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향기2010/03/25 08:00

 우리는 인생의 '희노애락'을 겪는다. 기쁠때나 슬플때, 감정의 기복이 심할때, 우리는 어딘가 의지할 곳을 찾는다. 가장 많이 찾는 것은 술(酒)이다. 보통 곡물을 발효시켜 만드는 술은 예로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삶의 지침과 외로움을 달래는 친근한 벗(友)으로 존재해왔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다. 매일 술을 마시는 알콜중독자도, 삶의 굴곡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도, 친구와 오랜 인생의 고뇌를 나누는 사람도 모두 술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많이 마시면 몸도, 마음도 상하는 독이 될 수 있지만 적당히 마시면 삶의 고난과 아픔을 보듬어주고 기쁨은 증폭시켜주는 좋은 묘약이 될수도 있다. 여기 술이 좋아 한 평생을 술과 함께 지낸 이가 있다. 최근 완주군에 둥지를 튼 박영국 관장(55)이다.

술 관련자료 5만 5천점을 보유하고 있는 박영국 관장

술 관련자료 5만 5천점을 보유하고 있는 박영국 관장


 박 관장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술 관련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술 매니아다. 더불어 전문가다. 그가 가지고 있는 자료는 무려 5만 5천점. 종류만해도 실제 술과 술병, 술 제조시 필요한 도구들과 술잔, 술병, 그리고 옛 술의 홍보물까지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술이 좋아서 모았습니다. 단지 그것 뿐이에요"

박 관장은 단지 "술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보통의 관심과 애정으로는 30년에 걸쳐 자료를 모으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다.

 "술 관련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건 두가지 이유가 있어요. 하나는 제가 막 군을 제대한 1980년대 초반에 사회에 돌아와보니 우리 술이 없고 죄다 외국술만 있더라고요.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술도 다 일본방식으로 만들더라고. 그래서 안되겠다. 우리가 자료도 없고 방식도 일본방식으로 술을 만들고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우리 술에 관한 자료들을 좀 모아야되겠다 싶었죠.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술이 좋아서에요. 술은 인생과 같아요. 인생의 희노애락이 모두 술에 담겨있고, 술도 얼마나 어떻게 마시느냐에 따라 사람을 희노애락의 경지에 빠뜨리기도 하니까요. 술이 바로 인생입니다. 그래서 술을 좋아하고 술과 함께 인생을 보내는 거기도 하고요"


 박 관장의 말처럼 그가 처음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건 지난 1980년대 초부터. 대략 햇수로 30년쯤 된 셈이다. 자료나 유물의 관점에서 보면 그리 오래된 자료가 아닐 수도 있지만 국내 자료가 워낙 없어 가장 오래된 자료들은 대부분 박 관장에게 있는 경우가 많다. 

 

"자료를 많이 모으다보니 여기저기에서 접촉이 많이 옵니다. 모 주류회사는 자기들에게 자료를 넘기라고도 하고 박물관을 지어줄테니 자기들한테 오라고도 하고. 지자체도 마찬가지에요. 여러 곳에서 자기네 지역으로 이전하라고 연락 많이 왔어요. 국내에 술 관련 자료가 워낙 없다보니 제 자료를 탐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물론 아무에게나 넘기지 않을 것이지만요"


 지난 십수년간 기업과 행정, 지자체 등 여러곳에서 박 관장과 그의 자료들을 유치하려 했지만 박 관장은 눈썹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박 관장에게 이 자료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박 관장이 최근 기존에 살던 경기도 안성시를 떠나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에 둥지를 틀었다. 그와 그의 자료들이 앞으로 더욱 값지게 쓰이길 바래서다.

 "여러 곳에서 자료 전시와 이전을 부탁해왔지만 모두 거절했어요. 이 자료는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거든요. 그러던 중 완주군과의 접촉을 통해 군에 술 테마파크를 건설하기로 했고, 그에 따라 완주군으로의 이전을 결정했습니다."

 매우 조심스러운 작업이었다. 혹시나 유실될까, 혹은 파손될까를 걱정하며 경기도 안성에서 전북 완주까지 수천리를 옮겨왔다. 그리고 지난 20일, 박 관장의 자료들은 완주군 구이면에 '대한민국 술 박물관'이란 이름으로 전시에 들어갔다.

 
지난 20일 문을 연 이름부터 국가대표급인 '대한민국 술 박물관'

지난 20일 문을 연 이름부터 국가대표급인 '대한민국 술 박물관'


"지금 전시장도 모든 자료를 보여주기엔 작습니다만 술 테마파크가 완성될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니 그 전에 많은 사람들께 자료를 전시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아직 제 자료의 일부밖에 보여드리지 못하지만 많은 분들이 감상하시고 들렀다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막 개관 5일을 넘긴 '대한민국 술 박물관'은 향후 술 테마파크가 준비될때까지 완주군 구이면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예정이다.

 이미 5만 5천점이라는 어마어마한 자료를 모았으면서도 박 관장은 아직도 욕심이 많다. 그는 현재 유통되고 있는 술들까지 각 라벨별, 디자인별 등 다양한 주제에 따라 모으고 있다. 그의 수집욕은 끝이 없어 보인다.

 "전에는 모두 제 사재를 털어서 마련했던 자료들입니다만 요즘은 술과 관련해 신제품이 나오면 주류회사들에서 저를 알아보고 보내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주류업체들도 제가 가진 자료들이 대한민국 술의 역사를 대표한다는 것을 아나봅니다. 저도 열심히 계속 모아야지요"



 끊임없이 출시되는 술과 그 상품들이 지겨울법도 한데 "계속 수집할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눈엔 총기마저 보인다. 그의 지난 30년이 술과 함께 살아온 삶이듯, 앞으로의 삶도 술과 함께 살아갈 것이 눈에 훤하다.


이제 막 기지개를 켠 그의 자료들과 '대한민국 술 박물관'. 그리고 그의 모든 자료가 전시될 테마파크까지. 그의 삶은 앞으로도 술과 함께 만들어갈 미래로 가득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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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