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향기2011/06/13 09:58

 “저에게 있어 한국은 이제 제2의 고향입니다. 한국인 친정엄마도 생겨 믿고 의지할 수 곳도 생겼고요, 이젠 하루라도 된장찌개와 김치를 먹지 않으면 밥 먹은 것 같지가 않거든요. 저 이제 한국 아줌마 다 됐죠?”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코르티코 로르나(38·전북 완주군 고산면)씨는 시부모를 모시며 틈틈이 농사일은 물론 지역아동센터에서 원어민 교사로 활동하는 다재다능한 며느리다. 하지만 그녀가 처음 한국을 찾았을 때는 겨울의 매서운 바람과 김치 등 매운 음식에 적응하느라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한다. 9년차 주부 코르티코 로르나씨를 만나 한국 생활 적응기를 들어봤다.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9년차 주부 코르티코 로르나 씨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9년차 주부 코르티코 로르나 씨



한국어, 1년간 남편과 받아쓰기 연습하며 실력 키워 

2002년 필리핀 마닐라의 한 교회에서 한국인 남편을 만나 한국에 정착하게 됐다는 코르티코 로르나씨. 한국으로 시집 간 주위 친구들의 행복한 결혼생활 소식에 부푼 기대를 갖고 온 한국에서의 생활을 만만치 않았다. 첫째 말이 통하지 않았고, 문화적 차이도 커 어려움이 많았다. 

“처음 한국에 왔을 당시만 해도 제가 아는 단어라고는 ‘안녕하세요’ 가 전부였어요. 더운 나라에서만 살다보니 조금만 추워도 몸이 바르르 떨리고, 음식은 왜 그리 매운지 처음엔 적응하기가 어려웠죠. 제가 한국말을 못하니 나이 많은 시어머니와는 기본적인 대화도 못하니 서로 오해만 쌓여갔는데, 남편이 시어머니와 제 사이에서 역할을 잘 해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어요.”

“남편은 한국어를 못하는 저를 위해 회사가 마치고 돌아오면 하루 2시간씩 저를 붙들고 한국어를 가르쳐줬어요. 제가 한글을 모르니까 기역(ㄱ)을 가르칠 때 영어 받침을 적어줬어요. 그래서 이해하기가 쉬웠어요.”

그녀는 매일 단어장을 만들어 외우고 생소한 농기구나 물건이 보이면 그때 그때 물어봤다. 사용법과 그 용도가 무엇인지 꼬치꼬치 깨물어 눈에 보이는 것부터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또, 그녀의 남편은 아무리 시골이라도 집에만 있으면 한국어가 늘지 않는다며 사회활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다른 집에서는 외국인 며느리가 어디 나간다고 하면 도망간다고 생각해 허락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녀의 남편과 시어머니는 제가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그녀를 믿고 배려해줬다고 한다. 

그렇게 코르리코씨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시어머니와 함께 집안일과 농사일을 도왔다. 낮에는 한국어 교육을 해주는 교회와 다문화가족센터를 찾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한국어를 배웠다. 밤에는 남편과 받아쓰기를 하며 한국어를 습득했고, 1년이 지나자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2007년부터 지역아동센터에서 원어민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코르티코 로르나씨

2007년부터 지역아동센터에서 원어민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코르티코 로르나씨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해준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 

한국 음식은 너무 매워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임신을 하면서는 자연스럽게 매운 음식에 손이 갔다. 이제는 하루라도 김치를 먹지 않으면 뭔가 허전할 정도로 한식 마니아가 됐다. 

그렇게 한국어가 어느 정도 늘자, 아들 둘, 딸 둘을 출산했다. 농사일과 아이들을 돌보며 내조의 여왕으로써 생활했다. 하지만 마음 터놓을 친구가 없다 보니 마음의 병이 생겼다. 마음이 공허해 무언가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무렵 완주군에서 원어민 강사를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육에 참가했다. 필리핀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수학을 부전공하며 3년 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2007년부터 지역아동센터에서 하루 6시간씩 원어민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조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과 한부모 가정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틈틈이 숙제도 봐주고 있다. 

“산후 우울증과 향수병이 찾아와 한참 마음이 답답해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었어요. 그때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됐죠.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는 엄마나 아빠가 계시지 않는 어린이들이 많은데, 아픈 상처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 많더라고요. 처음에는 취미생활로 가르치고 싶었는데, 이제는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될 정도로 제 자부심이 되었어요.”

그녀가 이토록 지역아동센터 원어민 교사에 적극적인 것은 그동안 한국 적응에 도와줬던 많은 분들의 배려를 아픈 상처를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 나눔으로 실천하고 싶어서다. 

“제가 아무도 없는 한국에 와서 적응하기까지 정말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거든요. 다문화여성대학을 다니며 한국인 친정엄마 맺을 수 있는 기회도 생겼고요, 저와 같이 한국으로 시집 온 친구 중에는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중도에 고향으로 돌아간 친구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배려로 사회활동에도 참여하면서 한국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잖아요.”

코르티코씨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자신이 더 많이 배우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어로 말할 때 제가 조금 느리게 말하는 편인데, 아이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서 이야기 하려고 노력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말의 강약도 조절하게 됐어요. 아이들과 함께 있다 보면 웃을 일이 많아서 인지 제가 더 기분이 좋아져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제가 느끼지 못했던 삶의 보람과 재미를 찾게 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그녀의 꿈은 소외된 계층을 위한 공부방을 여는 것이라고 한다

그녀의 꿈은 소외된 계층을 위한 공부방을 여는 것이라고 한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죠.”

그녀는 한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외국인 며느리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저도 30년 가까이 필리핀에서 영어와 필리핀 어를 사용했는데, 한국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게 쉽지 만은 않았어요. 한국어는 한 단어에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어 이해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먹는 ‘배’, 떠다니는 ‘배’, 사람의 몸에 ‘배’ 등 모두 한 단어로 여러 가지 상황에서 쓰일 수 있으니깐 어렵잖아요.”

“물론 한국어가 어렵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가짐라고 생각해요. 한국으로 시집 왔으면 한국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데, 한국말을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아이도 키워야 하고, 시장도 가야되고,”

그녀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외국인 엄마들에게 한국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처음 1년은 한국 문화에 적응하랴, 음식에 적응하랴, 한국어 배우랴, 시어머니와 남편과 의사소통 등 어려움이 많지만 어떤 일이든 시행착오가 있어야 적응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저도 부정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일도 잘 풀리지 않았는데, 제 스스로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무엇이든지 배우려고 노력하니까 주위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더라고요. 누군가 먼저 도와주기를 바라기 보다는 스스로 노력하면서 사람들과 부딪쳐 살다보면 어느새 한국 생활에 적응해 있는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이주여성 자녀들 위한 ‘공부방’ 열고 싶어요.”

그녀의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올해부터는 대학에 입학해 보육교사 자격증에 도전하고 있다. 

“제가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아요. 우리 아이만 해도 4명이고, 지역아동센터에서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까지 하면 10명이 넘거든요. 저도 스스로 도전하고 발전해야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을 거라 생각에 대학에 입학했어요. 어린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받으니 더 열심히 해야 겠다는 자극도 되더라고요.”

그녀의 꿈은 이주여성과 소외된 계층의 자녀를 위한 ‘공부방’을 여는 것. “이주여성들 가운데는 한국어가 서툰 분들도 많은데, 그게 바로 자녀들에게도 영향이 미치는 것 같아요. 엄마가 한국어를 못하니까 아이들이 질문을 할 곳도 없으니 숙제도 안 해가고, 학교생활이 엉망이 되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거든요. 그런 친구들을 위해 제가 도움을 주고 싶거든요.”

시어머니를 모시는 아이 넷의 엄마이자 주말에는 하우스 시설재배를 하며 농촌 아낙네의 삶을 살고 있는 코르티코 로르나 씨. 소외된 계층을 돕고 싶다는 그녀의 따뜻한 꿈이 실현되기를 기대해본다. 

정책기자 박이슬(직장인) loinya@naver.com

# 이 글은 대한민국 정책포털 '공감코리아'에 게재된 글입니다 
Posted by 완이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