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으로2009/08/16 09:37

목남 씨는 ‘나무꾼 주유소’를 지난 17년간 경영했다. 목남 씨는 태만한 주인이었다. 봄부터 가을까지만 영업했다. 나머지 기간은 여행을 떠났다. 누구에게도 어디로 떠나는지 말하지 않고, 제비처럼 찬바람이 불면 떠났다가 봄바람이 불면 다시 돌아왔다.

그러니 손님이 있을 턱이 없었다. 한적한 도로 옆 작고 허름한 주유소였기에 이따금 길을 잃은 차들이 지나다가 기름을 넣어가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목남 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에겐 단골손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골손님은 목련이 필 무렵부터 밤송이가 떨어지는 시기까지 보름에 한 번꼴로 산골짝으로 기름을 주문했다.

산골짜기 단골손님의 연락방식은 조금 희한하다. 낮잠을 자거나 일을 하고 있는 목남 씨가 발등이 따가워서 내려다보면 하얀 고슴도치가 제 가시로 발등을 콕콕 찌르는 것이다. 하얀 고슴도치는 예로부터 신선들끼리의 기별을 전하는 전령이다. 이 전령이 신체 어느 부위를 가시로 찌르는지에 따라 메시지가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목남 씨가 아는 것은 발등을 찌르면 ‘그들이 곧 온다.’라는 뜻, 그게 전부였다.

오늘도 하얀 고슴도치가 목남 씨의 발등을 찔렀다. 목남 씨는 고슴도치에게 비스킷 몇 개를 집어주었다. 그리고 옷장에서 양복을 꺼내 입었다. 오래된 양복이었다. 족히 30년은 됐을 것이다. 하긴 86아시안게임 때 중국과의 국가대표 탁구경기를 보다가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완주라사의 주인 테일러 윤이 만든 수제 양복이었다.

목남 씨는 좀이 슬어 흰 얼룩이 생긴 양복의 어깨를 툭툭 털어냈다. 먼지가 풀풀 났다. 30년 전 어느 날을 기억하게 하는 냄새도 났다. 목남 씨의 콧구멍으로 그가 젊은 시절에 발랐던 머릿기름 냄새와 여자의 분 냄새 입자가 들어왔다. 거울을 바라보던 목남 씨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졌다.

목남 씨는 석유를 채운 기름통을 트럭에 실었다. 그러고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때마침 제비가 줄지어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어느새 가을의 끝자락이었다. 떠날 때가 된 것이다.

목남 씨는 트럭을 몰아 선녀봉으로 향했다. 중간에 제과점에서 케이크 하나를 샀다. 하얀 천사가 그려진 초콜릿 케이크였다. 그는 트럭이 들어갈 수 없는 길부터는 걷기로 했다. 등산객들은 양복차림에 한 손에는 기름통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케이크를 든 사내를 수상쩍게 바라보았다. 목남 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등산객들의 관심을 무시하고 부지런히 금당계곡을 향했다.

곧 목남 씨는 등산로를 벗어났다. 그는 야생동물이 다니는 가파른 비탈을 올랐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비탈을 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머릿속의 지도를 펼치고 곳곳에 마련된 표식을 읽으며 정해진 길을 따르고 있었다. 표식은 지나치게 사소했기에 사람들은 봐도 뭔지 몰랐다.

이를테면 나뭇가지가 ㄱ자로 부러진 물푸레나무에 주목해야 했다. 또 그 부러진 가지와 오리나무 가지 사이에 쳐진 커다란 거미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거미줄을 보면 께름칙해서 돌아선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표식이다. 그 표식 아래를 통과해 사선으로 스무 걸음을 가다 보면 이름 모를 양치류 식물군이 나오는데, 그 양치식물들 안에 둘러싸인 뾰족한 바위와 둥근 바위 사이에 난 작은 계단들을 밟고 올라서야 한다. 그러면 여태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던 오솔길이 보인다. 바로 그 오솔길을 오르면 숲의 빈터가 나온다.

숲의 빈터는 산속의 비밀공간이다. 빽빽한 나무로 둘러싸여 마치 벽장 속처럼 아늑했다. 까치발을 들고 조심스럽게 걸어도 발소리가 크게 울릴 정도로 조용한 곳이다. 목남 씨는 머지않아 그 숲의 빈터에 도착했다. 목남 씨가 촘촘하게 얽힌 나뭇가지와 이파리들의 저항을 뚫자 울창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숨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간 안에는 작은 폭포가 떨어지는 맑은 물웅덩이가 있었다. 그 물웅덩이 위에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가을 하늘이 비치고 있었는데, 방금 수면 위로 팔색조 한 마리가 발가락을 담갔다가 하늘로 비쭉 치솟았다. 그러자 섬세한 파문이 일었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섬세했다. 또한 차분했으며 고요했다. 세상과 단절된 것 같았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서 선녀가 목욕을 한다고 했다. 물론 목남 씨에게는 전설이 아니었다. 그리고 석유배달을 부탁한 사슴 아주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안녕한가?”

사슴 아주머니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목남 씨는 대꾸 없이 물가에 쳐진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 안에는 오래된 석유난로가 있었다. 선녀들이 목욕하고 나서, 물에 젖은 몸을 말리는 용도로 사용하는 난로다. 옛날에는 마른 땅 위에 나뭇가지만 태웠지만, 지금은 불연재질로 만들어진 천막 안에서 석유난로를 켰다.

“죽을 때가 돼서 그런가? 얼굴이 좋네.”

사슴 아주머니가 석유난로 심지에 불을 붙이는 목남 씨에게 농담을 건넸다. 목남 씨는 웃어 보였다. 그리고 천막을 나와 숲의 빈터가 한눈에 보이는 바위로 올랐다. 사슴 아주머니가 그 뒤를 따랐다. 그녀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잘 올랐다. 그녀가 다리를 대신해서 의존하는 지팡이를 바위에 치며 말했다.

“오늘은 27년 전처럼 일을 그르치지 말게나. 그러니까 제발 숨소리도 내지 말고 여기 바위에서…….”

목남 씨는 알아들었다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27년 전 그날처럼 바위 위에 납작 엎드렸다.

“두 시간 정도 뒤면 올 거야. 그때까지 힘들겠지만 움직이지 말고…….”

사슴 아주머니의 계속되는 잔소리에 목남 씨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사슴 아주머니는 투덜대며 물가로 내려갔다. 그녀의 투덜대는 소리와 절뚝거리느라 엇박자로 들리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목남 씨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두 시간 뒤였다. 이미 사위는 칠흑같이 어두워져 있었다. 목남 씨는 번쩍하는 굉음에 잠에서 깼다. 목남 씨는 눈을 뜨자마자 시커먼 밤하늘 상공에 예리하고 길쭉한 빛줄기가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플뢰헨블리츠(Flächenblitz)라는 현상이다. 쉽게 말하면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그 벼락의 갈래와 갈래를 잡고 선녀들이 나타났다. 전광석화처럼 빠른 순간이었다. 지상과 제법 가까운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선녀들이 일제히 빛줄기를 뿌리쳤다. 그러자 온화한 빛을 내뿜는 날개옷을 펄럭거리며 선녀들이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목남 씨는 침을 꼴깍 삼켰다. 27년 전 그날처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Posted by 완이주니