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시간 뒤 하늘에서 두레박이 내려왔다. 두레박에 목남 씨와 부선이가 올라탔다. 두레박 주위로 둥근 번개 두 개가 돌아다녔다. 두레박이 하늘나라로 무사히 올라갈 때까지 주변을 밝혀줄 번개였다.
“잘 있거라, 아들아. 염치없지만 난 네가 천지교류과 일을 잘할 거라고 믿는다. 주유소도 맡아주길 바란다.”
목남 씨가 말했다.
지동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슴 아주머니의 매개로 부자는 손을 맞잡았다. 시간은 많지 않았다. 둥근 번개들이 자꾸 재촉했다. 빛이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 동시에 동아줄이 팽팽해졌다. 부선이가 눈물을 훔치며 급하게 말했다.
“지동아, 우린 내년 봄에 여기서 볼 수 있을 거야. 그때 보자.”
지동이는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선미가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선녀님. 그동안 신참 교육 잘 시켜 놓을 테니까, 우리 내년 봄에 꼭 봬요.”
선미가 지동이의 옆구리를 찌르자 지동이가 고개만 끄덕였다.
두레박이 서서히 공중으로 뜨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올라가자 목남 씨의 눈에 뜯지 않은 케이크 상자가 보였다. 그는 외쳤다.
“저기, 케이크를 사왔단다. 초를 밝히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아들아, 서른 번째 생일 축하한다.”
그 순간이었다. 귀를 찢는 총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두레박이 뒤뚱거렸다. 이어서 다시 한 번 총소리가 들렸고, 이번에는 두레박이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동아줄이 총알에 끊어진 모양이었다. 그렇게 두레박이 땅으로 추락하자 둥근 번개들은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 다시 시커먼 어둠에 휩싸였다.
“아버지, 어머니…….”
어둠 속에서 지동이가 외쳤다. 지동이가 어둠 속을 더듬으며 찾아낸 목남 씨와 부선이는 괜찮다며 오히려 아들을 위로했다. 그때 등 뒤에서 밝은 손전등 빛이 번쩍거리면서 사냥꾼 형제가 내려왔다.
“넌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그러냐?”
형 사냥꾼이 말했다.
“내가 아니면 형이 쏠 거였잖아?”
동생 사냥꾼이 말했다.
“난 사업가야. 총으로 일을 하지 않아. 어쨌든 여기에 우리 원수들이 다 모였구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동생아 다 쏴도 좋다. 그리고 오늘 날짜로 선녀탕은 내 거다. 하하하.”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총알이 빗발쳤다. 동생 사냥꾼은 마구잡이로 쏘아댔다. 지동이 가족과 선미와 사슴 아주머니는 뒤집힌 두레박 안으로 서둘러 몸을 숨겼다. 그것은 훌륭한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 그러자 형 사냥꾼이 가담했다. 그는 동생과 달리 침착하게 두레박 한가운데를 집중적으로 사격했다. 두레박은 점차 뚫리기 시작했다. 한두 방만 맞으면 구멍이 날 것 같았다. 형 사냥꾼은 정확하게 조준을 했다. 그리고 최후의 일격을 위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바로 그때 공중으로부터 커다란 돌덩어리 하나가 떨어지면서 형 사냥꾼의 총신을 때렸다. 그 덕에 총부리가 아래로 향했고, 총알은 두레박이 아니라 형 사냥꾼의 발등을 뚫었다.
“아이코!”
형 사냥꾼은 고함을 지르면서 데굴데굴 굴렀다. 동생 사냥꾼이 하늘을 보니 선녀 하나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마에 십자모양 흉터가 있는 선녀였다. 그녀는 공중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면서 이렇게 조롱을 했다.
“이 못된 인간 놈아, 나 잡아봐라!”
동생 사냥꾼이 그녀를 쫓았다. 선녀는 사냥꾼을 낭떠러지로 유인했다. 동생 사냥꾼은 낭떠러지 앞 공중에 떠서 희롱하는 선녀를 쏘아댔다. 선녀는 요리조리 피했지만 마지막 한 방을 맞았는지 아래로 낙엽처럼 떨어졌다.
“좋았어.”
동생 사냥꾼은 외쳤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려고 낭떠러지에 섰다. 그때 그의 등 뒤에서 수사슴 한 마리가 콧김을 씩씩거리며 앞발을 땅에 긁어대고 있었다. 동생 사냥꾼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사슴이 전력을 다해 달려오고 있었다. 동생 사냥꾼은 수사슴 뿔에 받혀 비명을 지르며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낭떠러지 아래에서 선녀가 날갯짓을 하며 떠올랐다. 모든 게 그녀의 술수였던 것이다.
잠시 후 선녀는 부선이에게 날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네 행동이 수상쩍어서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기다려봤지. 하지만 내 오지랖이 너에게 이렇게 도움이 되어버렸구나. 아이참, 속상해. 그나저나 두레박이 깨져서 어떡하니? 이제 부선이 너는 영원히 하늘나라에 오지 못하겠구나.”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조롱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에 화를 내지는 않았다. 아무튼 이마에 십자 흉터가 있는 그 선녀는 부선이를 실컷 조롱하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녀가 어둠 속으로 밝은 별이 되어 사라져가자 주변은 다시 어둠에 잠겼다.
“누구 불 없나?”
사슴 아주머니가 말했다. 그때 누군가가 라이터를 켰다. 형 사냥꾼이었다. 그는 살려달라고 울먹였다. 목남 씨가 그에게 다가가 상처를 보고 조금만 참으라고 말하고는 그의 손에서 라이터를 빼앗았다. 목남 씨는 라이터로 케이크의 초를 밝혔다. 정확히 서른 개의 초를 밝히자 서로 얼굴을 볼 수 있을 만큼은 밝아졌다. 어찌 된 일인지 고생을 했음에도 모두가 웃고 있었다.
“생일 축하한다. 아들아.”
목남 씨가 케이크를 들고 지동이에게 다가갔다. 지동이가 초를 불었다. 초가 꺼지자 다시 주변은 시커먼 어둠에 휩싸였다. 때마침 사냥꾼이 발등이 아프다고 늑대처럼 크게 울부짖었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순간 지동이의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그렇지만 그는 더 이상 어둠과 울부짖음과 밤의 소리가 무섭지 않았다.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
그날 이후 석 달이 지났다. 지난 석 달은 지동이가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지동이는 아버지와 화해를 했다. 목남 씨와 대중목욕탕도 함께 가는 사이가 되었다. 부자는 사우나를 마치고 나무꾼 주유소로 돌아와 거울 앞에 나란히 앉았다. 부선이가 오랜만에 가위를 들고 그들의 머리를 손질해 주었다. 하지만 지동이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머리모양이 구식인데다가 목남 씨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저녁에는 머리모양이 똑같은 부자가 마주앉아 바둑을 두었다. 실력이 비슷해서 내리 일곱 판을 거듭했다. 그들은 바둑판에 집중하면서 엄지발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똑같은 머리모양에 똑같은 버릇이었다. 부선이는 부자가 정을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저녁식사가 다 준비되었다고 일렀다. 가족은 정겹게 저녁식사를 했다.
목남 씨는 의사가 예고한 것보다 더 살았다. 간신히 해를 넘겼다. 목남 씨의 마지막 숨소리가 병실 안에 울려 퍼졌을 때 지동이는 울었다. 그날 밤 지동이는 어릴 적에 아버지하고 함께 만들었던 모형 비행기를 병원 옥상에서 날렸다. 아버지를 그렇게 떠나보냈다.
그리고 사흘 후인 오늘 아침, 선녀봉을 오르는 산길 중간 소나무 아래에서 수목장을 치렀다. 이목남(李木男). 이름풀이대로 ‘나무 남자’의 장례식다웠다. 간소하게 장례식을 마친 뒤 유족은 선녀탕에 들어갔다. 천지교류과 김 과장과 부부군수 그리고 사슴 아주머니와 선미도 함께했다. 이제 부선이가 하늘로 오를 것이었다. 부선이는 불에 타지 않은 완벽한 날개옷을 입고 있었다.
“선미 씨, 날개옷 고마워.”
부선이가 조그맣게 말했다.
“뭘요. 전 평생 지상에서 살아갈 거니까 없어도 돼요.”
선미가 역시 조그맣게 대답했다.
“선미 씨가 선녀인 건, 지동인 모르지?”
“아뇨, 알아요.”
선미의 대답이 의외라는 듯이 부선이는 눈을 크게 뜨고, 그녀의 대답을 마저 들었다.
“옛날에 지동이가 저한테 주지 못한 편지가 있는데, 거기에 제가 선녀라고 쓰여 있던 걸요.”
“지동이가 주지 않았다면서, 용케 편지를 본 모양이네?”
“그때 지동이가 칠칠치 못하게 뒷주머니에 넣는다는 게 땅에 떨어트렸거든요. 그걸 제가 주웠죠.”
둘은 웃었다.
지동이가 다가왔다.
“잘 있거라, 아들아.”
“잘 가요, 엄마.”
지동이의 표정은 밝았다.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게 아쉬웠지만 떠나보내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기다려요, 얼른 가세요.”
“그래,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그런 말 마세요.”
“행복해야 해.”
부선이는 지동이와 포옹을 했다. 그때 서쪽 하늘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그러자 부선의 날개옷 날개가 저절로 펴졌다. 부선이의 몸이 그대로 떠오를 것처럼 잠시 위로 들썩거렸다.
“아버지가 채근하네요.”
지동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부선이는 대꾸 없이 웃었다. 그러고는 발뒤꿈치를 살짝 들었다. 몸이 공중으로 가볍게 들렸다. 웬만한 나무키만큼 올라가자 그녀는 날개를 활짝 폈다. 그리고 우아하게 날갯짓을 한 차례 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하늘로 치솟았다. 그 바람에 멀리 하늘을 날던 솔개가 깜짝 놀랐는지 소리를 냈다. 잠시 후에는 부선이도 솔개만큼 높이 날고 있었다. 그녀는 솔개처럼 주변을 맴돌며 비행을 했다. 지동이와 선미가 그녀를 바라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멀찍이서 지동이와 선미를 바라보던 부부군수는 선녀탕을 관광지로 개발하는 안건을 전면 취소했다고 밝히고 있었다.
“어째서 마음이 바뀐 거죠?”
김 과장이 물었다.
“사실 난 아내가 선녀인 줄 감쪽같이 몰랐거든. 그런데 어느 날 밤에 아내가 날 깨우더니 무섭게 노려보면서, 선녀탕을 개발하면 애들 데리고 떠나겠다고 협박하는 거야. 별수 있나?”
부부군수는 몸서리를 치면서 가족이 곁에 없으면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덧붙여 말했다.
“하긴 부부군수님처럼 자기 애인이나 부인이 하늘나라 선녀인 줄 모르는, 아둔한 완주군 남자들이 꽤 있지요.”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사슴 아주머니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녀는 지팡이로 지동이를 가리켰다. 지동이는 선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렇게 둘은 손을 꼭 잡고는, 이젠 반짝이는 낮별처럼 보이는 부선이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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