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향기2011/05/06 11:58

이병률은 말한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시간은 있다고.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새에게도, 나무에게도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시간은 있는 법이라고. 기억하고, 추억하고, 감싸 안는 일, 그래서 힘이 되고 기운이 되고 빛이 되는 일, 손에서 놓친 줄만 알았는데 잘 감췄다고 믿었는데 가슴에 다시 잡히고 마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시간이어서 온 몸에 레몬즙이 퍼지는 것 같은. 그게 사랑이라고. 이 글은 사랑이 남긴 기적으로 살아가는 아내, 권영애 (79) 할머님의 이야기 이다.


내 고향이 고산 동성면이야. 나 9살에 아버님이 돌아가셨어. 외가가 여기여. 그래서 외갓집으로 그냥 온 거야. 어렸을 때부터 왔다 갔다 하다가 여기서 컸지. 말도 못혀. 우리 정말 시방스러웠지. 나는 어뜨케 장난도 좋아하고 시방시럽던지, 그 전에는 장난도 많이 했지. 모여서 고구마도 캐서 해먹고, 모여서 놀고 그런 거 많이 했어. 먹을 게 없고 놀다보면 뭐 허겠어. 뒤적뒤적 하러 가서 고구마 캐서 쪄 먹고, 그런 게 다 장난이었어.

그러다가 다시 나가살았는데, 또 이 마을 총각이랑 결혼을 하게 됐지. 이 마을 총각이랑, 안 할라고 했어. 근데 동네 사람들이 막, 나 하고 3살 더 먹은 신랑이거든. 한 동네에서 살았잖아. 그래도 친구는 아니지. 동갑쟁이들은 만날 돌아다니면서 장난도 하고 뭣도 하고 그러고 살았는데 우리 집 이 양반은 우리랑 위에니까 우리 영감 동생이랑 나랑 친구였어. 그런게로 잘 어울려 다녔는데, 아 동네 사람들이 중신해가지고 어느 날 느닷없이 사주를 가져왔잖아. 그래가지고 난 결혼 안한다고 막 떼를 쓰고 안하고 어디로 가번졌어. 여자가 그 시절 어디로 가겠어, 갈데가 어디 있어. 그래가지고 친척집에 쪼깨 있다가 돌아왔더니 덥석 혼인을 시키더라고. 그냥 와가지고 도로 결혼을 했어. 어머니랑 이모들이 니가 뭐가 잘나서 그러냐고, 결혼해야 한다고 하두 그래서. 또 이 집에서 마을에서 나를 착하게 봤나, 시누님이랑 착하게 봤나, 욕심을 부려 결혼을 했어. 그 양반은 나 만나가지고 아들 낳고 딸 낳고 아들 낳고 또 아들 낳고 딸 낳은 거여. 그러니 귀염 받고 살았지. 그 양반은 너무나 자식들을 예뻐하고, 나도 예뻐해서 나는 일은 안했어. 남 일 댕기고 그랬는데 애기만 잘 키우래. 그래가지고 편하게 살고, 나를 애기마냥 해주고 그랬지.
 
그 양반이 그런 게 돌아가신 날 얼마 안남아기지고, 우리 양반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 논에 갔다 돌아오시다가. 근데 그러더라고. 당신 만나가지고 나는 성공했다고, 그런 말씀을 하더라고. 뭐 나 같은 사람 만나가지고 성공했느냐고 한게로, (자식 5남매 나서 다 키우고 잘 결혼도 시키고 돌아가셨어.) 나는 성공했다고, 당신 만나서 자식들 잘 키워주고 그래서 고맙다고. 그런데 그 양반이 복이 없어, 그러니까 그렇게 돌아가시고 나 혼자 자식들한테 다 받고 사는 거야. 너무 그 양반은 아주 성실한 양반인데, 아주 인정받는 양반인데, 그렇게 돌아가셔서 가지고. 많이 생각나지, 자식들 하고 어려운 일 없이 그 날 그 날 해서 먹고, 새끼들이랑 앉아서 먹고, 파전 같은 거 해 먹이고, 호박죽 끓여 먹고, 하지감자 쪄먹고, 그 양반이랑 그렇게 자식들 어려서 키울 적에 재미있게 살았어. 자식들이 잘 해주니께 보람이 있지. 그런데 영감이랑 같이 받아야 하는데, 그 양반이 갈치고 키워놓고 내가 받으니까 죄송시러.

남겨진 아내는 남편이 평생을 다해 만들어놓은 사랑이란 기적 안에, 여전히 손에 닿으면 느껴질 것만 같은 남편의 추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 이 원고는 완주군 비비정마을 소식지 '비비정마을신문' 4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Posted by 완이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