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엄마가 우리 집에 온 것은 우리가 시골 할아버지 댁으로 내려오고 2년 정도 지난 뒤였다. 어른들은 나와 여동생 그리고 쌍둥이 남동생들, 이렇게 우리 4남매에게 엄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특히 쌍둥이들을 보실 때면 “이 어린것들을 버리고 어떻게 나갈 생각을 했는지…….”라고 말씀하시며 매우 안쓰러워하셨다.
언젠가부터 어른들은 우리를 방에 들여보내고 크지 않은 목소리로 아빠와 무언가를 이야기하시곤 하셨다. 나는 그럴 때면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무언가 내가 싫어하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아빠도 그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피해 다니셨다. 그러나 곧 앉아서 듣는 일이 잦아지셨고 어느 날은 짐을 싸시더니 며칠 어디를 다녀오신다며 나가셨다.
아빠가 돌아오던 날, 아빠의 얼굴은 달라져 있었다. 우리가 시골에 오기 전, 엄마가 이혼서류를 들고 찾아온 후로 아빠의 얼굴엔 웃음이 사라졌다. 그런데 다시 돌아온 아빠는 쌍둥이들을 양손에 안고 호탕하게 웃으시던 옛날 아빠로 돌아온 듯했다. 아빠는 하루에도 몇 번씩 어디론가 전화를 하며 단어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크게 말씀하셨다. 마치 우리 할머니가 동네에서 제일 나이 많은 할머니의 귀에 대고 이야기를 하시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리 오래지 않아 지금의 짝퉁 엄마가 필리핀에서 우리에게로 왔다.
짝퉁 엄마는 예쁘다.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선녀’ 같다 하시고 동네 젊은 아줌마들은 ‘필리핀 얼짱’이라고 한다.
우리 동네에는 짝퉁 엄마 외에도 몽골, 베트남에서 온 외국 누나, 아줌마들이 있다. 그런데도 동네 사람들이 유독 우리 집 짝퉁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많은 것은, 예쁘기도 하지만 부지런하고 무엇이든지 빨리 배우는 재주와 달라진 우리 가족들의 모습 때문인 것 같다.
우선 짝퉁 엄마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배운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런 짝퉁 엄마를 무척 예뻐하시고 짝퉁 엄마가 오고부터 부쩍 웃음이 느셨다. 그러나 아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빠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를 않는다. 짝퉁 엄마가 오고부터는 묘목 농사도 정말 신나서 하시는 것 같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빠가 자동차에 대한 공포증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동생들 또한 짝퉁 엄마를 처음엔 낯설어했지만, 이제는 잘 따른다. 왜냐하면, 짝퉁 엄마가 마치 자기가 진짜 엄마인 것처럼 엄마 흉내를 아주 잘 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든 동네 사람들 말로는 우리 집에 복덩이가 굴러 왔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언젠가 우리 할머니가 ― 우리 할머니는 동네에서 얌전이 할머니라고 하시는 분이다 ― 감나무집 할머니와 싸우신 적이 있다.
내가 담벼락에 기대서 몰래 들은 바로는 감나무집 할머니 아들이 저리 예쁘고 고운 아가씨가 무엇이 아쉬워서 아이가 넷이나 딸린, 다리도 불편한 우리 아빠한테 시집을 왔겠느냐며, 분명히 기회를 봐서 도망가던지, 아니면 영주권을 딸 때까지 기다리던지, 아니면 얼마 안 되는 재산을 조금씩 필리핀으로 빼돌릴 거라는 등, 동네 아저씨들과 수군수군했던 이야기가 퍼지고 퍼져서 우리 할머니 귀에까지 들어온 것이다. 할머니께서는 얼마나 화가 나셨는지 감나무집 할머니네 며느리가 ― 감나무집 며느리도 필리핀 아줌마다 ― 도망을 가면 갔지 우리 며느리는 그럴 일이 없다는 말까지 하셨다. 물론 그렇게 말씀하시고 집에 오셔서 곧 너무 심하게 말한 것 같다며 후회를 하셨지만……. 그러나 아빠는 그런 수군거림은 전혀 상관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사실이 되기를 바랐고 어서 빨리 짝퉁 엄마가 도망가기를 바랐다. 어른들이 자주 쓰는 말처럼 말이 씨가 되었으면 했다. 그런데 짝퉁 엄마는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를 않았다. 그러니 내 심술이 날이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었던 거다.
짝퉁 엄마
처음부터 짝퉁 엄마라고 했던 건 아니다. 내 입장에선 딱히 뭐라고 부를 호칭이 없었다. 짝퉁 엄마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막 아무렇게나 부르는 것도 그리 내키지는 않았다. 그래서 부를 일이 있을 기회를 애초부터 만들지 않기로 작정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짝퉁 엄마에게 무언가를 말해야 하는 일이 많았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어른들이 일을 일부러 만들어서 내가 어떻게든 짝퉁 엄마에게 말을 걸게끔 하셨던 것 같다. 그래도 난 머리를 굴리며 요령껏 최대한 호칭을 피했다.
이런 내 모습을 보다 못한 어른들이 짝퉁 엄마에게 ‘엄마’라는 말이 싫으면 ‘새엄마’라 부르라고 강요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소용없자 어른들 입장에선 한발 물러선다고 생각을 하셨는지 ‘새엄마’라는 말도 싫으면 ‘필리핀 엄마’라고 부르라 했다. 사실 나만 빼고 동생들은 언젠가부터 ‘엄마’라는 말로 짝퉁 엄마를 부르고 있었다. ‘배신자들…….’
난 심술이 났다. 내 딴에는 양보한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엄마’면 엄마지, 다른 엄마는 없는 거라고 난 생각했다. 그러니 ‘새엄마’든, ‘필리핀 엄마’든 내게는 모두 말이 안 되는 소리였던 거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우연히 동네 누나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을 듣고 지금의 호칭을 떠올리게 되었다.
“야, 걔 가방 짝퉁이야! 짝퉁! 웃기고 있어 진짜도 아니면서 진짜인 척하기는…….”
귀가 번쩍 뜨였다. 그래! ‘짝! 퉁!’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호시탐탐, 이 말을 써버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집안 어른들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하던 날, 내가 처음 짝퉁 엄마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보냈을 때의 어른들의 표정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우습다. 고모부는 입 안에 있던 밥알을 몽땅 튀기기까지 하셨다. 가장 웃겼던 사람은 짝퉁이라는 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엄마’라는 말에 감격하여 나를 안아주던 짝퉁 엄마다.
당황해 하는 어른들의 표정과 나를 안은 짝퉁 엄마의 모습……. 난 이후로 어른들이 강요할 때마다 보란 듯이 ‘짝퉁 엄마!’라 불러댔다. 아빠를 비롯한 집안 어른들은 타이르기도 하고 혼을 내기도 했지만,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똑똑한 짝퉁 엄마는 이쯤 되면 ‘짝퉁’의 의미를 모를 리가 없었는데도,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언제든지 내가 부르면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의 이런 행동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할아버지께 등을 맞게 되었으니깐……. 그것도 진짜 세게!!!
할아버지께 등을 세게 맞은 이후 ‘짝퉁 엄마’라는 말 대신 다시 예전처럼 ‘쿡쿡’ 찔러대며 짝퉁 엄마를 불렀다. 어른들도 더는 호칭에 대해 강요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어른들이 보지 않을 때는 짝퉁 엄마라는 말을 계속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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