라 있었다. 하지만 흉터를 전부 가리지는 못했다. 휘영청 달빛에 반달형의 흉터가 반짝였다.
부선, 돌아오다
선녀들이 밤하늘을 수놓으며 지상에 닿고 난 뒤에 벼락 하나가 뒤늦게 떨어졌다. 그러자 시커먼 공중에 커다란 두레박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레박은 동아줄에 매여져 있었고 두레박 안에는 선녀가 타고 있었다. 다름 아닌 부선이었다.
27년 전에 목남 씨가 선녀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부선이는 선녀 자격이 박탈되었다. 선녀들의 시중을 드는 신분으로 전락한 것인데, 아닌 게 아니라 부선이의 신세는 한없이 초라했다. 그녀는 27년 전에 모닥불에 타버린, 세월이 지나 더욱 누추해진 날개옷을 입고 있었다. 그 옷으로는 스스로의 힘으로 지상에 내려오지도 하늘로 올라가지도 못한다. 그래서 두레박을 타고 오르내렸던 것이다.
부선이는 두레박에서 내리자 허드렛일을 시작했다. 선녀들이 아무렇게나 벗어둔 날개옷을 한쪽에 정리한다거나 물가에서 모난 자갈을 골랐다. 모난 자갈은 선녀들의 발바닥을 다치게 했다. 때문에 부선이는 게으름 피울 시간이 없었다. 그랬다간 자갈보다 모난 선녀들의 투정을 들어야 했다.
물에서 갓 나온 선녀들이 춥다면서 천막 안으로 들어갈 때서야 부선이에게 쉴 틈이 생겼다. 예전 같으면 오히려 모닥불을 피우느라 정신이 없을 시간이었다. 부선이는 불을 살리기 위해 입으로 ‘호오’하고 부느라 얼굴에 온통 검댕이가 묻고는 했었다. 그러면 선녀들이 재와 먼지로 시커멓게 얼룩진 부선이의 얼굴을 보고 깔깔댔다. 특히 목남 씨에게 돌을 맞아 이마에 십자 모양의 흉터가 생긴 선녀가 가장 크게 웃었다. 그녀는 이렇게 조롱하고는 했다.
“꼴좋다. 선녀 얼굴에 먹칠하더니, 이젠 숯칠까지 하는구나. 하긴 이젠 넌 선녀도 아니지?”
선녀의 조롱을 받는 부선이 얘기를 사슴 아주머니는 목남 씨에게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뒤로 그가 모닥불 나무를 대기 시작했다. 목남 씨는 선녀들이 내려오기 전에 모닥불에 불씨를 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들이 오기 전에 서둘러 산을 내려갔다. 물론 부선이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슴 아주머니가 말해주었다. 사슴 아주머니는 목남 씨와 부선이 사이의 다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아무튼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대략 17년 전부터는 석유난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목남 씨는 고개를 내밀어 고단한 몸을 바위에 기대고 잠시 쉬는 부선이를 바라보았다. 부선이는 사슴 아주머니와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사슴 아주머니는 지동이 근황을 들려주었다. 부선이는 지동이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그 애는 잘 지내. 이번에 완주군에 취직도 했다지.”
사슴 아주머니가 말했다.
“역시 거기에 취직이 되었군요. 잘 됐네요.”
부선이는 활짝 웃었다.
“근데 바로 오늘이죠?”
급하게 웃음을 지운 부선이가 물었다. 그 말에 사슴 아주머니는 다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선이는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선녀들이 천막 안에서 재잘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주위를 경계하며 바위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부선이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목남 씨는 바짝 긴장을 했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손수건으로 구두에 광을 냈다.
“오랜만이에요.”
어느새 다가온 부선이가 입을 열었다.
“응. 오랜만이야. 남방에서 보고 7년만인가.”
“네. 이젠 남쪽 나라 파견근무 안 가겠죠?”
“그렇겠지.”
“당신 일을 지동이가 하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됐지. 이젠 그 아이도 나를 이해하게 될 거야.”
“늘 고마웠어요. 난로나 그 밖의 도움들이요. 하늘에서도 감명하고 있어요.”
“아냐. 난 그냥 죗값을 치른 거야.”
둘은 잠시 말이 없어졌다. 때마침 여름 철새가 하늘을 가르면서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항상 제비들하고 같이 움직였죠?”
“응. 난 당신이 가는 곳은 어디든 가지.”
둘은 다시 말이 없어졌다.
“오늘, 마음의 준비는 된 건가요?”
“어차피 의사는 해를 넘기지 못한대. 지금 가나, 그때 가나야. 그리고 무엇보다 난…… 당신과 하루빨리 함께하고 싶으니까…….”
목남 씨의 목소리는 웅얼거리고 뒤로 갈수록 줄어들었다.
“암이라고 했죠?”
부선이는 목남 씨의 웅얼거림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쌀쌀맞게 물었다. 그러자 목남 씨가 고개를 푹 숙였다. 부선이는 고개를 숙인 남편의 정수리를 바라보았다. 숲의 빈터처럼 훤히 비어 있었고 주변부는 희끗희끗했다. 평생 자신을 위해 산 남자가 늙어 있었다.
목남 씨는 군대를 전역한 뒤에 완주군 천지교류과에 자원하여 하늘과 땅의 교류를 위해 애써왔다. 완주군에 겨울이 찾아오면 선녀들은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목욕을 즐기는데, 그 이동경로를 따라서 함께 움직였다. 지난 세월 동안 그는 자기 인생이 없었다. 부선이를 위해서 완주군과 남쪽세상에서 열심히 모닥불을 댔다. 부선이를 위한 나무꾼으로 평생을 산 것이다. 그러다가 이렇게 나이를 먹고 덜컥 병이 들었다. 부선이는 형편없이 가늘어진 목남 씨의 손목을 잡았다. 목남 씨는 고개만 주억거리고 있었다.
“못난 사람, 언제까지 그렇게 죄진 사람 표정 지을 거예요?”
부선이는 목남 씨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목남 씨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고마워, 고마워. 그는 입엣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렇게 웅얼거리는 목남 씨의 입술 위에 부선이의 입술이 포개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그동안 억누르던 서로에 대한 갈망을 몸짓으로 표출했다.
잠시 후 선녀들이 돌아갈 채비를 하는지 소란스러워졌다. 밑에서 부선이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곧 선녀들이 갈 거예요. 그때까지 여기 잠자코 있어요. 그리고 저랑 두레박 타고 올라가면 돼요. 원래 살아있는 사람은 올라가지 못하지만, 그동안 당신의 봉사정신에 하늘이 감동한 모양인지 허락을 해주었어요.”
“알았어.”
“근데 저건 뭐죠?”
부선이는 옷매무새를 고치며 물었다.
“아, 생일케이크. 오늘 지동이 생일이거든. 곧 그 애가 올 거야.”
지동이가 온다는 소리에 부선이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 애가 온다고요? 우리 지동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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