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당계곡에서 신고가 하나 들어왔는데, 누군가 기름통을 들고 입산했다는 거야. 우리가 가야 할 것 같아.”
선미가 말했다.
“그건 경찰이나 소방서에서 출동해야 하지 않나?”
지동이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안 그래도 경찰관이 가봤는데 수상한 사람은 없다는 거야. 신고한 등산객 말로는 그 사람이 물푸레나무와 오리나무 사이를 헤치고 좁은 산길로 들어가더니 순간적으로 자취를 감추었대. 그렇다면 우리 사건이야.”
“산길에서 익숙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매우 위험한 놈이군.”
“맞아. 경찰이 그러는데 다리를 절면서도 산은 잘 오르더라고 하더라고.”
“기름통을 들고 다리까지 절면서 산을 올랐다고? 굉장하군.”
“아니. 기름통을 든 이는 다리를 절지 않아. 신고한 등산객이 다리를 절지. 그리고 우리가 주의할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이야.”
“가만, 뭐라고? 지금 산불을 낼지 모르는 놈을 신고한 시민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거야?”
“그래. 그 사람이 위험인물이야.”
“나 원 참. 이상한 말이잖아.”
“가면 곧 알게 돼.”
선미가 지동이를 보고 눈을 찡긋했다.
“하루 종일 이상한 말만 듣는구나. 이러다 정신이 돌겠어. 천지교류과, 정말 미스터리한 부서야.”
지동이가 투덜댔다.
“지동아, 산에 도착하기 전에 네가 알아둬야 할 게 있어.”
마침 교차로였다. 선미는 차를 세우고 말을 이었다.
“우리 완주군은 옛날부터 하늘과 땅이 통하는 상서로운 고장이야. 선계의 신선들이 지상을 여행할 때 들르는 곳이지. 말하자면 완주군은 그들이 이용하는 공항이야. 그리고 선녀들은 스튜어디스라고 보면 되는데, 그녀들은 지상에 올 때마다 잠깐 짬을 내서 선녀탕에서 목욕을 하지. 그런데 몇몇 호기심 강한 선녀들은 이 지상의 매력에 빠져서 아예 정착하기도 하거든. 선녀와 나무꾼 전설은 사실 선녀들의 완주군 정착 사례 중 하나의 예인 거야. 그것도 실패한 예지. 넌 믿기 어렵겠지만 지금도 완주 군민들 중 상당수는 본인이 선녀이거나 선녀의 남편이거나 선녀와 인간 사이에서 난 혼혈이 많아. 그러니 이곳에선 선녀와 나무꾼과 비슷한 사랑이야기가 얼마나 많겠니?”
지동이는 선미가 말하는 도중 내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심지어 지동이의 반응을 무시했다. 그녀는 좀 더 말하고 싶었으나 옆 차로에 서 있는 차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자 중단했다. 창이 열리고 한 아주머니가 선미를 알은체했다.
“선미 씨, 안녕하세요!”
“하이엔 씨, 안녕하세요!”
선미가 반갑게 대꾸를 하자 아주머니가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대화를 들어보니 선미가 어떤 행정적인 도움을 주었던 것 같았다. 선미는 손사래까지 치면서 자신이 한 일은 별것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어딘지 한국어 실력이 서툴다. 아닌 게 아니라 선미가 부르는 그녀의 이름도 뭔가 낯설다. 하이엔. 그것은 왠지 베트남 여성 이름 같았다.
“하이엔 씨는 베트남에서 오셨어.”
신호가 바뀌자 차를 움직이면서 선미가 말했다.
“그런 것 같네.”
지동이가 대답했다.
“지금 아이 셋을 뒀는데, 내년 봄에 넷째를 낳을 예정이야. 그러면 지상에서 아예 눌러 살게 되는 거지. 둘째 낳을 때까지는 여기서 살 생각이 없었는데, 완주군에서 다자녀 혜택을 주니까 마음이 싹 달라졌지. 차차 알게 되겠지만 선녀들도 꽤 현실적이라니까.”
“지금 저 베트남 아주머니가 마치 선녀라도 되는 듯이 말하는데…….”
“맞아. 하이엔 씨는 선녀야. 우리가 보호해주고 귀하게 대접해야 할 하늘에서 오신 손님이지.”
선미의 말을 듣자 지동이는 점입가경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지동이는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집 나간 엄마를 선녀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엄마를 무척 사랑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엄마가 선녀라고 믿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쳤다.
아버지는 평생 집 나간 엄마를 찾아다녔다. 덕분에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생업을 팽개치고 늦가을부터 겨울 동안 집을 나가기 일쑤였다. 행선지도 밝히지 않았다. 제비가 떠날 즈음 사라졌고, 제비가 돌아오면 같이 돌아왔다.
지동이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수년 전 겨울을 기억한다. 그날 그는 아버지의 부재를 비참한 심정으로 실감했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빈소를 홀로 지켰다. 그날 지동이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에 평생 아버지를 증오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후로 지동이는 아버지와 인연을 끊다시피 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그리고 완주군에 내려와서도 연락을 끊고 줄곧 고시원에서 혼자 살았다.
지동이는 선미에게 자신이 증오하는 아버지 얘기를 하고 싶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선미 앞에서는 솔직해지고 싶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미야, 난…… 선녀와 나무꾼 전설을 믿지 않아. 그건 너도 알지? 난 그것 솔직히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게다가 완주군만의 독특한 전설도 아니잖아. 저 멀리 몽골에도 같은 전설이 있어.”
“알아. 사람 사는 모습이 거기서 거기니까, 전설도 비슷하기 마련이지. 하지만, 우리 군에서만큼은 선녀와 나무꾼은 전설이 아니야.”
“하지만, 난 우리 아버지 때문에라도 선녀 이야기를 믿고 싶지 않아.”
갑자기 지동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우리 아버지는 엄마를 선녀라고 믿는 분이셔. 그게 말이 되니?”
“엄마가 선녀시구나.”
“아냐, 절대로 아니야. 할머니 말로는 타향에서 온 고아처녀였대. 결혼할 때 가족 중에서 아무도 오지 않았다지. 하지만 착하고 어여쁘셨대. 그리고 불쌍하다고 말씀하셨지. 그런데 아버지는 할머니가 엄마 얘기를 하면 불같이 화를 냈어. 아버지는 괴팍한 사람이야. 게다가 무능력자지. 가정을 돌보지 않았고, 엄마를 찾는답시고 자기 인생 없이 일평생 떠돌아다니셨어.”
지동이가 흥분을 하자 선미가 손을 잡아주었다.
“하지만 그분, 좋은 아버지이고 싶었을 거야.”
선미의 말에 지동이는 아버지와 좋았던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지동이는 아버지와 함께 만든 모형 비행기를 하늘에 날렸던 기억이 났다. 아버지는 공중을 가르는 비행기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지동아, 저걸 타고 나중에 같이 엄마한테 가자.”
하긴 어쩌면 집 나간 엄마를 찾아 헤매는 바보짓만 하지 않았으면 좋은 아버지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틀림없이 늦가을부터 봄까지 사라지는 기행만 아니면 좋은 아버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버지는 그렇지가 않았다. 순간 지동이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는 북받치는 감정을 억눌렀다. 지동이는 아버지가 밉기도 했지만 불쌍했다. 현재 아버지는 암 투병 중이었다.
며칠 전 몰래 들른 나무꾼 주유소에서 먹는 항암제를 발견했다. 병원에 문의했더니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은 해를 넘기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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