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완주 화암사 극락전이 국보로 지정되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불명산 아래 고즈넉이 앉아있는 화암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천 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안도현 시인은 화암사, 내 사랑이란 제목의 시까지 지으면서 그 매력에 흠뻑 빠졌는데요. 국보로 승격된 화암사는 이제 더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800평 남짓한 바위에 세워진 작은 화암사는 도대체 어떤 이유로 국보로 승격되었을까요? 오늘은 국보로 승격된 완주 화암사를 소개합니다.

욕심없이 소박하게 천년을 이어 온 화암사

 완주 화암사는 욕심이 없는 절입니다. 완주군 경천면 불명산 자락을 따라가다 보면 한 채 가옥 규모밖에 안 되는 사찰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화암사는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여느 사찰과는 다르게 그 규모가 작고 단조롭습니다. 마치 산 속에 오래된 초가집 같은 모습입니다.

 화암사는 신라 진성여왕
3(694)에 일교국사가 창건하였으며, 설총도 한때 이곳에서 공부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여러 번의 중수를 거치면서 살아남은 화암사는 고려말 조선 초에 성달생이라는 무인이 1425년부터 4년에 걸쳐 중창하고 단청도 다시 칠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화암사는 1597년에 임진왜란을 맞으면서 불타버립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에 의해 화암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절 중에서 가장 빠르게 재건축됩니다. 그만큼 화암사가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력이 컸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고즈넉한 매력이 살아 숨쉬는 화암사

고즈넉한 매력이 살아 숨쉬는 화암사


화엄사를 이루는 두 보물, 극락전과 우화루

화암사는 두 개의 목조 건축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화암사 입구를 맞이하는 보물 622호의 우화루입니다. 우화루는 화암사 경내에 있는 극락전 정문과 같은 성격의 누입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조선 광해군 3(1611)에 세운 것으로 뜰 사이를 두고 극락전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수백 년의 세월을 한 자리에서 지키고 있는 우화루는
1층 축대가 약간 기울어져 있고, 건물은 연한 회색빛으로 많이 바래져 있어 안쓰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기울어진 자세가 오히려 오랜 세월의 흐름을 지지해주는 버팀목이 된 건 아닐까요? 우화루의 왼쪽에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화엄사의 두 번째 보물 극락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화암사 극락전

화암사 극락전


화암사 극락전은 임진왜란 이후 선조 38(1605)에 다시 세워졌습니다. 앞면 3칸에 옆면 3칸 크기로 사람 인()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소박하고 작은 규모의 극락전은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건물 안쪽 가운데 칸 뒤쪽에는 관세음보살상이 모셔졌으며, 그 위에 지붕 모형의 닫집을 만들어 용을 조각해 놓았습니다. 화암사 극락전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하앙식 구조물이라는 것입니다. 보물이었던 극락전이 국보로 승격 지정된 연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목조건축기술의 자존심을 세운 화암사 극락전

  화암사 극락전은 1980611일 보물 제633호로 지정되었다가 20111128일 국보 제316호로 격상되었습니다. 극락전은 하앙구조식 공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앙이란 기둥 위에 중첩된 공포와 서까래 사이에 끼워진 긴 막대기 모양의 부재를 가리킵니다. 이 하앙의 끝 부분 위에 도리를 걸고 서까래를 얹으면 밖으로 돌출한 하앙의 길이만큼 처마를 길게 뺄 수 있습니다. 이는 실용과 장식에 대단히 유용한 구조재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양식은 백제계 양식으로 추정합니다. 그 이유는 하앙에 의해 만들어진 깊은 처마가 강수량이 많은 평야 지대, 곧 백제지역에 적합한 기능을 갖기 때문입니다.

http://buyeo.museum.go.kr/html/home/exh/exh_03_07.jsp


  하앙구조는 일본은 물론 중국의 전통건축에서도 흔히 쓰인 형식이고, 그 실례도 적잖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그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고, 단지 목조건축의 모습을 그대로 본떠 만든 백제 시대 청동소탑(공주 부여박물관 소장)정도에서 그런 공포구성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를 빌미로 일본학자들은 하앙구조가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중국에서 일본으로 직수입되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1976년 화암사 극락전의 하앙구조가 학계에 보고되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영영 볼 수 없으리라 체념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만인의 눈앞에 하앙을 가진 건물이 자태를 드러낸 것입니다. 일본 측으로서는 큰 충격이었고, 우리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발견이었습니다. 화암사 극락전은 단숨에 국내외 전문가들의 관심의 표적이 되었고, 현재까지 더 이상 비슷한 사례가 보고된 바가 없습니다. 이렇듯 조용한 산세에 늙은 절로 묻혀있던 화암사 극락전은 우리나라 목조건축기술의 자존심을 세워준 것입니다.


아는 만큼 더 소중하고 아름답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씨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로 우리 문화재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사전 배경 지식이 충분해야 함을 말했습니다. 완주군의 화암사도 그 가치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냥 시골 산속에 허름한 사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화암사 극락전은 긴 시대, 너른 폭을 한몸에 지닌 흥미로운 건물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반성하게 만들고, 공부하게 만들고, 아름다움과 재미를 주는 작지만 당찬 우리의 국보입니다. 천년이 넘는 역사와 문화를 고이 간직하고 물려준 완주 화암사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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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