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싸한 시어머니의 손맛과 달달한 며느리의 감각으로, 비비정, 맛있는 대결을 펼치다.
- KBS 6시내고향 비비정마을 촬영 에피소드
한 쪽으로 길게 늘어선 건달 할머니들이 팔짱을 끼고 힐끗 부녀회 젊은이들을 바라본다. 입가에는 웃음도 배어있고, 몸짓도 들썩 들썩 장난기가 가득해보이지만 눈빛만은 진지하다. 반대편으로 길게 늘어선 부녀회 젊은이들도 허리에 손을 올리고 건달 할머니들을 새침하게 쳐다본다.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감추고는 지지 않겠다는 듯이 턱을 올린다. 초반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양 팀에서 가득 느껴진다.
2011년 6월 1일, KBS 프로그램 “6시 내 고향”(김영삼 PD, 최임경 작가)이 비비정 마을을 찾아왔다. 완주군에서 9월에 열리는 와일드 푸드 축제를 위해 건달 할머니들과 부녀회에서 맛있는 음식 대결을 펼친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옹기그릇에 푸릇푸릇하게 담긴 각종 야채들과 가지런히 담겨진 재료들이 먹음직스럽게 놓여지고 각자의 자리에서 대결이 시작되었다. ‘에이그, 저것들 시시하다, 우리가 이긴다.’ 건달 할머니들의 익살스러운 말들이 시작되면, ‘어머, 어머님, 저희도 만만치 않아요.’지지 않고 건네는 말에 와그르르 웃음이 쏟아진다. 건달 할머니들은 비비정 마을에서 예로부터 전해지는 전통적인 맛의 비법을 살리는데 집중했다. 일일이 녹두를 손질해서 갈아내 소금으로 살짝 간해 농축액만 뭉글하게 끓여 만든 녹두묵은 한 입 베어 물자 입안 가득 향긋한 녹두의 맛이 퍼진다. 토란대는 겉껍질을 하나하나 손질하고 볕 좋은 여름날 대청마루에 말렸다가 거둬들여 집 된장을 풀고, 삶았다가 참기름, 깨소금, 들기름, 마늘, 파를 넣는다. 고소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맛이, 뜨끈뜨끈한 밥 위에 올려놓고 한 숟가락 뜨게 하고 싶은 맛이다.
건달 할머니의 음식으로는 오징어 회감도 빠질 수 없다. 파릇한 미나리를 데치고, 당근을 썰어놓고, 오징어에 잘잘한 칼집을 해서 데쳐내면, 오징어가 익으면서 꽃 모양처럼 벌어진다. 꽃 모양으로 벌어진 오징어 안에 미나리와 당근을 넣고 동그랗게 말아 잘라내면 입 안에서 사각거리는 소리가 일품이다. 음식이 익어가는 소리에 며느리들이 슬그머니 와서 한 입 먹어보고 간다. 어머니의 솜씨를 따르기엔 아직 멀었지만, 부녀회의 음식들도 만만치 않다. 솥뚜껑을 뒤집어 평평한 판에 돼지기름으로 기름을 내고 척척 올려놓은 도라지 산적은 녹두묵만큼이나 비비정의 일등공신이다. 푸릇푸릇한 아욱을 다듬어 가마솥에 넣고 은근하게 끓여낸 아욱국은 부녀회가 특별히 어르신들의 영향과 건강을 위해 고집한 음식이기도 하다.
이 날 비비정 마을의 역사상 처음 있었던 발칙하지만 맛있는, 건달 할머니 대 부녀회의 대결은 2:1로 건달 할머니들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건달 할머니들의 음식재료까지도 모두 손질해서 준비해두었던 부녀회 젊은이들의 고운 마음씨와 자신의 비법까지도 모두 내어주고 흐뭇하게 지켜보던 건달 할머니들의 웃음은 서로를 향해 닮아 있었다. 작은 마을에 불과했던 비비정 마을에 서울 손님들이 찾아오고, 늘 바라만 보던 화면에 자신들의 모습이 나올 수 있었던 건, 그렇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묵묵히 지켜주었던 서로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 만든 희망이었을 것이다.
# 이 원고는 완주군 비비정마을 소식지 '비비정마을신문' 6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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