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나무꾼
필리핀 엄마가 사라지자 아빠는 한동안 술만 드셨다. 그러다 병원에 실려 가시고 집에 오신 후로는 술은 드시지 않았다. 대신 필리핀 엄마를 찾으려고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니셨다. 하지만, 필리핀 엄마가 필리핀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만 알아냈을 뿐 더는 그 무엇도 알 수 없었다.
아빠는 후회하는 것이 분명했다. 아빠는 말도 없어지고 멍하니 필리핀 엄마가 바라보던 하늘만 바라보며 지내셨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조용히 묘목 농장에 나가셔서 다시 일을 하기 시작하셨다.
동생들도 처음엔 아빠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았지만, 천천히 옛날처럼 아빠에게 다가갔다. 왜냐하면, 아빠가 쌍둥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며 필리핀 엄마의 자리를 조금이나마 채워주려고 하셨기 때문이다. 나와 여동생은 쌍둥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지 않아도 되었다.
어느 날 아빠가 책꽂이에서 꺼낸 동화책은 ‘선녀와 나무꾼’이었다. 작은 쌍둥이가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선녀는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갔는데 왜 우리 엄마는 우리를 남겨두고 갔어?”
아빠가 아무 대답을 못하고 있자 여동생이 쌍둥이를 보며 이야기했다.
“그건 나무꾼 아이들은 세 명이어서 양팔에 하나씩 안고 하나는 업고 갈 수 있었는데 우리는 네 명이어서 못 데리고 간 거야. 누구 하나는 남겨 놓을 수 없잖아.”
그러자 큰 쌍둥이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니야! 형아가 그러는데 나무꾼이 선녀를 의심해서 선녀옷을 숨겨놓지만 않았어도 선녀가 도망가지 않았대. 그러니깐 우리 엄마도 아빠가 의심하지 않았으면 우리를 버리지 않았을 거야!”
그러자 동생들이 울기 시작했다. 아빠 때문이라며, 엄마를 찾아오라며 엉엉 울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마루에서 나와 함께 듣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동생들을 달래려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할머니께서 들어가시자 아빠는 말없이 방에서 나오셨다. 그리고 대문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서 계셨다. 나는 조금 간격을 둔 채 아빠 옆에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아빠가 저렇게 후회할 줄 알았다면 조금만 더 기다려 볼걸…….’ 하는 후회와 함께 저 대문으로 필리핀 엄마가 들어왔으면 하는 소망이 밀려왔다. 아빠도 내 마음과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저기 멀리서 우리 집을 향해 걸어오는 듯한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우리 집을 지나쳐서 갈 거야……, 아니면 조금 있다 오른쪽으로 꺾어서 걸어갈지도 몰라.’라고 괜한 기대를 하지 않도록 나에게 최면을 걸었다.
아빠도 보고 계신지 궁금해서 아빠를 보고 싶었지만 다른 곳을 보면 보고 있던 사람이 사라질 것 같아서 볼 수가 없었다. 계속 쳐다보지 않으면 우리 집으로 오다가 다른 곳으로 가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오른쪽으로 꺾어서 가지도 않고 계속 우리 집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우리 집으로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집에서 내뿜는 조명에 의해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여자인 것 같았다. 가슴이 더욱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얼굴이 보였다! 곧이어 또 한 사람이 뒷모습을 보이며 눈앞에 나타났다. 아빠였다! 아빠가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불편한 다리로 빨리 걷는 것도 보이기 싫어하셨던 아빠가 달리고 있었다. 필리핀 엄마를 향해 달려가고 계셨다!
그 사람은 바로 필리핀 엄마였던 거다! 필리핀 엄마! 바로 우리 엄마!
# 끝: 다음 연재부터는 두번째 이야기 '목남과 부선의 사랑이야기'가 연재됩니다.
기대해주세요^^
'이야기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연재소설 2-2] 목남씨의 발등찍은 하얀 고슴도치 (0) | 2009/08/16 |
|---|---|
| [연재소설 2-1] 지동, 천지교류과로 발령받다 (0) | 2009/08/12 |
| [연재소설 1-7] 돌아온 필리핀 엄마가 바로 선녀였다! (0) | 2009/08/07 |
| [연재소설 1-6] 아빠의 의심병 (2) | 2009/08/05 |
| [연재소설 1-5] 엄마의 '날개옷'은 여권? (2) | 2009/08/02 |
| [연재소설 1-4] 말이 정말 씨가 되었다! (0) | 2009/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