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삼례에서 태어나서 컸거든. 나이 스물넷에 결혼하고. 구식으로 키워져서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혼나기도 퍽 혼났네. 처녀 때부터 교회를 다니고 싶었는데 연애당이라고 안 보내줘서 못 나갔지. 내가 초등학교밖에 못나왔거든. 한번은 동창회를 한데서 몰래 나갔다왔다가 어찌나 혼이 났던지.
직장생활 한 번 못 해봤어. 아들 넷에 딸 둘, 이렇게 육남매에 셋째인데, 첫째 딸이라 집에서 살림만 하다가 연애 한 번 못해보고 중매하고 바로 시집을 왔당게. 여름 쯤 선보고 약혼하고 가을에 결혼했응게. 그래도 버스타고 시집갔네. 애아버지 회사버스타고 와서 식을 올렸지. 우리 엄마가 시골로는 안 여운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시골로 왔네.
여름 쯤 선을 봤는디, 야간에 일하다가 모양도 안내고 신랑이 오니 마음에 안 들어했어. 엄마가 시내로 시집보내려고 살 탄다고 밭일도 안 시켰지. 처녀 때는 바느질도 잘했거든. 양재학원을 6개월 다니고 한복도 잘 만들고. 근데 어떻게 시집와서 전주서 한 1년간 살다가 이곳으로 왔나. 애아버지가 전주 형무소에서 일했거든. 그만두고 이곳에 논 세마지기를 사서 왔는데 벌어 보태서 한 필지를 장만했어.
난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뒀는데, 스물여섯에 낳은 첫 아이는 곧 잃었어. 그리고 둘째 낳은 지 일주일만에 천주교를 나갔지. 그렇게 교회가 가고 싶었는데 못 갔던 것을 여기 시댁이 천주교 집안이어서 갔지. 지금도 다녀. 지금은 다 좋아. 교회 못 다녀서 애달았는데 다니지. 아들, 딸 잘 커서 시집장가 잘 가서 살고 건강하고, 나도 건강하고. 젊어서는 살림에 손도 타닥타닥 트고 그랬는데 지금은 며느리가 밥해주고 호강스럽게 살어. 근디 아들 손주가 없어. 아들하나 있으면 좋겠어. 늦었지 지금은.
애아버지는 재밌게 살다가 아파서 돌아가셨어. 한 9년쯤 됐나벼. 큰아들, 둘째아들 모두 대학나와 직장생활을 했는데, 둘째아들이 서울서 제약회사 다니다가 제주에 가서 식당을 차렸어. 내가 그때 주방일 도우려고 한 3년 제주도 생활을 했지. 그때 애아버지는 혼자서 농사지으며 밥해먹고 살았어. 그렇게 후딱 갈 줄 알았으면, 함께 살 것을. 그 3년 떨어져 산 게 후회가 돼. 떨어져 지낸 게 안타까워.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랑 등산을 한 3년 다녔지. 백두산 빼고 안 가본 산이 없어. 다른 집들은 여자가 아파서 같이 등산 못 다니는데 나는 건강해서 우리는 함께 등산다닌다고 다들 부러워했지.
우리 애아버지가 일을 참 잘하고 많이 한 양반이여. 마을이장도 하고. 지금 집 지을 때 애아버지하고 나하고 흙 퍼다가 마당 메우고 일 다 했어. 근데 얼마 못살고 돌아가셨지. 나만 혼자 깨끗하고 좋은 집에 살으니 마음에 많이 걸려. 한 3년만 더 살다갔으면 덜 걸리겄어."
집 안 곳곳에 눈길을 두면, 정인의 흔적이다. 발길 딛는 곳마다 정인이 머문 자리다. 그래도 함께여서 행복했던 기억으로 오늘도 산다. 한때는 꽤나 부러움을 사던 그들에게도 이별은 예고 없이 왔다. 그럴싸하게 집을 지어놓고 오래오래 같이 살자 했는데, 얼마살지 못한 그에게 못내 미안하다. 편안한 잠자리, 따뜻한 온수, 시원한 바람이 모두 미안함으로 가닿는다. 하지만 어쩌랴. 그가 누리지 못한 남은 시간들, 남은 공간들 내 마저 누리고 함께 만나 그 기쁨 나누면 되리.
# 이 원고는 완주군 비비정마을 소식지 '비비정마을신문' 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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