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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슴 아주머니는 목남 씨에게 부선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었다. 솔직히 만남을 주선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정확히는 만남의 기회를 제공했다고 해야 마땅하다. 그러니까 그들은 약간 조작된 상황에서 ‘우연히’ 만났다. 할 말이 없을 때마다 커피 속을 스푼으로 휘저을 수 있는 다방이 아닌 대중목욕탕 앞에서 만난 건 다 그 이유 때문이었다.
부선이가 상큼한 비누 향을 풍기면서 목욕탕을 나오자 예기치 못한 충돌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내아이가 부선이를 향해 뛰었고, 아이 하나가 부선이와 부딪치면서 목욕바구니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비누, 칫솔, 때수건 등을 주섬주섬 줍던 부선은 미처 자신의 속옷을 발견하지 못했다. 당황도 했거니와 이미 그것을 매표소 옆에 서 있던 목남 씨가 재빨리 집었던 것이다.
“아가씨!”
한시바삐 떠나고자 걸음을 재촉하던 부선이를 목남 씨가 불러 세웠다. 부선이가 뒤를 돌아보자 처음 보는 젊은 남자가 자신의 속옷을 들고 있었다. 마침 바람이 불었다. 그에 따라 부선의 속옷이 새의 날개처럼 활짝 펴지고 펄럭였다. 부선이의 양 볼이 발그레해졌다. 너무나 창피해서 그녀는 목남 씨로부터 속옷을 뺏듯이 받아들었다. 그리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목남 씨는 미소를 지었다. 또 골목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사슴 아주머니도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남은 일은 목남 씨가 미용실을 찾아가 머리를 자르는 것이었다. 실제로 사흘 후, 그러니까 손님이 뜸한 수요일 저녁에 목남 씨는 미용실을 찾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목남 씨와 부선이는 첫 데이트를 했다. 그때서야 둘은 다방을 찾았다. 그렇지만 공연히 둘은 할 말이 없어서 커피를 스푼으로 휘젓지는 않았다. 둘은 얘기가 썩 잘 통했다.
구박에 시달려야 했던 부선
몇 달 후 목남 씨와 부선이는 결혼을 했다. 자고로 신혼이란 서로 얼굴만 보면 웃음이 터져 나오는 시절이다. 누가 겨드랑이를 긁는 것처럼 실실 웃음이 나온다. 만일 길을 가다가 멍한 시선으로 웃고 지나는 사람이 있다면 십중팔구 신혼일 것이다. 목남 씨도 그랬다. 바보처럼 늘 웃고 다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선이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목남 씨가 부대로 출근하면 그녀의 입가에선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목남 씨의 어머니인 장 여사와 여동생인 홍서가 그녀를 못살게 굴었기 때문이다. 장 여사는 부선이가 맨몸으로 시집을 왔다고, 가난한 살림에 입이 하나 더 늘었다고 구박을 했다.
“미용실에 다닌다고 좋아했더니, 집에 들어와 살림을 하겠다고? 그래, 그 좋아하는 살림 맘껏 해보렴.”
장 여사는 부선이에게 집안일을 모두 맡겼다. 밥 짓고, 청소하고, 밭 갈고, 소에게 여물을 주는 등 부선이는 종일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부선이가 곱상하게 생긴 것과는 달리 일을 야무지게 마무리 짓는 것을 본 장 여사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시켰다. 쓰지 않는 그릇을 닦으라고 했고, 쓰지 않는 솜이불 빨래도 시켰다. 그러면 부선이는 군소리 없이 그릇을 깨끗이 닦아 다락에 두었고, 살얼음이 붙은 물로 솜이불을 빨아 볕에 널었다.
“일은 잘하는구나. 헌데 어제 닦은 그릇 옆에 쥐똥이 보이더구나. 다락이 지저분해서 쥐가 있는 것 같으니까, 오늘은 다락을 깨끗이 청소하렴. 물론 그릇도 다시 닦고.”
장 여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홍서가 다가와 이렇게 소곤거렸다.
“엄마, 이불도 다시 빨아야겠더라고. 볕에 널어놓은 솜이불 위에 까치가 똥을 쌌나 봐.”
“들었지? 이불도 다시 빨아야겠구나.”
그렇게 말하고 장 여사는 홍서와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장 구경을 갔다. 정말이지 못된 시어머니와 시누이였다. 시어머니는 며느리 생각을 쥐똥만큼도 하지 않았고, 시누이는 새언니를 까치똥처럼 하찮게 여겼다. 부선이는 하도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하지만 남편에겐 한 마디도 일러바치지 않았다.
부선이가 부당하고 험난한 시집살이를 견뎌낼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사슴 아주머니 덕분이었다. 사슴 아주머니는 장 여사와 홍서가 바깥나들이를 하면 몰래 부선이를 찾았다. 그녀는 부선이를 위로해주고, 부선이가 감당하기 힘든 일을 도왔다. 또 여러 집안일 외에도 초자연적인 재능으로 부선이를 돕기도 했다. 부선이가 아무리 다락을 깨끗이 청소해도 쥐똥이 계속 나온다고 말하자 그녀가 다락문을 활짝 열고 이렇게 소리쳤다.
“다락방의 쥐들아. 너희들 때문에 여기 선녀님이 힘들어하잖아. 그러니 이 집을 떠나주면 고맙겠다. 오다가 보니 빈집이 하나 있던데 거기에 가서 살렴.”
그 뒤로 쥐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때문에 장 여사는 다락을 청소하라는 얘기를 다시는 못하게 되었다. 내친김에 사슴 아주머니는 널어놓은 솜이불 위에 자꾸 똥을 싸는 까치들도 꾸짖었다.
“까치들아, 저기 상수리나무 아래에 똥을 싸지, 왜 인가에 와서 똥을 싸는 거니?”
그러자 까치들이 억울하다는 듯이 저마다 깍깍거렸다.
“뭐라고? 너희들 짓이 아니라고?”
사슴 아주머니는 까치들의 호소를 알아들었다. 그녀는 이내 홍서의 짓임을 알아차렸다. 참으로 괘씸한 여자애였다. 새언니를 괴롭히려고 이불 위에 까치똥을 바른 것이었다. 사슴 아주머니는 까치들에게 뭔가를 부탁했다. 그러고는 부선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따가 버스정류장에 시어머니 마중 나갈 때 우산을 쓰고 나가렴.”
“날씨가 이리도 화창한데요?”
부선이가 묻자 사슴 아주머니는 다시금 일렀다.
“아니, 곧 비는 내릴 거야. 그것도 냄새 나고 더러운 비가. 그러니 우산을 잊지 마.”
“네.”
부선이는 사슴 아주머니의 말대로 우산을 들고 나갔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여느 때처럼 장 여사 모녀는 무거운 장바구니를 부선이에게 맡겼다. 그리고 저들끼리 수군거리면서 짐을 들고 낑낑대며 뒤쫓는 부선이를 모른 체하고 집으로 향했다.
장 여사 모녀가 냇가에 이르렀을 때였다. 맑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홍서는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먹구름을 바라보았다. 먹구름은 지나치게 지상과 가까웠고 색깔도 알록달록했다. 무엇보다 수천 쌍의 날개가 동시에 푸드덕거리는 것이 징그럽게 꿈틀거렸다.
“엄마, 묘하게 생긴 구름이야. 곧 비가 올 것 같아.”
홍서가 말하자마자 빗방울 하나가 뚝 떨어졌다. 홍서 이마에 떨어진 그 빗방울은 따뜻하고 냄새가 났다. 게다가 찰싹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도 않았다. 홍서가 이마에 붙은 빗물을 손바닥으로 닦아내고 보았다. 축축하고 끈적이는 것이, 마치 까치똥처럼 보였다. 놀란 홍서는 부선이에게 소리쳤다.
“이 못난 것아! 이리로 우산 가져와. 하늘에서 까치똥이 내리잖아”
부선이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다급해진 홍서는 부선이 쪽으로 뛰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난 시커먼 쥐떼가 길을 가로막았다. 쥐떼는 푸드덕거리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먹구름만큼이나 징그러웠기에 홍서는 기겁을 했다.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는 사이에 먹구름은 홍서 쪽으로 다가왔다. 잠시 후 홍서는 수천 마리나 되는 까치가 일시에 배설하는 똥을 속수무책으로 뒤집어썼다.
"아주머니, 더 이상 우리집에 오지 마세요"
그 일이 있은 후에 홍서는 얌전해졌다. 적어도 전처럼 부선이에게 못되게 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장 여사는 여전했다. 오히려 홍서가 까치똥 세례를 받고 난 후 더욱 악독해졌다. 그녀는 사건의 내막을 짐작해내기에 이르렀다. 배후에 사슴 아주머니가 관련되어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장 여사는 출근하는 아들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목남아, 아무래도 산에 사는 미친 여자가 집안에 들락거리니 신경이 쓰이는구나. 난 괜찮다만 며늘애가 걱정이란다. 그 여자가 선녀니 뭐니 하면서 치켜세우니 자기가 선녀인 줄로 알지 뭐겠니. 미친 여자하고 어울리더니 그 아이도 서서히 미치는 것 같구나. 이러다가 며늘애가 바람 들어서 도망이라도 가면 어쩐다니?”
목남 씨는 어머니의 말을 심각하게 들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부선이가 도망가면 어쩌나 하고 조바심을 냈다. 그러다가 퇴근하고 부선과 마주앉아 저녁밥을 먹으면 안도했다. 하지만 밤이 깊어지면 다시 불안해했다. 목남 씨는 부선이가 몰래 도망갈까 봐 굵은 실로 그녀의 발목을 묶고 잠에 들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그는 불안할 정도로 행복했고, 자신에게 깃든 이 행복을 누군가가 빼앗아갈까 봐 불안해했다. 그 누군가 중에는 사슴 아주머니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주머니, 다시는 저희 집에 오지 마세요.”
목남 씨는 사슴 아주머니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이보게, 난 부선이에게 고향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이야. 우린 서로 좋은 친구라네.”
“아뇨. 아주머니는 아내에게 해로워요. 잔뜩 바람을 집어넣고 있잖아요. 선녀 이야긴 대체 뭐예요?”
“그게 사실이니까. 그 애는 선녀야. 내 지금껏 말을 아꼈지만 그 애는 모든 선녀들이 그랬듯이 향수병 때문에 하늘나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고. 그래서 내가 날개옷을 숨겨두었지. 다 내 생명의 은인인 자네를 위해서…….”
“제발 이상한 소리 마세요. 그런 소리 하니까 아내는 자기가 선녀인 줄 알잖아요. 어쨌든 다시는 저희 집에 오지 마세요!”
그날 이후로 사슴 아주머니는 부선이를 찾지 않았다. 그러자 부선이는 결혼하고 나서 처음으로 외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편이 곁에 있지만 이상하게도 외로움이 사무쳤다. 그리고 자신이 선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남편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녀는 이따금 하늘나라 얘기를 했지만 목남 씨는 듣지 않았다. 목남 씨는 이렇게 소리쳤다.
“또 쓸데없는 소릴 하네. 난 당신이 살았다던 하늘나라를 믿지 않아. 제발 정신 좀 차려!”
부선은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는 남편의 무정함에 속이 상했다. 그녀는 사랑하는 가족과 정겨운 친구가 있는 고향이 그리웠다. 매일 밤,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훔쳤다. 생각 같아선 당장에 날개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녀는 불룩해진 배를 어루만지면서 감정을 추슬렀다. 그러면서 속으로 ‘일 년만 참자, 일 년만 참자.’ 하고 중얼거렸다. 부선이는 아이만 낳으면 아이와 함께 하늘나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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