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완이와 주니에요.
오늘은 저희가 토마스님의 블로그 포스팅을 소개하려고 해요.
지난 3월에 화암사에 다녀오신 뒤, 포스팅 한 내용이에요.
토마스님은요, '토마스.. 길에서 길을 묻다..'라는 블로그(http://blog.naver.com/alex514)를
운영하고 계세요.

시기적으론 약간 늦었지만 토마스님과 함께 떠나는 화암사 이야기는 재밌고 유익할 거에요.
자, 같이 한번 떠나 볼까요?


지난 금요일...
몸이 안좋아서 집에서 쉬려고 했는데...
전북 남원을 가자고 합니다.
힘들지만 어렵게 일어섭니다..

대신에 내려는 가는데 가는 도중에 내가 꼭 가고 싶었던데를 가자고 단서를 달았습니다.
그곳이...
전라북도 완주군에 있는 "화암사"라는 사찰입니다.

한 10여년 전부터 가보고 싶었으나 맨날 바쁘네 뭐네 하면서 미루다 보니 이제서야 가게 되었습니다.
아주 색다르거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건 아니지만 일단 "세속의 손때가 묻지 않은 늙은 절"이라는 표현이 가장 맘에 들었기 때문에 항상 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기회라는게 널널해도 늙어 가기에 그런건지 자꾸 까먹게 되드라고요.
이번엔 이천시 백사면 산수유마을도 들렀다가 놀멍 놀멍 갔습니다.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에 위치한 "불명산 화암사"
가는 길이 녹녹치많은 않습니다.
서울에서는 중부고속도로를 타고(출발이 강동쪽이라) 죽어라고 내려가다가 대전-통영간 내륙고속도로로 접어 들어 추부 톨게이트로 나갑니다.
추부로 나간다고 하면 대둔산 좋아하시는 분들은 고개를 끄덕일겁니다.
토마스 또한 대둔산을 한때 참으로 좋아해서 이 내륙고속도로가 개통 됐을때 엄청 좋아라 했답니다.
추부에서 대둔산까지는 금방 가니까요.
예전에 논산이나 삼례로 해서 들어가려면 시간도 많이 걸렸지만 토마스는 전주에서 한잔 빨고 들어가는 방식을 택했었습니다만..ㅋㅋ

주말이 아니라 주중이라 그런가...
아니면 주말에도 원체 이렇게 사람들이 없는건지 모르겠으나 오며가며 농로를 지나가는데 마주친 차량이 군내버스 한대였습니다.. 허허...
아주 좁은 외길이라 중간에 차량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대략난감 바로 그 자체입니다..ㅋ
그래도 서로 인상쓰지 마시고 양보하는 미덕을 보여주자고요... 좋은데 가는데..ㅎ
주차장도 그리 넓지 않습니다.
촘촘히 많이 세우면 한 20여대?
사월 초파일엔 좀 걱정 되겠지만 뭐 잘되겠지요..^^*



위에 꽃은 현호색이고 아래는 얼레지라고 하는 꽃입니다.
저도 포럼에 문의해서 알게된 꽃이름이지만 참 예쁩니다.
그리고 몇 분이 야생화 사진을 계곡 구석구석에서 찍고 계시더군요.
그냥 막눈인 토마스가 보아도 야생화가 참 많았습니다만 삼각대도 안 가져갔고 우선 사찰을 돌아보는게 우선이라는 마음에 헐레벌떡 계곡의 비포장 흙길을 올라가야 했습니다.
다만...
가까운 시일내에 꼭 다시 오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새로 구입한 삼각대 메고서... ㅎㅎ




사찰로 오르는 진입로는 오리지날 비포장에다가 비라도 많이 오는 날에는 진입이 불가합니다.
계곡에 자연스럽게 만들어 놓은 길이니까요...
그런 계곡길을 힘들게 올라가는데 여간 꼬불탕 거리는게 아닙니다.

근데...
음...
철제 구조물로 된 철계단이 크럭스(crux) 부분에서 떡하니 버티고 있군요...ㅡㅡ;;
토마스는 이런거 솔직히 싫어라 합니다.
물론 드나드는 신도분들을 위해서 설치했다고 하겠지만 철계단 옆으로 조금 급경사이긴 하지만 너덜지대로 해서 약간 돌아가는 낭떠러지 길이 있습니다.
물론 산길을 우회하는 시멘트길이 없는건 아닙니다만 몸이 불편하시거나 대중교통으로 오시는 분들을 위해서 만들었다고 하겠지만 굳이 이런 시설을 했어야 했을까...하는 의구심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편하고 쉽게만 갈 수 있는 길과 사찰이라면 오히려 그 감응과 감동은 반감된다고 보여지니까요...
아... 이건 저만의 개인적인 생각이랍니다...ㅎ
저런 철계단을 만들다 보면 아무래도 자연파괴가 자연스럽게 있게 되니까 안타까움에 그런다고 헤아려 주십시오...
그래서도 이 부분이 두고두고 안타까움으로 남았답니다..ㅎ

다음번엔 철계단 말고 옛길로 오르내려 볼랍니다.
그런데 가만 보고 있으니...
이누무 절간은 그냥 임꺽정이나 홍길동이 거처하든지 아니면 화적패들이나 거쳐 하는 밀영이 더 적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ㅋ
워낙에 들어가는 길이 드러우니...ㅎㅎ



철계단을 가파르게 올라서 숨을 돌릴라 치면 어렴풋하게 절간의 지붕이 보입니다.

그리고 돌계단을 내처 오르면 대한민국에 몇 안되게 잘 보존되고 숨어있는 사찰중에 한곳인 "불명산 화암사"를 만나게 됩니다.

언젠가부터(아마도 인터넷이 상용화 되면서 부터라고 판단됩니다만..) 길도 없고 안내판은 찾아 볼래야 찾아 보기도 어려웠던 화암사를 사부대중에게 알려지게 한 주인공이 화암사의 대문격인 "우화루"입니다.


비 雨 꽃 花 다락 樓..


화암사의 간판선수격이지요.
보물 662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신라 진성여왕때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토마스의 짧고 오래된 기억만으로 되짚어 내는거라 맞고 틀리고는 모르는 얘기입니다. ㅋ
그런게 중요한거는 학자들에게 필요한거고 정말 대중들과 여행객들에게 필요한 건 얼마나 잘 보존되고 앞으로도 잘 보전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여기서 보존과 보전은 조금 다른 단어입니다.)
우화루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꽃비가 내리는 누각이라는 뜻이라고 짐작됩니다만 금방이라도 꽃비가 내릴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찰의 주변에는 벚꽃나무와 매화나무만 몇 그루 있을뿐 메타세콰이어길에서 보듯이 엄청난 나무들로 뒤덮여 있거나 둘러싸여 있지 않습니다.
이날따라 수행하시는 스님들도 안 보이기에 여쭤보지도 못했습니다.

다만...
우화루를 정면에서 보는데 바로 앞에 있는 매화꽃 한그루가 웬지 잘 어울리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웬지 누각이 위압적이지만 편안하게 사람을 맞이하는 듯 하더군요...
그래서 오래된 늙은 절이 주는 위압감과 편안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답니다.


아..이래서 이 사찰을 찾는구나...하는 느낌이 확 다가왔고 앞으로 기회가 닿을때마다 자주 와야겠다...하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외부에는 기둥을 세우고 안쪽은 마루를 깔았는데 앞면에는 기둥만을 2층으로 하고 후면은 축대를 쌓아 단층으로 보이게 한 2층 건물입니다.

극락전의 정문 역할을 하듯 만든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정말 천연지형을 잘 이용해서 만들었다는 생각이 확연합니다.

아주 경사가 심한 계곡의 암반위에 절묘하게 경사를 이용해서 만들었구나 하게 보여지니까요.

건축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밑바탕을 하는 기둥을 보면 더하지요...

그래서도 화암사는 이 우화루의 기둥과 양식때문에 더욱 빛이 나기도 하나 봅니다.

비록 늙은 절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실 화암사는 이 우화루 하나만을 보기 위해서 방문해도 그 고생해서 올라오는 값어치를 충분히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은 4월이 코앞에 다가 왔지만 아직 추운가 봅니다.

아마도 행자들이나 신도님들이 잠깐 머물때 이용하는 문간방이나 사랑방 같은데 비닐로 돌돌 말은 문짝이 그대로인걸 보니...

가만히 되짚어보니 계곡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기운때문에 산속 깊은곳에 있는 화암사는 아마도 겨울이 길겠구나 싶습니다.

 

 목어...

절간이 늙으니까 덩달아서 나무 물고기도 늙었습니다.

세울이 늙어 가는데 뭔들 안 늙겠습니까...

아주 보기 좋게 늙어 갑니다...

토마스도 이렇듯 곱게 늙어 가야할텐데 걱정이군요...

 

 이 현판의 편액은 조선 헌종때(확실치 않습니다. 오래전의 기억만으로 기술하는거라) 쓴거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참으로 오래된 편액이군요.

이런 편액을 볼때면 먼저 돌아가신 큰외삼촌이 생각납니다.

외숙모님과 이종사촌동생들이 많이 힘들어하게 음주를 즐기셨지만 글씨 하나 만큼은 대한민국에서 둘째 가라면 섭섭할 정도로 글씨를 잘 쓰셨는데...

시대를 잘 못 타고 나신 안타까움 때문이셨을까 그래서인지 음주가 항상 과 하셨다는...

글씨 잘쓰는것도 예술의 한분야 일까요?
 

화암사 극락전...

만든지 400년이 넘은 목조로 만든 이 전각은 그동안 몇번의 중창을 했을거로 짐작됩니다.

그래서도 보물 663호로 지정되어 있지요..

이 전각은 불교에서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안치한 당우라고 합니다.

극락왕생하라고 하는건가요?ㅋ


아주 특이한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달랑 한개뿐인 "하앙식"건물이라고 합니다.

그게 뭔 소린인지 모르겠어서 뒤져보니 "바깥에서 처마 무게를 받치는 부재를 하나 더 설치하여 지렛대의 원리로 일반 구조보다 처마를 훨씬 길게 내밀 수 있게 한 구조"라고 되어 있네요.

역시 우리 선인들의 지혜는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절간의 건물 한개를 지으면서도 대충 짓는게 아닌 수백년을 지탱할수 있고 예술적인 부분까지 함께 고려했을테니...

존경합니다... 

 
"적묵당"...

말 그대로 조용하란 얘기인가요?ㅋ

허긴 이렇게 심산유곡에 자리한 사찰을 찾아 오는 인간들 중에 시끄러울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저 오는듯 가는듯 소리 소문없이 사그러질 따름이지요.

근데 이 화암사라는 사찰....

징글징글 조용합니다.

새소리와 물소리 밖에는 안 들립니다...

그래서도 너무 맘에 듭니다. 

 
우화루가 보물임을 확인 시켜주는 돌멩이... 

 전각의 문살도 문살이지만 굳게 닫은 극락전의 문..

커다란 자물통을 감옥 닫듯이 철커덩 닫아 놨네요...

그럼 염불은 어찌하라고?ㅋ

알아서 밖에서 하고 가라 이건가봐유...ㅋ

극락전에는 옆문이 안보이드라고요..

 

 토마스가 이거 보고 정말 화났습니다.

도데체 워떤 무식한 종자들이 이런 낙서를 하는건지 원...ㅡㅡ;;

굳이 이렇게 무식하고 한심한 작태를 표시하고 다녀야 속이 후련한건지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나름대로 예술의 한 장르라고 웃어 넘겨 줄까요?

그러기엔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옵니다.

북한의 금강산이나 묘향산 같은데나 남한의 명산명소라는 이런데 가면 옛날 시인묵객들이라 칭하던 양반님네들이 글씨 자랑하는라고 그런건지 아니면 지식을 뽐내려 그랬는지 엄청 튼 글씨로 음각을 해놓고 거기다가 먹물까지 부어 놓은걸 종종 봅니다.

게다가 북한에서는 지금은 주체사상을 강조하기위해 웬만큰 부각된 바위에는 어김없이 큰 글씨를 파 놓았는데...

완전 욕 나옵니다.

자연이 즈그들 낙서장이란 말입니까?

이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찰이 조용하고 오지에 있으면 오히려 더욱 애지중지는 못 할 망정 그저 똥 마려운 강아지가 서로 앞 다투어 흔적 남기고 가는 꼬라지 같으니 원...

에잇 퉤퉤퉤...ㅡㅡ;;

 

 그 원인은 절간을 지키는 수호신 같은 강아지가 없기에 그랬군요....

안타깝습니다.

누가 쓸만한 강아지 한마리 분양해 주시면 좋을 듯 합니다만..ㅎㅎ

 

 화암사는 정말 작은 암자라는 표현이 적당합니다.

전각 4개 정도가 모두니까요.

깊은 산속에 폭 들어간 엄마 뱃속의 태아와 같은 느낌을 줍니다.

 절간 주변을 자세히 돌아 보지는 않았지만 한바퀴 삥 돌아 봤습니다.

약간의 발품을 팔면 숲속에서 나무만을 보지 않고 숲 전체를 볼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몇그루 안되는 매화 나무지만 색깔도 아주 곱고 서있는 자태나 위치가 아주 절묘하고 기가 막힙니다.

늙은 절인 화암사와 너무 잘 어울린다는 표현은 과한   오버일까요?

저런 꽃을 보고 스님들은 수행을 하다가 새로운 깨달음에 도달할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뒷문으로 나오면 시멘트 포장길로 해서 갈수도 있답니다.

아주 오붓하게 자리잡은 작고 늙은 절 화암사를 보면서 앙증 맞다는 생각도 떠오릅니다..ㅋ

 

 사찰의 옆쪽으로 가면 깍아 지른 낭떠러지 위로 올라갈수 있습니다.

조금만 조심하면...

그러면 화암사 중창비라는 비석과 안내판을 만나게 됩니다.

조선 세종때 다시 세운 화암사라는 뜻으로 선조 5년에 중창비를 세웠다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그 중창비가 있는데서 약간 위험한 바위를 올라서면 화암사를 들어 오는 입구의 계곡을 맞이하게 됩니다.

저 구비진 산길의 계곡을 그대로 따라 올라와야 하니까 쉬운일은 결코 아닙니다.

설악산 봉정암이나 오세암 같은 오지중에 오지의 사찰이나 암자에 비하면 게임도 안되겠지만 한수이남에서는 이정도로 오지에 들어가버린 사찰을 찾기도 그다지 쉽진 않습니다.

 

 사찰의 뒷편에는 방풍림이 될법한 대나무 숲이 장관입니다.

바람소리에 윙윙 울어 대는 대나무들의 울음소리...

생각만 해도 현학적인 소리의 음악적 상황이 떠오르는군요...

 

 동백나무도 달랑 한그루..ㅋ

역시 뒷마당에 있어야할 멍멍이도 가출한건지 아니면 운명을 다해서 세상 하직 한건지 안 보입니다.

 

 산신각은 아예 바위위에 기둥을 세웠습니다.

 

 우화루 입구에 있는건데 저는" 산두릅"인지 알았는데 사찰에 계신 처사님인지가 두릅이 아니라고 하시네요.

그럼 무엇인지는 알려주셨어야 하는데...

두릅이 아니면 무언가요?

많이 궁금합니다...

 

 늙은절 불명산 화암사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증거..

우화루의 기와지붕에 피어난 잡초들...

마치 수염이 숭숭 막 자란 모습이 연상 됩니다.

 

 화암사 탐방을 마치고 내려오는길에 만난 부도 2기..

누구의 부도인지는 모르겠으나 화암사에서 불심을 다하신 스님의 것이리라...

비록 다른 이유때문에 남원을 가야하는 통에 좀 더 깊이있고 다양한 탐방이 되진 못 하였지만...

깊고 깊은 산속에 자리한 이제는 네비게이션이라는 인간들의 과학의 산물로 인해 조금 쉽게 접근하게 된 불명산 화암사...

반나절이라도 시간적 여유만 된다면 넉넉하고 부드러우면서 풍요롭고 편안한 탐방을 할수 있을거라 보여집니다.

특히나 조용한 가운데 야생화 탐방과 자연과의 교류 그리고 호흡을 할수 있는 정말 좋은 사찰이라는 생각입니다.

하나 더 나아가면 대둔산을 산행하고 약간의 여유 시간이 있다면 뭉친 다리 근육도 풀겸 한바퀴 산보하듯 돌아 본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흐뭇한 상상을  해봅니다...


늙은절이지만 아담하고 결코 쉽지 않은 "불명산 화암사"는 아직 거기 잘 있습니다... 

2009년 3월 30일..."길에서 길을 묻다"...THO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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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