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높았고, 길은 험했다. 원하는 곳은 어디든 안내해주는 ‘네비게이션’에도 찍히지 않는 완주군 고당리 삼거리 마을을 찾아가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운주면사무소를 비롯해 길거리 곳곳에서 마주친 마을 주민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도 수 시간은 헤매지 않았을까 한다.
“멀리서 보면 산으로 막혀 있는 것처럼 보여요. 옛날에 관군에 쫓기던 한 사람이 말을 타고 이 마을로 들어왔는데, 관군은 멀리서 산만보고 길이 막혀 있는 줄 알고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있거든요.”
아닌 게 아니라, 이 마을 한 주민의 설명대로 삼거리 마을까지 가는 내내 ‘이 길 끝에 정말 마을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마을은 협곡을 끼고 위치해 있었는데, 여름이면 피서를 즐기기 위해 수 십 만 명의 사람들이 이 삼거리 마을을 방문한다고 한다. 매년, 적게는 25만 명에서 많게는 50만 명까지 찾을 정도로 삼거리 마을의 계곡과 협곡은 가족단위 혹은 연인들이 놀러오기 딱 좋은 정취를 자랑하고 있었다.
마을에 들어서면 커다란 산봉우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바로 이 봉우리 때문에 삼거리 마을에서 자자손손(子子孫孫)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이어져 내려왔다는 주민들의 설명이다. 이 산봉우리는 그 형상이 옷을 벗고 있는 여자의 나체를 닮았다하여 그 이름도 ‘선녀봉’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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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주군 운주면 삼거리 마을에 위치한 '선녀봉' | ||
대게 마을의 전설이나 민담이 세대를 거쳐 전승되는 경우에는 매개체가 필요한 법인데, 이곳 삼거리 마을에서는 ‘선녀봉’이 그 매개체가 되어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대대로 전승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시작이 언제부터였는지는 주민들도 정확히 알지 못했으나, 입을 모아 ‘아주 아주 오래전’,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대부터’라고 하니 그저 옛날 옛적부터라고 짐작할 따름이다.
“내가 이 마을에서 태어나 6·25때 학교를 다녔어. 철이 막 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를 통해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실 그 때만 하더라도 이곳이 선녀가 내려온 곳이 맞다 아니다 라는 식으로 이여기가 전해져 내려왔어. 친구들하고는 학교를 왔다가 갔다 할 때마다 저 선녀봉을 가리키며 들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지. 저기 선녀봉에서 물이 흘러내리는데, 지금은 얼어서 잘 보이지는 않을 거야. 아무튼 거기서 흘러내린 물로부터 마을 계곡이 시작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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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거리 마을 강명렬 할아버지 | ||
올해 67세의 강명렬 할아버지는 선녀봉을 바라보며 새삼 어렸을 적 들었던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회상했다.
“그러니까 마지막에 나무꾼이 선녀에게 말을 빌려 타고 어머니를 보기 위해 땅으로 내려오잖아. 말에서 내리면 안 되는데, 그만 어머니가 끓여 준 호박죽을 먹다가 말 등에 떨어뜨려 말에서 떨어지고 말지. 결국 나무꾼은 다시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죽게 되고.. 나중에 수탉으로 태어나 하늘을 바라보며 선녀를 그리워 하지.”
삼거리 마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선녀와 나무꾼’은 지난 1편 <선녀와 나무꾼 원형 탐구>에서 언급했던 다양한 유형 중에서 ‘나무꾼 지상 회귀형’에 속했다. 이는 전승자와의 특성과도 관계가 깊은데, 강명렬 할아버지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주로 할머니들의 입에서 전승돼 온 것이 아닌가 하는 개인적 의견을 밝혔다.
그런데, 실제로 삼거리마을은 행정구역상 운주면 고당리에 속하는데, ‘고당리’는 할머니 고(姑)자에 마을 당(黨)자를 써 예로부터 장수하는 할머니들이 많이 살았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삼거리 마을은 현재 100세 이상의 할머니가 두 분 계실 정도로 운주면에서는 손꼽히는 장수마을로 소문나 있다.
장수하시는 할머니들의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가 주로 전승되다 보니 나무꾼이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 간 뒤, 집에 혼자 남아 있는 늙은 어머니를 빼놓고 결말을 맺기가 아쉬웠던 모양이다. 전승자들은 여기에 효(孝)의 가치를 첨부, 나무꾼이 다시금 노모를 만나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온다는 모티브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른 것이다.
앞선 <선녀와 나무꾼 원형 탐구>에서 밝혔듯이,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그 시작이 부랴트 족 건국신화에 있었던 만큼, 비극적인 결말로 끝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다면 결말을 바꾸지 못하는 한, 적어도 이야기를 듣는 후대에게 선대의 윤리의식이나 전통가치 등을 전하고자 하는 전승자들의 ‘마음’이 이야기 속에 베어난 것은 아닐까. 삼거리 마을의 ‘선녀와 나무꾼’은 구비문학 그 특유의 멋을 새삼 확인시켜줬다.
한편, 삼거리 마을에서 ‘선녀봉’과 함께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구전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이야기 속에서 선녀가 목욕을 했다는 곳, ‘선녀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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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녀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것으로 알려진 삼거리 마을의 '선녀탕' | ||
선녀가 목욕하는 사이 나무꾼은 선녀의 날개 옷을 훔치고,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선녀는 결국 나무꾼과 함께 살게 된다….
‘선녀탕’은 수심이 2m가 넘을 정도로 꽤나 큰 계곡이라 할 수 있는데, 이곳 마을 사람들에게는 어렸을 적 멱을 감고 놀았던 추억의 장소라고 한다. ‘선녀봉’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이곳에서 선녀가 목욕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선 주민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나,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마을에서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선녀탕에 얽힌 이야기도 많어. 예전에는 명주실 한 타래를 다 풀어도 그 깊이를 못 잴 정도로 수심이 깊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많이 얕아졌지. 팔뚝만한 장어가 튀어나와 마을 사람들 모두가 매운탕을 끓여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지…. 아참, 그리고 바로 저기가 나무꾼이 선녀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본 곳이야.”
마을주민 전승수(47)씨가 가리킨 곳은 선녀탕에서 도로 맞은편에 위치한 조그마한 언덕이었는데, 바로 이곳에서 선녀가 목욕하는 장면을 몰래 훔쳐보고 날개옷을 훔치게 됐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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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꾼이 숨어서 선녀 목욕하는 것을 훔쳐본 장소 | ||
삼거리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에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무엇보다 주민들은 ‘효’의 가치가 살아있는 이 야기라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끼는 모습이었는데, 이들은 이를 마을만의 이야기가 아닌 운주면과 완주군의 이미지로 알리기 위해 지난해 ‘선녀와 나무꾼’ 축제를 만들기도 했다.
‘선녀와 나무꾼’ 축제는 순수하게 마을 주민들의 ‘의기투합’으로 만들어진 축제로, 수많은 지역축제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특히 이 마을을 대표하는 ‘선녀봉’과 ‘선녀탕’을 바탕으로,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라는 무형의 마을 문화자산을 활용해, 삼거리 마을을 전국에서 가장 ‘효’의 가치가 살아 있는 마을로 만들어보고자 하는 마을 주민 70여명의 순박한 마음이 녹아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오랜 시간이 지나 마을 주민들만의 이야기로 끝날 수도 있었던 ‘선녀와 나무꾼’ 설화를 마을축제로 승화시킨 삼거리 마을 이야기는 다음편에서 만나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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