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동과 선미, 17년전 그 날처럼
완주군 천지교류과는 여섯 명의 인원으로 이뤄져 있었다. 쉰 살쯤 되는 건장한 체격의 김 과장은 말을 하지 않을 때는 더그아웃에 있는 투수처럼 보였다. 특유의 한일자 모양의 입술을 옆으로 잡아당기고 주변을 신중하게 응시했다. 그는 비밀업무를 수행하는 과의 특성상 파트너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누차 강조했다.
“우리는 둘씩 짝을 지어 활동한다네. 마침 자네는 이 과장님이 퇴직하시고 충원된 경우니까, 이 과장님의 파트너였던 미스 최와 함께 하네.”
김 과장은 자신의 파트너를 포함한 네 명의 직원을 지동에게 차례로 인사시켜준 뒤에 지동의 파트너를 소개해주었다.
“여기 자네와 함께 할 파트너일세. 잘 믿고 따르라고.”
지동이는 자신을 향해 맑게 웃으며 다가오는 여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지동이가 초등학교 때 짝사랑한 선미였다. 지동이는 어리둥절했다. 오래전 선미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기 때문이었다.
지동이는 옛 기억이 떠올랐다. 선미가 마지막 등교한 날이다. 배웅하던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지동이는 선미에게 줄 편지를 꼭 쥐고 있었다. 지동이는 편지에서 선미를 선녀처럼 아름답다고 표현했다. 그것은 그녀를 좋아한다는 고백의 우회적인 표현이었다. 덧붙여 선녀처럼 하늘을 날아 멀리 떠나는 선미가 언젠가 다시 돌아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간절하게 적었다. 하지만, 선미가 이별의 악수를 청해왔을 때, 지동이는 편지를 뒷주머니에 서둘러 꾸겨 넣었다. 사랑의 고백이 부담스러웠고 부끄러웠던 탓이다.
그렇게 아쉽게 떠나보낸 첫사랑을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직원으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니 지동이는 믿기지가 않았다.
“이지동, 반갑다.”
“그래, 반갑다……. 최. 선. 미.”
17년 전 그날처럼 선미의 손은 부드러웠다.
사슴에게 총 쏜 교활한 사냥꾼 형제, 그들이 바로...
목남 씨가 선녀를 처음 본 건 30년 전이었다. 그해 1979년 늦가을은 나라 꼴이 어수선했다. 대통령이 믿었던 측근으로부터 피살당한 탓에 정국은 총알에 구멍 뚫린 창문처럼 몹시 불안정했다. 자칫하면 국가의 권위가 창틀에서 벗어난 유리처럼 와르르하고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런 탓에 만약을 대비해 군인들은 실탄을 장전하고 근무했다. 당시 직업군인이었던 목남 씨도 소총을 들고 완주군을 지키고 있었다.
사슴 아주머니는 선녀의 이름이 부선(浮仙)이라고 말했다. 나이는 열아홉 살이며 호기심이 무척 많은 아가씨라고 했다. 선녀는 세상 밖으로 나와 미용실에서 기술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하늘나라에 사는 신선들의 무성한 머리카락을 손질해주기 위해 나름대로 유학을 온 것이라고 했다.
“신선 할아버지들 머리카락은 무척 길어요. 수천 년 동안 길러서 그런 거예요. 땅에 끌릴 정도니 자기 발로 밟기 일쑤죠. 그러면 ‘꽈당’ 하고 앞으로 고꾸라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잘라줘야 해요. 처음에는 품위가 떨어진다고 마다하시지만, 잘라주면 아주 좋아하시거든요.”
부선이는 가위질을 하면서 사슴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사슴 아주머니는 부선의 얘기를 아주 재밌게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렇게 물었다.
“부선 씨. 남자 친구 하나 소개해줄까?”
부선이가 가위질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거울로 비치는 사슴 아주머니를 빤히 보았다. 아주머니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부선이는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 적당히 둘러댔다.
“제가 하늘나라를 떠나면, 신선 할아버지들 머리는 누가 잘라줘요?”
“선녀탕에 목욕하러 오면 그때 잘라주면 되잖아. 부선 씨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목욕탕에는 이발소가 있어야 제격이거든.”
사슴 아주머니의 말에 부선이는 고개만 두어 차례 흔들었다. 그러고는 말없이 가위질만 했다. 거절의 표시를 한 것이다.
이로써 사슴 아주머니는 부선이를 목남 씨에게 소개해주기 위해 다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사냥꾼들이 엽총 사격에 실패하면 사냥방법을 바꿔 올무를 놓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사냥꾼들의 사냥술을 참고할 정도로 그녀는 목남 씨에게 은혜를 갚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과연 완주군에선 사슴이 은혜를 입으면 그 은인에게 선녀를 소개해주는 게 오랜 전통이었다.
믿기 어렵지만, 사슴 아주머니는 전생에 사슴이었다. 물론 증거는 없다. 다만, 사슴 아주머니 스스로 그렇게 믿었고 사슴들도 그렇게 여겼다. 그만큼 아주머니와 사슴은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사슴 아주머니가 사슴과 친하게 지내는 걸 유독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사냥꾼들이었다.
사실 그들로서는 총부리 앞에 두 팔을 벌리고 나타나 인간방패 노릇을 하는 사슴 아주머니가 좋을 리 없다. 그래서 사냥꾼들은 차선책으로 길 위에 올무를 놓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사슴 아주머니는 올무에 걸린 사슴들에게도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사슴들을 놓아주고 다친 다리를 치료해주었다. 덕분에 완주군에서는 사슴의 개체 수가 폭증했다. 그에 반해 그 많던 사냥꾼들은 희망을 잃고 완주군을 떠났다.
그런데 불행히도 희망을 잃지 않은 사냥꾼 형제가 있었다. 형제는 타고난 성정이 포악했다. 그런데다가 형은 교활하고 동생은 비열했다. 교활한 형 사냥꾼은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다.
“그 미친 여편네, 다음에 만나면 아주 혼쭐을 내주겠어.”
그 말을 비열한 동생 사냥꾼은 이렇게 대꾸했다.
“나도, 나도……. 그 미친 여편네, 아주 벌집을 내주겠어.”
서슬 퍼런 그 말에 언젠가 사달이 나도 나겠다고 동료 사냥꾼들은 수군거렸다. 그들은 오히려 사슴 아주머니의 안전을 빌었다. 그만큼 사냥꾼 형제는 악랄했다.
교활한 형 사냥꾼은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렀다. 수염은 그가 작두 위로 넘어지면서 생긴 반달형의 상처를 가려주었다. 어릴 적에 새총으로 참새를 잡다가 제 발에 걸려 작두로 넘어진 것이라는데, 과연 그는 어려서부터 성질이 급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가끔 이성을 잃고, 움직이는 형체만 보이면 총부터 쏘아댔다.
바로 그가 어느 날 오후, 건강한 새끼를 출산한 어미사슴과 함께 기쁨을 나누면서 들판 위에서 뒹굴고 있던 사슴 아주머니를 향해 총질을 했다. 아주머니의 왼쪽 무릎을 총알 하나가 관통했다. 아주머니는 불에 덴 것처럼 아팠다. 그녀는 소리쳤다.
“이보시오! 총 쏘지 말아요. 총 쏘지 마!”
사슴 아주머니의 외침에도 총알은 다시 날아왔다. 오히려 개수가 많아졌다. 언제나 형을 따라 하는 동생까지 가담한 것이다. 아주머니는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사슴을 좁은 산길로 밀어 넣고 자신은 널찍한 길을 뛰었다. 그녀는 사냥꾼 형제가 자신을 죽일 작정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혼비백산하여 뛰었다. 그러다가 눈앞에서 젊은 포수 하나와 맞닥뜨렸다. 그녀는 죽었다고 체념하고는 나무둥치 아래 웅크렸다.
“살려 주세요…….”
사슴 아주머니는 벌벌 떨며 말했다.
이윽고 총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한 방이 아니었다. 연거푸 적어도 여섯 발의 총성이 들렸다. 잠시 후 등 뒤에서 한 사내의 고통스러운 외침이 들렸다. 그는 넓적다리에 총을 맞았다며 울부짖었다. 또 다른 사내의 격앙된 목소리도 들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동생아, 괜찮니? 괜찮은 거야?”
“이게 다 형 때문이야. 형 때문이라고! 내 넓적다리……. 어떡할 거야? 어떡할 거냐고?”
총 맞은 사내가 울부짖었다. 그러자 다른 사내가 역정을 냈다.
“어리석은 놈. 그러니까 넌 내 뒤만 따르라고 말했잖아. 왜 주제도 모르고 앞장선 거야?”
넓적다리에 총을 맞은 사내는 계속 징징거렸고, 옆의 사내는 역정을 내다가 나중에는 욕설까지 퍼부었다. 그렇게 한동안 소란을 피우던 그들의 목소리가 점차 사그라졌을 때 제3의 인물 목소리가 들렸다.
“아주머니 괜찮으세요?”
사슴 아주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밝은 햇빛 아래 소총을 든 젊은 포수가, 아니 젊은 군인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바로 목남 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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