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지키는 위봉산성
 
위봉사를 빠져나와 위봉산성 쪽으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아담한 마을이 하나 반긴다. 위봉마을이다. 근처에 천년고찰과 절경이 있으니 이 마을 사람은 참 행복하겠구나 싶다가 곧 생각을 바꾼다. 사실 지금은 포장도로가 깔려 있어서 그나마 괜찮지만 근래에 이르기까지 이곳은 상당한 오지였다. 지형이 험하여 도로가 나기 힘들었고 눈이 조금만 와도 교통이 끊기기 일쑤였다. 위봉산성이 이곳에 만들어진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 인고의 세월을 버틴 사람들이니 이 정도 행복을 누리는 게 당연한 건 아닐까. 위봉마을의 끄트머리부터 위봉산성 안내판이 보인다.


위봉산성은 조선 시대 숙종 때 축조된 산성이다. 일반적으로 성(城)은 전시상황에서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 요충지나 행정적 중심지를 지키기 위해 쌓는다. 도성이나 읍성은 행정도시를 지키기 위해 축조한 것이고 군사적 요충지는 주로 산성의 형태로 만들었다. 그런데 사람이나 시설이 아니라 조그만 영정을 지키기 위해 쌓은 성이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서 만든 성이 위봉산성이다. 

위봉산성은 포곡식 산성으로 성벽 둘레는 약 8,539미터, 성벽 높이는 1.8미터에서 2.6미터에 이른다. 성문 4개, 암문지 6개, 장대 2개, 포루지 13개, 추정 건물지 15개, 수구지 1개가 확인되었는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시기 위한 행궁도 있다고 한다. 동학혁명 당시에 경기전에 있던 태조의 영정을 이곳에 옮겨 보관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일부 성벽을 제외하면 성벽과 성문, 포루, 여장, 총안, 암문 등이 잘 보존되어 조선후기 성곽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드디어 위봉산성 서문지이다. 위봉산성 길 안내도가 있고 그 옆에는 훼손된 비석들이 기우뚱 서 있다. ‘관찰사심공 ’어쩌고저쩌고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공적비일 것이다. 위봉산성은 그리 높지 않아서 위압적이지 않고 아름답다. 험난한 산세 자체가 방어벽일 테니 굳이 높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조선 개국의 소망을 담은 퇴조암 가는 길
 

되실봉으로 가는 길은 상당히 넓은 편이어서 차량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너비이다. 실제로 가끔 차가 오르기도 한다지만 비나 눈이 조금만 내리더라도 언감생심일 듯하다. 사람이 전혀 없어서 가끔 만나는 등산로 표식도 반갑다. 오래지 않아 퇴조암과 되실봉이 갈리는 길이 나온다. 태조암 갈림길 근처에 차량을 통제하는 줄이 쳐 있다. 이때 저쪽에서 등산객 세 명이 내려온다. 오늘 처음 보는 등산객이다. 나이가 지긋하게 들어 보이고 잘 차려입은 등산복과 장비를 보니 오랫동안 산행을 해온 사람들 같다.

태조암 가는 길은 눈이 아직 녹지 않아서 약간 질퍽거린다. 안내표식에는 갈림길에서 태조암까지 거리가 100미터라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상당히 먼 거리였다. 그렇지만 길이 넓고 곳곳에 고목이 있어서 고즈넉하고 좋다. 
곧이어 일자형으로 단아한 한옥인 태조암이 눈에 들어온다. 원래 태조암은 이성계가 개국을 기원했던 곳에 만드는 건물인데, 이곳에 세워진 것은 산성을 축조한 이유가 태조 영정의 보호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는 9천 5백 개의 불상이 그려져 있는 8폭 탱화가 있다. 
탱화란 불교의 부처의 모습이나 경전의 내용을 그린 불화(佛畵)이다. 특히 불상을 봉안한 후, 그 뒤에 걸어놓는 ‘후불탱화(後佛幀畵)’는 한국불교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이다. 여유 있는 사람은 천천히 감상해 봐도 좋을 것이다. 



위봉폭포에 들뜨고, 위봉사에 취하다
 

태조암을 나와 바삐 걸음을 옮기니 되실봉과 서문지가 갈리는 길이 
나온다. 되실봉으로 가는 길 곳곳에는 성벽이 있고 때로는 성벽 자체가 길이 되기도 한다. 마치 성을 지키는 군사가 된 기분이다. 산 아래로 보이는 도로가 산허리를 휘감고 올라오는 뱀 같다.

되실봉 정상에 가까이 이르자 산 한쪽이 민둥산으로 비어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항공사진으로 보면 원형탈모증을 앓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되실봉을 지나 길 반환점에 이르니 세 갈래 길이 나온다. 서래봉과 사방댐 그리고 되실봉으로 가는 길이다. 서래봉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서래봉 가는 길은 가끔 눈이 녹지 않은 길이 조금 불편하게 할 뿐 그리 험하지는 않다. 한참을 걷다가 해발 700미터라는 글과 함께 서방산과 오도재를 가리키는 표지가 보인다면 그곳이 바로 서래봉이다. 

이곳에서 오도재로 가는 길은 표시가 정확하지 않아서 길을 잃기 쉬우니 조심해야 한다. 오도재에 도착하면 사방댐으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가 있는데 그 길을 따라 내려오면 된다. 사방댐에서 약 1킬로미터 정도 가면 앞에 저수지가 보이고 콘크리트포장도로가 나온다. 
저수지를 오른쪽에 끼고 다시 1킬로미터 정도 가면 오성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이 길은 위봉폭포라는 자연의 풍광에 들뜨다가 위봉사라는 천년고찰의 고즈넉함에 취할 수 있는 길이다. 처음에는 소걸음으로 걷다가 나중에는 잰걸음으로 걸어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오마이뉴스의 장권호 기자가 위봉사를 “자연과 인공이 상생하는” 곳이라고 했는데, 딱 어울리는 말이다. 절도 절이지만 산세를 이용해 만든 산성도 자연과 인공이 상생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길은 성벽을 따라 걷는, 남다른 즐거움을 준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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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완이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